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일본에서 온 그녀 (11)
일본에서 온 그녀 (11)
민재는 결국 아이를 차에 태워 강남 삼성동 A아파트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녀는 갈아입을 옷과 약간의 짐만 챙겨서 온 상태였다.
‘일단 오늘은 아이를 내 방에서 재우고 나는 거실 소파에서 자면 되니까......’
민재는 아이를 오늘 하루만 자기 집에서 재우고 내일 좀 진정되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시 의논해 볼 생각이었다.
A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후에도, 아이는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민재의 팔을 꼭 붙잡고 있었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48층에 있는 그의 집으로 올라갔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민재는 집 안의 모든 조명을 켰다.
조금이라도 어두우면 아이가 또 겁이 먹을까봐 걱정했던 것이다.
민재를 따라 거실 소파에 앉은 아이는 불안한 표정으로 집 안을 두리번거렸다.
그 사이, 민재는 주방으로 들어가 따뜻한 자스민차 한 잔을 끓여 그녀에게 가져다주었다.
“이거 좀 마셔볼래요? 마음이 진정될 거예요.”
“고맙습니다......”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로 두 손으로 찻잔을 잡아들고 조금씩 차를 마시는 아이.
따뜻하고 향긋한 자스민차를 마신 덕분인지, 그녀의 표정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가는 모습이었다.
민재가 손으로 마스터룸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은 저기 내 방 침대에서 자요. 안에 화장실도 있으니까 거기 쓰시구요.”
“그럼 오빠는요?”
“난 여기 소파에서 자면 되요. 넓어서 누워서 잘 만 해요.”
‘ㄴ’자 형태로 되어있는 그의 집 거실 소파는 일부분이 폭이 넓고 등받이가 없는 카우치 형태로 되어 있어서, 베개랑 이불만 가져오면 침대로도 쓸 수 있는 것이었다.
목이 말랐는지, 아이는 금세 차를 모두 마셔 버렸다.
“차, 더 끓여줄까요?”
“아뇨, 저 근데 오빠......?”
“네?”
“저...... 혹시 밥 남은 거 있어요?”
“네에?”
“갑자기 배가 고파서......”
먹을 걸 찾는 걸 보니 이제 좀 놀란 마음이 진정되었는가 보다.
민재는 다행이라는 듯 씩 웃음을 지어 보였다.
* * *
민재는 배달앱으로 치킨 두 마리를 시켰다.
‘기분 좋게 하는 데에는 치킨만한 게 없지~!’
역시 그의 예상대로, 아이는 치킨을 손에 들고 야무지게 뜯기 시작하면서 혈색도 점점 돌아오고 상태도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다.
“역시...... 한국 치킨이 세계에서 제일 맛있는 거 같아요!”
“일본에는 치킨이 없어요?”
“KFC 정도? 일본에는 치킨이 아니라 가라아게 라는 닭튀김을 많이 팔아요. 한국 치킨 브랜드가 일본에도 있긴 한데 매장이 별로 없어서 쉽게 먹기 힘들구요.”
그녀는 손가락으로 치킨무를 집어 입에 넣으며 말했다.
“치킨도 엄청 맛있지만, 전 이 무가 정말 맛있는 거 같아요. 일본의 다쿠앙즈케보다 훨씬 더 맛있어서 이거만으로도 밥을 먹을 수 있을 거 같아요!”
“다쿠앙즈케요?”
“네, 다쿠앙즈케, 무 노랗게 물들인 반찬이요. 한국에서는 중국집에서 짜장면 시켜 먹을 때도 같이 나오던데?”
“아, 다꽝~ 단무지요?”
민재는 단무지의 정식 이름이 다쿠앙즈케인지 오늘 처음 알았다.
아이는 거의 한 마리 반 이상의 치킨을 혼자서 냠냠해버렸다.
‘저렇게 잘 먹는데도 살이 안찐 거 보면 정말 신기하단 말이야? 설마, 먹으면 전부 가슴하고 엉덩이에만 살이 찌는 체질인건가? 그게 사실이라면, 분명히 부모님으로부터 축복받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어!’
민재는 그녀의 먹는 모습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제 치킨을 다 먹은 아이,
점점 졸음이 몰려오는 표정이다.
시계를 보니 벌써 새벽 3시,
민재는 아이를 화장실로 안내해 주기 위래 마스터룸으로 데리고 갔다.
그를 따라가다가 마스터룸에 있는 피팅룸과 그 안쪽에 있는 드레싱룸을 보게 된 아이,
잠이 확 달아나는 표정으로 놀라 소리쳤다.
“헤에~? 저기가 오빠 옷방이에요?”
“네, 맞아요.”
“스고이~! 옷방이 제가 사는 원룸보다 더 커요~! 한 번 들어가서 구경해도 되죠?”
아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그의 드레싱룸을 구경하러 들어갔다.
민재의 드레싱룸은,
가장 안쪽의 옷장은 정장 수트와 코트, 패딩, 점퍼, 장갑 등 가죽 제품과 동계 용품 등을 보관하는 곳,
오른쪽 옷장에는 외출할 때 입는 옷들과 가방 등을 보관하는 곳,
왼쪽 옷장은 운동복과 여러 기능성 의류, 모자 등을 보관하는 곳,
피팅룸과 맞닿아 있는 바깥쪽 벽면의 옷장은 집에서 입는 편한 옷들과 속옷, 양말 등을 보관하는 곳, 이렇게 구분되어 있었다.
드레싱룸 중앙에는 정사각형의 수납장이 놓여 있는데, 이곳은 그가 가진 30개의 시계들과 넥타이, 넥타이핀, 커프스, 행거치프, 손수건 등을 보관하는 곳이었다.
“오오, 스바라시이 (야, 멋지다).......! 영화 속에 나오는 백만장자의 드레스룸에 들어온 거 같아요~!”
뭐, 민재가 백만장자이긴 하지.
정확히 말하자면 백만장자의 기준은 이미 아득히 넘어선 상태이고.
보통 백만장자는 100만달러, 한화로 12억원 이상의 자산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백만장자는 영어로 밀리어네어 (millionaire),
그 이상의 부자는 흔히들 억만장자라고 부르는데, 억만장자는 영어로 빌리어네어(Billionaire) 라고 한다.
그런데 빌리어네어는 사실 1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10억 달러 이상, 한화로는 약 1조 1,200억원 이상의 자산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원래대로라면 ‘십억장자’라고 불러야 맞는 말이겠지만 어감이 좋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편하게 억만장자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민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자산 정도라면 일반적인 백만장자보다는 많고 억만 장자보다는 훨씬 적은, 그 중간 정도 되는 부자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자, 밤이 너무 늦었는데 양치하고 자아죠? 이제 화장실로 안내해 줄게요.”
민재가 아이를 마스터룸 화장실로 데려갔다.
그의 마스터룸 화장실로 들어간 후, 아이는 안을 둘러보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헤에~? 혼토~? (에? 정말?) 화장실이 어떻게 내 방보다 더 커요? 세면대도 두 개 나 있어요? 저 욕조는 둘이 들어가서 물놀이해도 될 정도인데요?”
“하하, 자, 자~ 우리 집 구경은 내일 천천히 해도 되니까 어서 씻고 자요~ 새 칫솔 여기 있고 수건은 이쪽에 있어요.”
민재는 화장실 수납장에서 새 칫솔을 꺼내 아이에게 건네주고 수건이 들어있는 곳 위치를 가르쳐준 후, 마스터룸 밖으로 나갔다.
* * *
얇은 이불과 베개 하나만 가지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하는 민재.
피곤이 몰려오는지, 눈을 감자마자 스르르 잠들어 버렸다.
평소대로라면 아침 7, 8시에 일어나곤 했겠지만,
어제 새벽 3시 넘어서야 잠이 든 탓에 아침 9시가 넘도록 늦잠을 자고 말았다.
뭐, 그래도 얘는 늦잠을 자도 별 상관없긴 하지.
거실 창가로 들어오는 눈부신 아침 햇살이 그의 얼굴을 간지럽히고,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가 시작했을 때,
무언가 자신의 몸을 꽉 끌어안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나 지금 가위 눌리고 있는 건가......? 지금 아침 된 거 같은데......? 나 한 번도 가위 같은 거 눌려 본 적 없는데......? 근데 분명 뭔가 날 잡고 있는 거 같긴 한데...... 뭐지......?’
아직 잠이 덜 깬 상황에서 손을 움직여 보는 민재.
‘손은 움직여지는데? 가위 눌리면 원래 온 몸이 꼼짝 못하게 된다고 그러지 않나? 부분적 가위 눌림이야, 이거?’
민재가 손을 들어 자신의 가슴 쪽으로 가져가 본다.
몰캉.
손에 무언가 만져진다.
분명 자기 몸은 아닌데, 이불 위로 사람의 몸처럼 부드럽고 말랑한 것들이 느껴지고 있었다.
‘뭐야, 베개인가? 나 분명 베개 머리에 베고 있는데......?’
민재가 졸린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어 보았다.
순간,
“허어어어억~!!! 아, 아이~?! 왜 지금 여기서.......?!?!?!”
민재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의 옆에서, 잠옷을 입고 있는 아이가 그를 꼭 끌어안고 잠들어 있는 게 아닌가?
민재의 목소리에 아이도 잠에서 깨어나 배시시 웃는다.
“헤헤, 오빠......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니, 아이?! 침대에서 안자고 언제 이리로 나온 거예요?!”
“씻고 나서 바로요. 오빠한테 혼자 있으면 무섭다고 말하려고 나오니까 오빠 벌써 주무시고 계시 길래 그냥 옆에서 같이 잤어요. 혼자 있으면 무서워서요.”
이러면서 손으로 눈을 비비며 해맑게 웃고 있는 아이.
민재는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오빠, 저 때문에 많이 놀라셨어요? 미안해요. 아이돌 할 때 숙소생활 하면서 룸메이트 끌어안고 자는 습관이 있었는데, 옆에 누가 있으니까 저도 모르게 그 때 습관대로 끌어안게 되었나 봐요......”
스읍, 나쁜 습관 같지는 않은데? 굳이 고칠 필요는 없을 듯.
민재는 두 손을 저으며 말했다.
“미안해할 거 없어요. 어제 그런 일을 당했으니 충분히 그럴만하죠. 참, 이제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거실에 걸린 시계를 보니 벌써 9시 반이 넘었다.
“조식 서비스가 10시까지니까 지금 주문하면 아침은 먹을 수 있을 것 같네요.”
민재가 TV 앞에 놓여있는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에? 조식 서비스가 뭐예요?”
“우리 아파트, 아침 식사 배달도 해주거든요.”
“아레? 한국 아파트는 원래 아침 식사도 배달해줘요? 정말 대단한데요?”
“모든 아파트가 다 그런 건 아니고...... 우리 아파트 포함해서 아주 일부만 하고 있는 서비스에요. 아이, 아침 식사 어떤 거로 할래요? 아, 우리 아파트 일본 가정식 아침 메뉴도 있는데, 이거 한번 먹어볼래요?”
“일본 가정식이라구요? 정말 그런 것도 나와요?”
민재가 그녀의 눈앞에 태블릿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자, 일본 가정식. 맞죠?”
“우와~!!! 저 그럼 이거 먹을래요! 한국 와서 일본 가정식 한 번도 못 먹어 봤거든요!”
“네, 그럼 아이는 일본 가정식으로, 나는 한국식 식단으로...... 자, 조금 이따가 배달 올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요.”
민재는 소파 위의 이불과 베개를 정리해 원래 있던 자리로 가져다 놓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