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화 〉일본에서 온 그녀 (12) (29/140)



〈 29화 〉일본에서 온 그녀 (12)

일본에서  그녀 (12)

민재가 거실 화장실에서 씻고 있는 동안,

아이는 아직 씻지도 않고 잠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로 민재의 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있었다.



“오오, 스바라시이~ (오오, 멋지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 이렇게 넓고 멋지다니......!”


민재의 집은 88평이나 되는 넓은 크기였지만 방은 모두 세 개뿐이었다. 주방 옆에 있는 식재료를 보관하는 펜트리와  옆에 창고로 쓰는 다용도실은 제외하고 말이다. 원래 다용도실은 가정부의 숙소로 쓰게끔 설계된 방이었는데, 민재는 이곳에 주로  쓰는 짐 등을 보관하고 있었다.


서재 옆에 커다란 방이 하나가 더 있었다.

 방에는 붙박이장에 이불 등 침구류를 보관하거나 전에 살던 서초구 아파트에서 가지고 온 물건들, 아버지와 가족들의 유품을 보관하는 방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이는 호기심에 거기 있는 물건들을 이것저것 꺼내어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녀의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아레......? (아니?)”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떤 물건을 꺼내들고 거실로 나왔다.

마침 민재가 씻고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화장실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아이가 방에서 가지고 나온 물건을 그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오빠, 일본 노래 좋아하세요? 그런데 이건 너무 옛날 노래인데, 이런 노래 좋아하셨던 거예요?”



그녀가 방에서 가지고 나온 것은 옛날 일본의 록그룹 X-JAPAN 의 CD 앨범이었다.



민재가 CD를 받아들며 말했다.



“아버지의 유품이에요. 아버지는 젊으셨을 때부터 록음악을 많이 좋아하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록음악 앨범들을 많이 가지고 계셨는데,   일본의 X-JAPAN 이나 L'Arc~en~Ciel (라르크앙씨엘), ZARD 의 앨범도 가지고 계셨죠.”

“유품이면...... 돌아가신 거예요?”



“네, 아버지와 가족들 모두....... 제가 성인이 되기 전에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아아, 소우데스까 (아아,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짓을 해서 오빠 아픈 이야기를 꺼내게 해서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는 민재에게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사죄했다.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그러고 보니 이 앨범은 저도 몇  들었던 거네요. 좋아하는 노래도 있고.”



그녀가 가지고 나온 것은 X-JAPAN 의 베스트 곡을 모아놓은 컴필레이션 앨범이었다.

“X-JAPAN  아직도 일본에서 나이 많으신 분들이 많이 좋아하는 그룹이에요. 가라오케 애창곡 18번으로 X-JAPAN의 노래를 꼽는 사람들도 많구요. 오빠는 어떤 노래를 제일 좋아하세요?”



“Endress rain  좋고, Silent jealousy 도 좋고, Dahlia 도 좋고......  Tears  좋아해요.  Tears 라는 곡은 우리나라에서 다른 가수가 한국어로 개사해 불러서 히트를 치기도 했었죠.”


“우와...... 많이 아시네요? 오빠도 X-JAPAN 팬이신 거예요?”




“노래만요. 유튜브로 이 사람들 공연 장면을 본 적 있었는데....... 정말 문화적 충격을 받을 뻔 했어요. 남자들이 얼굴에 하얗게 화장도 하고 머리도 닭벼슬처럼 높이 세우고....... 그냥 듣는 음악으로는 괜찮은데 공연은 도저히 눈뜨고는 못 보겠더라구요.”



아이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예전 90년대에 일본에는 비쥬얼록이라고 해서 그런 분장을 하고 무대에 서는 가수들이 많았었데요. 하나의 유행이었던 거죠. 그런데 지금이라고해서 일본 연예계가  때보다 더 세련되어지고 발전하지는 못한 거 같아요. 가수들의 노래도, 퍼포먼스도, 무대 의상도 모두가 다 하나같이 K-POP에 비하면 유치하고 촌스러운 것들뿐이에요. 어찌 보면 X-JAPAN 이 있던 그 때보다 일본 음악계의 수준이  낮아졌다고나 할까요? 저 그런데 오빠, 궁금한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혼자 사시는데 왜 이렇게 넓은 집에 사세요?”



“음...... 누구나 다 돈이 있으면 넓고 좋은 집에 살고 싶어 하잖아요?”

“하긴, 그건 그렇죠.”



“저도 여유가 있으니까 넓고 좋은 집에서 살고 싶어지더라구요. 그리고 재테크로도 좋을 거 같았구요.”

“재테크가...... 뭐예요?”


“아, 자산 운용, 재무 관리라는 뜻인데요, 재산을 늘리는 수단이라는 뜻이죠. 제가 이 집을 100만원에 샀다고 가정했을 때,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집의 가치가 100만원보다 오를까요, 아니면 내릴까요?”


“어....... 내리지는 않겠죠? 물가도 오르고 여러 이유가 있으니까 오를  같아요.”



“맞아요. 그럼 비싼 집을 산만큼 나중에 이 집을 되팔 때  비싼 가격에 팔 가능성도 높아지겠죠? 그런 목적으로도 넓고 좋은 집을 샀던 거예요.”




“아아, 그렇구나...... 역시 돈 버는 사람들은  살 때도 그냥 사는 게 아니었어.”



 때 누군가 현관 벨을 누르는 소리가 났다.

띵동~


“어, 조식 서비스 배달 왔나 봐요!”


“벌써요?  씻지도 못했는데~?!”




“잠깐 마스터룸에 들어가 있어요.”


“아, 네, 잠깐 숨어 있을게요~!”



아이는 허둥지둥 마스터룸으로 달려가 문을 닫고 숨어버렸다.

민재는 이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현관으로 향했다.

* * *




“아이~! 나와서 아침 먹어요~!”

민재는 배달 온 조식들을 주방의 식탁 위에 올려놓고 아이를 불렀다.

마스터룸 문을 빼꼼이 열고 밖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고는 부스스한 머리로 주방으로 나오는 아이.



아이는 식탁에 놓인 일본 가정식을 보고 반색하는 표정이다.

“우와~! 맛있어 보여요~!”


그녀가 주문한 일본 가정식은 밥과 조개가 들어간 미소시루, 메로구이, 일본식 계란찜, 낫토, 일본식 피클, 후식 과일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민재와 아이는 식탁 위에 마주 보고 앉아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이타다키마스~ 잘 먹겠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감사의 말을 꼭 하고 밥을 먹는 아이.



오랜만의 일본식 음식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정말 와구와구 잘 먹는 모습이다.


“어때요, 입맛에 맞아요?”


“네, 맛있어요! 근데 일본에서 먹던 맛하고 완전히 똑같지는 않구요, 약간 한국 사람들 입맛에 맞춘 것 같은 맛이라고 할까요? 일본에서 먹던 것보다는 간이 조금씩  되어 있는 거 같아요. 그래도 맛있어서 좋아요.”

아침 식사를  먹을 무렵, 민재가 아이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당분간 집에 혼자 있기는 좀 그렇죠?”



아이는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그럼 내가 신촌 근처에 호텔을 잡아  테니까 거기서 지내는  어때요? 그 동안 집도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게 좋겠구요. 근처에 다른 원룸이나 방들은 얼마든지 있을 거예요. 또 경호원도 여자 경호원들로 붙여 줄 테니 신변 보호도 받구요. 그렇게 하면 어떨까요?”



아이는 곰곰이 생각한 후에 입을 열었다.




“조금만 더 생각을 정리하고 말씀드려도 될 까요?”



“네, 그러세요. 그럼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참, 아침 먹고 차는 어떤 거로 마실래요? 커피? 아니면 어제 드린 자스민차?”

“커피가 좋을  같아요. 부탁드릴게요.”




“네, 커피 준비 할게요.”



먼저 아침을 다 먹은 민재가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 머신으로 원두커피를 내리는 사이,


뒤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혹시 음식물 쓰레기 어디에 버려야 해요?”




“보조 주방에 있는 음식물 처리기에 넣는데, 왜요?”


민재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어느새 아이가 음식 남은 것들을 그릇 하나에 담아 그가 가르쳐준 보조주방으로 들어가 음식물처리기에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자기 먹은 것은 물론 민재가 먹은 것까지 모두  말이다.


그런 후 그녀는 배달 온 그릇들을 싱크대 개수대로 가져가더니 설거지를 시작하려 팔을 걷어붙였다.

민재가 그녀를 만류했다.



“그거 설거지 안 해도 돼요. 빈 그릇은 그냥 밖에 놔두면 알아서 가져갈 거예요.”

“그래도 설거지도 안하고  밖에 놔두면 다른 집에 피해를  수도 있잖아요? 복도에 음식 냄새도 날 거고, 파리가 꼬일 수도 있고. 지난번부터 계속 오빠한테 폐만 끼치고 있는데, 대신 설거지라도 도와드릴게요.”


그녀는 손에 고무장갑도 끼지 않고 수세미에 주방 세재를 묻혀 열심히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아이, 정말로 설거지 안 해도 돼요. 아이는 우리 집에 손님으로 온 건데 이런   필요 없어요.”



“그래도 이런 거라도 해야 오빠한테 폐를 덜 끼칠 거 같아서요.”

“폐는 무슨,  정말 괜찮.......”




민재가 아이에게 설거지 그만 하라며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이 둘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갑자기 십장박동이 빨라지는 느낌.




두근두근, 두근두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의 몸은 어느새 가까워지고 있었고,



서로의 손을 잡고 입맞춤을 하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아......


바로 옆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조차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


 사람은 눈을 꼬옥 감고 깊은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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