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일본에서 온 그녀 (15)
일본에서 온 그녀 (15)
아이와의 정사가 끝난 후, 민재는 그녀를 품에 끌어안고 물었다.
“호텔가지 말고, 다른 데로 이사 가지도 말고, 그냥...... 나랑 같이 살래요?”
민재도 자신이 먼저 이런 말을 할지 몰랐다.
전에 서초구의 아파트에 살 때 당시 사귀던 여자들이 집에 찾아와 자고 가는 일이 있기는 했지만 동거까지 한 적은 없었는데,
삼성동으로 이사 온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이 집에 여자를 들인 적이 없었는데,
그런데 지금, 자신이 먼저 아이에게 동거하자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나...... 오빠하고 살래요......”
“강남에서 신촌까지 어학당 다니려면 조금 먼 데, 그래도 괜찮겠어요?”
“괜찮아, 어차피 다다음주면 종강이거든요. 그리고 여기 삼성역도 가까이 있다면서요? 2호선 지하철 타면 신촌까지 한 번에 갈 수 있어요.”
“그럼 지하철 타지 말고, 내가 학교까지 태워다 줄게요. 학교 끝나고도 데리러 갈 거고.”
“정말요? 고마워요, 오빠......”
아이는 자그마한 손으로 그의 허리와 등을 쓰다듬으며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민재도 그녀의 엉덩이를 손으로 가볍게 어루만지며, 그녀와 입을 맞추었다.
이렇게 두 사람의 동거가 시작되고 있었다.
* * *
일단 민재는 가장 먼저 이삿짐센터에 연락해 내일 당장 신촌의 원룸에서 아이의 모든 짐을 이 곳 삼성동 A아파트로 옮겨 오기로 했다.
그리고 서재 옆방을 아이가 쓸 수 있도록 그곳에 있던 짐들은 모두 주방 옆에 창고로 옮기기로 했다. 아버지와 가족들의 유품 등 일부는 서재로 옮기고 말이다.
아이도 민재와 함께 방에 있던 짐들을 옮기는 일을 돕는 중이었다.
이곳에 올 때 가지고 온 옷은 입고 있던 청반바지와 티셔츠, 잠옷, 위아래 속옷 두 벌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속옷 위에 민재가 가지고 있던 NBA 시카고 불스 23번 마이클 조던의 붉은색 농구 유니폼을 헐렁한 원피스처럼 입고 있었다.
“전에 보니까 원룸에 있던 책상, 그거 거기 그 방에 붙어있는 거죠?”
“네, 맞아요. 원룸에 옵션으로 있던 거예요.”
“그럼 아이가 공부할 책상이랑 의자는 새로 사고, 여기 아파트 층고가 높아서 원룸에서 쓰던 행거는 설치가 안 될 거 같으니...... 아이 옷은 내 드레싱룸에 같이 보관할래요?”
“네! 그렇게 해요! 저도 그런 드레싱룸 가져보고 싶었거든요!”
아이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럼 옷장은 필요 없을 것 같고, 책상을 창가 쪽에 놓으면 책꽂이는 이쪽 벽에 두어야 하니까 침대를 그럼 붙박이장 앞에......”
“저, 오빠.”
“네?”
“침대는 안 가지고 와도 될 거 같아요.”
“네에?”
“침대는...... 오빠 방에 침대에서 같이 자면 되니까 필요 없잖아요......”
아이가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지며 말했다.
아......
그러네......
동거 할라고 들어오라는 거지 하숙하라고 들어오라고 하는 거 아닌데,
당연히 각방 쓸 것도 아닌데 침대는 가져올 필요가 없었지......
게다가 민재가 쓰는 침대 킹사이즈 넓은 거라 둘이 자도 넉넉한데......
포켓스프링 들어있는 거라 둘이 자도 흔들림이 없는 침대인데......
둘이서 그거 열라 해도 전혀 흔들림도 없고......
응, 그래, 그거......
민재의 볼도 빨갛게 달아올랐다.
“어...... 흠, 흠! 그럼 거기 있던 침대는 중고로 팔아야겠네요.”
“네, 저도 어학당 친구들한테 침대 가져가고 싶은 사람 있는지 한 번 물어볼게요.”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벌써 12시가 넘었다.
민재는 아침을 늦게 먹었으니 점심은 조금 이따 먹어도 되겠지, 하고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오빠, 점심 안 드세요?”
아이가 그의 옷을 붙잡고 흔들며 물어오는 것이 아닌가?
“아침 먹은 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아이, 배고파요?”
“네, 원래 점심밥 먹을 시간 되서 그런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요, 헤헤.”
순수한 표정으로 해맑게 웃음 짓는 아이,
그 모습에 민재도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점심 뭐 먹고 싶어요?”
“응...... 짜장면이요!”
짜장면?
하기야 이사할 때는 짜장면이랑 탕수육 시켜 먹는 게 정석이긴 하지.
그러고 보니 민재도 삼성동 이사 오면서 딱 한 번 시켜먹고 그 후로 지금껏 짜장면을 못 먹고 있던 중이었다.
“아이가 말하니 나도 갑자기 짜장면이 땡기는데요? 그럼 오늘 점심은 짜장면하고 탕수육으로 하죠?”
“네에~! 좋아요~!”
민재는 배달앱을 켜고 중국집을 검색해 보았다.
“아이, 쟁반짜장 먹어봤어요?”
“아뇨, 쟁반짜장은 뭐예요?”
“짜장면의 일종인데요, 넓은 그릇에 2, 3명이 함께 먹을 수 있는 양의 볶은 짜장면을 담아내는 요리에요. 여기 식당에 해물쟁반짜짱이 괜찮을 거 같은데요?”
“우와~! 해물이 들어간 짜장면이라구요? 저 그거 먹어보고 싶어요~!”
“그럼 해물쟁반짜장 이거 하나랑, 음...... 아이, 매운 거 잘 먹어요?”
“네! 전에 오빠랑 광장시장 가서 돼지껍데기랑 떡볶이도 먹고, 며칠 전에는 뼈다귀 해장국도 같이 먹었었잖아요? 저 매운 거 이빠이 잘 먹어요!”
돼지 껍데기랑 떡볶이, 뼈다귀 해장국, 그게 매운 음식이냐? 광장시장에서 먹은 떡볶이가 동대문 ㅇㄱ 떡볶이도 아니고 말이야.
아이는 아직 한국음식의 매운 맛을 제대로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럼 사천탕수육이라고 있는데 이것도 같이 먹어볼래요? 사천탕수육은 일반탕수육에 매운 맛하고 달콤한 맛이 더 들어간 탕수육이에요.”
“네, 그것도 먹어 볼래요! 그것도 시켜주세요!”
아이는 맛있는 걸 먹을 거란 기대에 무척 신난 표정이었다.
역시 배달의 민족, 한국인답게 주문한지 30분도 되지 않아 음식이 도착했다.
이번에도 아이는 잠시 마스터룸으로 들어가 숨어 있다가 배달 라이더가 돌아간 이후 다시 쪼르르 식탁으로 달려왔다.
아이가 열심히 음식 포장 비닐을 까는 동안, 민재는 수저와 앞접시를 식탁 위에 놓고 냉장고에서 김치와 오이피클, 할라피뇨 슬라이스 등 밑반찬들을 꺼내 가져왔다.
“어머, 이거 김치하고 피클 오빠가 만드신 거예요?”
“아뇨~ 백화점 식품점에서 사온 거예요. 저 요리 같은 거 잘 못하거든요.”
“그럼 식사는 보통 어떻게 하세요?”
“아침은 오늘처럼 아파트 조식 서비스로 주문해서 먹고, 약속이 있는 날에는 밖에서 사 먹고, 약속이 없는 날에는 집에서 간단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해결해요.”
“어머, 오빠 그러면 건강에 안 좋아요. 제가 이제부터 밥 해드릴게요. 이래서 남자는 혼자 살면 안 좋다니까요?”
“아이, 요리 잘 해요?”
“네, 아이돌 할 때 숙소생활 할 때도, 지금 한국 와서 원룸에 혼자 살 때도 제가 장봐서 요리해서 먹곤 했어요. 요즘에는 유튜브 보고 그거 따라서 한국 요리들도 많이 만들었었는데, 이제 오빠한테 제가 배운 요리들 많이 만들어드릴게요!”
가족들이 모두 저 세상으로 떠난 이후, 10년 가까이 누군가가 집에서 자신을 위해 지어준 밥을 먹어본 적 없었던 민재.
그녀의 말에 하마터면 눈물이 핑 돌 뻔 했다.
“고마워요, 아이...... 자, 그럼 먹을까요?”
“네, 오빠~! 이타다키마스~! 잘 먹겠습니다~!”
아이는 젓가락으로 쟁반짜장을 한 움큼 짚어 앞접시에 덜어 담으며 설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순식간에 쟁반짜장과 사천탕수육 대짜를 다 먹어버린 두 사람,
정확히는 아이가 거의 2/3를 혼자서 다 먹은 거지만.
그렇게 식사를 마친 이후, 아이는 아까 조식 서비스로 온 그릇들을 모두 설거지 했던 것처럼,
사용한 앞접시와 수저 등을 곧장 싱크대로 가져가 깨끗이 설거지하기 시작했다. (중국집 배달음식들은 모두 일회용 접시에 담겨져 왔기 때문에 설거지 할 필요 없이 쓰레기통에 모두 버림)
‘일본에서는 원래 저렇게 식사하자마자 설거지 하도록 교육을 시키는 걸까? 무슨 군대 있는 사람 마냥 밥 먹자마자 바로 설거지를 하네?’
민재는 아이의 이런 모습이 약간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 싱크대 밑에 식기 세척기 있거든요? 굳이 설거지 안 해도 되요.”
“그래도 짜장이나 기름때 묻은 거나 밥풀 같은 게 눌러 붙은 건 식기 세척기로 잘 안 닦이지 않아요?”
“수세미로 닦은 것처럼 완벽하지는 않아도, 그래도 어지간한 건 다 깨끗하게 닦이던데요?”
“그럼 이렇게 수세미로 설거지하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요. 깨끗하게 잘 닦이니까. 식기 세척기는 설거지 할 거 많을 때 한 번 써 볼 게요. 나중에 어떻게 쓰는 건지 가르쳐 주세요.”
아이돌 연예인 했다는 사람 같지 않게 너무나 가정적인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민재는 등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안아주었다.
“아라......? 오빠.......?”
아이도 수줍게 미소 짓는다.
민재는 그녀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고마워요, 내 곁에 와줘서......”
“나도 고마워요...... 나 가져줘서.......”
두 사람의 첫 키스 장소가 싱크대 앞이었는데,
이번에도 또 두 사람은 싱크대 앞에서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