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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 〉일본에서 온 그녀 (1) (18/140)



〈 18화 〉일본에서 온 그녀 (1)

일본에서 온 그녀 (1)




최근 민재가 새롭게 투자를 시작한 일이 있었다.



부동산, 주식 같이 큰 수익을 얻기 위해 하는 투자는 아니고,

역사 / 사회 / 정치 관련 유튜브 컨텐츠를 제작하는 고등학교 시절 절친, 장덕환을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민재의 대학 시절 전공은 심리학이었지만, 역사나 사회, 정치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대학에 들어갈 때에도 심리학과 역사학, 정치외교학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한참동안 고민했었을 정도로 말이다.

관심분야가 같아서인지, 민재와 덕환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도 꾸준히 교류를 이어오는 중이었다.




덕환은 군대를 전역하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유튜브 1인 미디어 방송을 시작했다.

외모도 괜찮고 언변도 훌륭했던 덕에 덕환은 금세 10만 구독자를 끌어 모을 수 있었다.

자신의 채널 구독자가 10만 명을 넘게 되자 덕환은 서서히 자신의 방송을 더 큰 사업으로 확장시키고 싶어졌고, 그래서 절친이었던 민재를 찾아가 투자를 부탁했던 것이다.

민재는 흔쾌히 이 부탁을 수락했다.




덕환이 투자를 부탁한 금액이 ‘민재의 기준으로는’ 그리  금액도 아니었거니와, 투자를 통해 자신에게 돌아올 몫이 그리 크지 않더라도 친구를 도와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에게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민재의 투자를 받은 덕환은 지금까지 집에서 영상 촬영, 편집 등을 모두 혼자서 다 해야만 했던 1인 미디어 제작 환경에서 탈피, 압구정에 있는 민재의 건물에 스튜디오를 꾸미고 작가와 편집자들을 고용해 컨텐츠 제작을 시작했다.



민재의 투자 덕분이었을까, 민재의 투자를 받은 덕환의 수완이 좋아서였을까?

덕환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금세 20만 명까지 들어나고 컨텐츠 1건  평균 조회수도 2, 30만회에 달할 정도로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역사 / 사회 / 정치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 컨텐츠들이 보통 이 정도 구독자와 이 정도 조회수를 기록하는 일이 그리 많지 않은 것과 비교해 볼 때, 대단히 비약적인 성장세가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덕환의 유튜브 채널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던 어느 날,

민재와 덕환은 점심을 먹고 압구정 그의 건물 1층에 있는 카페에서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에 완결된 한국 근현대사 컨텐츠, 댓글창이 완전 폭발했던데?”

민재의 말에 덕환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말도 마라, 조회수는 괜찮았지만 나랑 작가들 모두 댓글창 관리 하느라 밤새 죽는  알았다. 우리나라 근현대사 시작하면서 이거 만드는 일이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이념논쟁으로 지들끼리 댓글창에서까지 편 가르고 박 터지게 싸울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에휴~”

“네 딴에는 분명히 역사적 사실을 중립적으로 다루려고 했던 거 같은데, 그걸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게 중립적으로 안보였던 모양이더라.”




“다 자기가 알고 있는 수준에서만 생각해서 그런 거지 뭐. 자기 말은 옳고 남의 말을 틀린 거고, 그걸 둘 다 맞다고 하면 넌 박쥐냐고, 어서 빨리 보수인지 진보인지 어느 편인지 밝히라고...... 에휴~ 진짜 댓글창 보고 있으면 자괴감 들어 한숨만 나오더라.”



민재가 커피를 홀짝이며 물었다.


“어쨌든  달 가까이 해온 한국 근현대사도 다 끝났고, 다음에는 어떤  만들어 볼 생각이야?”

“이번에는 일본사랑 일본 문화, 정치에 대한 컨텐츠를 만들어보려고 해. 아, 이미 계획도  짜놨는데  번 들어볼래?”



“일본?”

일본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민재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덕환의 계획은 이랬다.

이번 컨텐츠에서는 일본인 패널을 한 명 초대해 일본의 역사와 문화, 정치에 대해 대화를 주고받는 토크쇼 형식의 영상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토크쇼? 그럼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말이 되는 일본인을 섭외해야겠네? 한국말이 가능한 일본인 중에 역사나 문화, 정치도 잘 아는 사람이라...... 대학교에 있는 일본인 교수님들 섭외하려고?”



“내 채널 구독자들이 10대, 20대, 30대가 제일 많거든? 깊이 있는 지식보다는 재미와 소소한 정보 전달 위주로 방송을 만들 거니까 굳이 교수님들을 섭외하지는 않을 거야. 그냥 일본에서 나고 자라서 일본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면 충분하지.”


“그래서 일반인을 섭외하려고?”


“이미 우리 작가가 출연자를 선정해 놓았는데 말이야, 이력을 보니까 일반인이라고 표현하기도 좀 그렇더라고.”




“일반인이 아니면 뭐, 공인이야?”




“공인...... 이었다고   있지? 지금 Y대 어학당 다니고 있는 일본인 교환학생인데, 어렸을 때부터 일본에서 아이돌 활동도 하고 그라비아 모델 일도 한 사람인가 봐. 나도 사진하고 영상으로만 봤는데 엄청 예쁘던데?”



“그라비아 모델이 뭐야? 비아그라 모델을 잘 못 말한 건 아니지?”

민재의 말에 덕환은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 했다.

“그라비아, 그라비아~! 아 놔~ 거기서 비아그라가  나와~?! 수영복이나 속옷 입고 사진이나 영상 찍는 거, 그걸 보고 일본에서 그라비아라고 한다고~!”




“그럼 야동 배우야?”



“야~! 그라비아 하고 야동하고 다르다고오오~!!! 그라비아는 그냥 수영복이나 속옷 입고 화보 찍는 거지, 그런 야한 거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오오~!!!”


20대 중반까지 주식하랴 건물 관리하랴 바쁘게만 살아와서 그라비아가 뭔지도 모르고 살아온 불쌍한 우리 민재,




그는 여전히 덕환이 말하는 그라비아 모델이 뭔지, 그리고 왜 그런 사람을 섭외하겠다는 건지 이해  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일본인 말고도 한국인 패널 한 명을  섭외해서 셋이서 대화하는 형식으로 만들어 보려고 하고 있어.”

“이번에는 또 어떤 사람을 섭외하려고?”


“너.”

“나?”



덕환이 자신을 섭외하고 싶다는 말에 민재는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너도 언젠가 한 번 내 방송에 출연해주기로 했었잖아? 너도 일본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일본도 가보고 싶어 하고 했으니까 이번이 딱 좋은 기회인거 같지 않냐?”


“야, 내가 무슨 일본 역사에 대해서  알아? 난 그냥 일본 전국 시대에 대한 영화나 드라마 쬐끔 보고 아는 거 밖에 없어! 그리고 내가 언제 일본 가보고 싶어 했냐?  일본에 원전 사고 난 이후로 일본 가보고 싶다는 말  밖으로 꺼낸 적 없거든?”



“너 학교 다닐 때 일본  가보고 싶다고 그렇게 노래를 불렀었잖아?”



“그 때가 일본 원전 사고 나기 전에 일이라고~!”



“아, 그렇지? 아무튼 친구 도와주는 셈 치고 방송 한 번 나와 주라.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너만큼 외모 되고 방송에  맞게 말도 잘하고 나하고 호흡까지 잘 맞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 내가 출연료 두둑이 줄 테니까, 알았지? 응?”


“야, 그 출연료, 어차피 내가 준 돈 아니냐?”


“아, 그것도 그렇지? 흐흐흐흐흐흐~”



“이런, 친구를 이용해 먹으려는 못된 새끼 같으니~!”

이러쿵저러쿵 해도, 결국 민재는 덕환의 출연 제의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 * *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있었지만,

시은이 제주도로 떠난 이후 민재는 깊은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시은씨와 연애한 기간은 불과 며칠 밖에 안 되었지만...... 그래도 이제 다시 사랑을 하게 되는 걸까 하고 내가 너무 많은 기대를 해서였을까? 그 사람이 서울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내 마음이 이 정도로 허전할 줄이야......’

지금도 그녀와 문자, 전화, 영상 통화를 나누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녀는 민재에 대한 미련을 계속 가지고 있다가는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없다고 여겼는지, 점점 연락하는 빈도를 줄여나가고 있었다.

그녀와 연락하는 시간이 줄어들 때마다, 민재의 가슴속 외로움은 더더욱 커져만 가는 것 같았다.

삼성동 A아파트 자신의 집에서 커피 머신으로 내린 에티오피아 산 원두커피를 마시며 시은과의 지난 시간들을 추억하는 민재,




오늘따라 88평형 그의 집이 너무나 공허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때 그의 핸드폰에 전화가 걸려 왔다.




덕환이었다.


“여보세요?”

[뭐하냐?]




“커피 마시는 중.”


[밖이야?]


“아니, 집에서 커피 마시고 있어.”



[이따가 1시에 나올  있지?]

덕환은 어제 민재에게 톡으로 오늘 오후 1시에 이번 일본 관련 컨텐츠에 출연할 Y대 어학당 다닌다는 일본인과 사전미팅을 갖기로 했다고 알려왔었다.

그러면서 민재도 이번 미팅에 나와 출연진들끼리 인사도 나누고 점심 식사도 함께 한 후에, 대본 연습을 같이 하자고 제의했던 것이다.




“점심 어디서 먹을 건데?”


[여기 스튜디오 옆에 있는 삼겹살집.]

“거기 제주도 흑돼지?”

[응, 맞아.]




“알았어, 내가 1시까지 그리로 갈게.”




[오키, 땡큐~ 그때 보자구~]


역시 남자들의 대화는 언제나 간단명료하다.

영록은 커피를 다 마신 후 슬슬 외출 준비를 하기 위해 마스터룸으로 들어갔다.



* * *


압구정에 있는 그의 건물은 로데오 거리 안쪽에 있는 5층짜리 건물이었다.




이곳에는 지하 주차장은 없고 지상에 차량 6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 공간 밖에 없었는데,  건물 관리인은 늘 주차 공간들   자리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해 놓고 다른 차들이 주차하지 못하게 막아 놓고 있었다.



바로 건물주인 민재를 위한 주차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빨간색 페라리를 몰고 나온 민재는 자신의 주차 공간 앞에 세워진 바리케이드를 옆으로 치워놓고 자신의 차를 주차시켰다.




그가 차에서 내릴 무렵, 건물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는 50대 남자가 헐레벌떡 주차장으로 뛰어왔다.



‘CCTV로 내가 들어오는 거 보셨나보네?’




아무래도 눈에  띄는 빨간색 페라리를 타고 왔으니, 민재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것을 금방 눈치 채고 달려온 모양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사장님.”

“잘 지내셨어요? 건물에 특이 사항은 없죠?”


“네, 특이 사항은 없습니다.”



“5층에 있는 친구 만나보고 가려구요. 갈 때 바리케이드 제가 해놓고  테니까 굳이 나와 보지 않으셔도 되요. 그만 들어가서 일보세요.”



건물 관리인은 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곧장 자신의 건물 옆에 있는 제주도 흑돼지 삼겹살집으로 들어갔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일찍 도착했는데도, 덕환과 그와 함께 일하는 작가와 편집자가 식당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맞은편에 스무 살 초반으로 보이는 웨이브 진  머리를 하고 있는,



연예인처럼 눈에 확 띄는 너무나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이 자리에 함께 앉아 있었다.



“어서와, 여기는 이번에 우리와 함께 영상 찍게 될 일본에서 오신 나루사와 아이짱, 아이짱? 이쪽은 제 베스트 프렌드이자 이번 함께 촬영할 강민재라는 친구입니다.”

덕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를 소개해 주었다.




그녀도 자리에서 일어나 손으로 살짝 가슴골을 가리며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나루사와 아이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일본인 특유의 말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서투른 우리 말,


민재는 그 모습이 무척 귀엽다고 느껴졌다.



“강민재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민재,

아이는 싱긋 웃으며 두 손으로 그의 손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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