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건물주의 하루 (9)
건물주의 하루 (9)
주중에 합정동에 있는 건물 관리인으로부터 톡이 날아왔다.
[3층 공실 보고 간 사람이 계약하고 싶다고 합니다.]
바로 답장을 보내는 민재,
[어떤 사업하시겠다고 하나요?]
[당구장과 만화방이 함께 있는 신개념 휴게실 사업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게 신개념 사업이라고? 그런 건 8, 90 년대에도 있지 않았나?
[그 분께서 하시려는 사업 아이템이 제 건물과 맞지 않아 계약이 힘들다고 전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합정동 건물 관리인에게서 다시 톡이 날아왔다.
[그 사람이 이곳보다 더 좋은 목에 자리 잡은 건물은 없다면서, 여기서 꼭 사업하고 싶답니다. 보증금이나 월세도 좀 더 드릴 수 있으니 다시 한 번 재고해 달라고 하네요.]
후유~
합정동 건물 있는 곳 위치가 좋긴 하지. 지하철역도 근처에 있고, 홍대 하고도 가까워서 유동인구도 많고.
하지만 민재가 당구장/만화방 하겠다는 사람과 계약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지금 합정동 건물 다른 층 세입자 분들은 모두 식당을 하고 계시지요. 그런데 당구장이 그 건물에 들어오면 필연적으로 이용객들의 흡연 문제 때문에 다른 층 식당 하시는 세입자분들과 마찰이 생길 거예요. 아무리 흡연공간을 따로 만든다 하더라도 다른 층에 피해가 아예 안 갈 수는 없다고 봅니다. 유감스럽지만 다른 건물을 찾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잘 말씀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참고로 민재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건물은 대부분을 금연 건물로 지정해 일체 담배를 못 피우게 하고 있었다.
가끔 자신의 건물을 둘러보다가 건물 안에서 흡연하는 사람들과 마주칠 때가 있다.
그 때마다 그는 꼭,
“실례합니다만, 이 건물은 금연 건물입니다. 이곳에서 담배를 태우시면 안 됩니다~”
하고 한 마디 하고 지나가곤 한다.
99%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 죄송합니다~”
하고 황급히 담배를 끄고 사라지는데,
꼭~ 1% 정도의 사람들은 아니꼬운 눈빛으로 민재를 바라보며,
“당신이 뭔데 담배 피지 말라고 그러는 거야? 당신이 여기 관리인이야, 아님 경비원이야? 나이도 어려 보이는 사람이 누구한테 훈계하려 들어?”
라며, 불쾌하게 받아치는 일이 생기곤 한다.
좋은 말은 좋은 말로 받아 주지만, 이런 말은 절대 좋게 못 받아주지.
“저 이 건물 건물주입니다. 그러니까 제 건물에서 담배피지 마시라구요. 혹시 이 건물 몇 층에서 일하시는 분이세요? 오늘 온 김에 거기 세입자 분 좀 만나 뵙고 가야할 거 같은데?”
이렇게까지 말해야 꼬리를 내리는 사람들이 꼭 있다.
건물을 관리하다보면 이런 흡연 문제 때문에 자잘하게 골치 썩을 일이 생기곤 한다.
예전에 등촌동에 있는 건물에서 이런 일이 생긴 적도 있었다.
2층에 있던 PC방주인이 PC방 안에 따로 흡연공간을 만들어 놓지 않아서, PC방 방문객들에게 계단에서 담배를 피라며 재떨이를 거기에 갖다 놓은 적이 있었다.
PC방 이용자들이 계단에서 담배를 피다보니 자연스럽게 담배 냄새와 연기가 계단을 타고 위층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고,
3, 4층에 있던 인터넷 쇼핑 회사 사무실과 5층에 있던 무술 도장이 계단에서 올라오는 담배 냄새 때문에 장기간 곤욕을 치러야했다.
결국 각층 세입자들끼리의 언쟁이 오고가는 상황까지 생겼고, 구청과 소방서에 민원까지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분쟁으로 번졌다.
몇 개월 후 PC방 주인이 계약을 마치고 나가면서 그들의 분쟁은 일단락되었지만, 민재는 이 일로 건물 내 흡연을 왜 금지해야 하는지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그가 가진 8개의 건물 중 유일하게 금연 건물이 아닌 곳은 이태원에 있는 건물 한 곳뿐이다.
이태원에 있는 건물은 H호텔 뒤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지하 1층, 지상 3층짜리 건물이었다. 지하는 힙합 클럽, 1층은 펍, 2층과 3층은 테라스와 루프탑이 갖춘 라운지바에 세를 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곳 영업 특성상 흡연을 막기는 곤란했다.
‘합정동 건물 얘기하다보니, 거기 건물에 있는 돈까스 집 또 한 번 가보고 싶어지네? 거기 진짜 돈까스도 맛있고 사장님도 정말 서비스도 좋으시고 너무 친절하셔서 참 좋았는데.’
그 돈까스 집은 합정동 그의 건물 2층에 있었는데,
거기 사장 내외는 민재가 건물주라는 사실을 아직까지 모르고 있었다.
당시 그분들과 계약할 때 다른 일로 대리인을 대신 보내 계약을 했기에 서로 통성명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한 번,
‘이 번에 내 건물에 새로 들어오신 분들, 음식 얼마나 잘하시는지 가서 먹어볼까?’
하고 일반 손님으로 위장해 식사를 하러 갔는데,
거기 사장님 내외분은
“아이고 총각, 엄청 잘 생겼다~!”
“스프나 밥, 소스나 샐러드 더 필요하면 말해요~!”
“총각, 혹시 배고파? 주문 취소 들어온 거 있는데, 돈까스 좀 더 줄까?”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나오면서 기분이 너무 좋았던 적이 있었다.
‘나증에 시은씨랑 같이 합정동이나 가볼까? 그래서 거기 돈까스 집도 들르고? 그분들은 아직도 내가 건물주인거 모르고 계시겠지?’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시은과 만나기 시작한지 3일 정도 되었을 때였다.
이제 시은은 민재에게 개인적인 문자도 더 자주 보내고, 문자 끝에
[사랑해요♡]
꼬박꼬박 하트까지 붙여서 보내주고 있었다.
하지만 민재는 아직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도 그녀를 좋아하고 있기는 했지만,
정말 이게 사랑인지는 그 역시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민재는 지금 두 사람의 관계를
[서로 호감을 가지고 알아가는 사이]
라는, 연예인들 스캔들 터졌을 때 소속사에서 주로 둘러댈 법한 식상한 문장으로 개념 짓고 있었다.
‘분명 괜찮은 사람이라 좋아하는 감정이 있지만...... 조금 더 알아가는 게 중요한 거 같아.’
그녀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가진 돈을 보고 좋아하는 척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있었다.
‘나한테 명품 가방이니 보석이니 비싼 선물 사달라고 언제 말하는지 지켜보고 있어야겠군.’
그걸 얼마나 빨리 말하느냐,
직접적인 요구는 없어도 그런 뜻으로 운을 뜨는 게 언제이냐에 따라서,
그녀가 말하는 사랑이 진심인지 목적이 있었던 것인지 가늠해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결혼까지 작정하고 결혼 전까지 그런 내색 전혀 안낼 수도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 정도로 집요한 인내심을 가진 사람은 세상에 드문 법이야.’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이 것이었다.
* * *
오후 3시 쯤 되었을 때였다.
민재는 서재에 있는 컴퓨터로 여러 식당들을 검색하는 중 이었다.
서재는 거실 뒤에 있었는데, 그곳은 특이하게 정면이 유리로 된 가벽으로 되어 있었다.
서재에 있을 때 만큼은 탁 트인 곳에 있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이 집을 사며 리모델링을 했던 것이다.
서재의 양 옆으로는 나뭇결무늬의 고풍스런 책장이 놓여져 있었고,
책장에는 그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사놓은 책들과 아버지가 읽으시던 책들, 대학 때 읽던 전공 서적들이 빼곡이 꽂혀져 있었다.
이제는 양쪽 책장에 남는 자리가 부족해서 책장을 하나 더 놓을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럼 애써 리모델링한 유리 가벽을 가려야 될지 몰라서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대신 정말 안보는 책들을 골라 중고 서점에 팔기로 하고 그런 책들을 골라봤는데 약 30권정도 되었다.
아, 건물주도 헌책 팔아서 돈 버냐고?
민재 얘는 마인드가 그런 것도 팔면 몇 천원이라도 돈이 되는데 왜 그냥 버리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애라, 귀찮아도 직접 무거운 책 들고 중고 서점까지 가고도 남을 녀석이다.
한창 인터넷을 찾아보고 있을 때, 톡으로 문자가 날아왔다.
시은이었다.
[지금 뭐해요?]
[저녁에 뭐 먹을까 고민 중이요.]
[벌써부터 저녁에 뭐 먹을지 고민하는 거예요?]
[네, 미리 예약을 해야 하니까.]
[네? 예약이요?]
[오늘은 시은씨랑 저녁 같이 먹으려고, 미리 예약 좀 하려고 생각하는 중이었거든요.]
[어머...... - 부끄러워하는 토끼 이모티콘 -]
[오늘 8시 퇴근이죠? 저녁은 나한테 맡겨줄래요?]
[네, 민재씨가 가자는 곳이면 다 좋아요.]
[아, 그럼 맡겨달라고 했으니까, 오마카세로 가면 좋을 거 같네요.]
[오마카세가 뭐에요?]
[특별히 정해진 메뉴나 코스 없이 셰프가 알아서 해주는 데로 먹는 식당이에요.]
[그런 데가 있었어요? 그 식당 이름이 오마카세에요?]
[오마카세는 일본어로 맡긴다 하는 뜻이에요. 셰프에게 알아서 맡기고 주는 대로 먹는 식당, 그런 스타일의 영업을 하는 곳을 모두 오마카세라고 부르죠. 청담 루이XX 가까운 데에 일식 오마카세 잘 하는 집이 있는데 오늘은 그리로 갈까요?]
[네, 좋아요 - 폴짝 폴짝 뛰는 토끼 이모티콘 -]
[이따가 8시에 매장 앞으로 태우러 갈게요. 그 때 봐요.]
[네, 늦지 않게 나갈게요. 사랑해요♡]
거듭되는 애정 표현에 대답해주지 않으면 마음이 상할 수도 있다는 건 알았지만,
아직 가슴이 시키지도 않는데,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도 거짓말 하는 것 같아 싫었다.
민재는 아무런 답 없이 청담 오마카세 식당에 예약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