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1차 사랑 전쟁 (8)
1차 사랑 전쟁 (8)
타미야의 얼굴은 이미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양쪽 눈두덩이는 시뻘겋게 부어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고, 이마와 눈썹 여기저기는 피부가 찢겨져 출혈이 멈추지 않고 있었다. 코뼈와 광대뼈도 부서지고 내려앉은 모양이었다.
정식 경기였다면 레프리나 링닥터가 경기를 중단시키고도 남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 사람이 완전히 넉다운 되거나 스스로 항복 선언을 하는 것만으로 승패를 가르기로 했기에, 경기는 그대로 속행되었다.
땡~!
2라운드를 알리는 링벨이 울리고, 민재가 서서히 케이지 중앙으로 나아갔다.
타미야는 다리를 절뚝이며 간신히 걷고 있었다. 1라운드 만에 그의 다리는 완전히 고장나 버린 모습이었다.
아까까지는 오서독스 스탠스로 왼발과 왼손을 앞에 놓고 있던 타미야,
민재의 로우킥이 두려웠는지 이제는 왼발을 뒤로 하고 사우스포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흥, 그러면 내가 못 때릴 줄 아나?’
민재는 가볍게 잽으로 견제를 하다가,
오른쪽 대각선으로 빠르게 빠지며 타미야의 왼다리에 또 한 번 로우킥을 때려 넣었다!
뻐억!
뒷손인 왼손을 강하게 칠 수 없다면 사우스포 자세를 취해도 별 이득이 없는 법,
민재는 타미야의 왼손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그의 뒷발인 왼발에 지속적인 데미지를 입혀 나갔다.
“키사마 (네 놈)~!”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수는 없다는 듯, 타미야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민재를 향해 대시해 들어왔다.
콱!
“흐윽!”
순간, 민재의 딥 (프론트킥, 발가락 아래 부위인 앞축을 이용해 창처럼 찍어 차는 무에타이 스타일의 앞차기)이 그의 명심을 꿰뚫어 버렸다.
타미야는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손으로 복부를 움켜잡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지금이야!’
민재는 뒤로 도망가는 타미야를 향해 몸을 날렸다.
플라잉 니킥,
그의 무릎이 피떡으로 뭉개진 타미야의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퍼억!
“쿠헥!”
니킥에 얻어맞은 타미야가 뒤로 벌렁 넘어지고,
민재는 니온밸리, 그의 몸을 무릎으로 누르고 무차별 파운딩을 날리기 시작했다.
퍽! 퍽! 퍽! 퍽!
그래도 아직 정신이 남아있던 타미야가 팔을 허우적거리며 그를 손으로 잡으려 했고,
자기보다 무게가 20kg 이나 많이 나가는데다가 유도 경험까지 있는 타미야에게 굳이 그래플링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민재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경기를 다시 스탠딩으로 이끌어 가려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케이지 바닥에 누워 이노키 - 알리 자세를 취하는 타미야.
민재는 손을 까딱 거리며 어서 일어나라고 제스처를 보냈다.
그래도 타미야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자, 심판을 보고 있던 골든라이언 짐 코치가 그를 강제로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경기를 속행시켰다.
타미야의 상태는 이미 한계를 넘은 것 같았다. 이렇게 맞고도 버티고 있는 게 대단하다고 느껴질 뿐이었다.
‘그래, 어디 계속 더 버텨 봐라. 나도 아직 더 패고 싶으니까.’
아이가 저 녀석 때문에 괴로워했을 거 생각하면, 진심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민재는 휘청 휘청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고 있는 타미야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슬슬 공격 셋업을 준비하는 민재,
가볍게 잔 펀치를 날리다가,
또 한 번 왼손 훅 - 오른발 로우킥을 적중시켰다.
퍽! 퍽!
둘 다 제대로 들어간 정타.
이번 로우킥은 어찌나 세게 들어갔는지, 타미야는 가드를 내리고 손으로 그의 로우킥을 막으려고까지 했다.
‘이제 다 왔어!’
자신의 셋업이 먹혀들어간 걸 깨달은 민재,
이제 결정타를 날릴 때라는 걸 직감했다.
민재는 다시 한 번 타미야의 얼굴에 왼손 훅을 날렸다.
타미야는 이번에도 왼손 훅 - 오른발 로우킥 컴비네이션이 들어 올 거라 생각했는지, 몸을 바짝 웅크리고 왼손을 밑으로 내려 허벅지를 감싸려 했다.
쉭!
민재의 오른발이 번개같이 휘둘러졌다.
그런데,
로우킥이 아니었다.
민재의 오른발은 타미야의 왼쪽 허벅지가 아닌, 그보다 위에 얼굴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퍼억!
오른발 하이킥이 가드가 비어있던 타미야의 턱에 제대로 꽂히고,
그의 입에서 마우스피스가 튀어나왔다.
털썩!
민재의 하이킥을 맞고 그대로 바닥에 큰대자로 드러누워 버리는 타미야.
민재는 조금의 자비도 베풀지 않고 그의 몸 위에 올라타고 또 한 번 무차별 파운딩을 내리꽂았다.
“자, 자! 스탑, 스탑! 넉다운, 넉다운!”
그가 수십여 대의 펀치를 날리는 동안 타미야가 꿈쩍도 못하는 걸 본 심판이 민재를 일단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타미야가 데리고 온 야쿠자 똘마니들과 깡패들을 보고 말했다.
“지금부터 텐 카운트 세는 동안 못 일어나면 이 사람 패배로 게임 끝나는 겁니다! 원~ 투~ 쓰리~ 포......”
민재는 손으로 케이지 철망을 잡고 가볍게 몸을 풀며 바닥에 누워 있는 타미야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다시 일어나라, 아직 더 패고 싶으니까.’
그래도 다시 일어나기엔 너무 많이 맞은 듯,
결국 심판이 카운트 텐을 모두 셀 때까지 타미야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게임 종료! 위너!”
심판을 보는 코치는 실제 경기에서 하는 것처럼 민재의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승자 선언을 해주었다.
자신들의 오야붕이 일방적으로 개 패듯이 처맞고 쓰러진 걸 본 야쿠자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호들갑스럽게 케이지 위로 올라가려고 할 때,
갑자기 전직 국군정보사 요원들이 달려들어 그들을 양쪽에서 붙들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뭐하는 거예요?!”
“왜긴 왜야? 너네 오야붕이 지면 바로 공항으로 가서 일본행 비행기 타기로 계약한 거 잊었어?”
다른 전직 요원들이 들것을 들고 케이지로 올라가 피떡이 되어 실신한 타미야를 들어 내오고 있었다.
이걸 본 한국인 깡패들이 언성을 높이며 항의를 했다.
“아니, 그래도 다친 사람 치료라도 받게 해줘야지 이게 무슨 짓이야?”
“그쪽들은 빠지쇼, 병풍 뒤에서 향냄새 맡기 싫으면.”
전직 국군정보사 요원들은 깡패들을 꼼짝 못하게 몰아 놓고는, 타미야와 야쿠자 똘마니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 하고 있었다.
“자, 잠깐만~! 그, 그래도 숙소에서 우리 짐은 가져오게 해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이 때, 강운예 관장이 데스크 밑에 있던 가방과 쇼핑백들을 발로 툭 차서 밀어주며 말했다.
“너네 짐? 이거 맞지?”
“아, 아니...... 우리 짐들을 어떻게.......?”
“너희들이 여기 오면서 짐도 안 챙겨서 올 줄 알고 우리 애들이 가서 친절하게 짐까지 다 싸서 가지고 왔지. 자, 이제 그럼 사요나라~ 일본으로 잘 가~”
강운예 관장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잠깐만요!”
그때, 민재가 케이지에서 내려오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선수 락커로 뛰어 들어가 하얀 봉투 하나를 꺼내 들고 왔다.
그는 들것에 누워 숨을 헐떡이고 있는 타미야의 피떡이 된 얼굴 위에 봉투를 툭, 던지며 차갑게 말했다.
“니들 비행기 티켓이야. 김포공항 7시 비행기니까 시간 넉넉할 거야. 일본 가서 우동이나 사 먹으라고 돈도 좀 넣었어. 잘 가고, 두 번 다시 얼굴 볼 일 없길 바란다. 참, 이제 일본가면 너네 연예 기획사나 너네 조직 모두 앞으로 엄청 힘들어질 거야. 그거 다 네가 자초한 일이었으니까, 네가 지은 죄 잘 뉘우치고 앞으로는 똑바로 살아라.”
민재가 선두에 있던 박윤수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전직 요원들이 야쿠자들을 체육관 밖으로 데리고 나가 미리 준비한 차에 실어 공항으로 출발했다.
그들이 모두 떠난 후, 야쿠자들과 함께 왔던 깡패들도 모두 체육관 밖으로 쫓겨났다.
강운예 관장이 민재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고생했다. 평소에도 꾸준히 운동했나 보구나? 옛날보다 훨씬 나아진 모습인데?”
“모두 다 관장님께서 잘 가르쳐주신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민재는 스승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혀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어디 다친 데는 없니? 뭐, 워낙 네가 일방적으로 패버려서 다칠 겨를도 없을 것 같지만.”
“네, 오랜만에 로우킥을 많이 차서 그런가 정강이가 조금 시린 거 외에 아픈 데는 하나도 없습니다.”
“다행이구나. 반대로 저 놈은 일본으로 돌아가 당분간 한국으로 돌아오기는 힘들 것 같은데? 허허허. 그건 그렇고, 저 놈 조직이나 그 연예 기획사는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냐?”
“제 아는 동생을 통해서 그 놈들의 범죄 행위를 캐고 있는 중입니다. 이미 충분히 입증할 만한 범죄 사항들도 몇 개 찾아놨다고 하는데요, 제 개인 변호사를 통해 일본 검찰에 바로 수사 의뢰를 할 예정입니다. 마침 제 개인 변호사가 일본에서 공부하신 분이라 거기 인맥이 상당히 많은 분이세요. 수사를 의뢰하는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에도 관장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내게? 이번엔 어떤 부탁이니?”
“제 아는 동생이 그 연예 기획사와 조직이 저지른 각종 폭행, 협박, 배임, 횡령 등 여러 범죄 행위에 대해 증언해 줄 증인들을 한 명씩 찾아가는 중이랍니다. 그 중에는 저들이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는 일본 폭력단 대처법 위반 사항에 대해서도 증언해 줄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요, 이제 그 증인들을 모두 찾으면 그들이 법정에서 증언을 할 때까지 신변을 보호해 줄 능력 있는 경호원들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관장님이 데리고 있는 분들을 일본으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히 제가 일당에 숙박비, 체류비 모두 부담해 드리겠습니다.”
“하하, 그럼 나야 좋지. 우리 애들이 서로 자기가 가겠다고 난리를 칠지도 모르겠구나.”
강운예 관장은 민재의 어깨를 토닥이며 기분 좋게 웃었다.
* * *
경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이제 겨우 오후 4시였다.
지하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민재가 자신의 집 현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최용준, 사승범에게 다가갔다.
“그동안 저희 경호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은 일찍 퇴근하세요. 그래도 일당은 12시간 근무 기준으로 모두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그동안 감사했다는 제 성의니 받아주세요.”
민재는 두 사람에 현금이 두둑히 든 봉투를 하나씩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그럼 테이블하고 의자만이라도 집 안에 옮겨드리고 가겠습니다.”
민재가 괜찮다고 했지만, 결국 그들은 밖에 있던 테이블이며 의자, 생수 등 자신들이 쓰던 물품들을 모두 집 안으로 옮겨 주고 나서야 퇴근했다.
“오빠~!”
민재가 다친 데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는데도, 아이는 그를 보자마자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만큼 집에서 혼자 그를 걱정하며 잔뜩 가슴을 졸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빠, 난 오빠가 다쳐서 오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잉~!”
“다치기는요? 내가 그런 시덥지 않은 놈에게 다칠 것 같았어요? 하하. 한 대도 안 맞았어요, 단 한 대도!”
“그럼 오빠, 그 사람 어떻게 했어요?”
“응, 그 사람? 내가 그 사람 얼굴을 완전히 새로 튜닝해주고, 비행기 태워서 일본으로 돌려보냈어요. 지금쯤 경호팀장님들이 그 사람 공항으로 데리고 가서 출국시킬 준비하고 있을 거예요.”
“그럼 이제 그 사람, 다시는 한국 안와요?”
“안 오는 게 아니라 아예 두 번 다시 못 올 걸요? 게다가 일본 가면 또 경찰이랑 검찰 조사 받고 감옥 갈지도 모르는데, 한국에 다시 올 여력 따위는 없을 거예요.”
“네? 경찰이랑 검찰 조사요?”
“네, 맞아요.”
“이건 또 무슨 말일까...... 오빠는 뭔가 나 몰래 비밀리에 하는 일이 많으신 거 같아요.”
“비밀리에 하기는요, 나중에 다 아이에게 말해 줄 거예요. 참! 그리고 오늘부터 다시 경호팀장님들 없이 우리 둘 만 있을 거예요. 이제 전처럼 집에서 편하게 있어도 되요!”
“정말요? 경호 팀장님들 덕분에 감사한 것도 있었지만 불편한 점도 많았던 게 사실인데, 이제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니 정말 기뻐요!”
아이는 민재에게 키스를 하고는 쪼르르 드레실 룸으로 달려가 후딱 빨간색 마이클조던 농구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오빠, 나 이제 전처럼...... 안에 아무 것도 안 입고 나왔는데...... 헤헤.”
아이는 살짝 붉어진 얼굴로 그가 앉아 있는 소파로 걸어왔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는 경기 준비 훈련을 하느라 아이와 제대로 된 정사를 하지 못하고 그냥 보낼 뻔 하지 않았나?
민재는 아이를 자신의 무릎 위에 앉혔다.
농구복 사이로, 그녀의 G cup 가슴골이 고스란히 보이고 있었다.
“오빠, 근데 그 야쿠자가 나 쫓아다닌 사람이라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혹시 내 뒷조사 하셨던 거예요?”
민재는 살짝 속이 뜨끔해졌다.
“뒷조사가 아니라...... 아이가 예전에 일본에서 얼마나 유명한 아이돌인지 찾아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거예요. 그러다 그 녀석이 아이를 찾으러 어학당도 가고, 덕환이네 스튜디오까지 찾아와서 소란부리고 그래서, 결국 내가 나서서 손 봐 주려고 이렇게까지 한 거구요.”
“그 사람이 어떻게 어학당하고 스튜디오까지 찾아간 거죠?”
“아이가 나오는 덕환이 유튜브를 보고 찾아왔데요.”
“헤에? 소오 데스까 (그렇습니까)? 그럼 앞으로 나 유튜브도 나오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민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요, 이제 앞으로 아이가 무슨 일을 하든, 저들이 감히 어떤 해코지도 못하게 내가 막을 거예요. 그러니 아이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거 마음껏 하고 살아요. 내가 그렇게 할 수 있게 해 줄 거니까.”
민재는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으며,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