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화 〉건물주의 하루 (10) (11/140)



〈 11화 〉건물주의 하루 (10)

건물주의 하루 (10)




민재는 약속시간에 맞춰 은색 메르세데스 벤츠를 끌고 청담 루이XX 앞으로 향했다.



시은을 픽업 하는 장소는 매장 앞이 아닌, 그보다 밑에 있는 사거리,




불과 며칠 밖에 안 되었는데, 매장 내에서 시은이 지금 연애중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고 한다.



아마 거기 매장 직원들 모두 그녀가 눈에 하트 뿅뿅한 표정으로 핸드폰 들고 뻔질나게 문자를 하는 모습을 본 거겠지.



명품 매장 직원들만큼 눈치 빠르고 상대방 표정 읽는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도 많지 않은 법이니까.




이런 상황에서, 만일 시은이 지금 만나고 있는 상대가 자신들 매장의 고객이라는 게 밝혀지게 된다면 그녀에게 이로울 게 하나도 없게 된다.




그래서 민재도 되도록 직장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그녀와 만나도록 조심하는 중이었다.

“일찍 오셨네요?  지냈어요?”


시은이 조수석에 타며 민재의 볼에 키스를 한다.

그리고 그의 왼손을 두 손을 꼬옥 잡는다.



‘이런 모습이 너무 귀엽단 말이야.’

민재도 이런 시은이 싫을 수가 없다.




“오늘 매장 일은 어땠어요? 또 사람들이 요새 연애 하냐고 물어보고 그랬어요?”

“네, 그래서 그냥 조심스럽게 알아가는 사람 있다고만 그렇게 말했죠. 그랬더니 그냥 썸이냐고 그래서 그건 아니고 확실히 좋은 감정 가지고 만나는데 아직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아, 그리고 오늘 매장에 진상 하나 와가지고 매장 전체가 다 시끄러워져서, 사람들 하고 얘기도 많이 못했던 거 있죠?”



“진상이요? 어떤 진상이었어요?”

“2000년대 초반  나온 것 같은 모델의 가방 하나 들고 와서 여기서 이 가방을 샀다가 수선을 맡겼는데 수선 끝났다고 보내온 거 보니까 스크래치도 나있고 수선 맡기기 더 엉망이 되어 있더라, 이거 어떻게 할 거냐, 환불을 해주던지  제품으로 교환해 주던지 변상해 내라, 이러면서 아주 난리 난리를 치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제너럴 매니저님도 내려오고 무슨 사고 난 줄 알고 가드 분들도 달려오고  그랬는데, 제너럴 매니저님이  진상 상대하고 있는 동안 시니어 직원 한 분이 그 가방 조회해 보니까 우리 매장 청담동에 생기기도 전에 지방 어디선가  제품이었데요. 게다가 수선 맡겼다면서 우리 본사에 맡겼다는 기록도 하나 남아 있지 않았구요.”


“그럼 뭐였죠? 그냥 거짓말쟁이 사기꾼?”

“제너럴 매니저님이  이야기 해보니까 수선을 맡긴 곳은 본사가 아니라 그냥 명품 수선 해주는 일반 매장이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그 분은 거기를 우리 본사에서 하는 수선 업체라고 생각하셨던 거죠.”


“아까 그 양반,  가방  데가 지방이었다면서요? 그런데 왜 처음부터 시은씨 매장에서 산 것처럼 이야기 했데요? 그런 항의를  거면 차라리 그 지방에 있는 매장에 가서 하시지.”

“그게, 저도 그거 듣고 좀 표정 관리가 안 되었는데요,   가방을 샀을 때는 분명히 그 가방을 산 매장이 있는 지방에 사셨는데, 10년 전에 서울로 이사 오셨데요. 그런데 가방 때문에 다시 그 매장 있는 지방까지 가기는 귀찮고, 자신이 수선 맡긴 곳은 본사가 하는 수선 업체 인 것 같고, 우리 매장은 청담에 있으니까 본사를 대표하는 매장일 거고, 그러니까 우리 매장에서 대표로 책임지고 변상하라고 하더라구요.”

“세상에, 이런 게 바로 기적의 논리라는 건가요?”



민재도 어이없어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청담은 그래도 다른 백화점 매장들보다 진상들이 덜  줄 알았더니만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네요.”

“정말 그래요. 저희 매장이 정말 우리 브랜드 대표 매장이라 그런가, 진상들도 보통 진상이 아닌 사람들이 자주 와요. 그런데 정말 암만 생각해 봐도,”




시은이 웃는 얼굴로 그의 왼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우리 민재씨처럼 착한 고객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거 같아요.”

“어떤 부분이 시은씨에게 착한 고객처럼 보였던 걸까요? 말 조용하게 하는 점?   확실히 사고, 안  땐 귀찮게 안하고 빨리 나가는 점? 클레임 걸거나 환불 요구 같은 거 없이 상품 하나 사면 오래도록 잘 쓰는 점?”




“민재씨의 모든 부분이  착한 고객의 대표 모델이죠!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런 고객만 아니면 좋은 고객이다, 싶은 유형이 있긴 해요.”

“어떤 유형의 고객인가요?”



“사지도 않을 건데 저한테 말 엄청 많이 하셔서 응대하다가  다 빠지게 만드는 분들이요. 개인적으로 그런 분들은 많이 부담스러워요.”




“사지도 않을 건데 말을 한다구요? 매장 와서 상품 얘기 말고 또  얘기가  있나?”



“아니, 세상에 가방 보러 왔다면서, 이 가방을 누구 엄마가 샀는데, 이러면서 갑자기 그 가방 산 사람 이야기를 한 30분 동안 늘어놓다가, 그런데  가방 말고 다른 가방 보고는 이건  연예인이 어느 드라마에서 들고 나온 가방인데 걔가 지금 재벌 3세 누구랑 연애중이라 그런 가방 드는 거다, 아니면 매니저가 협찬을 잘 따와서 그러는 거다, 정말 별의 별 얘기를 또 30분 동안 늘어놓다가, 이렇게 1시간 동안 그런 얘기 듣다 보면 정신이 다 혼미해  정도라니까요? 내가 지금  사람한테 물건을 팔기 위해 응대를 해주고 있는 건지, 아니면 심리 상담을 해주려고 응대를 해주는 건지...... 그런 분들 한 번 오시면 후유증이 정말 막대하죠.”



민재는 물건 살 때 직원들에게  세 마디만 물어 본다.

이거 000 사이즈도 있나요?

얼마죠?

 카드 되죠? (아멕스 골드, 솔직히  질문은 해외 이상한 나라 가지 않는 이상  물어 본다.)

이런 성격의 민재에게, 물건   저렇게 말을 많이 한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정말 사람 상대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없는 것 같아요.”


“무슨 일을 하든 사람 상대하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겠죠. 다만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진상이나 똘아이 들이 많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에요.”



“이번 저녁 식사가 오늘 하루 힘들었을 시은씨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시은이 그의 손을 좀 더 꼬옥 잡으며 말했다.


“저녁식사보다, 민재씨와 함께 있는  제게 더 큰 위로가 되요......”

그녀는 그의 어깨에 살며시 어깨를 기대었다.




* *



청담동 골목으로 들어온 두 사람은 스시000이라고 쓰인 식당으로 들어갔다.



“우와~”




정문으로 들어가자 보이는 호화로운 대리석으로  내부와 화려한 샹들리에.

“여기가 식당 맞나요? 저번에 간 F호텔에 온 느낌이에요!”

시은도 이곳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이곳은 라운지고 안으로 들어가면 또 분위기가 달라져요.”




“어떻게 달라지는데요?”



“여기가 일식 오마카세 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 안으로 들어가면 일본 현지의 식당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도록 인테리어가 되어 있어요.”


“어머, 민재씨 이곳 여러 번 오신 모양이네요? 전에 누구와 함께 오셨어요?”

또, 어느 년이랑 먼저 왔어? 이렇게 묻고 싶은 거겠지.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 여기서 모셨었고,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 전공 교수님도 이리로 모셨었고...... 주로 은사님과 함께 왔던 곳이에요.”


“아, 그러셨군요? 역시......”




이러면서 안도하는 표정을 짓는 시은이다.


“어서오십시오, 환영합니다~”




친절한 직원들이 그들은 안내해 내부로 들어간다.




민재의 말대로 내부는 원목 느낌이 물씬 나는 깔끔한 일본 식당 스타일로 되어 있었다.



가운데에 주방이 있어 셰프가 요리하는 모습을 눈으로 보며 그가 만들어 주는 음식을 바로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주방 가운데 서있던 셰프가 다소 어눌한 말투로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민재도 자리에 앉으며 그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지내셨나요?”




“네,  지냈습니다. 오늘은 예쁜 여성분과 함께시네요?”




그 말에 시은도 수줍게 웃었다.

시은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분 우리나라 사람 아니에요? 말하는 게 외국분 같은데요?”



“네, 모리시타 셰프님이라고, 일본에서 오신 분이세요.”


“어머, 일본 요리사가 직접 하시는 식당이었던 거예요?”

“직접 운영하시는  아니라 고용 되서 이리로 오신 걸로 알고 있어요. 원래 유명 호텔 요리사 분들도 외국에서 많이 모셔오곤 하잖아요.”



“그럼 이분도 되게 유명하신 분이신 거예요? 우리나라까지 모셔올 정도면?”


“일본 초밥 명인의 수제자 중 한 분인 걸로 알고 있어요.”

“에에에에? 그럼 저분이 진짜 미스터 초밥왕 같은 분이신 거예요?”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모리시타 셰프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미스타 초밥왕, 저도 그렇게 되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꼭 초밥왕이 될 거에요.”

그 말에 민재도 웃으며 대답했다.




“셰프님 솜씨라면 꼭 초밥왕이 되실 수 있을 거에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전채요리 준비해드릴게요~!”

모리시타 셰프는 잇몸 미소를 지으며 요리를 시작했다.


시은이  목소리를 낮추어 민재에게 물었다.



“저...... 전채요리가 뭐예요? 요리를 전체로 주시겠단 말씀이에요?”



“아, 아뇨. 에피타이저. 본 요리 먹기 전에 가볍게 먹는 식욕 돋우는 요리들이요.”



“아, 아아~!”


“아, 전채요리...... 요리 전체...... 풋!”



“아, 민재씨 웃지 마요~!”

“미안해요. 그 말이 너무 웃겨서...... 푸훗!”




두 사람이 키득거리고 웃는 사이, 모리시타 셰프도 열심히 첫 번째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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