〈 164화 〉#2-11 과연 그 마법소녀의 행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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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크라크】에서 세 명의 마법소녀가 여전히 영혼이 갈려나갈 정도로 당하고 있던 그 때.
지구에서는 지구 나름대로, 단순히 평화롭지만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드드드드드득!
“끄... 께엑... 마법소녀어...!”
“워, 원통하다아...!”
바스스 먼지가 되어 스러져가는 괴인들을 앞에 두고, 금발금안의 마법소녀가 모자를 누르며 혀를 찼다.
귀찮아 죽겠다. 오늘은 극장판 발매 기념 특별 한정판 굿즈가 나오는 날인데.
“알파 언니, 수고하셨어요. 오늘은 상태가 꽤 좋으셨네요?”
얼마 전 【단애의 성】 일로 알게 된 에르가 가까이 다가왔다. 클라라도 근처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을 것이다.
“...0은 아니니까. 잘 됐지 뭐야.”
그래봐야 으로 나온 숫자는 『2』지만.
이 숫자면 을 사용 안 하는 것과 비슷하다. 요즘은 상태로도 꽤 많은 바리에이션을 만들고 있고.
【단애의 성】에 구속되어 있던 마법소녀들은 전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애초에 마법소녀들은 심약해보이는 여자애까지 포함해 전부 남다른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말하자면 ‘전사’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은 여자들이다. 그런 일들이 있었는데도 지금은 아무 문제 없다는 듯 잘들 지내고 있다는 듯 하다.
그리고 사태를 정리하기 위해 쿠키와 함께 찾아간 현장에서, 알파는 망가진 의 잔해를 확인하고, 에르와 클라라를 알게 되었다.
케이라는 인연으로 엮인 세사람은, 그 뒤로도 종종 팀업을 맺어 함께 지구를 수호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계속하고는 있는데....
“에르 너, 보지는 괜찮아?”
“......아뇨. 안 괜찮아요.”
에르의 얼굴이 순식간에 우울해졌다.
지구는 여전히 전혀 평화롭지 못하고, 마법소녀라는 일은 여전히 고되다.
이틀 전에도 어느 괴인집단에게 고전하다 붙잡힌 그녀들은 이번에도 속수무책으로 능욕당하며 마력이 뽑혀져나가고, 그러다가 어제 낮에 가까스로 반격에 성공, 빠져나왔다.
오늘은 그 아지트에 남아있던 찌끄레기 같은 괴인들을 처리하기 위해 친히 다시 찾아온 것이다.
에르는 세사람 중에서도 특히나 심하게 당했는데....
“‘너는 가슴이 작으니까 보지를 더 괴롭혀주지’라니, 뭔데요 그 쓰레기들! 왜 저는 가슴 크기로 무시 당해야 하죠?! 괴인 새끼들은 왜 섬세함이란 게 없는 걸까요?! 그보다 알파 언니는 왜 가슴이 큰 거예요! 왜! 왜! 왜! 내놔! 가슴 내놔아아아아~~~~!!”
“정신차려라.”
“꾸엑!”
우울한 얼굴로 폭주하기 시작하는 에르의 뒤통수를 때려 진정시키며, 알파가 한숨을 내쉬었다.
* * *
“그런데 케이 언니랑은 돌아올 수 있는 걸까요...?”
혹시나 괴인이 남아있을지 모르므로 아지트 탐색을 계속하는 와중에, 에르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케이와 단애, 단비가 적대 행성 【메크라크】에 떨어진지도 이제 약 2주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둘 다 괜찮을까... 빚이 있는데... 갚지도 못하고 이러니까 답답해....’
그녀는 케이와 단비 두 사람에게 빚을 느끼고 있었다.
케이에게 도움을 받은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을 통해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날아갈 뻔 했을 때 단비가 몸을 던져 구해줬으니.
기껏 이상한 곳으로 날아가지 않게 케이와 단비가 구해줬건만, 【메크라크】에 날아갈 수단만 손에 쥐어진다면 망설임 없이 그녀들을 돕기 위해 날아갈지도 모른다. 에르는 그런 여자였다.
의리가 있다면 있고, 나이가 어린 만큼 생각이 짧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쓸데없는 생각 말어. 너보다 센 애들이야.”
“...그건 그렇지만요.”
“거기다 단애라는 여자도 있다며.”
“으엑....”
그 이름에 에르가 혀를 내밀며 신음했다.
단애. 마법소녀이면서도 무슨 짓을 한 건지 괴인이 되었던 여자.
과거 【단애의 성】의 여왕이자, 적지 않은 마법소녀들을 차근차근 붙잡고 구속해 노리개로 삼았던 질 나쁜 마법소녀다.
‘완전 나쁜 사람인 것 같지는 않지만....’
일문이라는 이름의 문신남에게, 에르는 자칫 잘못하면 한쪽 유두를 난폭하게 뜯길 뻔했었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에르의 몸이 살짝 떨렸다.
그때 단애가 구해주지 않았더라면.
눈치 빠르게 일문에게 반항하지 않고 굴복하고 애원하며 말려주지 않았다면, 에르는 당시 분기탱천했던 그에게 더 심한 꼴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붙잡혀 있던 마법소녀들이 문제 없이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던 것도, 단순히 정신력 문제만이 아니라 단애의 배려 덕분이기도 했다.
괴인들에게 룰을 정하고, 식사나 잠자리도 부족함 없이 챙겨줬으며 나름 모질지 않게 신경 써 주었다.
당한 일들을 생각하면 배알이 꼴리고 아드득 빠득 이가 갈리지만.
어쨌든 근본이 나쁜 여자는 아니었다.
“...알파 언니는 그 여자 알지도 못한다면서, 왜 그렇게 신뢰하는 거예요? 저는 오히려 불안해요. 그 여자라면 자기 살려고 케이 언니다 단비 언니도 아무렇지 않게 팔아버릴 걸요?”
“단비라는 여자는 모르겠지만, 케이는 그런 거 당하면 악을 바락바락 쓰면서 어떻게든 기어서 나올걸?”
“어... 그럴 거 같아.”
“그치? 걔는 가만히 있으면 허당인데, 뭔가 압박이나 스트레스가 있으면 애가 좀 쓸만하더라고.”
어쩌지.
되게 너무한 평가인데, 묘하게 납득이 되는 부분이 있어 에르는 당황했다.
아니, 아니야... 그래도 케이 언니는... 탈출할 때도 의지가 되던 멋진 언니인걸!
“그러니까 오히려 단애 같은 애가 옆에 있는 편이 딱 좋아. 진심을 내면 막을 게 없는 놈이야, 그 팔푼이는.”
“하, 하하....”
“그렇지 않더라도, 단애라는 여자도 은근 정이 많아보이고, 버릴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계산이 빠른 여자 같으니까. 안심이 되지.”
“......네에.”
에르는 여전히 납득이 안 간다는 눈치다.
계산이 빠른 점이라던가 은근 케이와 시너지가 좋다던가, 그런 건 인정하지만, 그래도 신뢰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복잡한 마음.
‘어차피 알파 언니는 직접 본 적도 없으니까.’
본 적이 없으니까.
아무 것도 모르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
에르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알파는 그런 에르의 뚱한 반응을 눈치챘는지, 낄낄 웃으며 말을 이었다.
“다~ 근거가 있으니까 하는 말이야.”
“에? 근거요?”
“그래. 근거.”
“...뭔데요?”
알파는 자랑스레 말을 이었다.
“내가 들은 단애라는 여자의 특징은―― 4기에 등장하는 악의 마법소녀, 위치걸 블랙 크레센트랑 닮았거든!”
흥분으로 얼굴이 벌개졌다.
아아, 또 이거다.
에르가 알기로 알파는 매사에 냉철하고, 냉정하며, 어른스럽고, 똑똑한 언니이자 선배 마법소녀였다.
그러나 , 그러니까 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가면이 벗겨지듯 이렇게 변해버린다.
케이 언니도 이렇더랬지.
비슷한 사람끼리 친구가 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에르는 이제는 체념하는 눈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블랙 크레...뭐시기는 뭐하는 사람인데요.”
“블랙 크레센트! 한때는 위치걸들을 위협에 빠뜨리고, 온갖 저주의 자위도구와 구멍 뚫린 콘돔을 세상에 뿌려 ‘올바르지 못한 성(性)생활’을 전파하던 극악무도한 최악의 적으로 보였던, 아주아주 매력적인 캐릭터야! 나중에 모든 비밀이 풀리고 주인공 위치걸들에게 협력해 지구와 건전한 성생활을 지키는 당당한 정의의 편이 돼!”
“.......”
“그래도 아주 대단한 게 뭔지 알아? 사실 블랙 크레센트한테는 둘도 없이 소중한 여동생이 있었고 소꿉친구가 있었는데――”
신나게 이어가는 알파의 설명을 대충 흘려들으며, 에르는 마침 아지트의 구석에 있던 칙칙해 보이는 문을 열었다.
잠금장치가 있었지만, 에르의 마법 【언락】은 기계적인 잠금장치든 마법적인 봉인술이든 문제없이 열어 재낄 수 있었다.
“......으엑....”
문이 열리자, 역한 냄새가 후욱― 불어와 에르는 얼굴을 찌푸렸다.
썩는 냄새는 아니었지만, 뭐라고 할까, 오래 씻지 않은 체취 같은 느낌이랄까.
농후하게 뭉친 역취에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안으로 들어가 살핀다.
아무래도 연구실인 모양이었다.
‘연구실이라고 하기엔 규모도 작고 부실해.’
비싸보이는 설비가 몇 개 늘어서있긴 했지만, 인테리어나 주변의 것들을 보자면 전문성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추어들이 구색만 억지로 맞춘 듯한 느낌.
뭘 연구하고 있었던 걸까.
혹은 실험?
“그래서 블랙 크레센트는――응?”
즐거운 듯 장광설을 이어가던 알파가, 문득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그녀는 문가 근처의 어느 선반 앞에 있었다. 선반 위에는 사이즈가 다른 플라스크며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기묘한 시험관 등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그중 하나를 집어 들어 보이자, 에르는 깊이 찾아드는 혐오감에 무심코 “으엑...”하는 소리를 냈다.
알파가 들어올린 병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생물이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벌레라고 해야할까? 그렇지 않다면 동물?
아무튼 그녀가 아는 생물 중에 저런 것은 없었다.
매끈한 몸체에, 점액 같은 것이 흐르고 있으며, 어쩐지 꿈틀거리는 그 움직임에 본능적인 혐오감을 느끼고 만다.
에르는 당장에라도 눈을 돌리고 싶었지만.
알파는 의아한 듯 그 생물을 자세히 바라봤다.
“이거... 어디선가....”
뭔가 짐작이 가는 게 있는 걸까?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안쪽으로 나아가던 에르의 허리에, 툭, 하고 뭔가가 걸려 책상 아래로 떨어졌다.
책이었다. 아니, 일지라고 봐야 좋을까?
다만 펼쳐진 페이지 위에, 묘한 홀로그램이 떠올랐으며.
홀로그램 이미지는 알파가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생물과 비슷해 보였다.
에르가 떨어진 책을 집어들고, 알파도 알아차린 듯 에르에게 다가왔다.
“언니, 이거....”
“넘겨봐.”
하나하나 팔락팔락 넘겨봤다. 홀로그램이 떠오르는 페이지도 있고, 글자가 적힌 페이지도 있었다.
글자는 【메크라크】의 언어로 적혀있었지만, 을 이용해 언어팩을 인스톨해 둔 두 사람도 알아볼 수는 있었다.
글자를 알아보는 것과, 내용을 이해하는 건 다른 얘기지만.
다만 가까스로 알아낸 것은, 이 연구실이 실험용 배양시설이라는 정도일까.
애초에 이 아지트의 괴인들은, 이 배양시설에 쓸 마력을 보충하려고 활동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도대체 뭘 키우려는 거지...? 이게 뭐길래...?”
“생체병기, 같은 걸까요?”
에르가 찍어 맞추듯 중얼거리며 페이지를 넘겼다.
알 수 없는 내용들이 한동안 이어졌지만, 이어서 나온 홀로그램 이미지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기묘하게 생긴 생물에게 붙잡힌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기쁜 듯이 교성을 흘리며, 음부에서 알과도 같은 무언가를 낳고 있었다.
평범한 여자라고 하기에는, 뭐랄까.
뿔, 같은 것이 있어서....
“어, 언니. 이거 마법소녀 아닌가요?”
에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보고.
그리고 옆을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알파가 무서운 얼굴로, 그리고 다소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홀로그램 이미지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미친....”
알파는 자신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와 육두문자가 새어나오는 게 느꼈다.
아무리 그래도 눈 앞의 광경이 너무 충격적이고, 열이 받아서 그렇다.
‘그 녀석, 연락 안 된지 꽤 됐다지.’
케이와 마찬가지로, 알파와 함께 자주 채팅하는 의 팬동료.
동시에 마법소녀로서도 한동안 고락을 함께 했던, 자신보다 어린 마법소녀.
의 무엇보다 크고 예쁜 거유가 인상적이던 여자애.
“유라... 무슨 짓을 당하고 있는 거야....”
도대체 왜 이 녀석이.
이 알 수 없는 생물의 연구에 이용당하고 있는 걸까.
그보다 연락이 안 되었던 그 때부터, 줄곧 이렇게 사용되고 있던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얽히며, 알파가 험악한 얼굴로 연구일지를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