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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화 〉건물주의 하루 (4) (5/140)



〈 5화 〉건물주의 하루 (4)

건물주의 하루 (4)



압구정 로데오 역 근처에 있는 P호텔로 시은을 들쳐 엎고 들어간 민재.



이미 핸드폰 호텔 어플로 예약에 결재까지 완료한 상태다.




그는 시은을 예약한 호텔방 침대에 눕히고 호텔 컨시어지에게 5만원 지폐 한 장을 건네며,



“내일 7시에 저 방으로 전화해서 모닝콜 부탁 할게요. 혹시 전화  받으면 직접 가서 깨워주세요. 내일 오전에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라서 지각하면 안 되거든요.”

라고 부탁했다.

압구정 로데오 역 P호텔에서 청담에 있는 루이XX 메종 매장까지 걸어가면 15분에서 20분 정도 걸린다. 7시 쯤 일어나야 술 좀 깨고, 호텔 조식도 먹고, 씻고, 머리만지고 출근 시간에 맞게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팁을 받은 호텔 컨시어지가 민재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잊지 않고 7시에 모닝콜 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손님~!”

민재는 그렇게 엘리베이터로 호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대리기사가 기다리는 자신의 차로 돌아가......



려다 말고, 갑자기 호텔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가까운 편의점에서 숙취해소제와 술 깨는 약을 사서 컨시어지에게 전해주며 말했다.



“이거, 아침에 깨우러가면서 좀 전해주세요.”


그는 그런 후에야 다시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자신의 차를 타고 아파트로 돌아갔다.



* * *

어제 시은과 같이 소주 두, 세병을 마신 터라, 민재는 아침부터 속이 좋지 않았다.


아파트 홈페이지로 들어가 오늘 서비스 되는 조식 메뉴들을 보니 술 먹은 다음날 먹기 좋은 것들은 하나도 없었다.


“일식 메뉴에 우메보시가 있긴 한데, 내가 일본 사람도 아니고 무슨 우메보시 가지고 속이 달래지겄냐...... 으음...... 해장, 해장하러 나가야겠다......”

마침 아파트 부근에 있는 오분자기뚝배기 집이 생각났다.



민재는 편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그 식당이 있는 곳으로 걸어 나갔다.




오분자기뚝배기는 그가 제주도로 여행 갔을 때 한 번 먹고 반해 버린 음식이었다.

오분자기를 전복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분자기는 ‘떡조개’라고도 불리는 다른 종으로 일반적인 전복보다 조금 작고 껍데기도 보다 평평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전복 보다 더 쫀득한 맛이 일품인데, 전복이 양식이 가능한 반면에 오분자기는 양식이 아직 불가능해 자연산만을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오분자기뚝배기를 다시 먹기 위해서는 제주도로 가야 한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A아파트로 이사 와서 보니 삼성동에도 제주도로부터 자연산 오분자기 공수해와 오분자기뚝배기를 만들어 파는 식당이 있지 않은가?!

맛은 제주도에서 먹었던 것과 똑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그의 입맛에  맞아, 가끔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이 생각날 때면 그곳을 찾곤 하고 있었다.




“이모~! 오분자기뚝배기,  거 하나 주세요~!”


그가 식당 안쪽에 편안한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였다.



운동복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핸드폰이 진동했다.



전화번호부 저장 이름 루이XX 메종 신디,



시은이었다.



[여, 여보세요? 미, 민재씨? 아, 아니, 고, 고객님? 안녕하세요~?!]




이제야 잠이 깬 모양이다.



“시은씨 일어났어요? 집이 어디인지 몰라서 일단 매장에서 가까운 호텔에 모셨어요. 중간에 이상한 짓 같은 거 안 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구요.”




[아, 아니오, 그, 그게 그러면...... 제가 언제 이 호텔로 들어온 거죠? 분명 고기집에서 민재씨랑 안창살 구워 먹은 것까지는 생각나는데.......]

 뒤로 생각이 안 나는 게 당연하겠지, 안창살 집어 먹다가 뻗었으니까.


“어제 고기집 안이 좀 더워서 술기운이 금방 올라왔나 보더라구요. 아침에 호텔 직원이 숙취해소제랑 약 가져다주던가요?”

[네? 아, 네,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거기서 매장까지 걸어서 15분 정도 걸릴 거에요. 결재 다 해놨으니까, 거기서 아침 드시고 약도  드시고, 천천히 준비해서 출근하세요.”

[아, 고객님, 아니, 민재씨......]



그녀의 목소리가 아련하게 떨리고 있었다.

[신세 갚으려다가 이렇게  신세를 지게 되었네요. 정말 죄송해요. 민재씨, 제가 다시 보답할 기회를 주세요. 제가 오늘은 정말 실수  하고 민재씨한테 정말 좋은 곳으로......]



“어제 집에도 못 들어가셨는데 바로 또 만나는 건 좀 그럴 거 같은데요?”


[아, 그, 그건......]




“아직 숙취도 있을 거고 몸도 많이 피곤하실 텐데, 오늘은 집에 들어가 푹 쉬시고 다음에 또 연락해서 언제 만날지 약속 잡는 걸로 하시죠.”




[저, 그러면...... 다음에 제가 모실  꼭 나와 주실 거죠?]



나가야지, 어제 고기값 지가 산다면서 내가 다 냈는데. 그거 억울해서라도 나가야지.




“몸  추스르고 나서 다시 전화주세요, 기다릴게요.  그럼 지금 급한 일이 있어서 그만.”

[아, 민재씨~! 민재......]



뚝!




시은이 뭐라 말하려는 것 같았지만, 민재는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의 말대로 지금 그의 앞에 급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 오분자기뚝배기 대짜 하나 나왔습니다~!”


식당 홀 서빙 하는 분이 큼지막한 뚝배기 안에 오분자기 여덟개가 든 오분자기뚝배기를 그의 식탁에 올려주고 계셨다.



민재는 몹시 흥분한 표정으로 숟가락과 젓가락을 냅다 양손에 집어 들었다.




“와, 오분자기 양 대박 많네~?! 이모, 잘 먹겠습니다~!”


“호호,  맛있게 드세요~”


지금 맛있는 오분자기뚝배기가 눈앞에 막 도착했는데, 한가롭게 전화나 하고 있을 새가 없었다.



얼큰한 국물부터 앞접시에 담아 쭉 들이키고는, 숟가락으로 오분자기를 하나씩 건져 젓가락으로 쏙쏙 뽑아 먹기 시작했다.




“어우~ 이게 진짜 해장이지! 이모~! 여기 공기밥 하나 추가해 주시고 김치 좀  많이 갖다 주세요~!”



* * *



시은을 만난 건 그로부터 일주일 후의 일이었다.



그녀가 off  날에 맞추어 만나기로 한 것이다.



민재는 은색 메르세데스 벤츠를 몰고, 그녀가 지금 살고 있다는 신림동까지 그녀를 태우러 갔다.

그녀는 날씬한 몸매가 잘 드러나는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약속 장소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어떤 거 드시고 싶으세요? 저번처럼 버거X 같은  가자고 하면 안 돼요!”

시은이 조수석에 타며 미소 지었다.


“이번에도 햄버거랑 비슷한 거긴 한데, 일단 버거X 같은 프랜차이즈는 아니에요.”

“거기가 어디인데요?”

“인사동 골목이요.”



“인사동이오?”

민재는 가볍게 웃음 지으며 동작대교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 * *

민재가 그녀를 데려간 곳은 인사동에 있는 오래된 이탈리안 식당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나폴리 스타일의 화덕피자를 판매한 것으로도 유명한 이집은, 건물 외관부터 내부 인테리어까지 모두 이탈리아 나폴리의 정취를 물씬 느낄  있게끔 잘 꾸며져 있었다.


게다가 주방 근처에 피자를 구워 내오는 화덕을 손님들도 모두 볼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음식을 먹으며 보는 맛을 더할 수 있기도 했다.



“인사동에 이런 곳이 있었어요? 저도 인사동 거리  번 와 봤지만 이런 곳이 있었는지는 몰랐어요......!”



시은도 이 집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20년 넘게 운영한 집이래요. 블로그에 인사동 맛집으로 검색해도 많이 나온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민재씨는 이런 멋진 곳을 어떻게 아셨어요? 혹시 이전에 사귀던 분과 함께 오셨던 곳?”




시은이 눈을 찡긋하며 웃어보였다.



약간 질투가 섞인 듯한 표정이 제법 귀엽게 느껴졌다.

“대학 다닐  아는 교수님 전시회 보러 왔다가 그분들과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어요. 그 이후로도 몇 번 와보게 되었구요.”

“어머, 그럼 대학 다니실  전공이 미술 쪽이셨던 거에요?”



“아뇨, 제 대학 전공은 심리학이었어요. 교양과목으로 수강하던 미술치료 교수님이 인사동에서 유화전을 하신다고 해서 찾아뵈었던 거에요. 미술에 대해서 많이 아는 편도 아니구요.”



두 사람은 샐러드와 봉골레 파스타, 마르게리타 피자를 주문했다.


그리고 와인도 한 잔씩.



술이 들어가자 시은의 얼굴은 금방 발그레해졌다.


‘와인 한 잔에도 얼굴색이 금방 변하네? 전에도 그렇고, 원래 술 잘 못하는  아냐?’

그래도 다행인건, 이제 시은이 어디 사는지 알게 되었으니 술 취해 뻗으면 저번처럼 호텔에 재울 필요 없이 집에다 데려다 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맛있는 음식과 와인을 나누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은 진짜 제가 낼게요! 민재씨 카드는 잠시 넣어두세요!”

식사 후 시은은 민재보다 먼저 카운터로 달려가 재빨리 계산을 해버렸다.

“헤헤, 그럼 인사동도 왔으니까, 술도  겸 인사동 거리 좀 걸으실래요?”

“그래요, 음주운전하면 안 되니까, 걸으면서  좀 깨죠.”

두 사람은 인사동 거리를 향해 걸었다.


어느새 시은의 팔이 그의 팔을 감싸 안고 있었다.



* * *


인사동 거리를 한 시간 정도 걸었을 때였다.




“이제 밤도 되었는데, 집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민재가 차를 주차한 공영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려할 때,




갑자기 시은이 그의 팔을 붙들었다.


“저, 민재씨......”


“네?”

“지난번에 저  취했을 때 호텔로 데려가 주시고, 저 지켜주시려고 한 거 감사드려요.”

지켜주려고 하기는, 정말 철캉철캉 경찰서 가게 될까봐 해야 할 일을   뿐인데.




“오늘은 그래도 저번처럼 술 많이 안 드셔서 다행이네요. 그래도 이제 어디 사시는지 알았으니 술 취하시면 집에다 바래다 드릴 수 있게 돼서......”


“저, 민재씨!”


시은이 그의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두 사람의 가슴이 거의 닿을 듯 말 듯,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다.




시은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아까 마신 와인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숨결도 거칠어져 있었고,


눈동자도 격렬히 요동치고 있었다.


“저 남자한테 이런  처음 하는 거라 부끄럽고 창피하긴 한데......  오늘 밤...... 민재씨랑 같이 있고 싶어요......”




시은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부끄러운  고개를 떨구었다.



잠시 시은을 내려다보던 민재의 손이 그녀의 어깨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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