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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화 〉일본에서 온 그녀 (30) (47/140)



〈 47화 〉일본에서 온 그녀 (30)

일본에서 온 그녀 (30)

아침에 일어난 두 사람,

역시 호텔에 오면 조식 뷔페는 기본으로 먹어줘야 한다.


편안한 티셔츠와 돌핀 팬츠를 입은 아이는 민재의 팔짱을 끼고 함께 P호텔 2층에 있는 뷔페로 향했다.

“아이, 잠  잤어요?”

“네! 진짜 꿀잠 잤어요.”




“컨디션도 좋구요?”

“네, 괜찮아요. 근데, 어제 오빠 해먹에 앉혀서 입으로 해줄 때, 오빠꺼 너무 큰데 내가 너무 오래 해서 그런가 턱이 조금 아파요. 조식 뷔페 먹어야 하는데, 조금 신경 쓰이기는 해요.”




하기야, 그냥  벌리고 오래 있어도 턱이 아플 수 있는데,  큰  입에 물고 빨고 그랬으니......

민재는 아이의 허리를 껴안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

그래도 지금까지 민재와 관계한 여자들이 다음 날 걸음 걷기 힘들어하던 것과는 달리, 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걸어 다니는 편이었다.



한 손에 접시를 들고 씩씩하게 돌아다니면서 음식들을 한가득 담아와 맛있게 냠냠하는 아이,

‘할머니가 살아 계셨더라면 아이 보고 참 복스럽게 잘 먹는다고, 손자며느리 감으로 제격일 거 같다고 좋아하셨을  같아.’


민재는 그런 아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 *



호텔에서 체크아웃하며, 로비데스크의 직원에게 글램핑 패키지에 있는 해먹을 어디서 구입했는지 물어보는 민재.

“앗, 죄송합니다, 손님. 제가 그 판매처까지는 알지 못해서요......”

하기야, 그런 거 구입은 호텔 실무자가 하겠지. 손님들 응대하는 호텔리어가 아니라.


아무래도 나중에 인터넷으로 한번 찾아봐야   같다.




그렇게 두 사람이 호텔을 떠나기 위해 주차장으로 내려왔을 때,



문득, 민재의 시선이 아이가 들고 있는 핸드백에 꽂히게 되었다.

어디 브랜드인지 알  없는,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핸드백.


모르긴 몰라도 일본에 있을 때부터 들고 다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그녀가 옷이나 구두, 신발 같은 것은 많이 가지고 있어도 명품 브랜드의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일본에 있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들이나 동대문, 아울렛 등에서 샀을 법한 저렴한 것들이 대부분.

보석이나 반지, 귀고리, 목걸이 같은 것도 몇 개 없고 말이다.



특히 그녀가 들고 다니던 가방들을 떠올려보니,

처음 압구정 건물에서 만났을 때도 그렇고 어학당에 다닐 때도 그렇고,



그녀는 주로 평범한 에코백을 들고 다니고 있었다.

아이돌에 그라비아 모델까지 한 연예인 출신치고는 심하게 검소한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오빠, 우리 이제 집으로 갈 거예요?”




아이가 조수석에 타며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민재는 아이에게 안전벨트를 매어 주며 말했다.

“집에 가기 전에 들를 데가 있어요. 내가 아이에게 사주고 싶은 게 생각나서요.”



“오빠가 저한테 사주고 싶은 거요?  선물 사주시는 거예요?”


“네, 그렇죠. 선물이라 할  있겠죠.”

“와~! 신난다~! 그런데 갑자기 웬 선물이요? 오늘 우리 100일, 1년, 생일 같은 기념일도 아닌데? 원래 한국에서는 기념일마다 선물 챙겨주는 게 기본이라는  들어서 알고 있지만, 오늘이 무슨 날은 아니잖아요?”



“무슨 날...... 이긴 하죠. 내가 내 여자에게 예쁜 거 사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날.”


민재는 살짝 웃으며 강남으로 차를 몰았다.




* * *



민재가 아이를 데리고  곳은 청담에 있는 샤ㄴ 플래그쉽이었다.




“마음에 드는 가방 있으면 몇 개라도 좋으니 골라 봐요.”




민재는 매장 밖에 발렛 직원들에게 차키를 맡긴  아이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와, 샤ㄴ....... 저도 여기 가방 갖는  소원이었는데, 이렇게 진짜 와 볼 수 있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이도 아이돌 활동도 하고 모델 활동도 하면서 돈 벌었을 텐데, 그때는 이런 명품 사고 싶지 않았어요?”

“사고 싶었죠, 엄청...... 그런데 연예인 활동 한다고 해서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많이 벌지도 못한데다가 수익은 전부 부모님이 관리해 주시고 전 용돈 타서 써야 되었거든요. 샤ㄴ백은 갖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그동안 매장 들어갈 엄두도 못 내었어요.”




그랬었구나. 그래도 연예인 했으니까 돈도 조금 벌어 놓고 명품도 사고 사치도 부리고 그럴 줄 알았는데. 그렇게 살던 아이가 아니었구나......

이날 민재는 아이에게 샤ㄴ 의 시그니처와 같은 검은색 플립백과 빨간색 미니백, 샤ㄴ 로고가 그려진 라지 쇼핑백 (우리가 생각하는 장바구니가 아니라 가죽으로 된 큰 가방을 뜻한다)을 사주었다.

이  개를 사주는데 들어간 돈은 1,800 만 원 정도.

민재는 가방 선물을 받고 너무나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여길 데리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너무 고마워요. 한꺼번에 가방을 세 개씩이나...... 정말 너무 고마워요....... 앞으로 오빠 말 잘 듣고 밥도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드릴게요. 정말 고마워요......”




가방을 하나씩 품에 끌어안고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던 아이는 감동이 북받쳐 올랐는지, 이내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좋은 곳도 많이 데리고 가고, 더 좋은 것도 더 많이 사줄게요. 그러니까, 지금처럼만 함께 해주요. 아이가 지금 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나 너무 행복하니까.”



민재는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해주었다.




* *

이제 월요일,

금요일이면 아이의 어학당이 종강을 하게 된다.


이 한주 동안 그녀를 경호원처럼 보호해주기로  민재.

그녀가 수업을 듣는 동안 차에 타고 대기한 상태에서



미리 사온 버거X 햄버거와 프렌치프라이, 너겟 등을 조수석에 잔뜩 쌓아 놓고 콜라와 함께 먹으며




혹시라도 그 스토커가 나타나지 않을까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런 짓은 군대 있을 때 DMZ 매복 작전 할 때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해보는  같네.’



해가 지기 전부터 해가 뜬 이후까지 밤새,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도발해 올 것에 대비해 비무장지대 일대에 숨어 적을 기다리는 DMZ 매복 작전.



그때에도 기다리는 북한군 대신 고라니와 멧돼지, 비무장지대 사는 여러 짐승들이 뻔질나게 돌아다니는 것만 구경하다가 철수하곤 했었는데,


지금도 역시  뿔테 안경 스토커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Y대 학생들, 어학당에 다니는 외국인 학생들 구경만 실컷 하는 중이었다.

‘그 오따꾸 스토커 녀석이 정신 차리고 안 나타면 다행이지. 이것도 금요일까지만 하면 되니까 그 때까지 참아보자. 아이의 안전을 위한 거니까 열심히 해야지.’

게다가 오늘 아이의 수업은 오전만 하고 끝나는데다가 오후에 덕환의 스튜디오로 가 ‘아이짱과 함께 하는 일본사’ 세 번째 촬영을 하기로 한 날이었다.


민재는 햄버거를 우적우적 씹으면서도 한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 * *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되고,




민재는 아이를 마중하기 위해 그녀의 강의실까지 올라갔다.



마침 수업이 모두 끝났는지 어학당 외국인 학생들이 강의실을 나오고 있었다.




“아, 오빠~!”


강의실을 나오던 아이가 민재가 앞에 서있는 것을 보고 달려와 그의 품에 안겼다.



“계속 여기 서 계셨던 거예요?”

“아니에요. 밑에 차에 있다가 이제 막 올라왔어요.”

“미안해요, 나 때문에 오빠가 너무 고생하는  같아서요.”

“미안하기는요,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인데. 자 그럼 차로 내려갈까요?”



“네, 오빠!”


아이는 자연스럽게 민재와 팔짱을 끼고 어학당을 나섰다.



오늘 그녀는 민재가 사준 라지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오빠, 확실히 내가 오늘 이 가방 들고 오니까 친구들 사이에서 관심 폭발이었어요. 다들 이거 얼마냐고, 남친이 사준 거냐고 엄청 부러워하는 거 있죠?”




원래 명품은 이런 맛에 flax 하는 법이지.


이게 심하면 병일지 모르지만 적당히만 한다면 이보다  자존감 높일 수 있는 방법도 드믈 것이다.



민재는 압구정에 있는 예쁜 브런치 식당에서 아이와 간단하게 식사를 한 뒤, 촬영시간에 맞춰 압구정에 있는 민재의 건물 5층, 덕환의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직원들과 함께 촬영 준비를 하고 있던 덕환이 두 사람을 맞이해 주었다.




“오늘도 둘이 같이 들어오네? 오다가 앞에서 만난거야?


민재는 아직 덕환에게 아이와 사귀고 있다고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상태였다.



덕환과는 항상 여자관계라든지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는 깊은 이야기까지도 서로 흉금 없이 나누는 사이이긴 했지만,


친구의 일을 도와주기 위해 만난 여자와 사귀게 되었다는 게, 그리고 동거까지 하게 되었다는 게,


게다가 이 모든 일이 불과  여일 만에 일어났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려서 였을까.

아직 덕환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할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컨텐츠 벌써부터 대박조짐이 보이고 있어! 2화부터 조회수도 그렇고 댓글창 반응도 완전 폭발이야! 아이짱 너무 예쁘다고, 아이짱과 함께 하는 컨텐츠 앞으로도 계속 해달라는 댓글이 거의 90%가 넘더라구! 심지어 일본 사람들도 와서 보고 일본어로 댓글 달고 그렇다니까?”



“야, 그럼 이제 일본 구독자들 위해 일본어 자막까지 넣어야 하는 거 아냐?”



“나도 그럴까 생각하는 중이야. 번역기로 돌려서 댓글에 뭐라고 썼는지 보니까 다들 하나같이 호의적이야. 예전에 아이가 아이돌도 하고 그라비아 모델 하던 거 기억하고 다시 보게 되어 기쁘다는 반응들이 대부분이더라고. 아이짱, 오겡끼 데스까, 와따시와 오겡끼 데스 (잘 지내고 계세요? 저는  지내고 있습니다. 일본 영화 러브레터의 유명한 대사) 이런 안부를 묻는 댓글들이 엄청 많았어.”



아이도 덕환의 말에 기분이 매우 좋아 보였다.

“정말요? 와~! 저 사실 아직 제가 나온 유튜브 영상 댓글들은  읽어 봤었는데, 일본 사람들도 댓글을 달아놓은 게 많다구요?”




“그렇다니까요? 아직 촬영 준비하려면 좀 남았으니까, 내 컴퓨터로 한번 댓글창 확인해보세요.”



아이는 덕환의 책상 위에 있는 컴퓨터로 가 자신이 나온 유튜브 영상 댓글들을 설레임 가득한 표정으로 하나씩 읽어 보고 있었다.




민재도 사람들이 아이에게 어떤 말들을 했는지 궁금해 그녀의 옆에서 함께 댓글들을 읽어 보았다.

덕환의 말대로 댓글을 대부분은 아이의 외모를 칭찬하거나 앞으로 계속 그녀를 유튜브에서 보고 싶다는 의견들이었다.

그리고 일본어로 된 댓글들 역시 상당히 많았다.

그렇게 아이가 댓글들을 하나씩 확인하며 내려가던 중,



그녀가 마우스로 스크롤을 내리는 것을 멈추었다.



갑자기 어둡게 굳어지는 아이의 표정.

정지된 화면에 떠 있는 여러 개의 댓글 중,

일본어로  댓글 하나가 있었다.

댓글을 단 계정의 닉네임도 일본어로 되어 있었는데,

계정의 프로필 안에는,




험상궂은 얼굴의  남자가 담배를 입에 물고 짝눈을 뜬 채 불량하게 꼴아보는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 댓글을 잠시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아이,

옆에 민재가 함께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는 급히 스크롤을 밑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함께 있던 민재도 아이가 이 댓글을 보고 표정이 변했다는 걸 눈치 채고 있었다.

‘저 댓글에 뭐라고 쓰여졌길래 그러는 거지? 그런데 프로필 사진을 보니......? 설마?’



민재는 살짝 불안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 * *



다음 날에도 민재는 아이를 어학당에 데려다주고 그 앞에 차를 대고 매복(?)을 하는 중이었다.




남는 시간을 이용해, 어제 아이가 보고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던 그 댓글을 찾아보는 민재.



계정의 프로필이 워낙 인상적일 정도로 더러운 표정을 하고 찍은 사진이라,  댓글을 다시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민재는 그 댓글을 복사해 번역기로 돌려 보았다.




[거기 있었나? 한국에 있으면 내가 못 찾을 줄 알았어? 내가 곧 그리로 갈 테니까 기다리라구.]



대충 이런 내용의 댓글이었다.



만일 모르는 사람이 이런 댓글을 썼다면 아이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댓글을 보고 있었다는 건,



아이도 이 댓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게 분명해 보였다.



‘이 녀석은 또 뭐야? 말하는 게 그 오따쿠 스토커 녀석의 조폭 버전인데? 아이를 찾았다고? 그리고 아이를 찾아 한국으로 오겠다고? 이 녀석 진짜 뭐하는 녀석이야? 생긴 거 보니, 설마 진짜 야쿠자인거야?’



민재가 이런 저런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오려 하고 있을 때,

그에게 전화  통이 걸려왔다.




주형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주말 잘 보내셨습니까, 형님~! 중간보고 올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형님~!]

중간보고,




주형이 아이에 대해 무언가 알아낸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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