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1차 사랑 전쟁 (5)
1차 사랑 전쟁 (5)
민재는 아이를 데리고 집 건너편에 있는 코엑스몰로 내려갔다.
전직 국군정보사 요원 출신의 경호원, 최용준, 사승범은 그들의 두세 발 뒤에서 따라오며 경호 하는 중이었다.
민재는 핸드폰 앱을 켜고 우선 영화부터 찾아보았다.
“음...... 식사하기 전에 영화부터 먼저 예매를 할 까요? 아이, 무슨 영화 보고 싶어요?”
“전, 이거요!”
아이가 선택한 영화는 히어로 영화였다.
“그럼 이거로 예매할게요. 영화 시작까지 40분 정도 시간이 있으니까 식사하고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민재는 아이를 데리고 코엑스몰 지하에 있는 (정확히는 그 옆에 파르나스 몰에 있는) G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같이 식사하시겠어요?”
민재가 두 전직 요원들에게 권해보았지만,
“아닙니다, 저희는 이미 저녁을 먹었습니다. 밖에서 대기할 테니 두 분 편하게 드시고 오세요.”
그들은 손사래를 치며 정중히 사양했다.
전직 요원들이 밖에서 대기하는 동안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
시간이 많지 않은 관계로 식사는 간단히 하기로 했다.
방어 카르파치오와 치즈를 올린 석화구이를 주문한 민재,
각각 10점 정도 나오는 양이라 아이가 몇 번 냠냠 하고나니 음식들이 금방 다 없어지고 말았다.
“힝~ 벌써 다 먹어버렸어...... 아쉽다......”
아이는 아직도 배가 고픈지 포크를 입으로 빨고 있었다.
“하하, 그럼 우리 극장 들어가면서 음식 사가요. 거기 치킨이나 핫도그 같은 것도 팔고 있을 테니.”
민재와 아이가 레스토랑을 나오자, 밖에 코엑스몰 벤치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최용준과 사승범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왔다.
“두 분, OOOO 영화 보셨어요?”
“아직 못 봤습니다.”
“그럼 저희랑 함께 영화 보시죠. 저희 뒷좌석 예매했으니까 편하게 영화 보시면서 근무해 주시고, 영화 보러 들어가시기 전에 제가 드린 카드로 팝콘이나 음료수 사셔도 되요.”
“허억~! 가, 감사합니다, 사장님!”
민재와 아이가 영화를 보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고 있게 될 거라 생각하고 있던 전직 요원들은, 그의 말에 깜짝 놀라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민재는 영화관으로 들어가기 전, 영화관 푸드코트가 아닌 그 앞에 있는 버거X로 먼저 들어갔다.
“오빠, 햄버거 사서 들어가시려구요?”
“아뇨, 치킨 사려구요. 영화관에서 파는 치킨이랑 감자튀김보다는 차라리 여기서 윙봉 세트랑 프렌치프라이 사는 게 훨씬 더 맛있고 양도 많거든요.”
아무래도 코엑스가 집 앞에 있다 보니 민재도 이곳을 자주 찾았었다. 그래서 영화관 음식 살 때 노하우를 어느 정도 익혀놓은 것이다.
버거X에서 윙봉 세트와 프렌치프라이를 산 민재는 이제 영화관 푸드코트로 내려가 팝콘과 콜라 큰 걸로 두 개를 샀다. 전직 요원 둘도 팝콘과 콜라를 사고 들뜬 표정으로 그들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렇게 네 사람은 영화관에서 즐겁게 히어로 영화를 보고 집으로 귀가했다.
코엑스몰에서 지상으로 나올 때, 아이는 민재의 팔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
“오빠, 그런데 우리 경호팀장님들, 모두 한국 최고 특수부대 출신이시라면서요? 그럼 싸움 엄청 잘 하시겠네요?”
그 말에 민재는 아까 오후 덕환의 스튜디오에서, 덩치 큰 야쿠자 녀석을 순식간에 의자 뒤로 날려버리던 장주영의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 무시무시한 분들이시죠. 이 분들이 지켜주시니 안심해도 되요.”
“정말요? 와, 그럼 전에 그 스토커가 와도 걱정할 거 하나 없겠네요!”
그 뿔테 안경 오따꾸 스토커?
사시미칼 든 야쿠자도 감히 이들에게 어쩌지 못하고 줄행랑치는데,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 스토커 녀석이 겁도 없이 아이 앞에 나타나게 된다면?
이 전직 요원들이 손가락 하나로도 그 스토커 녀석을 저 세상으로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오빠, 그런데 우리 앞으로 한국 여행 다녀야 하는데, 계속 이 분들이랑 같이 다니는 거예요?”
생각해보니 이번 여름 방학 때 아이를 데리고 한국 여기저기를 보여주기로 했는데,
그 야쿠자 녀석이 한국을 떠났는지 확인되지 않는 이상 마음껏 돌아다니는 건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아무리 안전을 위해서라지만 경호원들을 계속 대동하서 돌아다니는 것도 조금 부담스럽고,
더군다나 스킨십이나 애정표정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도, 옆에 경호원들이 계속 있다 보니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역시 그 야쿠자 녀석을 하루 빨리 일본으로 돌려보내야겠어. 아까 그 녀석, 덕환의 스튜디오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하기는 했지만 아직 완전히 포기한 표정은 아니었잖아?’
민재는 강운예 관장이 그 야쿠자들의 소재를 파악하는 대로 바로 이들을 처리해 버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분간은 안전을 위해 경호팀장님들의 보호를 받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약속한대로 아이에게 한국 여행 꼭 시켜 줄 테니 그것도 걱정 말구요.”
“네, 오빠! 기대하고 있을게요!”
아이는 벌써부터 그와 함께 할 여행이 기대되는지 설레임 가득한 표정으로 활짝 웃고 있었다.
* * *
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
아이는 드레싱룸으로 들어와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데, 이번에도 빨간색 마이클조던 농구 유니폼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전에처럼 그거 하나만 입는 게 아니라, 안에 반바지와 브라탑까지 다하고 유니폼을 입는 그녀,
“오늘은 웬 일로 안에 옷을 입어요?”
민재의 물음에 아이가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
“밖에 경호팀장님들도 계시고, 또 무슨 일 있을지도 모르니까...... 집안에서도 전처럼 편하게 있지 못하겠어요......”
하긴,
여자들이라면 이런 것들이 의식될 수밖에 없겠지.
게다가 이런 문제들은 밤에 잠 잘 때에도 이어졌다.
언제나처럼 아무 것도 안 입고 침대에 누운 두 사람,
그런데 오늘 따라 아이가 딱히 섹스를 요구하지 않고 있었다.
“밤이라 조용한데...... 내가 오빠랑 그거 하면서 내는 소리, 밖에 계신 경호팀장님들이 들으면 안 되잖아요......”
아......
경호원을 두면 좋기는 한데 이런 문제들이 또 있었구나......
민재는 아무래도 그 야쿠자 녀석들 문제를 하루 빨리 매듭지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키스하는 소리는 밖에 까지 안 들릴 테니까...... 내가 키스해줄게요......”
민재는 아이의 몸을 꼬옥 끌어안고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아이도 그와의 정사가 몹시 그리운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의 페니스를 잡고 흔들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 * *
다음날, 두 사람은 ‘아이짱과 함께 하는 일본사’ 촬영을 위해 덕환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그들을 경호하기 위해 박윤수, 장주영 두 명의 전직요원들이 따라 왔을 뿐 아니라,
오늘 두 명의 무에타이 선수 출신 경호원 두 명이 더 스튜디오에 와 있었다.
민재가 야쿠자들이 다시 덕환을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강운예 관장에게 연락해 추가 경호 인력을 요청했던 것이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민재와 아이가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민재의 핸드폰에 덕환의 전화가 걸려왔다.
마침 아이는 서재에서 인터넷 웹서핑을 하는 중,
민재는 거실에서 조용히 그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민재야, 큰일 났다! 어제 그 놈들 또 왔어!]
“뭐? 그 녀석들이 와서 또 난리치고 있어? 거기 경호원들은?”
[난리를 치는 건 아닌데...... 너랑 꼭 이야기를 하고 싶데. 경호원들이 있어서 그런가, 오늘은 제법 정중하게 말하고 있기는 한데 말이야...... 너, 이 사람들하고 통화 좀 해 볼래?]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건지......
그래도 야쿠자 녀석들이 어딘가에 숨어서 해코지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것보다 이렇게 먼저 나타나는 게 덜 불안하다고 느껴졌다.
“잠깐 전화 끊어봐. 내가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해서 다시 너한테 전화 걸 테니까.”
이대로 바로 덕환이 야쿠자들에게 핸드폰을 넘겨주게 되면 자신의 전화번호가 노출될 수도 있었다. 그랬다가는 저들이 개인정보를 추적해 주소까지 알아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민재가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다시 덕환에게 전화를 걸자, 그는 바로 옆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넘겨주었다.
[안녕하시오, 선생.]
목소리를 들어보니 어제 야쿠자에게 통역을 해주던 재일 교포 똘마니인 듯 했다.
“우리의 얘기는 어제 모두 끝난 걸로 아는데, 또 무슨 일입니까?”
[우리 오야붕께서 남자 대 남자로 선생에게 할 말이 있다 해서 다시 연락했습니다.]
남자 대 남자?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선생도 남자고 우리 오야붕도 남자 아니겠습니까? 오야붕께서 남자의 순정을 쉬 버리기 힘들다 하시면서 마지막 기회를 달라 하십니다.]
“마지막 기회? 무슨 마지막 기회요? 그 마지막 기회는 이미 어제 드린 걸로 아는데? 그래서 목숨 살려서 보내 드린 거 아닙니까? 남자라면서, 한 입으로 두 말 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왜 이제 와서 뭘 또 바라고 이러는 겁니까?”
[오야붕께서 보아하니 선생도 아이짱을 좋아하는 거 같다 하시는데...... 맞지요? 유튜브 영상에서 아이짱과 서로 바라보는 게 둘이 아주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게 다 보일 정도던데?]
아,
유튜브 영상으로도 그런 게 다 보이나?
그냥 비즈니스 때문에 만난 사람처럼 아닌 척하며 촬영해 보았지만, 사람들 눈에는 민재랑 아이랑 서로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는 게 다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오야붕께서는 아이짱을 걸고 선생과 마지막 쇼부를 내보자고 하십니다.]
“쇼부? 승부를 내자구요? 어떤 승부 말입니까?”
[남자답게, 주먹 대 주먹으로 결착을 짓자 하시는데 어떻습니까?]
유치하기 짝이 없는 제의,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야쿠자를 일본으로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던 민재에게 상당히 솔깃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관장님과 전직 국군전보사 요원들을 동원해 저 야쿠자 놈들을 아주 묻어버리는 건 불법이라 안 되고, 그럼 뭐 이 방법도 나쁘지 않겠지. 혹시 허튼 수를 쓰거나 이번에 나한테 지고도 또 이상한 짓 하면 정말 저것들을 다 묻어버리던지, 그놈의 연예 기획사를 날려버리던지, 그 때 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거야.’
민재는 서재에 컴퓨터에 앉아 정신없이 웹서핑을 즐기는 아이를 힐끗 돌아보고는,
그녀가 전화 통화소리를 듣지 못하게 마스터룸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룰은 어떻게 됩니까?”
전화를 통해 서로의 의견이 오고가기를 30여분,
야쿠자와 민재의 대결은 다음과 같이 진행하기로 했다.
- 날짜 : 이번 주 금요일 오후 3시
- 장소 : 강운예 관장의 체육관 정식 규격 케이지
- 규칙 : 엘보우, 4점 포인트에서의 니킥 / 사커킥 / 스템핑킥이 모두 허용된 5분 3라운드 MMA 룰. 오로지 실신 넉다운 / 항복 선언으로 승패 결정. 승부가 나지 않을 경우 1시간 쉬고 승패가 결정될 때까지 재경기.
들어보니 야쿠자의 키는 180cm에 몸무게는 100kg 가량,
한 때 유도와 종합격투기를 한 적이 있다고도 했다.
유도와 종합격투기를 한 적이 있어서 그라운드에 자신이 있었나 보다. 게다가 4점 포인트에서의 니킥 / 사커킥 / 스템핑킥처럼 UFC에서는 쓰이지 않는 과격한 기술까지 모두 허용하자고 하는 거 보니 길거리 싸움도 조금 해 본 모양이고.
민재보다 키는 조금 작아도 몸무게는 20kg 가량 야쿠자가 더 많이 나가니, 겉보기로는 여러모로 야쿠자가 더 유리한 조건임에 틀림없었다.
‘그래서, 이런 룰로는 지가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군.’
민재가 전화기 너머로 코웃음을 쳤다.
[그럼 이 룰로 경기를 하고, 이기는 사람이 아이짱을 갖는 것에 동의하십니까?]
“아이가 무슨 물건입니까? 갖고 말고 하게? 아무튼 그쪽 오야붕이 이기면 아이가 어디 있는지 알려드리지요. 대신 내가 이기면, 그날 저녁 일본 가는 비행기 티켓 끊어 드릴 테니 경기 끝나고 바로 공항으로 가서 출국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오야붕도 그렇게 하시겠답니다. 그럼 금요일 날 뵙겠습니다.]
“잠깐만. 가지 말고 거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왜 그러십니까, 선생?]
“이 계약 성문화(成文化)하게 지금 내 개인 변호사 보내 드릴 테니까, 거기서 잠깐 기다리고 계시라구요.”
[서, 성문화라구요?]
“계약서 쓰고 그쪽 오야붕 도장이나 사인 받아야 하니까 잠시 기다리라구요.”
[아, 네, 계약서요? 알겠습니다.]
민재는 전화를 끊자마자 자신의 개인 변호사, 김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