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일본에서 온 그녀 (8)
일본에서 온 그녀 (8)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고 있는 아이의 주변으로, 여러 명의 남자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주변으로 남자들이 모여 드는 것을 보고는,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비트에 맞춰 춤을 추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가 자리를 피해도 남자들은 계속 쫓아오며 집적거렸다.
민재가 멀리서 계속 지켜보니, 남자들은 아이의 귀에 대고 뭐라 말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싫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손을 저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표시했다.
그런데,
갑자기 남자들이 성난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려는 것이 아닌가?
민재가 급히 앞에 있던 가드에게 소리치고는 스테이지로 뛰어 올라갔다.
“나 따라와서 저 새끼들 막아줘요!”
가드는 상황 파악이 안 되어 잠시 당황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민재를 따라 스테이지로 올라갔다.
민재는 스테이지 위에서 춤추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아이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려는 남자의 앞을 가로 막아 섰다.
그를 보고 흠칫 놀라는 남자,
이내 뭐라 뭐라 소리치며 그를 밀쳐내고 지나가려 한다.
시끄러운 클럽 음악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던 그 순간,
퍽!
민재를 향해 손을 뻗던 남자가 갑자기 배를 잡고 그 자리에 거꾸러졌다.
민재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남자의 손을 쳐내고는, 그의 배에 무에타이 니킥을 제대로 꽂아 넣은 것이다!
너무 가까이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이 장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사람들이 가득한 스테이지에서 벌어진 일이라 클럽 내 CCTV에도 이 모습이 정확히 잡히지 않았을 정도였다.
남자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배를 움켜잡고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민재는 재빨리 아이의 손목을 잡고는, 그의 옆에 있던 가드를 향해 소리쳤다.
“나 쫓아오는 놈들 막아줘요!”
가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민재가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달아날 수 있도록 그의 뒤를 든든히 막아주었다.
민재에게 니킥을 맞고 거꾸러진 남자의 일행들이 급히 그와 아이를 쫓아가려 했지만,
클럽 가드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자신들의 앞을 막아서자, 더 이상 그들을 쫓아갈 수 없었다.
가드에게 덤볐다가는 바로 클럽에서 쫓겨나게 되니 말이다.
* * *
클럽 밖으로 도망 나온 민재와 아이.
“어...... 오빠?”
아이는 밖으로 나와서야 민재를 알아보고 활짝 웃어 보였다.
몸에서 살짝 술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술을 좀 마신 듯 보였다.
“나 구해준게 오빠였구나~! 이번에도 또 오빠가 나 구해주고, 혼토니 우레시 데스~!”
민재는 잠시 숨을 돌리고 아이를 찬찬히 내려다보았다.
밖에 나와 보니 아이가 입고 있는 의상은 아까 클럽 안에서 봤을 때보다 더 야해 보였다.
몸에 쫙 달라붙는 하얀색 원피스,
어깨는 물론 가슴골도 모두 훤히 드러나 있고, 치마길이는 속바지가 보일 듯 말 듯 할 정도로 상당히 짧았다.
게다가 그녀의 가슴과 골반이 워낙 크다보니......
어우야......
민재는 위에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그녀의 어깨를 감싸주며 말했다.
“괜찮아요? 다친 데는 없어요?”
“네, 손목 조금 아픈 거 빼고는 다친 데 없어요. 그런데 오빠 여기 클럽 놀러 오신 거예요?”
“네,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 왔어요.”
“그 유튜버 분하구요?”
“아뇨, 다른 친구들이랑 온 거에요. 그럼 아이는요? 아이는 누구랑 왔어요?”
민재는 지금 그녀가 입은 옷을 보고는 도저히 아이짱, 이라고 귀엽게 부르기 힘들 거 같아 그냥 아이, 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의 물음에 그녀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원래 어학당 친구들이랑 같이 왔는데 저 빼고 다 입뺀 먹었어요...... 그런데 어떤 MD 언니가 저 연락처 묻고 음료교환권 한 장 주더니 들어가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친구들 보내고 혼자 들어와서 놀고 있었죠.”
“아까 그 남자들은 뭐에요? 아이를 어디로 데리고 가려는 거였어요?”
“자기네 테이블로 가서 같이 술 마시자고 하더라구요. 근데 제가 괜찮다고 말했는데도 억지로 끌고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또 오빠가 나타나서 나 구해주고~! 오빠랑 나랑 진짜 뭔가 통하는 게 있나 봐요! 어떻게 이런데서 또 만날 수 가 있는 거죠?”
클럽에 가면 꼭 그런 놈들이 있다. 싫다는 여자 끌고 가서 억지로 술 먹이고 취하게 만들어서 어떻게 해보려고 수작 부리는 놈들,
하마터면 정말 위험한 일을 당할 뻔 한 순간이었던 것이다.
“일단 오늘은 다 놀은 거 같고, 이제 나랑 같이 나갈래요?”
“네, 오빠~!”
아이는 활짝 미소를 지으며 민재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
“혹시 클럽 안에 짐 놔두고 온 거 있어요?”
“아, 맞다! 물품보관소에 제 옷이랑 백이랑 핸드폰 두고 왔어요.”
“그래요? 물품보관소 키 가지고 있어요?”
“네, 여기......”
다시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가 아까 싸웠던 녀석들과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골치 아파질 게 뻔 했다.
민재는 그녀에게 키를 받아 들고 VIP 입구에 있는 가드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키와 함께 5만원 지폐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저 VIP 테이블 손님인데요, 죄송한데 물품 보관소에 맡긴 짐 좀 가져다주실 수 있을까요?”
가드는 키와 지폐를 함께 건네받으며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바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는 쌩, 하니 클럽 밑으로 달려가 아이의 물건들을 가져다주었다.
“고맙스므니다~! 수거하세여~!”
아이는 약간 술에 취한 듯한 목소리로 가드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민재와 함께 클럽을 나섰다.
일단 민재는 자신의 차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 대리 기사를 부르고 차 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메르세데스 벤츠 뒷좌석에 함께 앉은 두 사람,
아이는 여전히 민재의 팔을 꼬옥 붙들고 있었다.
“클럽 같은 데 자주 와요?”
“아뇨, 한국 와서 처음 왔어요.”
“일본에서는요?”
“일 쉴 때 두 번? 그 정도 가 본 거 같아요.”
“아까 보니까 스테이지에서 춤 정말 잘 추시던데? 클럽 한두 번 와본 솜씨는 아닌 거 같던데요?”
민재는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그의 물음에 아이는 어두운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 일본에서 아이돌이었잖아요. 비록 인기는 많지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노래하고 춤추는 게 꿈이어서 아이돌이 되었는데, 현실은 너무 힘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아이돌을 그만 두었더니 이제는 아이돌 하면서 마음껏 춤추고 노래하던 때가 너무 그리워서 힘들어지고 가슴도 막 답답하니 꽉 막힌 것 같고...... 그래서 춤이라도 마음껏 추고 싶어서 어학당 친구들하고 같이 여기 와봤던 거에요.”
하기야, 끼도 재능인데 그것을 자기 안에만 담아두고 발산하지 못했으니 답답할 만도 하지......
아이가 말을 이었다.
“유튜브 출연 제의가 왔을 때도 내심 속으로 정말 기뻤어요. 연예인을 그만 두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또다시 사람들 앞에 설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저도 모르게 막 흥분이 되더라구요. 다시는 연예인 안 할 거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제 무의식 깊은 곳까지 가득 뿌리내리고 있었나 봐요. 계속 하면 너무 힘들 거라는 거 잘 아는데, 이렇게 안하고 있으면 또 답답해 미칠 것 같고..... 에휴......”
민재는 그녀의 마음을 모두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녀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클럽 와서 춤추니까 조금 기분이 나아졌어요?”
“네, 정말 많이 좋아졌어요! 가끔 와서 이렇게 음악 들으면서 춤추고 기분 전환하고 싶은데, 오늘 같은 일이 또 일어날까봐 무섭기는 하네요.”
그 때, 민재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지금이라도 다른 클럽 가면 춤 출 수 있겠어요?”
“다른 클럽이요......?”
“네, 그리고 무조건 사람들 많은 스테이지에서만 춤 춰야 되는 건 아니죠? 테이블 잡고 그 위에서 춤춰도 상관없겠죠?”
“그럼 더 좋죠! 다른 사람들 방해 안 받고 혼자서 자유롭게 춤 출 수 있으니까요!”
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요.”
그리고는 바로 주형에게 톡을 보냈다.
[나 클럽 주차장 내 차, 잠시 이리로 올라와봐.]
술에 취해도 주형은 재깍재깍 톡을 확인했다.
[네, 형님.]
몇 분 되지 않아 주형이 그의 차 있는 곳으로 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형님? 왜 차에 계세요? 그리고 옆에 계신 분은 또......?”
주형은 민재가 웬 여자와 함께 차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내 지인인데, 아까 이상한 놈들한테 끌려가려는 거 막느라 싸우고 도망쳐 나와 있는 거야. 나 오늘 여기서 더 못 놀 거 같아서.”
“아니, 그래도 가드들이 딱, 지켜 줄 껀데 왜 더 못 놀아요?”
“내가 상대를 때렸거든. 다칠 정도로.”
그제서야 주형도 상황 파악이 되는 듯 했다.
“아......! 네......! 아, 그럼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지금 집으로 돌아가시려구요?”
“아니, 이 분하고 다른 클럽으로 옮길 거야.”
“네에? 다른 클럽으로 가신다구요? 형님, 클럽 싫어하시잖아요?”
“그럴 사정이 생겼어. 지금 갈 만한 클럽 하나 추천해주고 넓은 테이블 하나 잡을 수 있게 거기 아는 MD 한 명 연락처 좀 가르쳐줘봐.”
“일레나 말고 다른데 괜찮은 데라면...... 여기서 멀지 않은 풀문으로 가시는 게 좋을 거 같구요, 형님. 제가 그럼 지금 핸드폰으로 거기 MD 연락처 보내드리겠습니다, 형님.”
“응, 그래, 고마워. 오늘은 먼저 가볼게. 다음에는 이런데 말고 다른데서 보자구.”
“네, 형님. 다음에 뵙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주형은 민재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는 클럽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민재의 팔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원래 클럽 안 좋아하세요?”
“네, 별로.”
“그럼 괜히 저 때문에 싫은데도 클럽 가시는 거 아니에요?”
“뭐...... 그래도 가 봅시다. 어차피 나도 술 마시는 거 좀 더 마시고 싶기도 하니까.”
그의 말에 아이의 눈가에 살짝 이슬이 맺히려 하고 있었다.
“고마워요, 오빠...... 나 때문에.......”
민재도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녀의 손이 민재의 가슴에 와 닿았다.
그녀의 손길에 놀라는 민재,
어느새 아이의 얼굴이 그의 얼굴을 향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