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일본에서 온 그녀 (7)
일본에서 온 그녀 (7)
아이와 경복궁, 광장시장을 다녀온 지 며칠 후,
벌써 한주가 다 가고 금요일이 되어 있었다.
아이를 스토킹하고 민재의 페리리를 못으로 긁은 뿔테 안경 학생을 고소하는 소장은 접수되었지만, 아직 경찰서에서 피해자 조사 받으러 오라는 연락은 없었다. 민재나 아이 둘 다 말이다.
김 변호사 말에 따르면 경찰이 시급하지 않은 사건이라 여길 경우 사건 담당 형사를 배정하기까지 1주, 혹은 2주까지도 걸릴 수 있다고 했다.
‘경찰들도 많이 바쁠 테니까, 조금 더 기다려 보지, 뭐.’
민재는 여유를 가져보기로 했다.
오후 쯤 그의 핸드폰으로 전화 한통이 걸려 왔다.
‘경찰에서 온 전화인가?’
하지만 경찰은 아니었다.
핸드폰 저장 이름 박주형,
그의 대학 후배이자 현재 암호 화폐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였다.
둘이 알게 된 것은 주식 투자에 관심 있는 대학생들이 모인 어느 모임 자리에서였다.
그 때부터 주형은 한 살 위인 민재에게 깍듯이 ‘형님’ 이라고 부르며 따라다녔고, 민재도 사교성 좋고 투자와 관련된 분야에 탁월한 정보 수집 능력을 가진 주형이 마음에 들어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주형은 주식보다는 암호 화폐에 더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니, 기어이 암호 화폐를 거래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민재는 처음에 실물이 아닌 가상의 재화에 투자하는 것을 미더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암호 화폐 사업을 시작한 주형의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민재의 기준으로’ 약간의 금액을 그에게 투자해주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암호 화폐가 그의 예상을 크게 웃도는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수익을 올리긴 했지만 암호 화폐는 위험성이 너무 큰 투자야. 조만간 투자에서 손을 때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바로 그 주형에게 전화가 온 것이었다.
[형님, 뭐하십니까?]
“점심 먹고 로봇청소기 청소하는 거 구경 중.”
그의 마스터룸에서 동그란 로봇 청소기가 열심히 청소를 하고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형님, 이번에 저희 거래소 또 떡상한 거 아시죠?]
“응, 네가 보내준 링크 들어가 봤어.”
[헤헤, 이게 다 형님이 투자해 주신 덕분입니다. 그래서 형님! 제가 오늘 형님께 감사의 마음 전하려고 클럽 일레나에 테이블 예약했습니다. 나와 주실 거죠?]
민재는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나 담배 연기 싫어해서 클럽 같은 데 가는 거 싫어하잖아? 감사의 마음 전하려면 밥이나 맛있는 거로 한 끼 사줘.”
[앗, 그래도 형님~! 오늘 제가 형님 모신다고 해서 지석 형님도 오시고, 경훈 형님도 오신다고 하셨어요! 형님 안 오시면 이 자리 파토나요~!]
아니, 내가 언제 걔들 부르라고 했나......?
민재는 살짝 짜증이 날 뻔 했지만, 주형이 말한 이름들을 듣고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지석은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주식 전문가, 경훈은 부동산 전문가였다.
그들 모두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그 친구들 만난 지도 오래 되었으니 걔들 얼굴이나 볼 겸 한 번 가볼까? 가서 최신 투자 정보도 듣고 말이야.’
민재는 결국 주형의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그래 알았어. 몇 시까지 가면 돼?”
[감사합니다, 형님~! 너무 일찍 안 오셔도 되구요, 자정 쯤 오시면 되요. 오실 때 연락 주시면 MD나 가드 밖에 대기 시켜놨다가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형님~!]
“그래, 도착할 때쯤에 연락할게.”
민재는 썩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 * *
민재는 클럽 등 밤문화를 즐기는 것을 그닥 좋아 하지 않았다.
특히 클럽 같이 밀폐된 공간에서 사람들이 어깨를 부딪치고 다녀야 할 만큼 다닥다닥 붙어 서서 밤새 술에 취해 몸을 흔드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민재가 차를 끌고 강남에 있는 클럽 일레나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40분여,
클럽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제 6월인지라 밤에도 날이 꽤 따뜻한 편이었다. 클럽을 찾은 여자들은 한껏 멋을 내고 모두 하나같이 어깨와 다리를 드러낸 파티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다음에 그 친구들 만날 때에는 그냥 식당에서 만나자고 해야지, 이런데는 정말 내 취향은 아니야.’
민재는 클럽 발렛에게 차키를 맡긴 후,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게스트 입구를 지나 VIP 입구로 걸어가며 주형에게 톡을 보냈다.
[나 도착]
주형은 1분 만에 답장을 보냈다.
[형님, VIP 입구 가드한테 박주형 팸이라고만 말씀하세요. 바로 안내해 줄 거예요]
[응, 오키]
민재는 VIP 입구 앞을 지키고 서 있는 검은색 사제 테러복을 입은 덩치 큰 가드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박주형 팸이요.”
“아, 네, 안녕하십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들은 옷에 걸린 무전기 인이어로 누군가를 입구로 불렀다.
잠시 후 키가 거의 민재만한 건장한 체구의 가드 한명이 VIP 입구로 뛰어 왔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고객님 개인 가드를 맡은 김영규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가드가 민재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주형이 민재를 위해 미리 개인 가드를 붙여줬던 모양이다.
클럽을 이용하는 돈 많은 VIP 고객들은 보통 클럽에 한두 명의 개인 가드들을 요청해 신변 보호를 부탁한다. 물론 가드를 요청하는 것에 대한 페이를 추가로 지불해야 하고, 팁도 주어야 한다.
클럽 안에 술 취한 사람들이 워낙 많이 뒤섞여 있다 보니 폭행, 절도 등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함도 있었고,
화장실을 가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가드들이 앞에 있는 사람들을 치워주며 길을 터주거나, 화려한 조명만이 가득한 깜깜한 클럽 안을 이동하다가 넘어지지 않도록 부축을 해주거나 랜턴을 비춰주는 등의 에스코트 서비스를 받기 위함도 있었다.
이미 민재도 주형이 자신에게 가드를 붙여 주리라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출발하기 전에 미리 가드에게 팁을 주기 위해 은행에서 현금도 찾아놓고 말이다.
민재는 지갑에서 5만원 짜리 지폐를 꺼내 가드에게 건네며 말했다.
“오늘 잘 부탁해요.”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돈을 받은 가드는 민재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바닥에 랜턴 불빛을 비추며 그를 클럽 안으로 안내했다.
현란한 조명 아래 카를로스 주니어 & 리카르도 몬타나의 B.A.D 등 클럽 뮤직들이 정신없이 흘러나오고 있는 내부,
가드는 민재의 앞에 서서 통로를 막고 서있는 사람들을 능숙한 솜씨로 좌우로 밀어내며 그를 위해 길을 터주고 있었다.
주형의 자리는 DJ 박스와 사람들이 춤을 추는 스테이지가 내려다보이는 2층의 VIP 테이블이었다.
“와~! 민재 형님~! 오셨어요~!”
주형이 그를 보더니 시끄러운 클럽 음악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 안겼다.
냄새로 미루어보아 민재가 오기 전부터 이미 얼큰하게 술에 취해 있는 모양이다.
이미 이곳 VIP 테이블에는 다른 가드가 한 명이 더 와 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가끔 자리를 착각한 사람들이나 술에 많이 취한 사람들이 VIP 테이블로 불쑥 불쑥 들어오는 일이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제지하기 위해 가드를 세워 놓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클럽에서는 이성들이 테이블에 있는 고객들에게 함께 술을 마시자며, 혹은 술을 좀 달라며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이 때 그 이성이 마음에 들면 같이 술을 마시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아니다 싶으면 거절하고 보내야 하는데, 가드들이 고객들을 대신해 이 일을 대신해 주기도 했다.
이제 그들의 VIP 테이블 앞에는 두 명의 가드들이 철통같이 그 앞을 지키고 서 있게 되었다.
민재는 주형에 이어 지석과 경훈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잘 지냈어? 너 삼성동으로 이사 갔다며?”
“응, 넌 어때? 요새 잘 지내?”
“야, 말도 마라. 요새 주식 시장이 하도 요동을 쳐서 언제 심장마비로 뒈질지 모르는 팔자다.”
민재가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주형은 담당 MD를 불러 술을 더 주문했다.
“가서 아까 말한 그거 가지고 와~! 우리 형님 오셨으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할 거야~!”
“네, 형님~!”
잠시 후, 입구 쪽에서 섹시한 몸매의 클럽 샴페인 걸들이 불꽃이 피어오르는 폭죽을 매단 샴페인들을 들고 민재와 주형이 있는 VIP 테이블로 들어왔다.
그녀들이 들고 온 것은 고급 샴페인 중 하나인 아르망디 드 브리냑,
그것도 10병이나 되었다.
‘저거 10병이면 여기서 1500은 넘지 않나? 주형이 이 새끼, 암만 코인이 떡상을 해도 그렇지 뭐 이렇게 돈을 막 써?’
민재는 샴페인을 들고 온 샴페인 걸들에게 5만원, 10만원 씩 팁을 뿌려주는 주형을 다소 못마땅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형님, 받으세요~! 이건 제가 드리는 감사의 잔입니다~!”
주형이 민재의 글래스에 샴페인을 따라주며 말했다.
클럽 음악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민재는 주형의 귀에 가까이 대고 말해야 했다.
“내가 투자해 준 거 감사하면 이런데 좀 작작 오고 그 시간에 일이나 더 해~!”
“헤헤, 형님, 제가 얼마나 열심히 일 하는데요~? 일은 장 열려있을 때만 죽어라 하면 되는 거고, 장 마감되면 그 때부터 죽어라 놀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하하하~!”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당장 투자금 도로 빼야겠다는 생각부터 드는 민재였다.
VIP 테이블에 비싼 술 시켜 놓은 남자 네 명이 앉아 있으니, 여자들이 하나 둘씩 같이 술을 마시자며 테이블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얼마 안 있어 주형, 지석, 경훈 모두 마음에 드는 여자를 옆에 앉히고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원래 이 녀석들 하고 투자 관련 얘기나 하려 했는데, 저것들은 젯밥에나 관심 있어 보이는군. 화장실이나 갔다가 도로 집으로 들어가야겠다.’
민재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애써 감추며, 테이블 앞에 서 있는 자신의 개인가드를 불렀다.
“남자 화장실로 안내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가드는 바닥에 랜턴 불빛을 비추고 앞에 있는 사람들을 해치며 그를 남자 화장실로 안내했다.
화장실로 가려면 DJ박스 앞, 사람들이 서서 춤을 추고 있는 스테이지를 지나가야 했다.
민재는 가드의 어깨를 잡고 화장실로 따라가는 중,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 스테이지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몸에 쫙 달라붙고 어깨를 드러내는 초미니 원피스를 입은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 비트에 맞추어 몸을 흔들고 있었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민재의 동공이 크게 떠졌다.
“아이짱......?”
처음에는 자신이 샴페인 몇 잔 마신 탓에 사람을 잘 못 본거라 생각하기도 했지만,
몇 번을 다시 봐도 그녀는 분명 자신이 아는 나루사와 아이, 그녀가 맞았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알던 귀엽고 청초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너무나 고혹적이고 섹시하게, 비트에 맞춰 몸을 흔들고 있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비단 민재 한명 뿐이 아니었던지,
벌써 그녀의 주변으로 여러 명의 남자들이 늑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다가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