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1차 사랑 전쟁 (3)
1차 사랑 전쟁 (3)
“저어...... 이 것 좀 드세요......”
아이가 민재의 아파트 현관문 밖에 의자와 테이블을 갖다놓고 앉아있는 전직 국군정보사 요원, 사승범, 최용준에게 직접 만든 샌드위치와 쥬스를 건네주며 수줍게 말했다.
“하이고~ 뭐 이런 걸 다......!”
“감사합니다, 사모님. 잘 먹겠습니다~!”
두 사람은 아이가 주는 음식들을 받아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아이는 두 사람에게 공손히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쪼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오빠~! 밖에 계신 분들이 나 사모님이라고 부르는데? 나 아직 사모님 소리 들을 나이는 아닌데, 힝~”
사모님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아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사모님이요? 하하하, 아이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불렀나 본데요? 전에 아이도 나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이라고 부르기도 했잖아요?”
“아, 그랬지, 참~! 이따 뵐 때 저분들과도 호칭 정리를 해야 할 거 같아요. 저도 아직 저분들을 어떻게 불러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거든요.”
약속대로, 강운예 관장은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최용준, 사승범 두 명의 전직 국군정보사 요원들을 그의 집으로 보내주었다. 이 둘 말고도 박윤수, 장주영이란 전직 요원들이 두 사람과 교대로 계속 근무하게 될 예정이라고 했다.
민재는 이들의 일당을 매일 강운예 관장에게 일괄적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보통 신변보호 경호원들이 받는 일당은 12시간 근무 기준으로 200,000 ~ 300,000 원 정도 (신변보호가 아닌 일반적인 경호/보안 업무의 일당은 120,000원 ~ 180,000 정도. 하지만 소득세, 세금 및 경호 회사에 소개비 명목으로 떼어주는 돈을 제외하고 실제 경호원들이 수령하는 일당은 65,000원 ~ 110,000원 정도라고 한다). 민재는 이들 모두에게 300,000 원의 일당을 주기로 했고, 강운예 관장에게도 커미션 명목으로 추가적인 금액을 보내주었다.
이들은 군복과 거의 유사한 검은색 사제 테러복에 전투화까지 신고 있었고,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삼단봉 등 무기들을 소지한 채 그의 집을 방문했다. 둘 다 최근에 국군정보사에서 전역해서 그런지, 번쩍번쩍 날카로운 눈빛들이 살아있는 모습이었다.
야쿠자가 한국으로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하면 아이가 많이 놀랄 수도 있기에, 민재는 저번에 뿔테 안경 오따꾸 스토커가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불안해서 경호원을 고용했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아이가 혼자서 어딜 갈 경우 이들이 따라다니며 경호를 해줄 거라 설명해 주었다.
아이는 여전히 경호원들을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민재가 결정한 일이므로 믿고 따르겠다고 말했다.
민재는 마스터룸에 있는 작은 티테이블과 의자들을 밖에 놔주고 그들에게 이곳에 앉아 근무할 수 있게 했다. 생수와 커피 등 차, 선풍기 같은 것들도 미리 갖다 주고 식사는 자신의 카드 하나를 주고 매 끼니때마다 먹고 싶은 음식들을 1인 1식 2만원 이내에서 마음껏 배달시켜서 먹으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경호원들이 지급받는 1끼 식비는 6,000원 ~ 10,000원 정도라고 한다.)
혹시 이들이 밖에 계속 앉아 있으면 이웃들이 오해할 수도 있기에, 미리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개인 사정이 있어 당분간 집 앞에 경호원들이 상주해 있을 것이라 알려주었다. 그리고 혹시 주변 이웃들에게 민원이 들어올 경우 잘 설명해 달라고 부탁의 말도 잊지 않았다.
점심 무렵, 오늘도 민재는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금일 압구정 건물에 새로운 세입자가 계약을 하러 오기로 해서 한 번 만나보러 나가려는 것이다.
“계약만 하고 금방 올게요. 다녀와서 우리 같이 영화 보러 가요.”
“네, 오빠. 그럼 오빠 올 때까지 대치동 건물 가서 운동하고 춤 연습하고 있을게요.”
“그래요. 대신에 밖에 경호원들하고 꼭 같이 가야 해요.”
“네, 오빠. 오빠, 근데, 밖에 계신 분들 진짜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해요? 경호님? 경호원님? 이렇게 불러야 해요?”
“경호팀장님, 이렇게 호칭을 불러주면 된다고 하더라구요. 두 사람 모두에게 앞으로 경호팀장님, 이렇게 불러주세요.”
“그럼 그분들이 저한테 뭐라고 부르라고 해야 해요? 사모님 소리는 듣기 싫은데, 잉~”
“그럼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누구누구 씨, 이렇게 부르라고 할까요? 나를 보고 민재씨, 라고 하는 것처럼 아이한테는 아이씨...... 아...... 이건 좀 안되겠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의 이름 뒤에 씨,를 붙여서 말하는 건...... 흠......
“아, 맞다! 아이의 성으로 부르라고 하는 게 좋을 거 같네요. 나루사와 씨, 라고 부르라고 하면 좋을 거 같은데요?”
“나루사와 씨요? 하기야 일본에 가면 나를 보고 나루사와 상, 이라고 부르니까 여기서도 절 나루사와 씨, 라고 불러주는 게 맞는 거 같아요! 난 저분들을 경호팀장님, 이라 부르고, 저분들은 날 나루사와 씨, 라고 부르고. 호칭 정리 딱 될 거 같은데요?”
“그럼 이따가 밖에 경호팀장님들하고 그렇게 호칭 정리 잘 하고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나 얼른 다녀올게요.”
민재는 아이의 입술에 키스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민재가 밖으로 나오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최용준, 사승범이 앉은 채로 그에게 목례를 했다.
“잠시 후에 아이가 근처 대치동 건물로 운동하러 걸어 나갈 거예요. 그 때 함께 따라가 주시고, 거기 가도 소파에 앉아서 대기할 장소 있으니 그곳에서 편히 쉬면서 계속 근무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염려 놓으십시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민재는 두 사람에게 목례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 * *
압구정 건물에 약속시간보다 30분정도 일찍 도착한 민재,
‘잠깐 덕환이 스튜디오 올라가서 차나 한잔 마시면서 기다리는 게 좋겠는데?’
그는 자신의 주차구역에 차를 주차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불량하고 험상궂게 생긴 남자 셋이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뭐야? 몇 층에 온 사람들인데 저런 깡패 같이 생긴 사람들이 내 건물을 드나드...... 응?’
민재의 시선이 그 중 한 사람에게 꽂혔다.
‘저 녀석은......?!’
이전 그가 본 유튜브 계정 프로필 사진 속에 짝눈을 뜨고 입에 담배를 물고 있던 바로 그 남자,
그 남자가 방금 자신의 옆을 스쳐 지나간 것이다.
‘뭐야, 저 저것들? 여기 온 거면 설마, 덕환의 스튜디오까지 찾아 온 건가?’
Y대 어학당에서 아이의 주소를 확인하지 못했으니, 이번에는 덕환의 스튜디오를 찾아와 아이가 사는 곳을 알아내려 한 모양이었다.
민재는 급히 밖으로 뛰어 나가보았다.
야쿠자 일당들은 건물 앞에 아무렇게나 주차해 놓은 검은색 중형차를 타고 막 떠나려 하고 있었다.
민재는 재빨리 그들이 타고 가는 차량 번호를 외워두었다.
‘38구 4885? 렌트카는 아닌데?’
그는 다시 덕환의 스튜디오로 올라가기 위해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덕환아!”
민재가 5층에 도착해보니, 예상대로 조명, 의자 등 스튜디오 집기들이 일부 쓰러져 있었고, 덕환은 의자에 앉아 있는 작가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해 주고 있는 중이었다.
작가의 뺨이 새빨개져 있는 걸로 보아, 야쿠자 녀석들에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어, 민재야?”
“야, 이거...... 방금 나간 사람들이 그런 거지? 맞지?”
“어, 맞아. 어떻게 알았어, 너?”
민재가 덕환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그 녀석들이 여기 와서 무슨 짓을 하고 간 거야?”
“오늘 우리 작가랑 같이 영상 편집하려고 나와 있는데 아까 그 세 명이 갑자기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오더니, 우리 아이짱 어디 있냐고, 어디 사는지 말하라고 막 난리를 치는 거야. 그래서 우리 작가가 왜 그러시냐고 그랬더니 다짜고짜 싸대기를 날리고...... 요즘 세상에도 그런 깡패들이 있나, 진짜 어이가 없더라.”
“야, 그 사람들, 말하는 게 일본 사람이거나 일본 교포 같지 않았어?”
“어, 맞어. 두 사람은 일본 교포인지 일본어 발음 잔뜩 섞인 우리말로 말하더라? 한 사람은 아예 우리말을 모르는지 일본어만 하고. 너 근데 그거 어떻게 알았냐?”
“그래서, 아이가 어디 사는지 말했어?”
“신촌에 아이짱 사는 원룸 알려줬어. 나도 무서워서 어쩔 수 없었다구......”
민재는 덕환에게 지금 아이가 자신과 동거하고 있는 사실을 말하지 않을 걸 다행으로 여겼다.
“경찰에는 신고 했어?”
“아직, 너무 경황이 없어서...... 이제 해야지.”
덕환이 핸드폰을 집어 들고 112에 전화를 하려 했다.
“야, 신고하지 마.”
“응? 왜?”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는 말에 덕환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민재를 바라보았다.
“아이 지금 신촌 원룸에 안살아. 그리고 그 놈들, 거기에 아이가 없다는 걸 알면 이리로 다시 찾아 올 거야.”
“아이짱이 신촌 원룸 안 산다고?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리고, 그놈들이 다시 이리로 올 거면 더더욱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아니, 잠시 기다려. 여기서 그 놈들 다 잡아버리게.”
“뭐? 그 놈들을 잡겠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덕환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덕환아 일단, 조명들이나 카메라들, 넘어지고 부서질 것 같은 것들 모두 안전한 데로 치워 놔봐. 내가 천천히 설명해줄게.”
민재는 이렇게 말하며 어디론가 급히 전화를 걸었다.
* * *
민재의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아이가 살던 원룸에 갔다가 그녀가 이사를 갔다는 걸 확인한 야쿠자 녀석들은 허탕을 치게 만든 것에 대한 분풀이를 하려는 듯, 세 시간여 만에 다시 압구정 민재의 건물로 다시 돌아왔다.
“빠가야로, 조센징~! 코로시테야로 (죽여 버리겠다)~!
야쿠자들은 분에 가득 찬 얼굴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덕환의 스튜디오로 올라갔다.
“너 이 새끼, 우리를 뭘로 보고 거짓말을 해? 열도의 고쿠토 (極道 극도, 협객이란 뜻, 야쿠자들은 자신들을 야쿠자라 칭하지 않고 이처럼 극도, 임협이라 칭하고 있다.)가 우습게 보여? 죽고 싶어?”
야쿠자 중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녀석이 발로 문을 뻥, 차고 들어오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스튜디오 안에 아까까지 있었던 덕환과 작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 대신, 스튜디오 안쪽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민재가 이제 왔냐? 하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등 뒤에는 검은색 사제 테러복에 방검복 기능이 있는 전술조끼를 입고 있는 전직 국군정보사 요원, 박윤수, 장주영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야쿠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까와는 완전히 달라진 사람들, 게다가 완전히 달라진 분위기를 느낀 야쿠자들,
그들의 얼굴에 순간 긴장하는 빛이 감돌았다.
“야, 이 씨발 쪽바리 새끼들아. 여기가 어디라고 떠들고 지랄이냐, 응?! 서울 강남 압구정이 너희 쪽바리들 나와바리인 줄 알어?! 모가지 따고 창자 뽑아서 너희들 집에 DHL로 보내버리기 전에 그 아가리 닥치고 조용히 하고 있어라, 응?”
전직 국군정보사 요원 박윤수의 일갈,
야쿠자들은 모두 그의 말에 담긴 서슬 퍼런 살기에 적잖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들이 아무 말도 못하고 스튜디오 입구에 얼어붙은 채로 계속 서 있자,
민재가 손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테이블을 톡톡, 치며 말했다.
“거기, 이리 와서 앉아 봐요. 아, 저 사람 한국말 모르는 거 같은데, 앞에 있는 사람이 뒤에 오야붕한테 통역 좀 해줘요.”
그의 말을 들은 똘마니 야쿠자가 뒤에 있는 짝눈의 오야붕 - 아이를 찾아오겠다고 댓글 쓰고 직접 찾아온 그놈 - 에게 일본어로 뭐라고 말을 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강한 척이라도 하려는 듯, 일본어로 뭐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의 말은 곧장 똘마니에 의해 한국말로 옮겨졌다.
“왜, 우리 오야붕더러 거기 앉으라는 건지 물으시는...... 데요?”
“얘기 좀 나누고 싶어서요. 앉기 싫으면 거기 계속 서 있어도 되고.”
다시 오야붕와 이야기를 주고받는 똘마니,
“무슨 얘기를 나누자는 거냐고 물으시는...... 데요?”
“뭐긴 뭐겠어요? 당신들이 나루사와 아이를 찾는 문제하고, 내 친구 스튜디오에서 난리친 거 관련해서 얘기 나누려는 거지. 경찰 안 불렀으니까 안심하고, 조용히 대화로 처리할 수 있을 때 대화로 처리하시죠? 난 두 번 권하는 성미는 아니라서.”
똘마니가 다시 오야붕에게 민재의 말을 전하고,
오야붕은 얼굴 가죽을 험악하게 실룩거리며 민재의 곁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