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일본에서 온 그녀 (31)
일본에서 온 그녀 (31)
[일단 확인된 내용부터 먼저 말씀드릴게요, 형님. 제가 좀 두서없이 말해도 이해 부탁드립니다, 형님.]
“응, 그래 괜찮으니까 말해봐.”
민재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주형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일본에 있는 제 정보원이 연예부 기자들까지 직접 만나가면서 확인한 건데요, 일단 나루사와 아이 라는 사람, 특별한 스캔들은 하나도 없다고 해요. 일본 연예부 기자들이 연예인들 사생활 추적하는 게 파파라치 이상으로 엄청 집요하다고 하거든요? 심지어 연예인들이 데뷔하기 전에 있었던 일들, 학교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친구들과 어린 나이에 술 담배를 하며 비행을 저지른 사실은 없는지, 그 때 혹시 교제하는 사람은 없었는지 그런 것들까지 속속들이 다 파헤치는 건 기본이라고 하구요. 그런데 나루사와 아이는 데뷔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딱히 흠잡을 만한 일이나 누구와 만나고 교제했다는 스캔들이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의 말에 민재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야? 아이 그 사람, 일본 지방에서 활동하고 별로 유명하지 않은 연예인이라서 기자들도 모르는 사실이 있는 건 아니야?”
[아니에요, 형님~! 나루사와 아이, 그 사람이 완전 탑스타는 아니어도 인지도는 꽤 높은 아이돌이었더라구요. DQ-girls 인가, 그룹이 대박이 나지 않아 공중파에 별로 안 나와서 그렇지 팬덤도 상당히 많은 편이었고, 그룹 내에서도 최고 인기 스타라서 많이 알려진 편이라고 봐야죠? 그라비아 모델로도 상당히 유명해서 우리나라에도 팬들이 있을 정도였던데요?]
하긴, 그 뿔테 안경 오따꾸 스토커를 보면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물론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기자들만 아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몇 개 있긴 하더라구요.]
“비하인드 스토리? 어떤 이야기인데?”
[일본에 있는 정보원이 혹시 몰라서 공식적인 기사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기자들끼리만 아는 비밀 같은 것들이 있나 조사해 봤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조금 특이할 만한 점들이 있긴 했어요.]
“뜸 들이지 말고 얼른 얘기해 봐.”
[네, 형님. 일본 연예 기획사들 대부분이 그렇기는 한데, 나루사와 아이가 소속되어 있던 연예 기획사도 야쿠자가 관련되어 있는 회사였더라구요. 아니, 거기는 아예 야쿠자가 운영하고 있는 회사라고 봐야 맞을 것 같데요. 어쨌든, 여기 연예 기획사 사장이 자기 회사 소속 아이돌들을 야쿠자가 방송국 관계자들이나 정치인, 기업인들과 만나는 술자리에 강제로 동석시킨 사실이 밝혀진 적이 있었는데요, 그 때 이 사실을 취재한 기자가 언제 어느 아이돌이 그 자리에 강제로 불려갔는지에 대해 조사한 자료가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이도 그 자리에 끌려간 적이 있었데?”
[아니요. DQ-girls 멤버로 활동하던 몇몇 아이돌들이 그 자리에 불려 간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지만, 기자가 취재한 바로는 나루사와 아이도 같이 불려갔다는 적은 없었다고 합니다. 이게요, 보통 그런 자리 가는 아이돌들은 강요에 의해서 가는 것도 있겠지만 이 연예 기획사에서 성공하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까 더러워도 참고 가게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나루사와 아이는 굳이 그런데 안 가도 될 것 같은 게, 이 사람 부모님이 지방에서 건물 임대업도 하고 잘 사는 집 딸이었더라구요. 이런 집 애들은 자존심도 있고 아이돌 안 해도 먹고 살 길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굳이 그런 야쿠자들 술자리에까지 가려 하지 않았을 테지요.]
아이의 부모님이 건물주라는 것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
민재는 주형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이 더 있는데, 그렇게 DQ-girls 멤버들이 야쿠자의 술자리에 불려가고 나서 며칠 후에 있었던 팬 미팅 자리에서, 나루사와 아이하고 멤버 몇 명이 지금 연예 기획사하고의 계약이 끝나는 대로 재계약을 하지 않을 거고, DQ-girls 활동도 더 이상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고 하네요? 그냥 탈퇴하겠다고 자기네 회사 향해서 확 질러 버렸던 거죠.]
“아이가 그랬었다고?”
[네, 그러고 나서 얼마 안가서 나루사와 아이가 활동을 중단하고 잠적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아마 이 일과 관련해서 소속 연예 기획사와 갈등을 빚고 잠적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네요.]
민재도 지난 번 인터넷에서 본, 아이가 아이돌 그룹 탈퇴 선언을 하고 잠시 잠적했다는 뉴스 기사가 떠올랐다.
[팬들은 물론 연예 기획사에서도 나루사와 아이의 이 돌발 행동 때문에 완전 패닉에 빠졌던 것 같아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유추해 보면, 연예 기획사에서 야쿠자의 술자리에 같은 곳에 그룹 멤버들을 강제로 끌고 가고 자신에게도 자꾸 그런 것을 강압적으로 요구한 것에 불만을 갖고 탈퇴를 결정했던 게 아니었을까, 이렇게 보는 게 맞겠죠.]
“그럼 그 회사는 계약이 끝나자마자 아이를 아무런 미련 없이 그냥 곱게 보내준 거야? 그것도 알아 봤어?”
[네, 그게 말인데요, 형님. 여기서부터 또 골 때리는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나루사와 아이가 지금 연예 기획사하고 재계약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잠적하고 나서 계약 끝날 때까지 몇 개월 정도 남아 있었는데요, 그 때 그 폭탄 발언을 하고나서 얼마 후부터 팬들 사이에서 나루사와 아이가 야쿠자랑 사귀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데요. 심지어 야쿠자랑 갈 데까지 갔다, 야쿠자랑 같이 야동에나 나올 법한 짓을 하고 다니고 있다, 야쿠자 아이를 임신 했다, 그래서 아이돌 그만 두려는 거다....... 뭐 이런 심한 말들이 나돌기 시작했던 거죠. 당연히 이런 자극적인 이야기들을 기자들이 그냥 넘어갈리 없으니 취재를 해봤겠죠? 그런데 알고 보니...... 다 뻥이었더라구요, 뻥! 심지어 그 소문이 퍼져 나간 진원지가 어디인고 하니, 바로 나루사와 아이가 소속된 연예 기획사에서 퍼뜨린 소문이었던 거였어요!]
“자기 회사 아이돌에 대해 그런 소문을 퍼뜨렸다고? 대체 왜?”
[왜긴요? 야쿠자들의 술자리에 불러도 안 나가고, 자기들 말도 잘 안 듣는데다가, 이제 계약 기간 끝나면 재계약 안 하고 나가겠다고 하고 잠적까지 했으니, 그 때부터 미리 나루사와 아이가 앞으로 두 번 다시 연예계에 발붙이지 못하게 악성 루머를 퍼뜨려서 이미지 추락시키려고 했던 거겠죠.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되게 흔하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기자들이 취재해보고 딱 견적 나오니까 보도 안하고 묻어버린 거죠.]
이제야 아이가 일본에서 아이돌 생활을 하며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대충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연예 기획사에서 정말로 아이의 이미지를 완전히 추락시키려 작정했다면 언론사나 기자들 매수해서 그런 가짜 뉴스들을 내보낼 수도 있었을 거 같은데, 왜 그렇게까지 하지 않은 거지?”
[일본 대형 기획사들 중에 진짜 누구 하나 죽이려고 언론사 동원해서 별 짓 다하는 놈들이 많긴 한데요, 나루사와 아이가 있던 연예 기획사는 언론사나 기자를 매수할 정도로 형편이 넉넉한 곳은 아닌 거 같더라구요? 게다가 기자나 언론사 입장에서도 애매했겠죠. 일본에서도 허위 기사 잘못 내면 우리나라처럼 명예 훼손 등으로 고소당하는 건 마찬가지이거든요? 그런데 나루사와 아이처럼 완전 탑스타도 아닌 연예인 때문에 별 소득도 없이 고소당할 것까지 각오하고 가짜 뉴스 내보내고 싶겠어요? 하여튼 그 이야기는 기자들도 인정한 완전 가짜 뉴스라는 게 밝혀졌는데, 그게 끝이 아니더라구요.]
“뭐? 또 다른 게 더 있어?”
[네, 형님. 저도 저번에 형님 차에 타고 있던 나루사와 아이, 그 분 보고 정말 예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인터넷 사진 검색해보니까 어우~ 그냥....... 아, 죄송합니다, 형님. 아무튼 나루사와 아이 그 사람, 남자라면 누구나 다 좋아할 수밖에 없는 외모를 가졌잖아요? 그래서 탑스타도 아닌데도 거의 광적으로 따라다니는 스토커 사생팬들이 상당히 많기로 유명했더라구요. 그런데 심지어 같은 회사, 그 연예 기획사 내에서도 나루사와 아이를 마음에 품고 오랫동안 치근거렸던 사람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녀를 따라 다녔던 사람이 바로 그 연예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는 야쿠자 조직의 높은 사람이었다고 하네요? 근데 원래 이 사람이 주로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이냐면은요, 나루사와 아이와 DQ-girls 행사 때마다 같이 따라다니면서 경호원 노릇을 하기도 했던 사람이었데요.]
“그럼, 아이가 자신을 경호하는 일을 하는 야쿠자한테 스토킹을 당했던 거라구?”
[네, 그렇게 봐야겠죠? 그런데 그 연예 기획사를 나온 후로도 야쿠자가 계속 나루사와 아이를 쫓아다녔나 봐요. 심지어는 그라비아 촬영 현장에 까지 찾아와서 당시 그들을 제지하던 나루사와 아이의 매니저를 폭행하고 나중에 돈을 주고 합의 한 일도 있었데요. 이 야쿠자가 이렇게 나루사와 아이를 쫓아다닌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진짜 여러 번 그랬더라구요. 그 후로 나루사와 아이가 그라비아 모델도 그만두고 한국으로 오게 된 것도, 다 이 야쿠자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이제야 조금씩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따꾸 스토커가 집으로 찾아왔던 그 날, 왜 그녀가 그렇게 두려워하며 벌벌 떨었는지,
안전을 위해 경호원을 붙여주겠다 해도 왜 그렇게 거절해 왔는지,
이제야 그 모든 수수께끼들이 하나씩 풀리는 것 같았다.
[일단 지금까지 일본에 있는 정보원이 확인한 사실은 이 정도구요, 다른 소식 더 들어오는 데로 계속 보고 드리겠습니다, 형님.]
“수고했어, 그런데 하나만 더 부탁 하자.”
[네, 형님.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이번에는 또 뭘 알아볼까요?]
“내가 지금 톡으로 사진이랑 유튜브 계정 하나 보내줄게. 일본 사람인데, 그 사진 속 인물이 아이를 따라다녔다는 야쿠자가 맞는지, 그 사람이 아이와 정확히 어떤 관계인지 알아봐 줄 수 있겠어?”
[물론이죠, 형님. 바로 확인 들어가겠습니다.]
“고맙다, 주형아. 다음에 클럽 갈 때는 내가 쏠게.”
[정말이십니까, 형님? 감사합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민재는 전화를 끊으며 깊이 심호흡을 했다.
‘정말 다행이야. 걱정했던 것처럼 아이가 야쿠자하고 관련되어 있는 게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야......’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아이가 정말로 야쿠자와 사귀었거나 갈 때까지 다 가본 더러운 여자가 아닐까, 이렇게 상상했던 지난날이 후회가 되었다.
‘이래서 연예인 팬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찌라시는 절대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니까? 앞으로는 정말 아이를 진심으로 믿어줘야겠어. 지금 한국에서 그녀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라곤 나 밖에 없는데, 내가 아이를 믿어주지 않으면 누가 믿어주겠어?’
민재는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의 액정 대기 화면은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고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되어 있었다.
민재는 사진 속 아이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그녀의 수업이 모두 끝날 때 즈음, 이날도 어김없이 강의실로 올라가 아이를 기다리기로 했다.
강의실 밖으로 아이가 나왔을 때,
오늘은 민재가 먼저 다가가 그녀를 품에 꼬옥 안아 주었다.
* * *
집을 나오면서 미리 운동복을 챙겨 나온 두 사람,
수업을 마치고 대치동 건물로 가서 운동을 한 다음, 집으로 돌아가 저녁을 먹을 계획이었다.
오늘도 민재는 미리 정해 놓은 W.O.D (Workout Of the Day, 오늘의 운동)를 하고, 아이는 태블릿으로 K-POP 댄스를 보며 신나게 따라 추었다.
그렇게 2시간가량 땀을 흠뻑 낸 두 사람,
나만의 헬스장 안에 샤워실에서 함께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집에 들어와 저녁을 먹을 준비를 했다.
아이가 집에서 입는 티셔츠에 돌핀팬츠 위에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들어가 냉장고를 뒤적거리며,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민재에게 말했다.
“오빠, 오늘 저녁 뭐 드시고 싶으세요?”
“어제 만든 커리 아직 남았는데, 그거 먹으면 될 거 같은데요?”
“그래도 매일 매일 커리 먹으면 좀 그렇잖아요? 오빠가 이치로도 아니고.”
“난 정말 괜찮아요. 있는 거로 그냥 저녁 먹어도 되요.”
아이는 검지손가락을 볼에 대고 무슨 요리를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빠한테 만들어준 요리들이 대부분 일본요리였네......? 그래도 오빠 한국 사람인데 맨날 일본요리만 만들어주는 것도 마음에 좀 걸리는데......”
아이가 거실로 와 TV 앞에 있는 태블릿을 켜고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각종 한국요리 래시피를 찾아보는 것이다.
“음...... 아! 이거 괜찮을 거 같은데? 오빠~! 혹시 고추장찌개 좋아하세요?”
“그거 전에 대학 다닐 때 근처 식당에서 먹어본 적 있는데, 그 때 참 맛있게 잘 먹었죠.”
“오빠 이거 금방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럼 오늘 저녁 고추장찌개 끓여 드릴까요?”
“아이, 그런 것도 만들 수 있어요?”
“여기 레시피도 있고 재료도 다 있어서 쉽게 만들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오늘은 제가 오빠한테 한국음식 만들어 드릴게요. 오빠 TV 보시면서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아이는 냉장고에서 고기와 야채를 꺼내면서 요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민재는 그런 그녀를 행복에 가득 찬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