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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소녀는 악에게 굴복하였습니다-165화 (165/172)

〈 165화 〉#2-12 마법소녀는 칭칭 휘감겼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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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깜빡거리는 시야 속.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어느샌가 기절해버렸던 모양이다. 살짝 뜬 눈으로 주변을 살펴봤더니, 기절하기 전까지 나를 그토록이나 괴롭히던 괴인들이 와하하거리며 뭔가를 먹고 있는 게 보였다.

잘 보니, 다채롭고 비싸보이는 고기요리였다. 차츰 잠들어있던 감각도 깨어나는지, 코 끝에도 맛있는 냄새가 가득 들이찬다.

무심코 침을 꿀꺽, 삼키고.

꼬르르르르륵~ 하는 귀여운 뱃소리가 들려왔다.

“오? 일어났나보네?”

“......흥.”

나는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좀 가라앉았지만, 기절하기 직전까지 내가 보였던 추태가, 그리고 이 괴인놈들이 했던 짓도 전부 기억난다.

아이고 맙소사.

솔직히 부끄러워서 고개도 못 들겠어....

괴인들은 그런 내 반응에 낄낄거리며 웃더니,

“그렇게 앉아있지 말고 이리 와. 너도 배고플 거 아녀.”

그 험상 궂은 얼굴로 이쪽을 향해 손짓했다.

“...뭐야, 가도 돼?”

“도망치는 건 안 되는데, 여기 와서 앉는 건 되지.”

어쩔까. 다가가면 또 성희롱을 마구 해댈 것 같은데.

지금 내 팔다리에는 명목상으로나마 구속구가 달려있긴 하지만, 크게 신경 쓸 무게는 아니었다. 그 외에는 밧줄도 수갑도 안 채워놨다.

잘하면 도망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도망칠 생각은 하덜덜 말어. 엘리트 괴인들 무시하지 말라고, 마법소녀.”

“읏....”

험악한 목소리에 딱히 겁을 집어먹진 않았지만, 어쨌든 도망치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

저 괴인들이 앉은 테이블이 이 바 같은 공간의 유일한 출입구인 문과 내 사이에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여덟 개의 다리를 흐느적거리는 괴인이라던가, 두 팔이 고릴라 같다던가, 머리가 도마뱀 같다던가 하는 괴인들을 지금 상태로 뿌리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배고팠다.

배고프다.

마력이 있다고 해도 공복을 아예 안 느끼는 건 아니다. 의도적으로 조절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런데에 마력을 할애할 수 있을 정도로 빵빵한 상태도 아니고.

섹스는 체력 싸움이다.

잔뜩 범해지면서 체력을 소모했는데, 거기다 마력도 쭉쭉 빨렸으니, 배고플만도 하다.

도망치는 건 언제라도 할 수 있다.

지금은 일단 힘을 비축하자.

“흥! 누가 도망친다고 그래? 너희 허접한 괴인들은 나중에 전부 갈아엎어서 셰이크로 만들어줄테니 그런 줄 알아.”

“뭐라는 거야 이 여자는.”

찰싹!

“헤으으으응?!”

어느샌가 곁에 다가온 괴인 한 명이, 거의 알몸 상태로 허세를 부리는 내 엉덩이를 찰싹 두드렸다.

탐스런 엉덩이에 닿은 충격이, 쾌락신호로 바뀌어서 내 뇌리에 전해졌다.

으... 진짜 X밥 몸뚱아리구나....

괴인들이 “X밥! X밥!”하고 천박하게 연호하는 것을 무시하고, 나는 순순히 괴인들이 둘러앉은 테이블에 앉았다.

더 이상 끌었다간 또 어떤 식으로 얕보이게 될지 모르니까.

하지만 마냥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싫다. 짜증난다. 용납할 수 없다.

나는 그대로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딱 좋은 묘안을 냈다.

“내놔.”

“응?”

바로 곁에 앉은 괴인이 지금 막 손으로 집어 입에 넣으려던 고깃덩어리를 향해, 그대로 손을 내밀어 손바닥을 펼쳤다.

“내놓으라고. 그거. 맛있어보이네.”

“......어...엉?”

“가져간다.”

당황하는 괴인의 손에서 휙, 하고 낚아챘다.

........음!

맛있다.

‘X나 맛있어. 역시 뺏어먹는게 최고로 맛있네!’

무엇보다 벙찐 괴인의 표정이 별미다. 최고다. 깔깔깔.

“야, 그거 맛있어 보이네. 그것도 내놔.”

“어, 어라?”

“가져간다.”

“내 술이야!”

“꿀꺽꿀꺽... 꺼흑. 잘 마셨다.”

도수가 높은지 머리가 조금 핑글 돌았지만, 응, 아직 취하진 않았다. 취하진 않았어.

나는 계속해서 난동을 부리며 괴인들이 집어먹던 것들을 얌체처럼 쏙쏙 뺏어먹었다.

낄낄낄. 하고 웃는다.

이 몸을 얌전한 암캐라고 생각하면 곤란하지, 멍청한 괴인들아!

“...이것도 먹을래?”

“응! 먹을래!”

“여기, 이것도 맛있어.”

“진짜? 와, 진짜로 맛있다!”

........어라.

뭔가 이상해졌는데.

왠지 모르게 괴인들이 불쌍하다는 눈으로, 혹은 귀여운 햄스터를 보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하나하나 접시를 넘긴다.

하도 못 먹어서 걸신들린 여자로 보인 모양이다.

아니, 착한 놈들이긴 하네... 뭔가... 내가 나쁜년 같잖아....

“지구는 먹을 게 별로 없나봐...?”

“불쌍한 마법소녀... 저것 봐, 분명 맨날 쫄쫄 굶으면서 살아온 게 분명해....”

“저것봐, 먹이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눈빛. 분명 저기도 우리만큼 만만치 않은 약육강식의 세계였을 거야....”

아니야. 지구도 먹을 거 많다고. 이건 그냥 심술이야. 알아달란 말야.

아무리 눈을 부라리고 흘겨떠도, 괴인들의 연민에 찬 눈빛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결국 그냥 마음 편히 성이 찰 때까지 먹고 마시기를 계속했다.

* * *

“으으응~~~~ 그래~ 내가 바로오~ 최강의 마법소녀라고오~~~!”

“그래그래. 그런 꿈을 꾸는 건 좋지.”

“아니야아~~ 꿈이 아니라고~ 망상도 아니야아~!”

나는 몇 번이나 들이킨 술로 알딸딸한 상태가 된 채, 항의하듯 외쳤다.

괴인들도 술이 조금 들어가고 음식이 하나 둘씩 입에 들어가자 나에게 이래저래 말을 걸어오고 있다. 뭐, 어쩌다가 왔냐느니, 뭐하고 살았냐느니, 지구는 어떻냐느니 그런 느낌으로.

뭔가 이상한 느낌도 드는데.

그러고보면 지금 우리는 포로와 고문관 사이 아닌가?

......아, 모르겠다. 술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워.

대충 이런 흐름으로, 나도 괴인들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마냥 할 말 하면서 왁자지껄 떠들어 댔다.

“끄윽... 후우... 배불러어~.”

“배불러? 그럼 명물 『해타니아 스프』는 못 먹겠네?”

“먹을 거야! 내놔!”

“식탐 하고는.... 마법소녀가 아니라 마법돼지네.”

“살 안쪘어!”

“흐음....”

새로 나온 스프를 두 손으로 든 괴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내려다봤다. 특히나 내 흉부를.

그 시선이 오싹, 하고 느껴져 나는 두 손으로 몸을 끌어안았다. 부드러운 가슴이 내 뺨에 닿아 몰캉, 하고 모양이 바뀌었다.

“살이 다 그 쪽으로 가주면 좋지, 좋아.”

“......저질, 변태들.”

“칭찬 고마워. 넌 그 변태들 사이에 던져진 어린양이지만.”

히죽대는 괴인들의 시선을 무시하면서, 나는 수저와 포크 등을 들고 그래도 열심히 밥을 먹었다.

조금 전까진 뺏어 먹고 그러느라 하도 정신이 없어서 신경 쓰지 않았는데, 지금의 나는 여전히 알몸이라 신경 쓰고 보니 휑한 기분이 들었다.

수컷의 음흉한 욕망에 찬 시선이 내게 꽂히고, 고분고분 접시를 비워가는 나를 술안주마냥 지켜보고 있다.

신경 쓴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마는.

“......그런데 너희는 왜 쿠알 같은 녀석 아래서 일하는 거야?”

그래도 당장 덮쳐서 범하거나 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아서, 나는 이 거북한 분위기를 밀어내고자 생각나는 걸 물었다.

여기 있는 놈들은 아무리 봐도 그 허술한 쿠알보다 강한 놈들인데.

지구에서도 웬만한 마법소녀는 건들지 못할 것 같은 엘리트들인데.

그런데 왜 여기서 쿠알한테 따르고 있는 거지?

“다~ 사정이 있는 거야, 아가씨.”

“그래그래. 묶여서 어쩔 수가 없어. 웬만큼 센 놈들은 전부 귀족들한테 묶여있으니까.”

괴인들은 딱히 숨길 생각은 없어보였지만, 마찬가지로 굳이 설명할 생각도 없는지 손을 훼훼 저으며 대충 얼버무렸다.

어쨌든 이 녀석들도 사정이 있는 듯, 지구에 막 쳐들어오고 그러는 건 못하는 모양이다.

“뭐, 지금은 【여왕】도 져버렸고... 앞으론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여왕?”

“우리 메크라크 최강. 우리들을 다스리고, 그녀 본인이 법이 되어서 우리들을 이끌어줬었지.”

그렇게 말하면서, 욕망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입맛을 다시는 괴인.

아무래도 그 여왕이라는 여자는 상당한 미인인 모양인지, 둘러싼 괴인들 사이에서 아쉬운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그 여왕이 어쨌는데?”

“글세. 자세한 건 모르는 데, 어느 괴인한테 당한 모양이고... 【메크라크】는 어쨌든 힘이 센 녀석이 탑이니까. 앞으로는 그 녀석이 이 별을 지배하겠지.”

그래서 차츰차츰 정책이 바뀌어가고 있다나 보다.

침략이라는 목적은 같지만, 적어도 폐를 끼치지 않고 나름 온건한 룰을 유지하던 여왕의 정책에서.

지금은 별을 버릴 각오로 다른 별을, 특히 지구를 노리기 위해 힘을 모으자는 현 정책으로.

‘...어라, 뭔가 위험하게 들리는데.’

뭔가, 가 아니라 실제로 위험했다.

무슨 제약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지구에 나가 있는 괴인들은 대부분 허접하고 힘이 없는 괴인들이었다.

그러나 내 눈 앞에 있는 녀석들처럼, 만만치 않는 괴인들이 지구로 넘어가게 되면....

꿀꺽....

무심코 긴장해 침을 삼켰다.

괘, 괜찮으려나... 지구....

“그, 그럼 너희도 지구에 쳐들어가는 거야?”

“크하하하! 뭐, 기대하고 있긴 하지! 우리도 귀족의 사병 노릇은 지긋지긋하니까! 지구에 가면 너 같은 마법소녀들도 잔뜩 있는 거지?”

“추르읍... 하아, 이런 마법소녀들이 잔뜩 있다니... 기대되서 군침이 도네....”

으음.

진짜 어쩌지.

아니, 나도 지금 힘을 낼 수가 없어서 요모양 요꼴인거고, 아무리 이 괴인들이 세다고 해도 마법소녀들도 만만한 녀석들이 아니다.

알아서 잘 하겠지...?

“――뭐,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긴 하지만.”

저마다 낄낄거리며 떠들던 괴인들이, 금방 목소리를 낮추면서 말했다.

“아직은 잘 몰라. 그 왕이란 놈도 어떻게 될지.”

“...응?”

“우리가 야만민족도 아니고, 그냥 힘이 세다고 넙죽 다 갖다 바칠 수는 없잖아. 몇백년 동안 【여왕】 한 사람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제와서 왕이 바뀌어 봐야....”

“며, 몇백....”

“그래서 지금 이래저래 분위기도 안 좋고. 【레지스탕스】들도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고. 그 외에도 박사랑 뭔가 결탁했다는 소문도 들린다마는....”

레지스탕스?

“아직 제대로 얼굴도 안 보인 왕님이야. 아무리 일이 잘 풀려도, 이것저것 다 처리하고 모두의 납득을 얻고 나면 몇 년은 걸릴 걸?”

솔직히 무슨 말인지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당장 지구에 무지막지한 녀석들이 몰려올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보다 그 레지스탕스인가 하는 건 신경쓰이네.’

명칭만 들어봐도 대충 어떤 조직인지 알 것 같다고 할까.

그리고 【여왕】이라는 여자도, 언젠가 기회가 되면 만나볼만 할 것 같았다.

‘같은 여자라면 뭔가 얘기가 통하지 않을까?’

적어도 뇌가 거시기에 달려있는 게 아닐까 싶은, 욕망에 가득 찬 괴인들보다야 조금 더 협상의 여지가 있을 것 같았다. 만약 지금 갇혀있거나 한 상황이라면, 구해주는 것으로 은혜를 입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지구에 가는 길이 막막하므로, 이런 정보 하나하나가 어떻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 나는 마음속 메모지에 꼼꼼히 메모해두었다.

“후우... 어쨌든, 맛있게 먹었네. 배불러.”

“그래? 다행이네. 지구인 입맛에도 맞았다니. 속이 비면 힘이 안 나잖아.”

“응응. 그렇지. 정말이지, 쿠알이란 놈이나 루돌프 녀석이나, 이쪽을 전혀 배려 안 한다니까?”

“맞아맞아. 그래서 우리도 곤란할 때가 많다니까. 멍청해서 그런지 생각이 짧아, 그 돼지 녀석.”

“뭐야 너희, 괴인들이지만 마음이 맞네.”

나는 실실 웃으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드르륵- 하고 자연스럽게 의자를 밀어내고, 바 한쪽 구석으로 걸어갔다.

“음~ 어쨌든 유익한 얘기도 들었고~ 잘 먹었어~ 다음에 봐~. 쿠알 밑에서 고생하는 사람들끼리, 힘내보자~!”

아자, 아자, 하고 주먹을 쥐어보이고 귀여운 기합성을 내면서, 나는 출입구를 향해 걸어갔다.

좋아, 이제 이대로 문을 열고 나가면 된다.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 배도 빵빵하고, 도움이 되는 이야기도 들었고.

그렇게 생각하며 출입구의 손잡이에 손을 뻗는데.

츄르르르르르르르르르륵――하고.

내 양손에 아주아주 얇고 새하얀실이 감겨들었다.

“......응?”

실은 그대로 내 손을 두꺼울 정도로 칭칭 휘감더니, 별안간 휘익 끌어당겼다. 기습처럼 당겨지는 바람에, 끌려간 몸이 쿠당! 요란하게 넘어졌다.

“아, 아야야야...!”

“어딜가려고, 마법소녀?”

먼저 다가 온건, 이래저래 거미를 연상케 하는 머리와 고관절 팔다리를 가진 괴인.

그리고 바 한복판에 넘어진 내 주변으로, 조금 전까지 한 테이블에서 밥을 먹던 괴인들이 에워싸듯 다가왔다.

나는 그런 그들을 슬쩍 돌아보고는.

“......그냥 보내주면 안 될까?”

배시시 웃으며 말해보았다.

우리우리, 조금 전까지 분위기 좋았잖아, 그치?

이쯤이면 친구라고 해도 되잖아.

그니까 그냥 보내줘도 괜찮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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