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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만 잘하는 남자-182화 (18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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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권

시간이 한 시간 정도 흘렀나.

그 정도로 설명은 길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혜주는 침착하게 회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는 계속해서 빠져나갈 만한 방법을 구상 중이었다. 하지만 주변에 선 임페리얼 가드들은 언제고 금방 총을 빼 들 것처럼 느껴졌다.

“회장님은… 결국에는 한성진의 짐승을 보고 싶기 때문에?”

“그래. 일차적으로 우 비서를 손에 거둔 것은 그래서라네. 그걸 위해서라면……. 뭐, 우 비서가 범해지는 비디오 같은 걸 찍어서 보내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정현의 엉덩이를 매만지는 회장의 모습을 보고 혜주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모습에서 스스로가 한 행동이 겹치듯 떠올라 더욱 짜증이 치밀었다. 하지만 혜주는 애써 무뚝뚝하게 몸을 움찔거리고 있는 정현과 회장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침착해야 할 때였다.

“아무래도 딸이니만큼.”

미친 개 같은 새끼가.

“…그리고 다음으로는?”

“물론 불타는 세계를 보며 편안히 잠들 거라네.”

“네로군요.”

혜주는 저도 모르게 폭군의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그야말로 죽기 전에 거대하게 똥을 싸질러놓고 가겠다는 건가.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회장의 모습에서는 조금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아 당연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한성진이라는 존재는 회장의 예상 밖이었을 거다. 제아무리 스스로 짐승이라 칭하는, 모든 인과를 거쳐 만들어내는 예언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 인과에 들어가지 않은 상황은 계산에 넣을 수 없다. 공하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진의 존재에 대해 알아차리기 전까지 그녀는 그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을 터였다.

결국 그렇다면 두 사람의 목적은…….

하윤은 성진을 통해 정현의 짐승을 이끌어내려 하고, 회장은 정현을 통해 성진의 짐승을 이끌어 낸다는 뭐, 그런 건가.

불타는 세계를 무대로 삼아.

“사치스러우시군요.”

“으음? 이 정도야 당연한 거지. 나는 그렇게 태어나지도 않았고, 스스로의 몸 하나를 이끌어 모두를 굴복시켰네. 이 정도야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니겠는가?”

“그렇게 보신다면……. 뭐, 재미있네요.”

스스로 올라섰기 때문에, 단지 타고났을 뿐인 부르주아를 혐오하는 건가. 혜주는 그런 회장의 심리에 기가 차는 걸 느꼈다. 하지만 거기에는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자신감이 느껴져 혜주는 반발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는데, 정현.”

그렇기에 약간 말을 돌려,

“네 생각은 어때. 그대로 둘 셈이야?”

혜주는 정현을 바라보았다. 회장을 보니 그다지 반응은 하지 않고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이 정현을 돌아볼 뿐이었다. 여전히 엉덩이를 꽉 쥐여진 채로. 얼굴을 붉히며 수치스러워하던 정현이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성진 씨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 아이가 포기할 거라고 생각해?”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 이상은 안 됩니다…….”

입술 밑을 꽉 깨물며 제대로 말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정현은 회장의 행동에 저항하지 못했다. 그런 모습에 혜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현은 성진과 일부러 거리를 둠으로써 그를 거부하는 의사를 전력으로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그게 통했다면 애초에 지금의 상황까지 이르지 않았으리라.

“부탁, 드립니다. 이사님……. 성진 씨를…….”

“입 다물게, 우 비서.”

더 못 봐주겠다는 듯 회장이 이야기하자 정현의 말이 멈췄다. 그리고 정현을 품으로 당겨 안은 그는 씨익 웃으며 혜주를 돌아보았다.

“자, 이제 어떻게 할 텐가?”

“…….”

“더 남은 패라도 있나? 아니면 뭔가 제안이라도? 테이블 위로 꺼내보게. 마지막 포커는 즐거워야 하지 않겠나. 특히나 판돈이 목숨이면.”

어떻게 하면 좋지.

혜주는 이를 악물며 생각에 잠겼다. 뭔가 회장의 이목을 끌 만한 것이 있나 생각에 잠겨 다시금 눈앞에 겨눠지는 총구를 보며 필사적으로 자신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역시 몇 번이고 방금 전의 대화와 상황을 짚어보아도 나오는 건 없었다.

끝, 인가.

이런 곳에서……!!

“없나? 아쉽군. 잘 가게.”

“회, 회장님!”

“어허이, 입 다물고 있으라고 했을 텐데.”

정현의 마지막 외침을 가볍게 쳐낸 회장은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

“김혜주!! 엎드려!!”

그리고 다음 순간 쨍그랑, 하며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반쯤 본능적으로 주저앉은 혜주는 총알이 발사되는 소리와 함께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귓전을 바람이 스치며 동시에 소름이 확 몰려들었다.

뭐지? 어떻게 된 거지?

하지만 순식간에 눈앞이 매캐하게 물들어 혜주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무언가 자신의 팔을 낚아채 어디론가 끌고 가기 시작했다. 겨우 그 연기로부터 빠져나와 뒤를 돌아보았을 때는 회장이 방독면을 쓴 채 정현이 그를 보호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 그조차 명령을 받았기 때문인 걸까.

“이사님! 정신 차려요!”

“지, 진아… 씨? 어떻게?”

“그건 나중에!”

지금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허우적거리자 진아가 팔을 세게 끌어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정현과 마찬가지로 검정색의 바디 슈트로 몸을 감싼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이질적이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제기랄……!”

그리고 방 안쪽으로부터 총알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미끄러지듯 날아가 엄폐물에 진아와 함께 몸을 숨긴 혜주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최 이사의 때와 마찬가지로 몸이 굳어져 제대로 움직이지가 않는 기분이었다.

“저, 저쪽에서도 와!”

그리고 반대편, 대기를 하고 있던 임페리얼 가드들이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완전히 포위된 상황에서 혜주는 절망에 빠져 소리쳤다. 하지만 진아는 가볍게 혀를 차고는 권총 하나를 잡아 이쪽으로 내밀었다.

“받아요!”

“쏘, 쏠 줄 몰라!”

“에이 씨! 그냥 눌러요!”

나는 정현이만큼 잘하지는 못한단 말이야!

그런 말을 뇌까리듯 소리친 진아가 반대편으로 뛰쳐나갔다. 들어오는 입구 쪽으로 달려들어 오던 가드들의 앞을 지나치자 진아를 발견한 그들이 총을 쏘기 시작했다. 혜주는 어떻게든 그녀를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에 일어서 마구잡이로 총을 쏘았다.

어, 어깨가?!

“야, 이 멍청아! 두 손으로 쏴!!”

제 딴에는 정확하게 겨누고 쏘았다고 생각했지만 반대편에 도착한 진아가 흥분해 소리쳤다. 혜주는 머리가 핑핑 도는 걸 느꼈지만 이내 가드들이 자신의 쪽을 겨누자 다시금 무릎을 꿇고 난간 뒤로 몸을 숨겼다.

“꺅?!”

다시금 총알이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감각이 날아들었다. 그사이 진아가 고개를 들고 총을 쏴 그중 하나가 맞고 쓰러졌다. 그러자 뒤쪽에서 회장과 함께 방 안을 지키던 가드들이 전황을 회복해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 어떻게?!

다시금 총을 쏘았지만 팔이 위로 들렸다. 하지만 위로 날아간 총알은 유리로 된 천장에 맞았고, 깨진 유리 조각들은 비가 되어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입구 쪽에 서 있던 가드들이 우왕좌왕하며 뒤로 물러섰다.

“나이스!”

그 틈이 생기자 진아가 뛰쳐나갔다. 그녀는 유리 조각을 피하지 못하고 거기에 데미지를 입은 가드들을 차례차례 쓰러뜨리기 시작했다. 가드들이 저항했지만 진아는 가볍게 잽을 날리고 턱에 주먹을 꽂아 넣어 무력화시켰다.

“자, 빨리!”

“으응!”

그런 진아가 더없이 믿음직스럽다고 느끼며 혜주는 따라갔다. 다시금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위쪽에서 회장을 지키는 가드들과 사격을 주고받으며 두 사람은 이내 무사히 1층에 도착했다. 회장이 멈춰 세운 것일까. 가드들은 5층의 난간에 서서 지켜보기만 할 뿐 굳이 따라오지는 않고 어딘가와 통신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이사님! 차는요!”

“저, 정면 주차장에 있어!”

“애들 쫙 깔렸는데 그런 곳에 대두시면 어떻게 해요!”

“어,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잇!”

골치 아프다는 듯 혀를 차며 이를 악무는 진아.

그리고 다음 순간,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 * *

방아쇠를 당겼으나 총알이 발사되지는 않았다.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린 나는 가볍게 하윤의 손목을 비틀어 총을 빼앗아 바닥으로 던졌다. 그녀는 예상하지 못했는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너는 날, 우정현의 앞에서 죽이고 싶을 테니까.”

“후후……. 어쩜 이리 여자의 마음을 잘 아실까.”

나는 거기에 대답하지 않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5층에 올라가 있던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거기에 올라타자 나는 기이한 감각을 느끼고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서진아, 김혜주. 두 사람의 관계가.

김혜주가 이곳에 있다면 서진아가 오지 않을 리가 없다는… 그런 예감.

다음 순간, 멀리서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머나.”

나는 저도 모르게 드는 예감에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느끼지 못할, 그 정도로 작은 소리. 이 ‘예감’이 없었더라면 나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림으로 그리듯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희미한 총소리가 뇌리에 스며들어 진아가 혜주 씨를 구하기 위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는 없을 테고, 총소리는 계속 이어져 곧이어 쨍그랑, 하고 무언가 크게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

정현의 모습이 5층에 그려졌다.

나는 버튼을 누르려고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타앙 하고 엘리베이터 벽에 균열이 갔다.

“이건 진짜예요.”

“너……!”

“척추를 끊어, 불구로 만들어버릴 수는 있다고요?”

그런 위협이 진짜라는 걸 느낀 나는 인상을 찌푸린 채 뒤로 물러섰다. 등줄기에 총을 겨눈 상태로 다가온 하윤이 1층 버튼을 눌렀다. 나는 어떻게든 빈틈을 찾아내 파고들려는 생각을 했지만 하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올라가 1층에 도착했다.

“성진 군?!”

그리고 나는 두 사람과 마주했다.

검은색 바디 슈트를 입은 진아와 무릎이 다 까진 혜주. 나는 두 사람에 대답할 여유도 없이 하윤을 따라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로비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어 금방이라도 목에 채워진 줄을 끊고 뛰쳐나갈 맹수처럼 나는 적의를 담아 녀석을 보았다.

“공, 회장……!!”

“움직이지 마세요. 침착해요.”

“으으으으윽!!”

평온을 가장한 하윤의 목소리, 하지만 나는 저 멀리 5층 난간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한 여성의 모습을 보자 필사적으로 잡고 있는 사슬이 툭 끊어지는 걸 느꼈다.

몇 달 만이지?

머리는 길어져 하나로 묶고 있다. 회장에게 안겨서 방독면을 쓴 그를 부축하고 있는 모습에서 나는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감각에 휩싸였다.

“정현…….”

이름을 입에 담자 그 그리움만큼 눈물이 쏟아져 나와…….

“정혀어어어어어언!!”

나는 가슴에 담긴 의지를 토해내듯 소리쳤다. 다시금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달려가, 달려가……. 그녀를 붙잡으려고 하는데, 어째서 바닥이 가까워져 오는 거지?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추천댓글 한번씩만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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