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일본에서 온 그녀 (26)
일본에서 온 그녀 (26)
아이는 민재의 손에 들린 타올에 다시 바디클랜져로 거품을 잔뜩 낸 뒤,
아까 민재가 했던 것처럼 등, 팔, 가슴, 다리 순으로 몸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타올을 잡은 손은 그의 몸을 열심히 닦아주고,
남은 한 손으로는 그의 단단한 근육질 몸을 이곳저곳 어루만지면서 말이다.
이제 그의 앞에 다소곳이 양쪽 무릎을 꿇고 앉은 아이.
발가락을 닦으려다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오빠, 여기 발톱 왜 그래요?”
아이는 손으로 그의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의 오른쪽 엄지발가락에는 발톱이 없었다. 발톱이 있어야 하는 부분에는 하얀 굳은살들만 잔뜩 있을 뿐이었다.
“아, 그거요? 예전에 무에타이 수련할 때 샌드백이나 미트 많이 때리다가 발톱이 죽어버려서 그대로 빠져 버렸어요.”
“ 헤에? 혼토데스까 (헤에, 정말입니까)......? 발톱이 빠지다니...... 오빠 그럼 걸을 때 안 아파요?”
“빠진지 너무 오래 돼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래도...... 너무 아팠겠다....... 발톱이 빠지다니.......”
아이는 살짝 슬픈 표정을 지으며 그의 발을 열심히 닦아 주었다.
이제 타올을 쥔 그녀의 손이 점점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허벅지 안쪽을 타고 그의 페니스 앞까지 다다른 그녀.
부끄러운 표정으로 그의 커다란 페니스를 두 손으로 감산 채,
조심스럽게 닦아주기 시작했다.
표피까지 살짝 벗겨 안까지 정성스레 닦아주는 아이,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녀의 입가에 웃음이 떠날 줄을 모른다.
“오빠, 근데요. 어학당 친구들이 그러는데 한국 남자들은 포경수술이라고 어렸을 때 여기 이거 껍질 벗기는 수술 하는 사람들 많다고 하던데, 오빠는 왜 안했어요?”
“아, 그거. 아버지가 포경수술을 안 하셔서, 저도 안 해도 된다고 하셨거든요. 깨끗하게 잘 닦아주고 청결하게만 해주면 그런 수술 안 해도 된다고 하시면서요.”
민재는 그때 아버지가 정말 탁월한 선택을 하셨다고 생각했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어느 설문조사에서,
포경수술을 한 남자보다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남자와 성관계를 맺었을 때 만족도가 훨씬 더 높았더라는 통계 자료도 있지 않은가?
민재는 지금까지 관계했던 여자들이 자신과의 섹스에 만족했던 이유가 그의 페니스 사이즈 때문도 있겠지만,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점도 분명 크다고 느끼고 있었다.
민재는 아들의 건강 뿐 아니라 미래까지도 생각하시고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리신 아버지께 늘 감사드리고 있었다.
민재한테 물려주신 땅도 그렇고,
민재 아버지, 당신은 도덕책......
“그런데 아이, 어학당 친구들이 한국 남자들 어렸을 때 포경 수술한다는 건 어떻게 알아요? 어학당 친구들 다 외국 살다온 사람들이잖아요?”
“아, 그거 얘기해준 그 친구가 지금 한국인 남자친구랑 사귀고 있거든요. 자기는 그 때 남자 친구가 그 수술을 한 거 보고 컬쳐 쇼크 받았데요.”
남자친구의 거기를 보고 포경수술이란 걸 알게 된 모양이군.
외국에서는 포경수술 하는 나라가 많지 않다고 하니 보고 놀랐을지도?
우리나라가 무슨 이스라엘도 아니고, 할례 의식처럼 거기를 수술하고 그랬으니 당황할 수밖에.
“그런데 아이, 어학당에서 한국인 사귀는 친구들이 많아요?”
“네, 많아요. 다른 나라에서 온 어학당 친구들끼리 커플이 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런 경우는 정말 극소수인거 같구요, 대부분 한국인 남자, 한국인 여자랑 사귀고 싶어 해요. 어학당의 외국 남학생들은 한국 여자들이 모두 예쁘고 화장이나 헤어 꾸미는 것도 잘하고 패션도 세련되게 잘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한국에 있는 동안 어떻게든 꼭 한 번은 한국여자랑 사귀어 보려고 엄청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구요, 어학당 외국 여학생들도 마찬가지로 한국 남자랑 사귀어 보는 게 꿈인 애들도 되게 많은데, 대부분 사귀고 싶은 남자의 기준이 K-POP 스타나 배우 수준의 외모를 가진 사람들만 찾다 보니까, 여학생들이 한국 남자랑 사귀는 일은 아주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럼 아이도 어학당 다니면서 다른 남자들한테 대시 받아본 적 있어요?”
“네, 쪼끔? 지금도 저한테 말거는 남자들은 많구요.”
그러면서 아이는 민재의 페니스를 두 손으로 다정하게 붙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 다른 남자들이 아무리 말 걸어와도 다 무시해 버릴 거니까. 나 이제 오빠 없으면 못 살 거 같아요. 오빠 집에 들어와서 같이 산지 며칠 안됐지만, 나 이제 평생 오빠랑만 살고 싶어요. 진짜 일본도 가고 싶지 않고, 가끔 가족들 얼굴이나 보면서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아이가 화장실 타일 위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로, 그의 허벅지를 꼭 끌어안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저 걱정이 하나 있는데, 나중에 내가 오빠랑 결혼한다고 하면 오또상(아빠)이 반대하실 거 같아 많이 불안해요. 오또상이 예전에 자이니치 (제일한국/조선인)들하고 트러블이 있어서, 그 때 이후로 자이니치건 한국인이건 모두 다 엄청 싫어하시거든요. 내가 한국인이랑 결혼한다고 하면 아마 나더러 집에서 나가라고 할지도 몰라. 만약 그러면 정말 집에 안 돌아가고 오빠랑 한국에서 살면 되겠지만, 그래도 오또상, 오카상(엄마) 가족들을 보지 못하면...... 많이 그립고 마음도 많이 아플 거 같아요.”
민재가 그녀의 어깨를 꼭 안아주며 위로했다.
“걱정 말아요. 내가 아이한테도 잘 해주고 부모님께도 잘 해드리면, 아버님의 마음도 바뀌시지 않을까요? 한국인이라고 해서 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드릴 수 있도록 나도 노력해볼게요.”
이렇게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민재,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 우리 만난 지 며칠이나 되고 아이가 우리 집에 들어와 산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아버님께 잘 해 드리네 마네, 이런 말까지 하고 있어?’
자기가 내뱉은 말인데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
그만큼 지금 민재의 무의식 깊숙한 곳까지 아이를 향한 마음이 가득하다는 뜻이었다.
* * *
드디어 기다리던 주말,
아이는 하늘하늘한 치마를 예쁘게 차려입고 민재와 함께 남산으로 출발했다.
“와~! 드디어 남산 간다~!”
“남산 올라가기 전에 그 밑에서 점심 먹고 갈까요? 거기 되게 예쁜 프랑스 레스토랑이 있는데.”
“프랑스 레스토랑이요? 저, 근데 오빠. 거기는 다음에 가고, 점심은 다른 데에서 먹으면 안 돼요?”
“아이가 가고 싶은 데가 있는 거예요?”
“네! 오빠랑 주말에 남산 갈꺼라고 하니까 어학당 친구들이 맛집 추천해 준 데가 있는데요, 저 거기 남산 돈까스 먹으러 가고 싶어요!”
“남산 돈까스요?! 그거 한국 경양식 돈까스인데? 아이 한국식 돈까스 먹어본 적 있어요?”
“그럼요. 학식 메뉴로 자주 나와서 많이 먹어봤죠! 그런데 남산 돈까스는 학식으로 나오는 돈까스보다 훨씬 크고 맛있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남산 가게 되면 꼭 남산 돈까스를 먹어봐야 한다고 한다면서요. 오빠는 남산 돈까스 드셔 보셨어요?”
“아니오, 경양식 돈까스는 먹어봤지만 남산 돈까스는 아직 나도 못 먹어 봤어요. 그럼 아이 말대로 오늘 점심은 남산 돈까스에서 먹어보도록 하죠.”
“네, 좋아요!”
아이는 남산 돈까스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은 듯, 어린아이처럼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이가 경양식 돈까스를 먹고 싶어 할 줄 꿈에도 몰랐네? 돈까스라면 일식 돈까스가 훨씬 더 맛있다고 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아, 그럼 아이가 돈까스 좋아하니까 합정 건물에 있는 돈까스 집에도 데려가주면 정말 좋아할.......’
민재는 이런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아차, 싶었다.
지난번 시은을 데리고 합정의 돈까스 집을 방문하려다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당분간은 아이 데리고 합정은 가지 말자. 거기 계신 분들 잘못은 아니지만....... 괜히 내가 불안하니까 말이야.’
민재는 미신이나 징크스 같은 건 믿지 않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를 그곳으로 데리고 가고 싶지 않아졌다.
* * *
역시 남산 주변에는 ‘남산 돈까스’ 간판을 걸어놓은 식당들이 상당히 많았다.
민재는 인터넷 블로그들을 검색해 그 식당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식당이라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들어갔다.
“저희 왕돈까스 두 개 주세요~!”
식탁에 앉자마자 아이가 메뉴를 주문을 했다.
먼저 크리미한 스프가 나오고,
특이하게 반찬으로 깍두기와 고추가 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큼지막한 왕돈까스.
“와, 확실히 학식으로 나오는 돈까스보다 크네요! 이래서 왕돈까스라고 하나 봐요!”
아이는 돈까스의 양에 무척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민재가 포크와 나이프를 들어 아이의 돈까스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주며 말했다.
“아까 여기 찾으면서 블로그에서 본 건데, 옛날에는 이 크기보다 훨씬 더 큰 사이즈의 왕돈까스를 팔았데요. 지금은 물가 때문에 그런 건지 크기가 조금 작아졌다나봐요.”
“헤에? 혼또? 지금 이거보다 더 크면 도대체 얼마나 더 컸을까요? 돈까스 접시만큼 컸던 거 아니에요?”
아이는 민재가 썰어주는 돈까스를 포크로 찍어 맛있게 냠냠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게, 지금은 남산 돈까스가 이곳 남산의 유명 먹거리가 되었잖아요? 근데 원래 남산 돈까스가 생긴 이유가, 남산을 놀러오는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는 택시 기사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으로 시작되었던 거래요.”
“그럼, 기사 식당으로 시작했는데 이렇게 유명해진 거예요?”
“네, 그렇다네요. 택시 운전을 하는 분들은 손님 태우고 여기 저기 다니다 보면 밥 때 놓치기 일쑤잖아요? 게다가 남산 돈까스가 생겼을 1990년대 초 무렵만 해도 이곳 주변에 식당도 많지 않았다고 하구요. 그러다 보니 택시 기사들은 한 끼를 먹어도 푸짐하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이집 왕돈까스를 무척 즐겨 먹게 되었다고 해요. 심지어 그 당시에는 돈까스를 다 먹고 남은 소스에 밥을 더 달라고 해서 비벼 먹는 분들도 많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다보니 돈까스 소스 때문에 입안이 텁텁해지지 말라고 밑반찬으로 깍두기와 고추를 같이 내놓기 시작했던 거라고 하구요.”
“아아~ 그래서 고추가 있었던 거예요? 전 계속 이 고추 보면서 이건 왜 안 어울리게 여기 있는 거지? 이렇게 계속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돈까스를 열심히 집어 먹던 아이는 민재가 말한 것처럼 숟가락으로 돈까스 소스를 떠서 밥에 올려 슥슥, 비벼 보았다.
그렇게 소스에 비빈 밥을 한 수저 크게 떠서 입으로 가져가 보는데,
“......음, 돈까스는 정말 맛있지만, 돈까스 소스에 밥 비벼 먹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네요.”
뭐든 잘 먹는 아이지만, 그건 그녀의 스타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 * *
남산 돈까스로 점심을 먹은 두 사람,
민재는 소화도 시킬 겸 아이와 함께 남산골 한옥마을을 둘러본 후,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타워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자, 여기가 이제 오빠 아무데도 못 도망가게 잠글 수 있다는 그 자물쇠가 있는 곳이에요?”
아이는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민재와 함께 근처 상점에서 큼지막한 자물쇠와 하트 모양의 분홍색 택을 구입했다.
“자물쇠는 알겠는데, 이 택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아이의 물음에 상점 주인 아저씨가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자물쇠를 저기 루프 테라스에 매달기 전에, 두 사람의 이름하고 하고 싶은 말이나 소원을 함께 써서 매다는 거예요. 몇 월 몇 일 여기 왔다감, 이렇게 써도 되고, 우리 사랑 영원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써도 되구요.”
아이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 이거 내가 써도 되죠?”
“그럼요. 뭐라고 쓰고 싶은데요?”
“잠깐만요, 쓰고 나서 보여드릴게요.”
아이는 부끄러운 듯 택을 손으로 살짝 가리고 최대한 반듯반듯하게 한글로 무어라 글을 적고 있었다.
“짠~! 다 썼어요! 이대로 자물쇠랑 같이 영원히 매달아 놓을게요!”
민재는 아이가 택에 쓴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루사와 아이 ♡ 강민재 오빠, 지금 생(生)도, 다음 생도, 다다음 생도, 아이는 오빠 아내, 오빠는 내 남편. 영원히 사랑해 ♡]
두 사람은 택과 자물쇠를 남산 루프 테라스 펜스에 함께 매달은 후,
그 자리에서 서로를 뜨겁게 포옹하며 입을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