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1차 사랑 전쟁 (1)
1차 사랑 전쟁 (1)
어학당 행정팀이 보내온 CCTV 영상 캡처 사진들을 확인하는 민재,
사진에 찍혀 있는 인물들은 모두 세 사람이었다.
‘이 중 맨 뒤에 있는 녀석이 그 유튜브 계정 속 인물과 비슷한 거 같긴 한데......’
민재는 사진 속 인물들 중 가장 덩치가 큰 한 사람에게 눈길이 갔다.
‘그런데 어떻게 이놈들이 아이가 Y대 어학당에 다니고 있다는 걸 알았지.......? 아, 맞다! 아이가 덕환이 유튜브에 출연하면서 지금 Y대 어학당에 다니고 있다고 자기소개를 한 적 있었지? 그거 보고 Y대 어학당으로 무작정 찾아간 건가?’
마침 아이가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민재는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아이가 알면 불안해할지도 몰라. 당분간 아이에게는 비밀로 하고 조용히 알아보는 게 좋겠어.’
드레싱 룸에서 들뜬 표정으로 파티에 입고 갈 옷을 고르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민재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 * *
서초구에 있는 J호텔에 도착한 두 사람,
민재는 호텔 입구에서 호텔 발렛에게 차를 맡기고 아이와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그의 복장은 단정한 검은색 정장바지에 하얀색 드레스 셔츠,
이제 확실히 여름 더위가 시작된지라 셔츠 위에 자켓은 입지 않고 있었다.
옷도 모두 명품인데다가 185cm의 큰 키에 근육질 몸매 덕분에 옷태가 확실히 사는 모습이다.
오늘 아이의 복장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나풀거리는 치마가 달린 하얀색 원피스, 그녀의 발랄하면서도 귀여운 매력과 풍만함 가득한 섹시미를 잘 드러낸 의상이었다.
두 사람은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피아X 직원의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위층에 있는 프레지덴셜 펜트하우스 스위트로 이동했다.
“파티를 연회장에서 할 줄 알았는데, 객실에서 하는 건가요?”
민재의 질문에 피아X 직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오늘 파티는 VVIP 고객 30여분만을 초대해서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 페트리머니 (patrimony, 원래는 유산 / 세습 재산이란 뜻을 가진 단어이지만, 보통 명품업계에서는 대를 이어 가보로 물려줄 만한 상상 이상의 가치를 지닌 물건을 지칭하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를 보여드리는 자리로 마련된 거라서요, 연회장이 아닌 이 호텔 펜트하우스에서 프라이빗하게 진행될 예정이랍니다.”
이 말을 들은 아이가 민재에게 조용히 귓속말로 말했다.
“오빠, 30여명이 호텔 객실에 다 들어갈 수 있어요? 거기 일하는 사람들까지 다 합치면 수십 명도 넘을 거 같은데......?”
“그래도 설마 이 사람들이 그런 것도 감안하지 않고 VIP 행사를 열지는 않았을 거예요. 일단 올라가서 확인해보도록 하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검은색 정장을 입은 가드들이 주변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는 게 보였다. 초대된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들이지 않으려 미리 가드들까지 배치해 놓은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직원의 안내를 받아 펜트하우스로 들어갔다.
“우와, 스고이......! 여기 호텔 펜트하우스는 이런 모습이었군요?”
객실 내부로 들어온 아이가 탄성을 질렀다.
그곳은 일반적인 호텔룸이 아니라 2층으로 된 넓은 집과 같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
1층 현관은 VVIP 들을 맞이하는 리셉션과 직원들이 음식, 다과를 준비하고 각종 보석들을 보관하는 공간으로 되어있었고,
2층이 각종 페트리머니들이 전시된 파티 공간으로 구성되었다.
“30명이 아니라, 100명이 들어와도 충분하겠는데요?”
“그러게요, 오빠. 여기 펜트하우스가 이렇게 넓을 줄은 몰랐어요.”
“나도 J호텔 펜트하우스는 처음 와 봐요. 나중에 아이하고 여기 다시 와 보면 좋을 것 같네요.”
이 때, 리셉션에서 기다리고 있던 피아X 본사에서 나온 직원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강민재 고객님 맞으시지요?”
“네, 맞습니다. 피아X 고객도 아닌데, 이런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앗, 별 말씀을요. 이미 강민재 고객님께서는 저희 리치XX 그룹 VVIP 고객님들 중 한 분 이신걸요? 그러고 보니 오늘도 저희 그룹 산하 브랜드인 바쉐론콘XXX 시계를 하고 오셨네요?”
오늘 민재가 차고 온 드레스 워치는 바쉐론콘XXX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투르비용,
역시 명품 브랜드 직원들은 그가 차고 있는 시계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한 눈에 알아보고 있었다.
“저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가시지요. 제가 이번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피아X 의 페트리머니들과 새로운 쥬얼리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네, 부탁드립니다.”
민재와 아이는 팔짱을 끼고 그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그런데 오빠, 전에서부터 궁금했는데, 오빠 손목시계 안에서 뺑글뺑글 돌고 있는 이건 뭐에요? 오빠 드레싱 룸에 있는 시계들 중에서도 이렇게 뺑글뺑글 도는 게 들어있는 시계들이 되게 많았던 거 같은데?”
아이가 손으로 민재의 왼손에 있는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건 투르비용(Tourbillon)이라고 하는 거예요.”
“투르비용이요?”
“네, 프랑스어로 회오리바람, 이란 뜻인데, 기계식 시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간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계발된 기술이죠.”
“시간의 오차를 줄인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건가요?”
“지금은 시계들이 기계식 시계들만 있는 게 아니라 전자식 시계도 있고, 정밀 공학이 발달해서 시간의 오차를 많이 발생시키지 않고 있죠? 하지만 손목시계가 처음 나왔을 당시에는 시계 같은 정밀 기계를 다루는 기술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손목시계처럼 이리 저리 흔들리면서 중력의 영향을 불규칙하게 받는 경우에는 안에 있는 부품들이 이리 저리 움직이면서 시간의 오차가 생기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었죠. 그래서 시계 내부의 부품들을 전체적으로 회전시켜 주면서 부품들이 제 자리를 벗어나지 않게 하고 시간의 오차를 줄이는 기계 장치를 개발하게 되었는데, 이게 바로 투르비용이었던 거죠.”
“그럼 손목시계가 항상 정확한 시간을 알려 줄 수 있도록 하는 장치, 라고 해야겠네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장치를 단 시계들이 왜 많지 않은 거죠?”
“그게, 투르비용은 기계식 시계의 끝판왕 급 기술이라, 이런 걸 만드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정말 제대로 된 투르비용 기술이 들어간 시계는 하나 당 1억이 넘곤 하죠.”
“헤에에에~? 그럼 오빠가 지금 차고 있는 시계도....... 1억?”
“네, 1억 조금 넘는 거예요.”
“혼토니 스바라시데스 (정말로 놀랍습니다.)......! 손목시계 하나에 1억이 넘다니......! 투르비용 하나 넣으면 1억이 넘어가니까, 그런 시계들을 많이 볼 수 없었던 거군요?”
“사실 요즘에는 멋을 내기 위해 짝퉁으로 투르비용 비슷한 걸 만들어 넣은 저렴한 가격의 시계들도 얼마든지 있어요.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시계의 정밀 기계 공학이 많이 발달한 덕분에 기계식 시계들도 더는 투르비용 없이도 시간의 오차가 많이 발생시키지 않는 단계까지 와 있죠.”
“그럼 투르비용이 필요가 없어진 거예요? 그런데 왜 아직도 투르비용이 남아 있는 건가요?”
“이제 투르비용은 각 시계 브랜드의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한 수단이자, 고급 시계의 상징이 되어 있다고 봐야겠죠. 저 같은 경우는 다른 시계보다 투르비용이 있는 시계의 전체적인 무브먼트가 훨씬 아름답다고 느껴져서 무척 애정하고 있는 거구요.”
“아아, 그렇구나...... 나도 그럼 오빠랑 같은 투르비용 들어있는 시계 있었으면 좋겠다. 오빠랑 커플 시계 같은 거 하고 싶어서요.”
“하하, 이건 남성용이라 커플로 매칭 될 만한 여성용 시계는 없을 거예요. 그럼 오늘 피아X 쥬얼리들을 보러 왔으니까, 우리 둘이 함께 할만한 커플링이나 커플 쥬얼리를 찾아보면 어떨까요?”
“오빠랑 커플링이요? 너무 좋아요! 그럼 오늘 커플링 예쁜 게 있는지 찾아봐야지!”
아이는 기쁨에 상기된 표정으로 그의 팔을 꼬옥 끌어안았다.
* * *
2층으로 올라와보니, 먼저 온 다른 고객 10여명이 내부를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모두 수천, 수억 원을 호가하는 비싼 보석들이 가득한 곳이다 보니, 2층에만 대여섯 명의 가드들이 여기 저기 서서 보석들을 지키고 서 있었다.
민재와 아이는 그곳에 전시된 페트리머니와 주얼리들을 직원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30분가량 관람을 한 후, 펜트하우스 내 각 방에 마련되어 있는 VIP 룸으로 안내 받았다.
그곳에서 샴페인과 음료, 다과를 먹으며 좀 더 보고 싶은 쥬얼리들을 가져오게 해서 가까이에서 보거나 직접 착용해 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까 민재가 커플링 이야기를 해서 그런가, 아이는 커플링으로 어울릴만한 반지들을 5세트나 지목해 룸으로 가져오게 했다.
민재가 샴페인을 마시는 사이, 아이는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반지들을 하나 씩 손에 끼어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액의 주얼리를 다루다보니, 직원들은 모두 하얀색 장갑을 끼고 그녀의 손에 조심조심 반지들을 끼워주었다.
“고객님 미모만큼 손도 너무 예쁘셔서, 무슨 반지를 끼든 다 너무나 잘 어울리세요!”
“아리가또고...... 아, 감사합니다.”
“어머, 고객님? 일본에서 오셨어요?”
“네, 저 일본 사람이에요.”
“그러셨구나~! 한국말을 너무 잘하셔서 일본 분인지 몰랐어요. 그런데 고객님 정말 너무 예쁘세요~! 연예인 하셔도 될 정도에요~! 이따 VIP 파티 때 고객님들 앞에서 주얼리 착용하고 워킹 할 모델들이 밑에 와서 준비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고객님이 그 모델들보다 수백 배는 더 예쁘신 거 같아요~!”
아이는 예쁘다는 칭찬에 기분이 좋은 듯 얼굴을 붉히며 민재를 돌아보았다.
민재도 샴페인 잔을 손에 들고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음에 드는 거 있어요? 우리 커플링 할 만한 거 찾은 거 같아요?”
“오빠가 보시기에는 어떤 게 제일 마음에 드세요?”
“난 남자다 보니 보석은 봐도 잘 몰라요. 예쁜지도 잘 모르겠고. 아니, 아이가 너무 예뻐서 보석들이 하나도 안 예뻐 보이는 건가?”
“아이, 오빠도 참~!”
아이는 민재의 팔을 콩, 때리며 수줍은 듯 앙탈을 부렸다.
“그럼 아이가 보기에는 어떤 게 가장 예쁜 거 같아요?”
민재의 물음에, 아이가 손가락으로 가죽 시트로 된 트레이에 올려 있는 반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전 이거요. 이건 저한테도 잘 어울리고, 오빠가 껴도 잘 어울릴 거 같아요.”
아이가 가리킨 반지는 백금 링 중앙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모델이었다.
민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에 직원을 바라보았다.
“저거 가격이 어떻게 되나요?”
“네, 고객님! 원래 백화점에 출고될 때의 가격은 4,800 인데요, 오늘은 VVIP 고객님들을 위한 이벤트 D.C.를 해드리면 4,300 으로 구입 가능하십니다!”
“커플링으로 하면은요?”
“두 분 커플링으로 하신다구요? 잠시만요....... 그럼...... 저희가 8,000 에 맞춰드릴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떠세요?”
“네, 그래요. 결제해 주세요.”
민재가 Cool 하게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고객님 감사합니다! 그럼 두 분 손가락 사이즈 확인해 드리고, 바로 주문 넣어 드릴게요!”
“언제쯤 받아 볼 수 있을까요?”
“제작하고 받아보시기 까지 2주 정도 거릴 것 같아요. 괜찮으시죠?”
“2주면 괜찮을 거 같네요. 매장이 이 앞에 S백화점이라고 하셨죠? 매장에 물건 도착하면 제 전화로 연락 주시겠어요?”
“네, 고객님. 물건 오는 데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직원은 민재에게 연신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는 그의 카드를 결제하기 위해 아래층 리셉션으로 뛰어 내려갔다.
직원이 나가자, 아이는 감동받은 듯 아련한 표정으로 민재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 고마워요. 나 이런 반지...... 태어나서 처음 껴 봐요.......”
“앞으로 더 좋은 거 많이 사줄게요. 그리고 이 반지는 나중에 우리가 결혼하게 되도, 그 때도 계속 커플링으로 끼고 다녀도 좋을 거 같아요.”
“맞아요. 평상시에 하고 다녀도 무난한 디자인이어서 계속 끼고 있어도 좋을 거 같아요. 오빠...... 나 지금 너무 행복해요......!”
직원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아이가 민재의 입술에 키스를 했다.
민재도 행복해하는 아이를 보니 기분이 좋은 듯, 그녀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