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건물주의 하루 (13)
건물주의 하루 (13)
호텔 객실로 돌아온 민재와 시은은 개실에 비치된 룸서비스 메뉴판을 함께 열어보았다.
“시은씨, 뭐 드시고 싶어요?”
메뉴판의 가격을 본 시은이 약간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호텔 룸서비스가 비씬 건 알았지만, 이건 일반 레스토랑 가격의 두 세배는 되는 거 같은데요?”
“호텔 룸서비스 가격이 대부분 이런 편이죠.”
“제가 호텔을 많이 이용해보지 않아서 그런데, 호텔에서도 배달 음식 시켜 먹어도 되요?”
“네, 물론이죠. 물론 객실까지 배달은 안 되고 대부분은 1층 로비로 받으러 내려가야 해요. 이거 말고 배달 음식 먹고 싶으세요?”
“아니...... 가격 보니까 갑자기 부담이 되가지구요......”
어차피 너더러 계산하라고 하지도 않을 건데 뭐가 부담이 된다는 건지,
민재는 걱정 말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되요. 혹시 메뉴 고르기 어려우면 제가 한 번 골라볼까요?”
네! 민재씨가 골라 주세요!“
“시은씨 많이 먹을 수 있어요? 아까 스시 먹은 건 이제 다 소화 되었구요?”
“네, 마사지 받고 나오니까 시원하게 소화까지 다 된 기분이에요!”
“그럼 가장 기본적인 조합으로 해볼까요? 양갈비 구이 하나에 토마토소스 해산물 스파게티 하나, 여기에 레드와인 한 병 곁들이고, 후식은 망고 생크림 케이크로. 이렇게 어떠세요?”
“네, 완전 좋아요!”
시은도 무척 좋아하는 표정이다.
민재는 객실 인터폰으로 룸서비스를 주문하고는 잠시 몸을 쉬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시은도 그의 곁에 따라 눕는다.
그녀를 위해 팔을 벌려주자 민재의 팔을 베고 그의 품에 안기는 시은.
“내일은 뭐하실 예정이었어요?”
“합정에 있는 제 건물에 가보려고 했어요.”
“건물 상태 확인하시려구요?”
“네, 참, 시은씨 혹시 돈까스 좋아하세요?”
“돈까스요? 네, 점심 때 가끔 먹는 편이에요.”
“합정에 있는 제 건물에 돈까스집 하시는 부부가 세 들어 계신데요, 거기 돈까스 정말 맛있게 잘 하시는데, 내일 점심에 저랑 함께 가볼래요?”
“네, 좋아요! 드디어 민재씨의 건물을 구경할 기회가 생겼네요! 그런데 민재씨, 합정 말고도 건물을 또 어디 어디에 가지고 계세요?”
“강남구랑, 서초구랑 용산구랑, 강서구에 건물을 가지고 있어요.”
“허어어어어억...... 그럼 건물이 모두 다섯 개인 거예요?”
“아뇨, 여덟 개인데요?”
‘몹시 놀람’, 을 넘어 ‘완전 충격’, 의 표정을 짓고 있는 시은.
너무 놀라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 모양이다.
하기야, 스무 살 중반에 건물 여덟 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 나라에 몇 명이나 되겠냐만은.
“저 그럼...... 실례가 안 되다면 한 달에 받는 월세가 얼마나 되는지 물어봐도 되요?”
“음......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그런 것까지 이런 자리에서 다 말씀드리는 건 좀 속물 같아 보일 것 같아서요.”
“네...... 아무튼 건물 여덟 채 가진 건물주라니....... 너무 놀랐어요......”
그럴 만도 하지,
민재도 불과 스무 살 때까지 자기 자신이 가까운 미래에 건물 여덟 개를 가지고 삼성동 최고급 A 아파트에 살며 메르세데스 벤츠와 페라리를 몰고 다니며 살 거란 생각 전혀 못하고 있었으니까.
“저, 그럼, 어떻게 그렇게 부자가 되었는지 물어봐도 되요? 부모님이 부자이신가요?”
그러고 보니 시은에게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아직 한 번도 없었다.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부는 모두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땅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어요. 그 땅을 팔면서 얻은 돈을 주식에 투자해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주식에서 번 돈을 바탕으로 건물을 하나씩 늘려나갔죠.”
“역시 부자가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주식과 부동산이었군요? 그리고 좋은 아버지를 만나는 것도 중요한 방법이고, 호호, 민재씨는 아버지께 평생 감사드리며 사셔야겠어요?”
“그래서 지금도 매일 매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가족들에게 감사 인사드리며 살고 있답니다.”
시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럼 설마......?”
“네, 아버지는 물론 가족들 모두 제가 성인이 되기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어머, 미안해요. 제가 괜한 이야기를 꺼내서...... 정말 미안해요......”
민재는 시은을 살포시 안아주며 말했다.
“괜찮아요, 언젠가는 시은씨도 알아야 하는 이야기잖아요?”
“그래도 이런 자리에서 그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건데...... 정말 미안해요.”
민재는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술을 맞추며 말했다.
“지금 내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것 모두 하늘에 계신 내 가족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 혼자 있으면 너무 힘들까봐 이렇게 경제적을 잘 될 수 있게 도와주시고, 내가 혼자 있으면 외로울까봐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시은씨 같은 사람도 만나게 해주시고...... 모두 그 분들의 도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말에 얼굴이 발그레 해지는 시은,
“앞으로 제가, 민재씨 외롭지 않게 해드릴게요.”
그리고는 민재의 입술에 키스를 한다.
민재도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깊은 키스를 나누었다.
“음..... 음......”
두 사람은 혀로 달콤한 교감을 나누고,
시은은 민재의 가슴을,
민재는 시은의 엉덩이를,
손으로 가볍게 어루만진다.
그러다 시은의 손이 먼저 민재의 가운 속으로 들어와 아랫도리의 그것을 만지고,
민재도 그녀의 가운 속으로 손을 집어넣는다.
그렇게 두 사람이 점점 불타오르려는 순간,
띵동~
“룸서비스입니다~!”
이런, 배달의 민족보다 더 빠른 룸서비스 같으니.
“어머나, 벌써 왔나 봐요!
민재와 시은은 가운의 매무시를 다시 갖추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은이 침대에 앉아 있는 동안 민재가 나가 객실 문을 열어주고,
깔끔한 양복을 입은 컨시어지가 트롤리에 민재가 주문한 양갈비 구이, 토마토소스 해산물 스파게티, 레드와인, 망고 생크림 케이크를 가지고 와 침대 옆에 있는 테이블에 세팅해주었다.
“시은씨, 혹시 현금 있으세요?”
“네, 왜요?
“현금 있으시면 저 조금만 빌려주세요. 제가 이따가 송금해 드릴게요.”
“네.”
시은은 옷장에 넣어 둔 핸드백에서 5천원 지폐를 꺼내 민재에게 건넸다.
지폐를 받은 민재는 이 돈을 컨시어지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수고하세요.”
“감사합니다, 다 드신 후 그릇은 트롤리와 함께 문 밖에 두시면 됩니다. 편안한 밤 되십시오~”
컨시어지는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직원 팁 주려고 돈 빌려달라고 하신 거예요?”
“네, 그래도 룸서비스 가져온 직원에게 팁은 기본으로 줘야지요.”
“보통 호텔에서 팁은 언제언제 주세요?”
“보통 호텔 직원이 내 짐을 객실까지 가져다 줄 때, 이렇게 룸서비스 가져다 줄 때 팁을 주구요, 호텔에 며칠간 투숙해야 할 때에는 호텔 하우스키핑 하시는 분들이 들어오기 전에 침대 머리맡에 그분들을 위한 팁을 놓고 나갔다 오는 편이에요. 가끔 차량 발렛한테 줄 때도 있구요.”
시은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같이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팁을 받을 수 있는 문화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물론 고객이 상품을 샀을 때 그에 대한 인센을 받기는 하지만 팁은 또 엄연히 다른 거니까. 왠지 팁 받는 사람들이 부러워지네요.”
아니, 하루에 500짜리 가방 하나 팔면 인센티브로 십 몇 만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오천원 팁 받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건, 이건 또 뭥미?
민재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시은과 함께 침대 옆 테이블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샐러드와 가지, 마늘 버섯, 아스파라스, 감자 구운 것을 곁들인 양갈비 구이 스테이크와,
살이 탱탱한 대하와 조갯살이 가득 든 토마토소스 해산물 스파게티,
칠레산 몬테스 클래식 멀롯 레드 와인,
둘이 먹기 적당한 크기의 망고 생크림 케이크가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자리 잡고 있었다.
“어머! 이건 먹기 전에 일단 인증샷부터 남겨야 할 거 같아요!”
시은은 룸서비스로 온 음식들을 열심히 핸드폰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다.
“아까 스시OOO 에서는 인증샷 안 찍었잖아요?”
“거기는 바로 앞에 셰프님이 요리하고 계셔서 제가 사진 찍고 그러면 신경 쓰일까봐 인증샷을 못 남겼어요. 그래서 조금 아쉽기는 해요......”
“하하하, 모리시타 셰프님 자신이 요리하는 모습 찍히는 거 상당히 좋아하시는 분이에요. 유튜브나 SNS에 자신의 모습이나 자신의 요리 사진, 영상이 올라온 것들 하나하나 다 찾아보시기도 하구요. 나중에 다시 가면 셰프님께 말씀 드리고 마음껏 찍으셔도 되요!”
“정말요? 나중에 거기 다시 가면 그 때 먹었던 스시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인증샷 다시 찍어서 인스타에 올려야겠어요!”
민재가 능숙한 솜씨로 와인 오프너로 코르크 마개를 따고 시은의 잔에 레드 와인을 따라 주었다.
“와인 색이 너무 예뻐요......”
“칠레산 몬테스 클래식 멀롯 이라는 와인이에요. 베리 등 과일향이 나면서도 끝에 살짝 후추 같은 스파이시한 향이 날 거에요.”
시은이 살짝 잔을 들어 와인의 향을 맡아 본다.
“어머, 정말 라즈베리 같은 향이 나면서 끝에 매콤한 후추향이 살짝 올라오네요? 민재씨는 소물리에처럼 와인에 대해서도 다 아시는 거예요?”
“아니에요, 저도 마셔본 와인에 대해서만 조금 알아요. 자, 그럼 건배할까요?”
민재가 와인이 든 잔을 들며 말했다.
“무엇을 위해 건배할까요?”
“음...... 우리들이 함께 하는 이 밤을 위해서?”
민재의 말에 시은은 얼굴이 발그레 해지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네, 좋아요! 우리들이 함께 하는 이 밤을 위하여, 건배!”
두 사람은 찰랑이는 와인 잔을 가볍게 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