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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화 〉일본에서 온 그녀 (5) (22/140)



〈 22화 〉일본에서 온 그녀 (5)

일본에서  그녀 (5)


주차장으로 나온 민재와 아이,

아이는 오늘 그의 차가 메르세데스 벤츠로 바뀐 것을 보고 또 한 번 놀라는 눈치다.

“페라리 수리 맡겨야 해서 다른 차 빌려오신 거예요?”



“아뇨, 이것도  차인데요?”



“그럼 벤츠도 가지고 계신 거예요?! 그럼 오빠 차가 모두 몇 대 인거예요?”

“어제 그 페라리랑 이 벤츠  대에요.”



“아...... 좋은 차들을 가지고 계시네요...... 혼토니 우라야마시 데스......”

‘정말로 부럽습니다.’ 란 뜻이었지만 아이의 일본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민재,

‘우라야마시 데스...... 울화와 야마가 돈다, 이런 뜻은 아닐 거고 좋은 말이겠지?’




민재는 어제처럼 자신의 주차공간에 바리케이드를 다시 세워둔 후 운전석으로 돌아왔다.



“가만, 지금 가면 또 어제처럼 오따꾸 녀석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어디 가서 식사를 하자니 많이 이른 것 같고......”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오후 3시였다.




“아이짱, 오늘 시간 괜찮으면 나랑 서울 시내 드라이브나 하고 저녁 먹고 들어갈래요?”


“저는 좋아요! 오빠 시간 괜찮으세요?”


“네, 저도 오늘 다른 약속 없어요. 아이짱 혹시 가보고 싶은  있어요?”



“저...... 실은 한국 와서 경복궁을 아직 못 가봤어요. 거기 가서 한복도 입고 사진도 찍고 그러고 싶었는데, 같이  친구도 없고 그래서 아직......”

아이는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민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저랑 같이 경복궁 가보시죠. 저도 어렸을  딱 한번 가보고 그  이후로  번도 안 갔었거든요.”

“서울 사시는 데 경복궁을  한 번 밖에 안 가셨다구요? 어머, 어떻게 그럴 수가?”

뭐, 일본 도쿄 사는 애들도 우에노 공원이나 신주쿠 교엔 같은데 수십 번씩 가고 그러지는 않지 않나?



“어쩌다 보니 그리 되었네요. 오늘 그럼 경복궁 들렀다가...... 아, 아이짱? 혹시 광장시장이라는데 가 봤어요?”

“광장시장이요? 시장? 마켓 같은 곳인가요?”



“경복궁에서 종묘 쪽으로 가다보면 나오는 우리나라 전통시장인데요, 거기 맛있는 먹거리가 참 많은 곳이죠. 외국인 관광객들도 엄청 많이 찾는 곳이고. 경복궁 보고 거기도  번 가보면 어떨까요?”

“네, 좋아요! 거기도 가요!”




아이는 무척 신난 듯 발까지 동동 구르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가 입은 미니스커트가 살랑거리며 그녀의 하얀 허벅지가 눈에 들어오는데......


어우야......

민재는 안전 운전을 위해 시선을 정면에 고정시키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오빠, 궁금한 게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그런데 오빠는 직업이 뭐에요?”




그냥 건물주, 라고 말하려면  알아들으려나?

민재는 살짝 돌려서 말하기로 했다.

“건물 관리하는  하면서 주식도 좀 하고, 덕환이 같은 친구들한테 투자도 하고 동업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어요.”

“건물 관리하는 일이면...... 오빠 물주에요? 건물주?”



어......? 이 일본인 아가씨, 건물주라는  아네?

“아, 네...... 맞아요, 건물주.”




“그러셨구나~! 그래서 페라리도 있고 벤츠도 있고 그랬던 거구나~!”

“아이짱, 건물주란 말도 다 알아요?”



“알죠. 일본에서는 건물주를 타테모노 노 쇼유자, 건물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한창 일본에 부동산 버블이 있었을 때에는 일본 국민 모두가  타테모노 노 쇼유자가 되고 싶어 한 적도 있었죠.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부동산 버블이 모두 사라지고 관련법도 많이 바뀌어서 타테모노  쇼유자가 되기 힘들어졌어요. 그러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이 줄어 들었구요.”




“어째서 일본에 건물주가 되려는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게 되었을까요?”



“저는 한국의 법은 잘 모르지만, 일본의 관련법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고만 알고 있어요. 타테모노 노 쇼유자가 임차인한테 세를 줄 때, 그 계약관계에서의 갑은 타테모노 노 쇼유자가 아니라 임차인이 되요. 오히려 테테모노  쇼유자가 을이 되는 거죠.”



“건물주가 갑이 아니라 을이 된다구요? 그건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거죠?”

“일본에서는 임대차 계약을 할  임차인의 권리가 타테모노 노 쇼유자보다  커요. 임차인이 원하지 않는 이상 타테모노 노 쇼유자가 임차인을 자기 마음대로 건물에서 내보낼 수 없게 되어 있거든요. 그래도 만약 임차인을 내보내겠다면 오랜 시간 법정 소송을 거쳐야 하고 상당한 금액의 퇴거료까지 내어주어야만 하게끔 되어 있구요. 게다가 타테모노 노 쇼유자가 임대료를 자기 마음대로 인상하는 것도 상당히 어렵게 되어 있어요. 여러모로 타테모노 노 쇼유자가 골치 아픈 일이 많을 수밖에 없는 거죠.”

한국에서는 건물주가 슈퍼갑인데 일본은 그렇지 않다니,




민재는 오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짱은 일본 부동산에 대해 많이 알고 계신 것 같네요? 부동산에 대해 공부하신 적이 있으신 거예요?”


“아니에요. 제 부모님이 고향에서 건물 임대업을 하고 계시거든요.  부모님도 타테모노 노 쇼유자여서, 옆에서 보고 들은 내용들을 말씀드린 거예요.”


“아, 그러셨군요!”



하기야, 일본에서 연예인 생활을 했더라도 이렇게 한국으로 장기간 유학 올 정도라면 부모님이 어느 정도 뒷바라지를 해줄 수밖에 없겠지. 그 정도 재력도 있으신 분들일 것이고.



민재는 아이와 일본 부동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경복궁을 향해 차를 운전했다.



* * *



민재는 경복궁 근처 F호텔로 들어가 자신의 차를 발렛에게 맡겼다.


으잉? 민재가 벌써 진도  나가서 아이 데리고 호텔로 들어가려는 거냐고?



물론 아직은 아니다.

이건 민재만의 방법인데,




종로처럼 주차할 곳 찾기 힘든 곳에 갈 때면, 민재는 발렛이 되는 고급 호텔을 찾아가곤 한다.

굳이 호텔에 투숙을 하지 않고 발렛 비용만 지불해도 하루 정도는 주차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호텔 뿐 아니라 백화점의 발렛을 이용할 때도 있다. 지금은 경복궁에서 제일 가까운 곳이 F호텔이라 이리로  것일 뿐.


민재는 이렇게 차를 주차하고 아이를 데리고 광화문으로 나왔다.

“우와~! 광화문 광장이다~!”


아이는 탁 트인 광화문 광장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이제 6월이 되면서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광화문 광장의 분수가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사이로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F호텔이 있는 쪽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광화문 광장으로 들어온 두 사람,



가장 먼저 이순신 장군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이분이 이순신 장군님, 맞죠, 오빠?”



“네, 맞아요. 아이짱도 이순신 장군님 알아요?”

“네, 저도 알아요. 일본에서는 되게 무서운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요.”



“무서운 사람이요?”

“네, 이순신 장군님 나오는 가부키 공연도 있는데요, 거기서는 일본인들 잡아먹는 무서운 괴물로 나와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님께 당한 충격이 얼마나 컸으면, 그 분을 괴물로 등장시키는 연극까지 다 만들었을까?


뭐, 일본인들 입장에서는 이순신 장군님이 괴물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지.




그러니 일본은 제발 두  다시 한국에 깝치지 말아주길.

이순신 동상, 세종대왕 동상을 지나니 붉은색, 푸른색의 조선시대 무관복을 입고 월도를  조선시대 궁성 수비대(복장을 입은 경복궁 직원)들이 서 있는 광화문이 눈에 들어왔다.



이 때, 아이가 민재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오빠, 저......”


“네?”


“저기 들어가기 전에 한복 입고 들어가고 싶어요.”




“아, 맞다. 아이짱 한복 입고 싶다고 했었죠? 깜빡 잊을  했네.”


민재는 핸드폰을 꺼내 주변에 한복 대여점을 검색해 보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 팔짱을 끼고 있는 아이의 물컹한 가슴 촉감이 계속 느껴지는데,


하아아아아아......



핸드폰 자판을 누르는 민재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 * *



두 사람은 한복 대여점에서 한복을 빌려 입고 밖으로 나왔다.




원래는 아이만 한복을 입히려 했는데, 그녀가 자기 혼자 입는 건 싫다고, 민재도 같이 한복을 입어달라고 졸랐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민재도 아이와 함께 한복을 빌려 입게 된 것이다.




아이는 하얀색 저고리에 예쁜 꽃이 수놓아진 연분홍색 치마를 입었고,




민재는 아이가 골라준 흰색과 연분홍색이 섞인 남자 도령 한복에 머리에도 갓을 쓰고 있었다.

“한복은 어렸을  입어보고 정말 오랜만에 입어보네요. 갓도 난생 처음 써보고.”



“오빠 한복 정말 잘 어울려요! 한국 드라마 사극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같아요!”



아이는 좋아 어쩔  몰라 하는 표정을 하고는,

핸드폰으로 서로의 사진을 열심히 찍어댔다.

“오빠, 진짜 사극 배우 같아요~! 오빠 공유 닮았다는 말 많이 듣지 않았어요?”

“예전에 그런  듣기는 했지만, 그래도 공유가 저보다 훨씬 더 멋있고 잘 생겼죠.”




“아니, 난 오빠가 더 멋지고 좋은데?”




아이는 그를 향해 활짝 웃어 보이고는,




“자, 이제 들어가요, 경복궁!”

민재와 팔짱을 끼고 경복궁을 향해 한복 치마저고리를 살랑거리며 사뿐사뿐 앞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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