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화 〉일본에서 온 그녀 (10) (27/140)



〈 27화 〉일본에서 온 그녀 (10)

일본에서  그녀 (10)




아이는 정말 지치지 않는 것 같았다.


시간은 벌써 아침 8시 30분,

클럽 영업을 마감해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내부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불과 수십여 명 정도.



그때까지도 아이는 테이블 위에서 신나게 춤을 추다가,




음악이 꺼지고 클럽 내부의 모든 불이 켜진 다음에서야 아쉬운 표정으로 클럽을 나섰다.



지금까지 열심히 운동을 해  덕에 나름 체력에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던 민재도 밤새 쉬지 않고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수 있는 거지? 혹시 아이돌 되기 전에 마라톤이라도  거 아냐?’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클럽 계단을 올라오던 민재가 물었다.

“어때요? 기분은 많이 나아졌어요?”


“네! 이제 정말 살 것 같아요! 오늘 너무 고마워요, 오빠!”

아이가 그의 품에 안기며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새 춤 췄는데 안 힘들어요?”



“쪼끔요, 힘든  보다는 배가 고파요...... 헤헤.”

이 여자 혹시 철인인가......?



민재는 지금 졸리고 고단해서 기절하기 일보직전인데, 고작 배만 고픈 정도라니......

“그럼 샴페인도 많이 마시고 했으니까 같이 해장국이나 먹으러 갑시다. 아이는 한국의 해장국 좋아해요?”



“어...... 해장국이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어요.”



“술 먹은 다음날 속 달래려고 먹는 국밥이요.”

“아, 국밥은 알아요! 순대국밥하고 콩나물국밥 먹어 봤어요!”

마침 클럽 주변에 문을 연 해장국집  군데가 보였다.




“저기 뼈다귀 해장국집이랑, 순대국밥집이랑 양평해장국집이 있네요? 아이는 셋 중 어떤 거 먹고 싶어요?”



“음...... 순대국밥은 아는데 뼈다귀 해장국하고 양평해장국은 뭔지 잘 몰라요. 가르쳐 주세요.”

“뼈다귀 해장국은 감자탕을 혼자 먹을  있는 사이즈의 뚝배기에 담아주는 거고, 양평해장국은 소 내장하고 부산물, 선지를 넣고 끓인 탕이에요.”



“저 그럼 뼈다귀 해장국 먹을래요! 저 감자탕 엄청 좋아하거든요!”

“하하, 그래요. 그럼 저기로 들어갑시다.”

두 사람은 식당으로 들어가 뼈다귀 해장국을 주문했다.




식당을 둘러보니 방금 전까지 같은 클럽에서 밤새 놀았던 청춘남녀들도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기 위해 많이 들어와 있었다.




뼈다귀 해장국이 금세 테이블에 도착했다.

“이타다키마스~  먹겠습니다~!”



아이는 뼈다귀를 씩씩하게 두 손으로 잡고 뼈에 달라붙은 고기를 야무지게 뜯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민재가 주방 앞에 걸려 있는 앞치마를 가지고  그녀에게 입혀주며 말했다.




“흰  입었으니까, 이거로 옷 가리고 먹어요. 국물 튀면 안 되니까.”



“아레~? 식당에 앞치마도 있었네요? 고맙습니다, 오빠~!”


아이는 예쁜 눈웃음을 지어보이며 뼈다귀를 들고 복스럽게 냠냠했다.


저번에 광장시장에서도 그렇고, 아이는 정말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 같았다.


게다가 국밥류를 자주 먹어봤는지 탕에 자연스럽게 밥을 말아 숟가락으로 푹푹 퍼 먹기도 했다.



일단 고기와 건더기를  건져먹은 후 남은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민재와는 대조적으로, 다소 아재스러워 보일 정도로 국밥을 먹는 스웩이 느껴지는 아이.


“아직 경찰서에서 피해자 조사 받으러 오라는 전화  왔죠?”



“네, 아직 그런 전화는 없었어요.”




“며칠 사이  스토커 학생 안 나타났어요?”




“엊그제는 왔었는데, 어제는 어학당 친구들하고 같이 집에 들렀다 나온 거라 그런 건지 안보였었어요.”



“아무래도 경찰 수사 시작되기 전에 무슨 일 일어나면 안 되니까, 내가 저번에 말  것처럼 당분간 경호원들의 경호를 받는 게 어때요?”

민재는 며칠 전 경복궁, 광장시장을 다녀오는 길에도 아이에게 얼마간 경호원의 경호를 받으면 어떻겠냐고 의사를 물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었다. 경호원이 자신을 따라다닌다는 게 여러모로 부담도 되고, 어학당 다닐 때도 남의 이목이 집중될 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감사하지만 지금은 경호원까지 필요 없을 거 같아요. 정말 안 되겠다 싶을 때, 그 때 다시 오빠한테 말씀드릴게요.”


“그래요, 그럼. 내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고맙습니다, 오빠~! 정말 여러 가지로 너무 고마워요......!”


아이는 민재를 향해 활짝 웃어보였다.


그러면서 테이블 밑으로 발을 뻗어 그의 다리를 살짝 살짝 만지고 있는 아이.



“크헙! 컥!”



해장국을 떠먹던 민재는 그녀의 갑작스런 스킨십에 놀라 그만 사래가 들려 버리고 말았다.

* * *

며칠 후 덕환의 스튜디오에서 ‘아이짱과 함께 하는 일본사’ 컨텐츠 두 번째 녹화가 있었던 날,

그날도 민재는 아이를 신촌에 있는 원룸까지 바래다주고 대치동에 있는 자신의 건물 나만의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시간이 자정을 지났을 무렵이었다.




원래 민재는 자정 즈음 잠이 들어 다음날 7, 8시 정도에 일어나곤 한다.



그런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고 있었다.


지난 금요일에 아이와 함께 클럽에서 밤을 새느라 신체 리듬이 바뀌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저녁을 간단히 먹으려고 어니언 베이글에 크림치즈 듬뿍 발라 커피와 함께 먹었는데 커피의 카페인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 건지,

그날따라 눈도 말똥말똥하고 몸도 전혀 피곤하지도 않았다.



‘잠이  올 때는 역시 독서만한 것이 없지...... 몇 장 읽자마자 바로 꿀잠 모드로 돌변시켜줄만한 책을  번 골라 볼까?’



민재는 서재에서 요슈타인 가아더 (Jostein Gaarder, 노르웨이 식 발음으로는 요스타인 고르데르)의 소설 ‘소피의 세계’를 집어 들고 마스터룸으로 들어와 침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충 30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였다.



위이이이이이이잉~

침대 옆에 올려놓은 그의 핸드폰이 진동하고 있었다.




발신 번호를 확인하니,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 나루사와 아이.




아이가 이 밤중에 자신에게 전화한 것이다.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드는 민재,

곧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오빠~! 오빠~! 오빠, 도와주세요~!]


아이의 다급한 목소리,

그녀는 겁에 잔뜩 질려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밖에 그 사람...... 밖에  사람이 왔어요! 밖에 그 사람이 서 있어요!]




밖에 그 사람......?

그 검은색 뿔테 안경 더벅머리 스토커?!


민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옷을 갈아입기 위해 드레싱룸을 뛰어갔다.


그리고 핸드폰을 스피커폰으로 돌리고, 운동복을 꺼내 입으며 말했다.



“지금 그 사람 밖에 있는 거죠? 아이는 지금 집 안에 있고? 문 안 열어줬죠?”

[네...... 그런데 계속 벨 누르고  열어달라고 문 두들기고 있어요......! 저 지금 너무 무서워요......!]


도대체 그 녀석이 어떻게 아이의 집까지 알아 낸 건지......



생각해보니, 아이의 원룸에는 경비원이 따로 없었다.



“혹시 경찰에 전화 했어요?”



[아뇨, 아직이요......]



“내가 거기 주소 아니까, 내가 경찰에 전화할게요. 그리고 나도 지금 아이 있는 곳으로 갈게요. 경찰에 신고하고 바로 다시 아이한테 전화할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네, 오빠, 빨리와요...... 나 지금 너무 무서워요...... 흑흑흑......]




아이는 겁에 질려 울음까지 터뜨리고 있었다.




민재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차키를 가지고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며 112로 먼저 신고를 했다.




* * *


민재가 신촌 아이의 원룸에 도착해보니,


그녀의 집 앞에는 경찰 네 명이 와있었다.

경찰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 스토커가 사라진 후였다고 한다.




“오빠~!”



민재가 온 것을 본 아이가 그에게로 달려왔다.

그리고 그의 품에 안겨 엉엉 울기 시작했다.



“오빠, 너무 무서워...... 오빠, 나 너무 무서워......”




민재는 그녀를 달래기 위해 등을 토닥여 주며 경찰들에게 물었다.



“이 스토커 때문에 소장 접수한지 1주일이 되었는데 경찰로부터 아무 연락도  받았어요. 수사가 빨리 진행이  되니까 결국 이런 일까지 벌어진거구요.”


“미안하지만 우리는 지구대에서 나온 사람들이라 서에서 진행되는 일은 잘 모릅니다. 아무튼  건도 일단 접수해드리고 여기 원룸 CCTV 확인해서 바로 범인이 잡힐 수 있게끔 도와드리겠습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고생이 많으신 건 알겠지만......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경찰이 돌아가고, 민재는 아이를 원룸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간신히 울음은 그쳤지만, 그녀는 이번 일로 단단히 겁에 질린 것 같았다.



“오빠, 나 여기 있기 너무 무서워요...... 오빠 가고 나 혼자 있을   사람  올까봐 너무 겁나요....... 오빠 나 어떡해잉.......”


금방이라도 다시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아이,

만재가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그럼 당분간 내가 호텔 잡아줄 테니까 거기 있으면 어때요? 호텔에 있으면 그 스토커도 거기까지 쫓아오지는 못 할 거예요.”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혼자 있는 거 싫어요...... 혼자 있으면 너무 무서워.......”

“그럼 혹시 잠시 함께 지낼만한 친구 없어요? 어학당 친구들 중에서 말이에요.”



“다들 기숙사 살거나 내 방보다 좁은 집에서 살아서, 내가 들어가 같이 살면 다들 부담스러워  거에요.”

그럼 이를 어쩐다......



민재가 지금이라도 당장 여자 경호원들을 고용해 그녀의 신변을 보호해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아이가 그의 손을 꼬옥 잡으며 간절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오빠,  너무 무서워....... 나 오늘 오빠 집에 가서 같이 자면 안돼요?”



뭐?!?!?!



우리 집에서 같이 자겠다고?!?!?!


순간, 민재의  눈에서 동공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