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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화 〉건물주의 하루 (5) (6/140)



〈 6화 〉건물주의 하루 (5)

건물주의 하루 (5)

 사람은 차를 타고 종로에 있는 F호텔로 이동하고 있었다.

F호텔은 인사동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5성급 호텔이었다.

민재는 출발하기 전 핸드폰 어플로 미리 호텔 룸을 예약했다.



시은이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가서 빈 방 있냐고 물어도 될 텐데, 예약도 하시고 정말 꼼꼼하시네요.”

무슨 5성급 호텔이 모텔이냐? 가서 방 있냐고 물어보고 들어가게?



그리고 그가 늘 어플로 호텔 예약 하는 데는 정말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그래야 마일리지 쌓아서 나중에 무료 숙박 일수 늘어나니까!



민재는 은근 이런 거 모으는 거를 좋아했다.



지난번에 시은과 버거X 갔을 때는 어차피 시은이 사주는 거라 딱히 티를 안냈었는데,

사실 민재는 버거X 갈 때마다 핸드폰 어플에 있는 할인쿠폰 쓰거나, 매장에서 나눠주는 종이쿠폰을 모아두었다가 다음에 쓰는 일이 많았다.

부자라고 해서 무조건 물건 살 때마다 제 값 다 내고 사고 그러는 거 좋아하지는 않았다.


싸게  수 있는 때는 반드시 싸게 사야 한다는 게, 그의 소비 철칙이기도 했다.


물론 민재는 이런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5성급 호텔 중에서는 예약 안 한 사람이 밤늦게 찾아와 투숙하겠다고 하면, 빈 방이 있어도 방 없다고 안 받는 경우가 가끔 있거든요.”

“어머, 왜요?”

“전에 호텔 경영 해보신 분하고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예약 안하고 갑자기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서는 술에 만취해 있거나, 무언가 안 좋은 결심을 하고 호텔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야간에 근무하는 호텔 직원들에게 예약 안하고 밤에 찾아오는 사람들은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으니  둘러대서 받지 말라고 교육하곤 했데요. 뭐, 모든 호텔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미리 예약을 하고 가는 게 낫겠지요. 그런데 시은씨, 내일도 쉬는  맞죠?”



“네, 맞아요.”




시은이 얼굴을 붉히며 미소 지었다.




“잘 되었네요. 내일 천천히 호텔 조식까지  즐기고   있어서. F호텔 조식이 정말 괜찮거든요.”


“호텔에서 조식 드시는 거 좋아하세요? 일부러 조식 드시려고 호텔 투숙하고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호호.”



응, 호텔 조식은 좋아하지만 조식 먹으려고 호텔 간 적은 없어.

하지만 대학 졸업 이후 국내, 국외 여행을 많이 다녀서 호텔에 자주 투숙하고 호텔 조식 많이 먹어본  맞는 말이었다.


물론 돈이 많다고 해서 매번 5성급 이상 최고급 호텔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스위트룸, 가장 좋은 방에 묵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하루, 이틀 정도 혼자서 하는 여행일 경우 평범한 1인실에 묵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장기간의 여행으로 오래 투숙해야 할 경우에만 스위트룸을 찾곤 했다.

여행지와의 거리 및 접근성과 호텔 내에서 누릴 수 있는 여러 서비스들을 고려하다보니 대게 고급스러운 호텔을 고르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우에 따라 일반적인 호텔에 묵는 경우도 제법 많았다.



흔히 호텔 조식은 4, 5성급 호텔부터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그렇지 않다.

조식이 제공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호텔부터 모텔, 여관이 아니라 1성급 호텔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카페, 식당 등의 시설이  들어와 있다면 2성급 호텔,



일정 수 이상의 테이블을 갖춘 고급 식당과 고객들을 위한 로비, 라운지가 추가되면 3성급 호텔,




고급 식당은 물론 연회장, 비즈니스 공간, 휘트니스 시설, 유흥 시설 등을 갖추고 12시간 이상 룸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4성급 호텔,

3개 이상의 고급 식당에 대형 연회장, 수영장을 갖추고 24시간 이상 룸서비스를 제공할  있다면 5성급 호텔로 구분되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호텔 이름 가진 곳에서는 모두 조식이 나온다. 안 나오면 호텔이 아니라 모텔인데 이름 가지고 사기 치는 거겠지. 게다가 지방에 가면 조식 제공 되는 모텔도 있다던데.




“아침을 꼬박 꼬박 잘 챙겨 먹는 타입이에요. 당연히 호텔에서도 조식은 꼭 챙겨 먹구요.”

“그럼 댁에서도 매번 아침 챙겨 드시는 거에요? 혼자 사신다면서, 매일 아침 마다 식사 준비하는 거 귀찮지 않으세요?”



“저, 아침 주로 배달시켜 먹어요.”

“배달이요? 아침 식사 배달해 주는 식당이 있는 거에요?”




“아뇨, 식당이 아니라 제가 사는 아파트에서 입주민한테 조식 배달 서비스 해주고 있어요. 나름 맛있게  나와서 자주 주문해서 먹고 있죠.”




“조식을 배달까지 해주는 아파트라구요.......? 그럼, 그 조식은 무료에요, 아님 돈 내고 먹는 거에요?”

“당연히 돈 내야죠. 물론 주문할 때마다 그 때 그 때 돈을 내는 건 아니구요, 이번 달에 주문한 조식 비용이 다음 달 아파트 관리비에 포함 되서 청구되는 방식이에요.”


“우와, 신기하다......! 조식을 만들어서 팔고 집까지 배달도 해주는 아파트가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어요!”

유튜브 찾아보면 A아파트 조식 배달 서비스에 대한 영상도 올라와 있던 거 같긴 한데, 이런 아파트가 많지 않으니까 모를 수도 있겠지.




어느덧 그들은 F호텔에 도착하고 있었다.




* * *



먼저 씻고 나온 민재가 호텔 가운을 입고 침대에 누워 그녀를 기다리는 사이, 시은이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있었다.

시은을 만나기 전 연예를  번도     아니어서, 민재는 이런 상황이 그다지 어색하거나 민망하지는 않았다.




학창 시절에도 사랑을 해봤고, 대학시절에 CC도 해보고 연애도 몇 번 해보았다.

물론, 갈  까지 다 가본 적도 많았고.



갈 데 까지 다 가봤으면 대체 어디까지 가본 거냐고?



갈 데 까지, 해남 땅끝마을까지 가봤다는 얘기는 아니고......

흠흠!




그래,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가 상상하고 있는 그거!



그게 거의 맞을 거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주식과 부동산에 손을 댄 이후부터, 민재는 연애에 조금씩 회의감을 느꼈던 것 같다.


특히 그가 갑자기 부자가 될 즈음 사귀던 여자들은, 그가 부유해진 것을 안 이후로 그에게 사랑 말고도 여러 가지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옷 사 달라, 화장품 사 달라,  정도는 귀여운 편이었다.




명품 가방 사 달라, 외제 차 사 달라,


심지어 자기 학자금 대출 갚아 달라, 성형 수술 시켜달라는 여자도 있었다.



이건 사랑을 하는 건지 뭐하자는 건지,




민재를 물주로 알고 빨대 꼽고 빨아 먹기만 하려는 여자들 때문에, 그는 한동안 연애라면 신물이 날 정도였다.



그래서 시은도 혹시 그런 류의 사람이 아닐까, 의심이 안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 사람은 어딘가 모르게 순수하고 귀여운 구석이 있단 말야? 자기가 먼저 고객한테 식사를 사주겠다고 그러지 않나......’


물론 그게  민재를 꼬시려는 빌드업 일수도 있었겠지만, 진짜 꽃뱀처럼 남자를 유혹하는 여자들의 수법치고는 너무나 어수룩해 보였다.


명품 브랜드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속물들이 제법 있다고들 한다.


명품 브랜드 매장에서 일한다고 자신들이 명품은 아닐진데, 명품 하나 없는 사람, 그런 것들을 살 정도의 경제력이 없는 사람들을 보고는 마치 자신들이 뭐라도 되는 거 마냥 그들을 얕잡아 보고 심지어 그들을 자기 밑으로 여기듯이 깔보기도 하면서,

정작 명품 매장 고객들에게는 간이나 쓸개까지 내어줄 것처럼 비굴하게 굽실굽실 거리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좋은 분들이 분명 더 많았다.

오히려 자신의 일에 헌신적이고 프로패셔널하면서도,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격의 없이 친절하고 자상하신 분들이 분명 더 많다고 느껴졌다.

민재는, 시은 역시 이런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얄팍한 목적만을 가지고 접근한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순수한 면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민재에게 빠질 만한 구석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었겠지.



 정도면 배우 공유 닮았다는 소리 들을 정도로 잘 생겼지, 키도 크지, 비율은 모델 같은데 체격은 탄탄하지,

애가 성격도 괜찮아서 싸가지 없는 짓도 안하고 말도 착하게 하지,



게다가   리치, 젊은데 졸라 부자지.


아, 마지막 조건이 완전 크리티컬이다.




여자 입장에서는 무리를 해서라도  사람에게 들이대고 싶은 마음 충분히 들 수 있는 거 인정한다.


‘그래도 만약 시은 이 사람이 전에 그런 여자들과 별  다를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머릿속으로 최선의 상황과 최악의 상황  가지를 상정하고 각자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았다.

‘최선의 상황이라면 상관없고, 최악의 상황이라면......’


그럼 어떻게 해야겠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오래 기다리셨죠?”



욕실에서 시은이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머리카락을 젖게 하지 않으려 머리 위를 타올로 감싸고 있었고,


가슴 아래에서부터 골반 바로 아래까지도 하얀 타올을 둘러 살짝 가린 채,

얼굴 가득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그가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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