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건물주의 하루 (2) (3/140)



〈 3화 〉건물주의 하루 (2)

건물주의 하루 (2)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며, 민재가 신디에게 물었다.



“루이XX에서 이번에 새로운 시계를 런칭했다구요? 이번에도 주얼리 워치인가요?”

“주얼리 워치도 있지만, 고객님이 좋아하실 만한 컬렉션도 있어요. 고객님은 아무래도 드레스 워치 쪽에  관심이 많으시죠?”

신디가 그의 손목에 찬 시계를 공손히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왼손에 예거XXXX 마스터 울트라씬 페퍼츄얼을 차고 있었다. 마블 영화에서 어느 주인공이 차고 나온 시계로도 알려진 이 시계는 민재가 가장 좋아하는 시계 중 하나였다.


그의 드레싱룸에는 시계만을 보관하는 수납장이 따로 있었다. 그 안에 있는 시계는 대략 30여개 정도. 파텍XX, 바쉐론XXXX, 오데마XX, 아랑에XXXX, 브레X, 예거XXXX, 로저XX  하이엔드 등급의 시계들이 그 중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그가 평상시 편하게 차고 다니는 시계들이었다. 군대 있을 때부터 하나씩 사 모았던 지X 텍티컬 시계들은 물론 운동할 때 주로 착용하는 테그XXX 시계들, 애플XX, 갤럭시XX 등 스마트 워치도 몇 개씩이나 있었다.



아마 민재의 시계 리스트들을 훑어본 분들 중에서는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왜 롤렉X랑 오메X는 없어? 그건 비싸서 안산 거야?’




......



비싸서 안사는 게 아니라 그의 취향이 아니라서 안산 것이다.



민재도 롤렉X나 오메X 시계가 전통 있는 명품 시계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이미 가지고 있는 하이엔드 브랜드들에 비해 ‘너무 급이 낮은 시계’ 들일 뿐 아니라, 디자인도 고루하고 올드 하게 느껴져서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들었던 것이다.

“최근 저희 브랜드 수석 디자이너가 새로 오시면서 이번 시즌 신규 라인들부터 전에 비해 보다 영해지고 신세대의 감각에  어울리는 상품들이 많이 출시되고 있어요. 오늘 런칭 이벤트를 하는 시계들도 그런 흐름에 따라 출시되었는데요, 고객님의 섬세한 안목에 잘 맞는 제품들도 많이 있을 테니 기대해주세요.”




신디가 그의 팔뚝을 다정스럽게 잡으며 웃어보였다.

민재는 말없이 미소 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것도 판매를 위한 작업인가? 작업치고는 스킨십이 너무 적극적이네. 전에도 이러더니, 오늘 따라 더 심해졌네.’




조금 부담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신디를 만난 것은 그가 처음 이곳 청담에 있는 루이XX 메종에 왔을 때였다.


백화점에 있는 다른 명품 매장들과 마찬가지로, 이 곳 청담 루이XX 메종 역시 고객 1팀당 직원 1명이 꼭 붙어서 응대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민재가 이곳에 처음 왔을  그를 응대했던 직원이 바로 신디였던 것이다.

그는 당시 루이XX의 어느 여행용 가방을 찾고 있었는데, 지금  모델은 청담 메종에만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리로 달려와 바로 구매를 했다.



원하던 여행용 가방을 구할 수 있어서 기분이 무척 좋았던 그에게 신디는 다른 제품들을  가지 더 소개해 주었다.

그중에서 또 마음에  드는 백팩과 업무용 가방, 스니커즈를 보게 되었고, 그는 그 자리에서 그 제품들을 모두 일시불로 구매해 버렸다.

그 때 그가 제품 구입에 지불한 금액은 모두 약 3천만 원가량.

그날부로 민재가 신디의 VIP 고객이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명품 브랜드 직원들은 제품을 판매할 때마다 판매 수익 중 일부분을 인센티브로 받게 된다. 해당 인센티브는 제품에 따라 달라지지만, 이날 신디는 민재 덕분에 100여만원이 넘는 인센티브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신디는 그에게 수시로 홍보용 문자를 보내고 있었고, 그가 매장에 들어오면  그의 손을 잡거나 스킨십을 하며 그의 호감을 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녀는 민재와 비슷한 20대 중반의 나이에 165cm의 키와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명품 브랜드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단정하게 잘 관리된 용모에 평균 이상으로 아름다운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남자나 다 관심가질 만한 외모을 가지고 있기는 했다. 이건 민재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명품 브랜드 매장에서 일하는 이들 중에서는 돈 많고 잘 생긴 고객과 어떻게든 엮여보려고 애를 쓰는 이들이 간혹 있는 법이다.


호날두의 여친도 원래는 명품 매장에서 일하던 사람이라도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민재는 예전 백화점에 있는 다른 명품 브랜드 매장에 갔다가 어느 직원이 자신에게 반해 집요하게 다가오거나 심지어 고객 연락처를 보고 전화까지 해와서 놀란 적도 있기에, 신디의 이런 행동이 신경 쓰일 수 밖에 없었다.



띵동~




엘리베이터가 3층에서 멈추었다.




루이XX 메종의 3층은 VIP들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오늘 같이 신상품 런칭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고객만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3층의 도어 앞에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가드  명이  앞을 지키고 있었다.




신디가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가드들이 그들을 막아섰다.


“실례합니다, 죄송하지만 이전 타임에 들어가신 고객님께서 아직 안에 계십니다.”

신디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미 두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안 나가셨다구요? 이제 저희 고객님 들어가실 차례인데......?”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신디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민재가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매장 좀 둘러보다가 앞에 분 나오시면 들어가는 거로 하지요.”


“죄송해요, 시간 맞춰 오셨는데 본의 아니게 번거롭게 해드려서요...... 저, 그럼 저랑 같이 위에 에스파스 루이XX 둘러보시겠어요?”



에스파스 루이XX은 일종의 전시관이자 이벤트홀 역할을 하는 공간이었다.


주로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이XX 박물관이 소유하고 있는 여러 미술품들을 이곳으로 옮겨 전시회를 열고 있었는데, 지금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고 들은 기억이 났다.


민재는 미술에  관심은 없었지만 자코메티처럼 유명한 조각가는 알고 있었다.




“위에서 자코메티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죠?”

“아, 어떻게 아셨어요?”




“얼마 전 인터넷에서 봤어요. 전에도 한 번 이곳에서 자코메티의 전시회를 한 적이 있었다죠? 그때는 와보지 못했었는데, 지금이라도 볼 수 있게 되니  되었네요.”




“네, 맞아요! 몇 년 전에도 이곳에서 자코메티의 전시회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그 때 한국에 오지 않았던 다른 여러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데요. 그럼 저와 함께 위로 올라가실까요?”




그녀는 민재를 계단으로 안내했다.

그러면서 계단 난간의 봉을 감싸고 있는 가죽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고객님, 이거 아세요? 이거 난간에 있는 가죽, 원래 가방 만드는 데 들어가는 루이XX 오리지널 가죽이에요!”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그의 손을 다정하게 잡고 위층으로 안내했다.



* * *




마침 에스파스 루이XX 안에서는 자코메티의 전시회에 대한 도슨트(전시회 안내인)의 강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자코메티의 조각들을 보면 상당히 연약한 구조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요, 자코메티가 이처럼 인간이란 존재의 연약함, 나약함, 무기력함 등을 주로 표현했던 것은 그의 일생을 통틀어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고, 그 역시 전쟁, 지병, 교통사고  죽을 위기를 여러 번 넘기면서 인체라는 것이 너무나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이 깨달음을 자신의 작품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보시는 작품은......”




자코메티의 조각들을 보면 팔, 다리, 몸통 모두 금방이라도 부러질  처럼 얇고 가늘게 표현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조각, 넘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조각, 넘어지고 난  다시 일어서려 발버둥치는 조각......

그런데  조각들은 이런 얇은 뼈대들과는 달리, 땅을 디디고 있는 발들만은 매우 크고 넓게 표현되어 있다.

조각의 주물을 뜰 때 밑에 있는 바닥에  고정시키기 위해 일부러 발을 크고 넓게 만든 것일 수도 있었지만,

민재는 그것을 보고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나약한 뼈대를 가진 존재라도,



 땅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크다고.



금방이라도 꺾여버릴 것 같이 힘없어 보이는 존재일지라도,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어떤 고난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일어서서 삶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애착은 누구나 다 강한거라고......




민재가 도슨트의 강의를 들으며 전시된 조각들을 둘러보고 있을 때, 누군가 그의 손을 사알짝, 잡았다.

돌아보니 아까 밑으로 내려갔던 신디가 다시 돌아와 있었다.

“앞에 타임에 오신 고객님 나가셨데요.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이제 함께 내려가실까요?”



민재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시회 즐겁게 보셨어요?”



“네, 마침 도슨트 강의를 하고 있어서 조각들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좋았어요.”

“자, 그럼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으셨으니, 이제는 저희 신상 제품에 대한 설명을 들으러 가보실까요?”

“네, 그러시죠.”

이번에도 신디는 그의 손을 붙잡고 계단을 내려왔다.

* * *

이벤트는 단순하게 진행되었다.

고객이 안으로 들어와 화려한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제품들을 둘러본다.



그런  안락하고 고급스러운 소파와 테이블이 있는 룸으로 들어와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제품들을 이곳으로 가져오게 한 후 다과나 샴페인을 먹고 마시며 제품들을 직접 착용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번에 새로 런칭했다는 시계들 모두 주얼리 워치들, 화려한 세공에 보석들이 달려 있는,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시계들이었다.




 마디로 민재의 취향에 맞는 시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냥 바로 나가기는  그렇고, 민재는 두 개 정도의 시계를 가져오게 해서 보기로 했다.



“이 정도 디자인이면 고객님이 지금 코디하신 의상에도 잘 맞으실 것 같은데요? 파티나 모임에 가실 때에도 착용하시면 좋을 것 같구요.”



신디가 하얀색 면장갑을 끼고 그의 손목에 시계를 착용시켜 주며 말했다.


“시계들이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예쁘긴 한데...... 가독성이 너무 좋지 않네요. 너무 화려해서 정작 몇 시 몇 분인지  보이지를 않으니, 시계 본연으로서의 기능은 좋지 않아 보여서 아쉽습니다.”




신디가 그의 왼손에 시계를 채워주는 사이, 민재는 오른손에 들고 있는 탄산수를 한 모금 마시며 아쉬운 둣 표정을 지었다.

“요즘 시계를 시간 보려고 차나요? 패션으로 차지요~”



그가 제품들을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신디는 이마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원래 VIP 고객에게 허락된 시간은  시간 가량,




하지만 마음에 드는 제품이 없었던 민재는 한 시간도 안 되어 자리를 일어섰다.


“좋은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해요. 점심에 약속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야  것 같네요.”

그는 그녀가 손목에 채워준 시계를 풀러 돌려준 후, 매장을 떠났다.


민재의 표정이 좋지 않음을 느낀 신디가 매장 밖까지 따라 나왔다.



“오늘  때문에 괜한 발걸음 하신 거 아닐까 모르겠네요.”


“천만에요.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다음에 이런 기회 있으면 언제든 초대해주세요.”


그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발렛 요원들의 그의 페라리 F8 트리뷰토를 매장 앞으로 가져왔다.



“그럼 다음에 봐요.”




민재는 신디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매장을 떠났다.



신디는 미안한 표정으로 그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 * *


신디에게 점심 약속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말하긴 했지만, 실제로 점심 약속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는 청담동 골목에 있는 유명한 일본식 돈카츠 식당 XX카츠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식당은 민재가 청담을 오갈 때마다 자주 들르는 식당 곳 중 하나였다. XX카츠는 블로그에서도 맛집으로 소문난 프리미엄 돈카츠 식당으로, 두툼하면서도 부드러운 히레카츠가 정말 별미였다. 다른 일식 돈카츠 식당들과는 달리 돈카츠와 함께 돈지루(돼기고기가 들어간 일본식 된장국)가 제공되는 것도 이 집만의 특색이었다. 아직 애들 입맛을 가지고 있는 민재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외식 장소였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쯤, 그의 핸드폰에 문자가 하나 왔다.



신디의 문자였다.

평상시 그녀가 홍보성 문자를 많이 보내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문자라고 생각했는데,

[고객님, 저 신디에요. 혹시 오늘 통화 가능하세요?]

이런 문자가 와 있었다.

‘홍보 문자가 아니라, 사적인 문자 아냐?’

민재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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