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일본에서 온 그녀 (17)
일본에서 온 그녀 (17)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밥을 짓는 아이,
역시 일본인의 주식도 한국인과 같은 밥이어서 그런지, 쌀을 씻고 밥을 짓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해 볼까나?”
아이는 전기밥솥에 취사 버튼을 누르고는, 다시 마스터룸의 드레싱 룸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가지고 나왔다.
그녀가 가지고 나온 것은 분홍색 앞치마였다.
신촌 원룸에서 혼자 지낼 때도 요리를 할 때마다 앞치마를 착용했었던 것이다.
그녀는 가슴 아래에서부터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앞치마를 두르고는, 고기, 야채 등 식재료들을 도마 위에 올려 넣고 능숙한 솜씨로 칼질을 하기 시작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척 하며 아이의 요리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민재에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야마토 나데시코...... 아이돌 연예인을 하던 사람에게 저런 모습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
야마토 나데시코.
원래는 일본의 패랭이꽃, 이라는 말이지만 이 말의 속뜻은 자신의 남자에게 순종하고 헌신적으로 내조하는 것을 신념으로 삼는, 정조와 순결을 중시하는 교양 있는 여성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요조숙녀, 현모양처란 말과 비슷한 단어라고도 볼 수 있다.
전에는 이런 생각이 전혀 안 들었었는데,
민재를 향한 지고지순한 모습이라든지, 지금처럼 요리도 능숙하고 설거지 등 가사실력도 좋은 걸 보니 의외로 아이가 야마토 나테시코의 전형적인 모습들을 많이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몇 번 본 것만으로 쉽게 판단하면 안 돼. 클럽에서 그녀를 봤을 때 이런 모습이 있을 거라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녀는 아일랜드 테이블까지 ‘ㄷ’자 형태로 된 주방에서 분주히 이리저리 움직이며 열심히 요리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 거실에 앉아 물끄러미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민재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민재의 가슴도 두근거렸다.
* * *
“오빠, 식사 하세요~!”
아이가 앞치마를 벗으며 그를 불렀다.
식탁으로 와보니 그녀가 만든 저녁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소고기가 든 일본식 커리와 바지락이 든 미소시루 (된장국), 그리고 민재의 냉장고에 있던 김치, 피클, 할라피뇨 등 밑반찬들도 예쁜 그릇이 보기 좋게 담아져 있었다.
“와, 커리네요? 커리 못 먹어본지 정말 오래되었는데......!”
“정말요? 마지막으로 드셔 보신 게 언제인데요?”
“작년쯤이었던 거 같아요. 외국 여행 다녀왔다가 공항에 있는 일본 커리 체인점에서 먹어본 게 마지막이었죠.”
“어머, 그럼 오빠 커리 괜찮으세요? 잘 안 드시는데 제가 그것도 모르고 만든 건 아니죠?”
“저 어렸을 때부터 커리 엄청 좋아했어요. 메이저리그에서 뛴 일본인 타자 이치로 아시죠? 제가 어렸을 때 그 사람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이치로가 항상 컨디션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시합 전에 커리만 먹는 모습이 나와요. 그 때 저도 여러 가지 운동들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어머니께 나도 이치로처럼 진지하게 경기를 준비하는 마음가짐을 갖기 위해 앞으로 경기 전 식사를 커리만 먹겠다고 말씀드렸었죠.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진짜 커리를 자주 만들어 주셔서 1주일에 2, 3일은 커리만 먹곤 했어요. 참, 한국에서는 커리, 보다는 카레, 라고 많이 불러요.”
“저도 이치로 이야기 알아요. 홈 경기 전에 집에서 커리만 먹는다거나, 원정 경기 가서는 페퍼로니 피자만 먹는다거나 하면서 똑같은 루틴을 가져가려고 노력한다는 거, 일본에서 진짜 유명한 이야기거든요.”
“가족들이 하늘나라로 떠난 이후 카레를 거의 먹어보지 못했어요. 그래서인가, 나중에 군대에 있을 때 급식으로 카레가 나오는 날엔 왠지 반갑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그랬죠. 지금 이렇게 아이가 커리를 만들어준 거 보니까...... 너무 좋네요.”
민재의 눈에 살짝 눈물이 고이는 것이 보였다.
아이가 그의 표정으로 보고는 식탁의 맞은편 자리에서 자신의 그릇과 수저를 들고 그의 옆자리로 옮겨 왔다.
그리고 그의 허리를 안아주며 말했다.
“이제 오빠 어머니 대신에 내가 커리 자주 만들어 줄게요. 커리 말고도 먹고 싶은 거 다른 거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주세요. 내가 다 만들어 드릴게요. 만드는 법 모르면 유튜브 보거나 인터넷 찾아보면 다 나오니까, 만들어 드릴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아이......”
민재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해 주었다.
* * *
저녁식사를 마친 후,
아이는 이번에도 예외 없이 다 먹은 그릇들을 싱크대로 가져가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고는, 행주로 식탁까지 닦고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한 뒤,
“오빠, 저 씻고 나올게요~!”
하며 마스터룸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녀가 샤워를 한 후 옷을 새로 갈아입고 나왔다.
어제 그녀가 입었었던, 빨간색 마이클 조던 농구 유니폼을 원피스처럼 입고 나온 것이다.
“이거 집에서 입기 너무 편한 거 같애. 오빠 나 이 옷, 오빠 안 입을 때 이렇게 입고 있어도 돼요?”
원래 그 유니폼은 민재가 미국 여행 중 NBA 경기를 관람할 때 산 기념품이었다. 민재도 그 유니폼을 입으려 산 건 아니었다.
“네, 입어도 돼요. 아이가 입는 게 더 잘 어울리는데요?”
“흐흐흥, 정말요? 고마워요, 오빠~!”
아이는 물을 마시려는 듯 주방의 냉장고로 걸어가며 물었다.
“오빠, 마실 거 가져다 드릴까요?”
“음...... 맥주 한 캔 가져다줄래요?”
아이가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냉장실 한 쪽 가득 여러 종류의 술들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오빠, 여기 맥주 엄청 많은데? 어떤 맥주로 가져다 드릴까요?”
“거기 하얀색 큰 캔에 A00 이라고 써진 거요.”
“A00...... 아, 찾았다~! 지금 가요~!”
아이는 민재에게 줄 A00 맥주와 자신이 마실 츄하이 (희석식 소주에 탄산수와 과즙/과일향을 섞은 도수가 낮은 술, 여기서는 국내에서 시판되고 있는 이슬ㅌㅌ를 가지고 온 것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를 가지고 민재의 옆자리로 쪼르르 다가와 앉았다.
톡~!
“자, 오빠~! 맥주!”
아이가 맥주캔을 따서 민재에게 건네 줬다.
“고마워요, 아이.”
민재도 환하게 웃으며 캔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그 맥주는 뭐에요? 처음 보는 건데, 한국에서만 파는 거예요?”
“한국에서 나온 페일 에일인데 아마 아직은 우리나라에서만 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라거 맥주들은 조금 맛이 없는 편이긴 한데, 페일 에일 맥주들은 그래도 상당히 맛이 좋은 편이어서 자주 사 막고 있어요.”
“아, 그렇구나...... 근데 페일 에일이 뭐에요? 맥주도 종류가 있는 거예요?”
“맥주는 원래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요, 우리가 알고 있는 황금빛 색에 가벼운 맛에 탄산이 강한 라거, 진하고 어두운 색에 맛과 향이 강한 에일, 이렇게 말이죠. 페일 에일은 에일의 한 종류인데, 일반 에일보다 색이 조금 밝은 대신 도수도 조금 더 높고, 쓴맛과 과일향이 좀 더 진한 술이라고 할 수 있죠.”
“이야, 무스카시이데스 (이야, 어렵습니다)...... 말로만 들으니까 정확히 잘 모르겠어요. 오빠 저 그거 한 모금 먹어봐도 돼요?”
“물론이죠, 한 번 먹어봐요.”
아이는 민재가 건넨 맥주캔을 들고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셔보았다.
“나니? 이런 맥주도 있었어요? 흑맥주처럼 씁쓸한 거 같기도 한데 진짜 과일맛도 나고, 그냥 맥주보다 더 도수도 높은 거 같긴 한데 맛이...... 되게 신기해요!”
그녀는 원래 자기가 마시려고 가지고 왔던 츄하이를 도로 냉장고에 갖다 놓고는, 민재꺼와 똑같은 A00 페일 에일을 가지고 오며 말했다.
“나도 오빠랑 똑같은 거 마셔야지~!”
그러면서 다시 그의 옆자리에 바싹 다가와 앉는 아이,
민재는 그런 그녀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그녀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감싸 안아 주었다.
“오빠 집 테레비죤, 진짜 커요! 진짜 영화관에 온 거 같아! 오빠 나 드라마 봐도 되요?”
민재가 아이에게 리모콘을 건네주며 물었다.
“물론이죠. 자, 아이도 한국 드라마 좋아해요?”
“그럼요~! 일본에서도 한국 드라마가 얼마나 인기가 많은데요? 제가 한국어 배우려고 했던 것도 한국 드라마 자막 없이 보면서 이해하고 싶어서 그랬던 거예요. K-POP 때문에 한국어 배우려고 했던 것도 있지만, 한국 드라마 영향이 더 컸던 거 같아요.”
“아이가 본 드라마 중 제일 재미있었던 게 뭐예요?”
“그거, 아이유가 귀신들 저승가기 전에 묵고 가는 호텔 사장으로 나오는 드라마요. 저 그거 세 번이나 봤어요. 아이유가 너무 예뻐서.”
그 드라마라면 민재도 알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정주행한 적은 없지만.
“아이가 보기에도 한국의 아이유가 그렇게 예뻐요?”
“그럼요! 아이유 너무너무 예뻐요! 몸매도 너무 예쁘고 날씬해서 그 드라마에서 무슨 옷을 입고 나오든 다 잘 어울리잖아요? 일본 여자들도 그렇고, 세상 모든 여자들이 아이유 같은 얼굴, 아이유 같은 몸매 갖길 원해요. 저도 그렇구요. 저도 살 빼서 아이유 같은 몸매 가지고 싶어요.”
안 돼, 아이~!!!!!! 그러면 안 돼~!!!!!! 살 빼려는 생각 1도 하지 마~!!!!!!
아이유가 엄청 예쁜 건 맞는데,
지금 아이의 몸이라면 굳이 아이유를 부러워 할 필요는 없다고~!!!!!!
민재는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 난....... 아이가 살 안 뺐으면 좋겠어요.”
“왜요? 나 많이 뚱뚱한데.......?”
“난...... 아이의 존재가 1g이라도 사라지게 되는 것은 싫어.”
아이의 존재가 1g이라도 사라지는 게 싫은 게 아니라,
아이의 신체 중 특정 부위의 살이 1g이라도 빠지는 게 싫은 거겠지.
이 말에 아이도 양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헤에~? 그거 일본에 있는 손가락 발가락 오글오글 개그 밈~?! 오빠, 일본 개그도 아세요?”
“그게 원래 일본 개그였어요? 인터넷에 하도 많이 돌아다녀서 그게 어느 나라 건지도 몰랐어요. 하하하~”
그 말이 개그였을지 몰라도,
지금 아이에게 살 빼지 말라고 한 말은 100% 진심이었다.
뭐,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흠, 흠......!
그렇게 민재가 아이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맥주를 마시며 함께 TV 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
그가 살짝 고개를 돌려 아이의 옆모습을 보니,
유니폼의 팔이 나오는 부분 뻥 뚫려져 있는 곳으로 아이의 속살이 보이는데,
어......?
그녀의 커다란 가슴 옆 부분 살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것이 보였다.
아이가 유니폼 안에 브래지어를 입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유니폼 앞으로도 그녀의 젖꼭지가 살짝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도 보이기 시작했다.
“음, 아이......? 안에 속옷 안 입고 나온 거예요?”
맥주를 마셔서인지 살짝 달아오른 얼굴이 더 빨개지는 아이.
“네...... 너무 하루 종일 브래지어 차고 있으면 가슴이 조이고 답답해서요. 제가 80 G cup 이거든요.”
잠깐, 사이즈가 어떻게 된다고??????
80 G cup ??????
세상에 그런 사이즈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단 말인가??????
마사까 (설마)......!!!!!!
“집에 있을 때는 편하게 브래지어 안 하고 있으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좀 보기 흉한가요? 그럼 들어가서 브래지어 차고 나올.......”
“아뇨~!!! 흉하기는요??? 전 괜찮아요~!!! 아이, 집에서는 아이 하고 싶은 대로 편하게 있어도 돼요~!!!”
민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녀의 어깨를 꼭 잡으며 다급히 소리쳤다.
이 녀석,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