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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화 〉일본에서 온 그녀 (27) (44/140)



〈 44화 〉일본에서 온 그녀 (27)

일본에서 온 그녀 (27)


남산타워 전망대까지 구경한 후,


두 사람은 오늘 투숙하게 될 서울 시청 맞은편에 위치한 P호텔로 이동했다.


항상 그랬듯 미리 호텔 객실을 예약한 민재,




두 사람은 로비 데스크에서 체크인을 하고 카드키를 수령해 객실로 올라갔다.

“우와아아아~! 여기가 오늘 우리가 자는 방이에요?”



객실로 들어온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민재가 객실을 예약할 때, 이곳 P호텔의 프로모션  하나인 ‘글램핑 인 더 호텔’이란 패키지를 함께 신청해 놓았던 것이다.



글램핑은 화려하다는 뜻의 ‘글래머러스(glamorous)’와 ‘캠핑(camping)’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합성어로, 음식, 조리 기구, 텐트  여러 가지 장비를 준비하고 야외에서 하룻밤 생활하는 일반적인 캠핑과는 달리, 모든 도구들이 미리 준비된 편안한 장소에서 즐기는 고급스러운 캠핑을 뜻하는 말이다


‘글램핑 인 더 호텔’은 고객들이 호텔 객실 안에서 캠핑장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도록 기획한 이벤트였는데, 객실 거실 바닥에 인조 잔디를 깔아 야외에 있는 느낌을 주려고 했을 뿐 아니라, 캠핑용 목제 의자와 테이블은 물론 해먹과 인디언 텐트까지 세팅해 실제 캠핑장의 분위기를  살려서 연출해 놓고 있었다.



“여기 호텔이 예전부터 해온 이벤트라고 하더라구요.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저 이런데 처음 와 봐요! 너무 좋아요~!”



아이는 신난 표정으로 캠핑 의자에도 앉아보고 해먹에 누워보기도 하고, 치마를 입은 채로 인디언 텐트 안으로도 엉금엉금 들어가 보기도 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여기 진짜 캠핑 온 느낌으로 잘 꾸며져 있는 거 같아요! 그럼 우리 여기서 진짜 캠핑하는 것처럼 바비큐도 구워 먹을 거예요?”

“아쉽게도 호텔 객실 안에서는 취사를 할 수 없어요. 저녁은 여기 호텔 식당을 예약해 놓았으니 거기서 먹고, 밤에 캠핑 분위기 낼 수 있는 음식들을 주문해 먹으면 어떨까요?”


“너무 좋아요! 근데 오빠 저녁 식사 예약한 때까지 시간  남아 있죠?”

“네, 한 시간 정도 후에 가도 되요.”


“그럼 이리 들어와서 나랑 누워 있어요. 여기 너무 아늑하고 좋은 거 같아요.”




아이가 인디언 텐트 안에 쏙 들어가서 그를 향해 웃으며 손짓하고 있었다.



민재도 환하게 웃으며 자세를 낮추고 텐트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185cm 건장한 체구의 민재와 아이 두 사람이 들어가니 텐트 안이   버렸다.

게다가 그의 발은 아예 텐트 밖으로 쑥 나와 있는 상황.



“이거 텐트, 어른들이 들어가는  아니라 애기들 들어가 놀라고 여기 놓은 모양인데요?”



“뭐 어때요? 이렇게 오빠랑 둘이 있으니까 좋기만 한데.”



아이는 민재를 꼬옥 끌어안으며 편안한 듯 웃고 있었다.

“저 텐트에 처음 들어와 봐요. 어려서부터 캠핑 같은  한 번도 못해봤거든요. 오빠는 캠핑 많이 해보셨어요?”


“나도 즐기기 위해 텐트 치고 캠핑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요, 이런 작은 텐트 치고 밖에서 잔 적은 자주 있었죠.”



“이런 텐트치고 밖에서 잔 적이 많다구요? 언제요? 그리고 왜요?”



“한국 남자들이라면 대부분이 나처럼 이런 텐트, 아니, 이 보다는 조금 더 크지만 품질은 형편없는 텐트 치고 밖에서 잔 경험들이 다들 있을 건데요, 남자들이 군인이 돼서 군대에 들어가면 일 년에 몇 번씩 야외에서 훈련하면서 이렇게 텐트 치고 숙영을 해야 하거든요.”

“와, 재미있겠다~! 그럼 밖에서 텐트치고 자면서 군인들도 맛있는  같이 먹고 그러는 거예요?”



재미있기는 개뿔~!!!!!!


맛있는 거는 무슨, 개뿔~!!!!!!


아무리 일본에서 살다 와서 우리나라 물정을 몰라도 그렇지,




한국 남자들 앞에서 군대에 대해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단 말이다~!!!!!!

민재의 관자놀이에 파란색 굵은 힘줄이 세 가닥이 빠직, 하고 올라왔다.

“어...... 군대 가서 밖에서 자면 캠핑 같이 재미있는 게 아니라...... 그냥 힘들고 괴롭죠. 텐트치고 땅바닥에 판쵸우의하고 박스에 비닐까지 다 깔아도 땅바닥에서 습기 올라와서 자고 일어나면 전투복 젖는 일이 다반사고, 특히 겨울에 밖에서 텐트 하나 치고 자려면 찬바람은 물론 가는 눈발, 서리까지 모두 텐트 안으로  들어오고, 숨 쉴 때 마다 내 코와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 눈에 보일 정도로 추운데도 침낭 안에 넣은 핫팩 몇 개 만으로 버티면서 오돌오돌 떨며 자야하는데......”



“그래도 한국에서는 남자들 의무 복무 한다고 대우를 되게 잘 해준다던데? 그렇게 밖에서 텐트치고 자고 그러면 먹으러 거라도 맛있는 거로 주지 않나요?”

“......그냥 원래 주던 밥도 더 맛없게 돼서 나와요. 훈련하면 밥하는 취사병들도 다 같이 훈련하러 나와 밖에서 밥을 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부대 안에 잘 갖춰진 조리실이 아니라 취사 트레일러라고 부르는 작은 기계 같은  하나로만 밥을 다 해야 하니까 식사의 맛과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죠. 그나마 그렇게 나온 밥도 식판에 타서 먹는  보다는 그냥 비닐봉지에 담아서 개밥처럼 먹었던 때가  많았던 거 같아요. 아니면 그냥 달랑 주먹밥 두세 개만 주는 때도 있었구요. 그래서 전 차라리 이렇게 밥 주는 것보다 전투식량 먹는 게  낫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어요.”


“아아, 소오데스네...... 그럼 한국 군인들은 내가 생각하던 것처럼 텐트 앞에서 불 피워 놓고  위에 맛있는 거 구워 먹고, 그러지는 못하는가 보네요?”


“전에 겨울철에 훈련 나갔을 때 하도 춥고 배고파서 텐트 밖에 고형 연료로 불 피워 놓고 반합이라고 하는 작은 철통에 라면 넣어 끓여 먹은 적이 있어요. 그 때 먹은 라면이 지금까지 먹어본 라면 중에 최고로 맛있었는데...... 저 원래 라면  안 먹는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정말 너무 춥고 배고파서 그랬나, 라면 세봉 넣고 끓인 걸 국물까지 남기지 않고 단숨에 후루룩 다 먹어버렸죠. 참, 그 때 옆에 텐트에 있는 사람들이 취사병들한테 남은 계란 몇 개 받아오더니, 앞에 불 피워 놓고 야삽에 계란 올려서 계란 후라이 해먹는 것도 봤어요.”

“야삽으로 계란 후라이를 해 먹는다구요? 야삽이면 삽? 군인들은  삽을 프라이팬처럼 쓰기도 하는 거예요?”

“당연히 야삽을 그렇게 쓰면 안 되죠. 근데, 군대 가면 그런 똘아이들이  명씩은 꼭 있더라구요. 어떻게 야삽으로 계란 후라이를 만들 생각을 하는건지, 참, 나.......”

간만에 텐트에 누우니  년 전 군대 시절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민재는 최전방 부대 수색대대에서 근무했다.



주로 DMZ 비무장지대 수색과 매복을 전담하던 부대였는데,

민재는 이곳에서 복무하며 귀순자 유도 작전에 공을 세워 표창 (훈장이 아니라 군단장 표창)과 포상 휴가를 받은 적도 있었다.


원래 이런 부대는 실작전 투입이 너무 잦아서 FTX, 야외기동훈련을 자주 하지 않곤 한다.

그런데 민재가 복무하던 시기 해당 부대 사단장하고 수색대대장이 조금 유별나서 그랬나, DMZ 작전이 없는 주간에도 개인 정비할 시간도 거의 없이 전술 훈련하러 나가는 일이 빈번하곤 했다.



DMZ 수색하고  다음날 야간에 DMZ 매복 나가고, 돌아와서 하루 자고 훈련하러 가고, 그렇게 며칠 밖에서 훈련하고 돌아오면 하루 쉬었다가  DMZ 수색하러 나가고.......



진짜,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런 짓을 어떻게 1년 반 가까이 계속 했나 모를 지경이다.



“......군대 전역하기 전에 마지막 훈련 나갔을 때, 야외에서 A형 텐트 치고 자면서 같이 있던 소대원에게 전역하고 밖에 나가면 두 번 다시 텐트 안에서 안 잘 거라고 했는데, 이렇게 다시 텐트에서 누군가와 단 둘이 누워있게 되었네요? 그것도 여신처럼 아름다운 여자와 함께?”


민재는 아이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아이도 아련한 표정으로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런데 오빠, 그래도 군대 시절이 많이 그리우신가 봐요. 전에 드레싱룸 정리하면서 봤는데 오빠 옷 중에 군복들이 아직 많이 있더라구요....... 그거 아직 못 버리시는 거, 군대 시절 추억 때문에 못 버리시는 거예요?”

“......그거 추억 때문에 못 버리는 게 아니라, 예비군 훈련 갈 때 입고 가야해서 못 버리고 있는 거예요. 저 아직 예비군 훈련 기간  년 남아있거든요.”



“군대를 다녀왔는데도 군대에 또 가야한다구요?”



한국 여자들보다  군대에 대해 아는 정보가 거의 없는 아이,



이건 아무래도 날 잡아서 다시 가르쳐 줘야  것 같다.




* * *




저녁 시간이 되고, 민재는 아이를 데리고 호텔 안에 있는 J레스토랑을 찾았다.


그곳은 몇 해 전 미슐랭 가이드에서  하나를 받은 식당 중 하나로 유명한 곳이었다.

마침 예약 시간까지 조금 시간이 남아 있었다.




 사람은 직원의 안내를 받아 편안한 소파가 있는 넓은 리셉션으로 이동해 기다리기로 했다.




“룸이 준비되는 대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이곳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직원은 두 사람에게 한과처럼 생긴 튀김 과자와 연한 수정과 맛이 나는 웰컴 드링크를 가져다주었다.



손님들 기다리면서 지루하지 않게 하려 함인지, 재미있게도 리셉션의 테이블 위에는 윷과 윷놀이 판들이  세트씩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는 이거 윷놀이 해   있어요?”



“어학당에서 한국 문화 체험  때 하는 거 본 적 있어요. 어떻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 전통놀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민재가 아이에게 윷놀이의 규칙들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벌써  세팅이 다 되었는지 직원이 다시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룸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겠습니까?”



 사람은 직원을 따라 준비된 룸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들어간 룸의 테이블에 가장 먼저 눈에  것은 흰색 식탁보 위에 화사한 비단으로 쌓여진 커틀러리 (포크, 나이프, 스푼 등 양식기를 이르는 말) 였다.


양식을 한국 스타일로 재해석한 이곳 레스토랑 스타일답게, 디테일한 부분에서도 한국의 멋을 담아내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가장 먼저 현미, 송순, 더덕으로  식초가 나왔다. 식욕을 촉진하기 위한 식전주 같은 것.

식초를 한 모금 마신 아이가 귀엽게 얼굴을 찌푸렸다.



“으~ 식초는...... 역시 식초네요.”




“아이 입맛에는 많이 셔요?”


“조금 신데, 괜찮아요. 그래도 이걸 먹으니까 정말 맛있는 게 막 땡겨요.”

 때, 정장을 단정하게 입은 남자 직원 한명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식사가 들어오기 전에 와인 페어링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음식과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을 같이 서빙 하는 서비스) 도와 드리겠습니다. 혹시 찾으시는 와인 있으신지요?”



“아니오, 이곳 레스토랑에 어떤 와인들이 준비되어 있는지 잘 몰라서요. 각 음식마다 소물리에가 추천해주는 와인으로  잔씩 페어링 해주시겠어요?”

“네, 그럼 오늘 추천드릴만한 와인들로 준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윽고 음식과 함께 와인이 들어왔다.


가장 먼저 나온 음식은 초록의 솔잎 위에 담아온 짬닭 크로메스키,

이어서 한입 크기의 김부각에 올려진 육회와,


고춧잎나물을 곁들인 잿방어 회가 나왔다.


그리고 첫 번째 와인으로는 순하면서도 과일의 단맛이 좋은 화이트 와인 샴팡이 서빙 되었다.

“자, 그럼 건배할까요?”

민재가 와인잔을 들며 말했다.

“네, 오빠!”


아이도 활짝 웃는 얼굴로 잔을 들어 가볍게 건배를 나누었다.



그리고 준비된 음식들을 하나씩 먹어보는 아이.

“어때요? 음식들은 괜찮나요?”

“네...... 와...... 너무 맛있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에요......  사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온 게 이번이 처음인데요....... 이런 곳의 음식이 이렇게 맛있는 줄 꿈에도 몰랐어요...... 와...... 감탄 밖에 안 나와요.......”




아이는 음식 맛에 크게 놀란 표정이었다.




“이곳에 몇  전 미슐랭 가이드에서  하나를 받은 곳이라고 하지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미슐랭 가이드 별 하나 이상 받은 곳이  십   된다고 하니, 음식이 정말 맛있을 수밖에 없겠죠.”

“이렇게 맛있는데 미슐랭 가이드  하나 밖에 못 얻었다구요? 미슐랭 가이드 만점이 별 세 개지요? 한국에는 미슐랭 가이드 별 세  받은 곳이 몇 군데나 있어요?”

“제가 알기로는 두 군데인가, 세군데 있다고 알고 있어요.”



“와...... 별 하나가 이렇게 맛있으면 별 세 개는 도대체 얼마나 더 맛있는 걸까요? 먹으면 정말 기절할 정도로 맛있지 않을까요?”



“하하하하하, 그럼 나중에 미슐랭 가이드 별  개짜리 식당도 찾아가서 함께 먹어보죠. 저도 그곳 음식들이 얼마나 맛있을지 정말 궁금하네요.”


이렇게 두 사람의 파인 다이닝이 시작되고,



이어서 다음 음식들과 와인들이 차례대로 들어오고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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