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건물주의 하루 (11)
건물주의 하루 (11)
“먼저 찐 전복 드리겠습니다.”
모리시타 셰프가 예쁜 접시에 찐 전복을 하나씩 담아 그들에게 내주었다.
시은이 찐 전복이 든 접시를 앞으로 가져오며 놀란 표정으로 민재에게 물었다.
“이게 전채 요리에요? 전복이?”
“네, 이거하고 아마 사시미 하나 이렇게 더 나올 거예요.”
젓가락으로 전복을 들어 입어 넣고 오물오물 씹어 보는 시은.
“어때요?”
“간장향도 나고 다시마 맛도 나고...... 그런데 짠 맛보다는 은은하게 단 맛이 나는 게 되게 신기한 맛이에요.”
다음 요리를 준비하던 모리시타 셰프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
“맞습니다. 그거, 간장하고 다시마 넣어서 찐 겁니다. 한 번에 아시는 거 보니 미식가이신가 보네요.”
“정말요? 저는 그냥 간장향 나고 다시마 맛 나서 그렇게 말씀드린 건데...... 호호호.”
그들이 첫 번째 접시를 비우자 다음 요리가 바로 이어져서 나왔다.
“사와라 드리겠습니다.”
접시를 받아든 시은이 민재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와라가 뭐에요?”
“삼치요.”
“참치?”
“아니, 삼치요, 삼치. 하하하.”
시은이 또 사와라를 한 입에 넣고 맛을 한 번 느껴본다.
“이건...... 생선 같지 않고 무슨 양갱 먹는 느낌이에요. 사시미면 회 아니에요? 찌거나 조리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죠?”
“원래 생선도 부위마다 맛이 다 다른 법이죠. 마치 소나 돼지의 각 부분이 서로 다른 맛을 내듯이. 지금 이 사와라 사시미 역시 전채 요리에 맞게 모리시타 셰프님이 적당히 입맛을 돋궈줄 수 있는 자극적이지 않은 맛을 내는 부위를 골라 내어주신 걸 거예요.”
“아, 그렇구나...... 민재씨는 사시미 회 중에 어떤 회를 가장 좋아하세요?”
“전 우럭하고 참돔을 제일 맛있게 먹어봤어요.”
“우럭하고 참돔~ 역시 비싼 거 좋아하시는구나~”
“아뇨~ 대학교 다닐 때 교수님 따라 낚시 간 적 있었는데, 그 때 교수님이 우럭하고 참돔 잡아서 회 떠주신 거 먹어본 거예요. 그거 먹어본 후로, 이래서 사람들이 낚시하러 많이 다니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니까요? 정말 갓 잡아서 회 떠 먹는 게 그렇게 맛있는지 그때서야 알았어요. 물론 살아있는 걸 바로 잡아서 먹으려다보니 미안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마음이 좀 안 좋았지만 말이에요. 시은씨는 어떤 회 가장 좋아하세요?”
“네? 전 광어 하고 연어요. 특히 빕스에서 나오는 연어 좋아해요.”
이제 본격적으로 스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스시는 민재가 좋아하는 참돔,
이를 이어서 시마아지가 나왔다.
낯선 일본어에 또 한 번 궁금증이 발동한 시은.
“시마아지가 뭐에요?”
“줄무늬 전갱이에요. 이거 지방이 많아 상당히 부드러울 거예요.”
그들이 접시를 비울 때마다 모리시타 셰프가 바로 바로 다음 스시를 올려주었다.
세 번째 스시는 무늬오징어 아오리이까.
네 번째는 간장에 절인 참치인 아카미 쯔께,
다섯 번째는 다랑어의 기름이 많은 부위인 오도로가 나왔다.
그리고 여섯 번째로 나온 아지,
“시은씨, 아까 시마아지가 줄무늬 전갱이라고 했지요? 그럼 이 아지는 뭘까요?”
“전갱이요?”
“네, 맞아요. 전갱이에요.”
“어머, 민재씨 어떻게 그렇게 음식 이름을 다 아시는 거예요? 일본어 하실 수 있으신 거예요?”
“아니요, 여행 다닐 때 쓰는 기본적인 회화 정도 밖에 못해요. 히라가나 가타가나도 못 읽구요. 그냥 먹어본 스시 이름들만 기억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도 일반인들보다 스시 이름이나 생선들 일본식 이름을 되게 많이 알고 계신 거 같아요.”
“이런 데 오면 셰프님들이 다 요리 이름 말씀해 주시거든요. 그래서 맛있는 스시들은 나중에 또 찾아먹으려고 그 이름을 기억하려 노력하는 편이죠,”
벌써 일곱 번째 스시 벤자리돔,
여덟 번째 스시 단새우 아마에비까지 나왔다.
“회전초밥집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네요.”
“그쵸. 회전초밥집은 내가 좋아하는 초밥을 집어 먹으면 되지만, 여기는 셰프가 알아서 만들어주는 대로 먹어야 하죠. 시은씨는 양쪽 중 어느 쪽이 더 나은 거 같으세요?”
“전 지금 이곳이요! 제가 모르는 스시들, 그러면서도 상상도 못해봤을 정도로 맛있는 스시들 먹을 수 있는 여기가 더 나은 것 같아요! 전 회전초밥집 가면 계란 초밥, 광어 초밥, 연어 초밥, 새우 초밥 이렇게 네 개 밖에 안 먹거든요.”
이제 아홉 번째 김으로 만 우니 군함말이와
열 번째 스시 방어,
열한 번째 스시 북방조개 홋키가이가 나왔다.
“와~ 처음에는 스시가 하나씩 밖에 안 나와서 양이 너무 적게 나오는 거 아닌가하고 서운해 했는데, 정말 끝도 없이 나오는 거 같아요! 아직도 더 나올 스시들이 남아 있나요?”
“이 맘 때 튀김 종류 하나 나오고 스시 몇 가지가 더 나왔던 걸로 기억해요. 셰프님, 이제 튀김이 나올 차례인가요?”
“네, 맞습니다. 지금 아구살 튀김 드리겠습니다.”
청담 오마카세 스시OOO의 식사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이어서 열두 번째 스시로 청어가 나오고,
참나물 미소시루와
밥 위에 우니, 이꾸라, 참치를 올린 카이센동이 나왔다.
그리고 열세 번째 스시 정어리 이와시,
열네 번째 스시 초절임한 고등어 시메사바,
마지막 열다섯 번째 스시 장어 아나고가 나오고,
카스테라 같이 생긴 일본식 계란요리 교쿠와 박속조림이 든 간뾰마끼가 나온 후에야
마지막 식사 소면이 나오고,
후식으로 딸기와 패션후르츠가 들어간 판나코타까지 나오고서야 모리시타 셰프의 요리쇼가 피날레를 맞이할 수 있었다.
“우와~! 이건 뷔페를 다녀온 것 보다 더 배가 부를 정도에요! 너무 맛있어서 계속 먹었는데 이렇게나 많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이 정도면 양과 질, 모두 최고의 식사가 아닐까 싶네요. 모리시타 셰프님,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주방에서 그들이 식사하는 걸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모리시타 셰프가 민재의 인사를 받아 허리를 숙여 답례했다.
“오늘 식사는 마음에 드셨습니까? 입가심으로 저희 식당에서 만든 수제 라거 맥주 한잔씩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 소화도 시키실 겸 천천히 드시고 일어나시지요.”
“아, 저는 운전을 해야 돼서 안 되고 맥주는 숙녀분께만 부탁드려요.”
“네, 그럼 맥주대신 차라도 내어 드릴까요?”
“네, 그럼 녹차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맥주하고 녹차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곧이어 맥주와 녹차가 나왔다.
“민재씨는 술은 아니지만 저랑 짠, 하실래요?”
맥주잔을 들고 살짝 고개를 틀어 야릇한 눈빛으로 민재를 바라보는 시은,
민재도 웃으며 녹차잔을 들어 그녀의 맥주잔에 가볍게 부딪쳤다.
“시은씨 원샷?”
“에에? 이거 거의 양이 300cc 정도 될 거 같은데 원샷은 무리에요~! 지금 너무 많이 먹어서 배도 완전 빵빵해졌는데~ 그럼 민재씨는 그 뜨거운 녹차 원샷하실거에요?”
“네? 아, 그럼 서로 원샷은 없는 걸로.”
두 사람은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 * *
식사를 마치고 스시OOO을 나오는 두 사람,
시은은 민재가 결재한 금액을 보고 완전 놀란 눈치다.
“여기 청담이라 비쌀 것 같긴 했는데 식사비가 수십만 원이 나올 줄은......”
“괜찮아요. 오늘 저녁 마음에 드셨어요?”
“네, 완전. 너무 좋았어요.”
역시 시은은 민재한테 식사비가 부담되는지 물어보지는 않는다.
이런 게 부담될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면서 민재의 팔짱을 꼬옥 끼는 시은,
그의 팔에 그녀의 가슴이 물컹하게 느껴진다.
“민재씨, 이제 우리 어디로 가요?”
“시은씨, 내일 off 죠?”
“네!”
“오늘도 집에 들어가기 싫은 거죠?”
“네~!”
어허, 이런 단호한 여자 같으니.
민재가 시은을 위해 차의 조수석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시동을 걸며 시은에게 물었다.
“시은씨 혹시 마사지 받아본 적 있어요?”
“아뇨? 아직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어요.”
“시은씨처럼 매장에 오래 서서 근무하시는 분들은 다리가 많이 피로하실 거예요. 거기 루이XX 매장, 내부는 화려한데 직원들 쉴 곳은 거의 없다면서요?”
“네, 맞아요. 직원들 공간이라봐야 지하에 있는 백오피스랑 미화 여사님들이랑 가드 분들 쉬는 곳이랑 밖에 흡연하는 곳 세군데 밖에 없는데 정말 앉아서 쉴 자리가 너무 부족해요. 백오피스에 의자도 네 개 밖에 없어서 자기보다 선임이 들어오면 앉아서 쉬기도 불편하고, 그렇다고 미화 여사님들이랑 가드 분들 쉬는 곳으로 가자니 거기도 더 비좁고 앉을 데도 없고, 가서 있으면 눈치도 보이고, 그렇다고 밖으로 나가자니 전 담배를 안 피우니까 담배연기 때문에 너무 힘들고..... 정말 하루 종일 앉아 있을 새도 없다니까요?”
시은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오늘은 나랑 마사지 받으러 갑시다. 지금 호텔 마사지 예약해 놓으면 도착하자마자 바로 받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민재의 말에 시은이 내심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의 팔을 가볍게 껴안았다.
“호텔 마사지만 예약하시는 거예요, 아님 호텔도 예약하시는 거예요?”
이건 정말 빨리 호텔을 예약하라는 절대적인 암시가 담긴 질문이 아닌가?
“네, 둘 다 예약하려구요.”
민재는 웃으며 그녀의 코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