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건물주의 하루 (8)
건물주의 하루 (8)
아침이 되었다.
민재와 시은, 두 사람은 조식을 먹기 위해 호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시은은 민재의 팔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런데 걷는 게 약간 불편한 듯, 걸음 걸을 때마다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 탄 후, 민재가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불편해 보이는데, 괜찮아요?”
“걸을 때마다 거기가 조금 아파서......”
“네?”
“어제...... 민재씨랑 하다가....... 민재씨 그게 너무 커서...... 아직도 조금 아파요......”
아하......!
이런 일이라면 이미 과거에도 여러 번 겪었었지......
그게 어디 마음처럼 되는 것도 아니고, 에휴......
민재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등 뒤에서 살포시 안아주었다.
“미안해요, 내가 더 조심했어야 하는 건데.”
“아니에요, 그래도 너무 좋았어요! 이런 느낌 받는 건 처음이에요......”
“움직이면 아프니까, 식당가면 테이블에 그냥 앉아 있어요. 내가 먹고 싶은 거 가져다 줄 테니까. 시은씨 뭐 좋아해요?”
“제가 여기 호텔 조식으로 뭐 나오는지 잘 몰라서...... 전 일단 초밥부터!”
“아...... 조식 뷔페에서는 초밥이 안 나오는 걸로 아는데......?”
“그래요? 그럼 민재씨 좋아하는 걸로 같이 가져다 주셔도 되요.”
시은은 수줍게 웃으며 그의 팔을 쓰다듬었다.
식당에 사람들이 반 쯤 차 있었다.
민재는 시은을 테이블로 안내해 의자를 빼어 그녀를 앉히고는,
접시를 들고 그녀의 아침부터 먼저 담으러 간다.
‘뭘 좋아할까?’
일단 스탠다드한 메뉴부터 먼저 골라본다.
프렌치토스트에 베이컨, 계란, 햄, 해시브라운, 거기에 샐러드 한 가지,
음료는 오렌지주스로 가져다주고,
“먼저 먹고 있어요. 내 것도 곧 가져 올게요.”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이 먹을 것을 담으러 이동한다.
민재는 호텔에서 조식을 먹을 때면 늘 가장 먼저 빵으로 시작을 하곤 한다.
우선 크라상과 크림치즈 바른 베이글 하나 씩,
따뜻한 야채 스프에 사과 주스 한 잔,
첫 접시는 상당히 가볍게 시작하는 편이다.
그가 예상보다 먹을 것을 너무 조금 가져온 것을 본 시은이 물었다.
“겨우 그거 드시는 거에요?”
“아니에요. 첫 접시부터 가득 담아 오면 앞으로 많이 못 먹게 되니까 이번엔 조금만 가져온 거예요.”
“아아, 그렇구나...... 역시 뷔페 자주 드셔 보신 솜씨네요.”
시은은 웃으며 포크에 든 베이컨을 입에 넣었다.
“저는 이런 최고급 호텔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조식 뷔페 먹는 건 처음이에요. 민재씨가 드셔보신 곳 중 어디 호텔 조식이 제일 맛있었어요?”
“맛은 다 비슷했던 거 같은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태국 푸켓의 G리조트 호텔이었어요.”
“태국 푸켓이요?”
“네, 원래 태국이 관광 산업이 많이 발달했잖아요? 게다가 중국, 프랑스와 함께 맛있는 음식이 제일 많은 나라로 유명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가, 제가 묵었던 태국 푸켓의 G리조트 호텔 조식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어요! 조식 뷔페의 메뉴 가짓수도 지금 여기 F호텔의 두 배 정도는 되고, 다양한 향신료를 써서 이국적인 맛과 향이 나서 그런가, 더 맛있게 느껴지더라구요. 그게 어느 정도나면은, 호텔에 있는 볶음밥은 사실 어딜 가나 다 비슷해서 잘 안 먹게 되거든요? 그런데 거기 태국 푸켓 볶음밥은 진짜 너무 맛있어서 제가 세 접시나 먹었을 정도였죠!”
“거기 볶음밥이 그렇게 맛있었어요? 와~ 갑자기 볶음밥이 먹고 싶어지네요......”
“나중에 들은 건데 그 볶음밥이 사실 나시고랭이라고,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에서 많이 먹는 스타일의 볶음밥이었다고 하더라구요. 아직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는 안 가봤는데, 나중에 꼭 본토 나시고랭 먹으러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에요.”
“어머, 민재씨는 언제든 나시고랭 드시러 다녀오실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아침은 한국에서 먹고 점심은 말레이시아에서 나시고랭 먹고 저녁은 일본 가서 스시 먹고 다시 한국 돌아오기, 이렇게 세계 별미 1일 투어 해보셔도 재미있을 거 같아요.”
어?
미처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은 없는데,
굉장한 굿 아이디어인데?
그녀의 말에, 갑자기 해보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그런데 태국 푸켓은 혼자 다녀오신 거예요?”
어느 년이랑 같이 갔어? 라고 묻고 싶은 걸 돌려 말하는 시은이었다.
“태국 푸켓은 혼자 다녀왔어요. 거기 2주정도 있으면서 체육관에서 무에타이도 배우고 관광도 하고 재미있게 보내다 왔죠.”
시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재를 바라보았다.
“무에타이요? 옹박에 나오는 그거? 킥복싱? 격투기? 그거 말씀하시는 거예요?”
“네, 맞아요.”
“민재씨 격투기 하셨어요? 몸이 좋으셔서 운동 많이 하신 건 알았는데, 얼굴이 전혀 그런 운동 하게 생기시지 않으셔서 짐작도 못하고 있었어요. 가끔 TV에서 격투기 선수들 나오는 거 보면 모두 거칠게 생겼던데?”
물론 격한 운동하는 사람들의 외모가 다소 거칠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생기지 않고 일반인과 다를 바 없이 생긴 사람도 많은 법이다.
UFC에서 뛰고 있는 최두호나, 한국 입식격투기 최강자 이성현, 로드FC 전 챔피언 이윤준 같은 사람들을 보라.
그냥 길에서 만나면 어느 동네에나 흔한 착하게 생긴 청년이라 여길 정도로 순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게다가 민재가 무에타이를 한건 학창시절 아마추어 시합을 뛴 정도였다.
하지만 가족들이 변을 당하고 혼자 살게 되면서 운동을 그만 두었는데,
이후 대치동 자신의 건물에 나만의 헬스장, 나만의 운동시설을 만들면서 웨이트 기구와 장비들 외에도 매트와 여러 종류의 샌드백, 글러브 등을 갖춰 놓고 개인적으로 격투기 수련을 계속 하고 있었다.
“딱히 인상이 거칠어 질 만큼 열심히 하지도 않았는데요, 뭐.”
“태국이 무에타이의 종주국이라면서요? 태권도 종주국이 우리나라인 것처럼 말이에요.”
“네, 맞아요. 그래서 무술 이름에도 타이, 태국의 이름이 들어가 있죠.”
“그럼 태국에 무에타이 배우러 가면 뭐 가르쳐 줘요? 우리나라에서 배우던 거 하고 다르게 가르쳐 줘요?”
“크게 다르지 않아요. 대신 수준에 따라 차이를 두고 다르게 가르치죠. 오래 수련한 사람은 오래 수련한 대로. 처음 배우는 사람은 처음 배우는 대로 배우는 게 다를 수밖에 없죠.”
“그럼 민재씨는 거기서 어떻게 운동했어요?”
“일단 리조트에서 아침 먹고 조금 쉬었다가 체육관 있는 데까지 로드웍 하면서 뛰어서 가요. 한 5km 정도 뛰죠.”
“에에~? 5km 씩이나요? 난 그렇게 뛰면 죽을 지도 몰라요.”
“5km 뛰는 건 힘들지 않은데, 날씨 때문에 정말 죽을 것 같더라구요. 거기는 정말 온도와 습도가 장난 아니라서요.”
“태국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남쪽에 있어서 그런 거죠? 대만이 우리나라보다 더 더운 것처럼.”
“네, 맞아요. 덥고 습한데 자외선까지 엄청나게 내려와서 로드웍 할 때에는 꼭 긴팔 래쉬가드 입고 선크림도 두껍게 바르고 나가야 해요. 저랑 같이 운동하던 어느 분은 거기 서양 애들이 상의 탈의하고 달리는 거 보고, 자기도 따라한다고 상의 벗고 달리다가 피부가 다 상해버려 병원신세까지 지셨죠.”
“어머, 근데 왜 서양 사람들은 옷을 벗고 뛰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거죠?”
“서양인들은 우리와 피부체질이 다르데요. 멜라닌 함유량이 다르다고 했던가? 가끔 유럽 사람들이 햇살 좋은 날이면 공원이나 해변에서 옷 벗고 일광욕하고 그런다잖아요. 서양 사람들의 피부는 자외선을 우리보다 많이 받아들여도 괜찮지만, 우리나라 사람이나 동양인들은 태국 같은 데에서 자외선에 오래 노출되면 피부암도 걸릴 수 있데요.”
운동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사람 다 한 접시를 깨끗이 비운 상태다.
민재는 시은과 자신의 접시를 옆으로 치워 놓고 다음 접시에 도전하기 위해 일어났다.
“시은씨, 이번엔 어떤 거로 가져다 드릴까요?”
“볶음밥이요. 아까 민재씨가 나시고랭 이야기가 해서 갑자기 먹고 싶어졌어요. 아! 그리고 이번엔 한식을로...... 김치하고 제육하고 이런 반찬들 하구요.”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민재는 그녀에게 미소 지으며 음식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 * *
호텔에서 체크아웃 한 민재와 시은이 차가 있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민재가 그녀를 조수석에 태우며 물었다.
“시은씨, 가보고 싶은 데 있어요?”
“네? 저는...... 사귀는 사람 생기면 익선동 한옥마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긴 있었는데......”
흠,
시은은 확실히 자신과 민재가 사귀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기야, 우리나라 정서상 남녀가 거기까지 갔으면 사귀는 거라 봐도 무방한 거지,
그렇게 생각 안하는 민재가 너무 유로피언 마인드인 거고.
“익선동 한옥 마을 좋죠. 그런데 시은씨?”
“네?”
“거기...... 아프시다면서요? 많이 걸으면 불편하지 않으시겠어요?”
“아, 참! 그건 그렇긴 한데......”
“그럼 어차피 점심시간도 다 되었는데, 제가 종로에 예쁜 테라스가 있는 레스토랑을 알고 있거든요? 일단 거기 먼저 가 볼까요?”
“네! 좋아요!”
시은은 밝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기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