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아이의 한국 여행 - 부산 (2)
아이의 한국 여행 - 부산 (2)
아이에게 호텔에서 준비해준 부케를 선물해주고 둘이서 꽁냥꽁냥 거리는 것도 잠시,
이제 호텔에 왔으니 짐부터 풀어놓아야 할 시간이다.
두 사람은 침실 맞은편에 있는 드레싱 룸으로 들어가 여행용 가방과 수트케이스에서 가져온 옷들을 꺼내 옷걸이에 걸었다.
“이렇게 옷들을 정리하니까, 호텔 온 게 아니라 이사 온 기분이에요, 흐흐흥♡ 참, 오빠. 우리 4박 5일 동안 있으면 빨래는 어떻게 해야 해요?”
“호텔에 세탁 맡기면 되요. 보통 아침에 맡기면 저녁에 가져다주는데, 여기도 그렇게 해줄 거 같아요.”
“아~ 역시 오빠는 여행을 많이 다녀봐서 잘 아시는구나~ 오빠는 그럼 매번 여행 다닐 때마다 호텔에 세탁 맡겨서 해결하곤 하셨어요?”
“꼭 그런 거는 아니에요. 가장 오래 여행 갔던 게 태국 푸켓에 무에타이 훈련 하러 갔을 때였는데, 초반에는 운동하면서 땀 흘린 운동복들이나 속옷들을 리조트 호텔 객실에서 직접 손빨래해서 창가에 걸어놓곤 했죠. 그런데 태국이 엄청 덥고 습한 나라잖아요? 그걸 생각 못하고 빨래를 객실에 그냥 두고 운동하고 돌아 왔는데, 빨래가 거의 마르지 않아 있더라구요. 그래서 밤새 에어컨 틀어놓고 그 밑에 빨래를 걸어두었는데도 다음 날까지 잘 마르지도 않고, 결국 그 다음부터는 그냥 맘 편히 호텔에 세탁을 맡겨 버리기로 했죠.”
“태국이라면 충분히 그럴 거 같아요. 일본도 여름에 한창 덥고 비 많이 오고 습할 때에는 집에서도 빨래가 잘 안 마르거든요. 그런데 오빠, 또 무에타이 훈련하러 태국 가고 싶으세요?”
“네, 또 가고 싶어요. 그렇지 않아도 관장님(강운예)이 조만간 체육관 선수들하고 회원들 데리고 태국으로 전지훈련을 갈 계획이시라는데, 그 때 저도 함께 갈까 생각하는 중이에요.”
“와, 재미있겠다~! 그 때 저도 같이 데려가 주세요! 그럼 그 전지훈련은 언제 가요? 이번 여름에 바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여름에 태국가면 거기가 우기 (비가 많이 오는 시즌)라 좀 그래요. 아마 올해 겨울이나 내년 봄, 태국 건기에 가게 될 거 같아요. 나는 우기에 태국에 가 본 적은 없지만, 그 때 태국을 가본 사람들 말에 의하면 스콜 (Squall, 열대 지역에서 자주 나타나는 국지성 집중 호우)이 엄청나서 밖에 돌아다니기도 힘들 정도라 하더라구요.”
호텔 드레싱 룸에 짐을 다 정리한 두 사람,
이제 민재는 청바지와 셔츠, 아이는 짧은 반바지와 티셔츠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외출을 준비했다.
부산에서 가장 먼저 가기로 한 곳은 태종대,
민재가 어렸을 때 부산에 놀라와 처음으로 가본 곳이 바로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 * *
일단 나가서 술 한 잔 하고 올게 뻔 할 것 같아서 차는 호텔에 두고 택시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이제 오후 5시, 퇴근시간이 시작 되서 그런지 도로에 차가 엄청나게 많았다.
그런데 도로 상황이......
서울에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아 출퇴근길이 엄청 복잡하다고는 하지만,
부산 사정은......
와.......
난리, 이런 난리도 없었다.
신호등 신호와는 상관없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게 만드는 엄청난 교통 체증에 놀란 민재와 아이,
“헉, 부산이 원래 이렇게 교통이 복잡한가요? 아님 오늘 무슨 행사 같은 거라도 있어요?”
민재의 말에 택시기사는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어데예? 그래도 어제보다는 안 막히는 건데예?”
이게 어제 보다 안 막히는 거면 대체 평소에 교통 사정이 어떻다는 말인지???
민재는 이번에 부산 다닐 때에는 되도록 출퇴근 시간은 피해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느껴졌다.
* * *
부산 영도에 있는 태종대에 도착한 두 사람,
신라 시대 태종 무열왕 김춘추가 활을 쏜 곳으로 알려진 이곳은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기암괴석들과 멋들어진 나무숲이 어우러진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관광지였다.
사실 민재는 이곳에 아이를 데리고 오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경험상, 여자들은 데이트 할 때 많이 걷는 데이트 코스를 별로 안 좋아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외로, 태종대를 걸어서 다 돌아보겠다고 한 건 다름 아닌 아이였다.
“저 운동 삼아 태종대 한 바퀴 돌아볼게요. 그래서 이렇게 운동화까지 신고 나온 거예요.”
“괜찮겠어요? 여기 한 바퀴 다 걸으려면 1시간도 더 걸릴 텐데?”
“괜찮아요~! 이따 오빠랑 이 앞에 조개구이 먹으러 갈 거잖아요? 이렇게 미리 걷고 운동을 해둬야 맛있는 조개구이 많이 먹을 수 있잖아요~!”
이야......!
아이는 계획이 다 있구나!
진짜로 아이는 민재의 손을 잡고 한 시간 가까이 태종대를 한 바퀴 돌았다.
“우와......! 역시 점심을 안 먹어서 그런가? 진짜 이렇게 운동 삼아 걸으니까 엄청 배가 고파지는데요?”
“아이, 아까 휴게소에서 점심 먹었잖아요?”
“으응? 제가 먹은 거 점심 아니라 간식이었어요~! 제가 고른 거 다 밥이 아니라서 금방 다 소화되어 버린 거 같은데요?”
흠...... 아이가 먹은 게 다 간식거리, 주전부리는 맞긴 한데......
타코야키, 맥반석 오징어, 델리만쥬, 통감자, 핫바, 떡볶이, 거기에 이거랑 같이 마신 콜라까지 합치면 거의 두 끼 식사 분량의 칼로리 아님???
어쨌든 운동으로 소화가 다 되었다니 그건 다행일세......
“자, 오빠, 이제 태종대 다 돌았으니까 조개구이 먹으러 가요! 어서요~!”
아이는 활짝 웃는 얼굴로 그의 손을 잡고 영도 바다 쪽으로 쪼르르 달리기 시작했다.
* * *
민재는 조개구이촌이 있는 영도 자갈마당에 도착해 조금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흠...... 예전에 왔을 때랑 많이 바뀌었네요.”
“어떤 게 바뀌었어요, 오빠?”
민재가 바다 앞으로 무수한 검은 자갈들이 깔려 있는 자갈마당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렸을 때 여기 왔을 때에는 이 자갈마당 위에 조개구이집들이 잔뜩 모여 있었어요. 그 때에 우리 아버지가 과거 TV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 야구 선수 이대호가 이승기를 데리고 조개구이 먹었다는 그 맛집을 찾아서 들어갔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자갈마당에서는 조개구이집들이 모두 없어졌네요.”
조개구이집들은 자갈마당 뒤쪽, ‘조개구이촌’으로 모두 자리를 옮겨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곳에 적당한 식당을 찾아 들어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모, 저희 조개구이 대짜 하나랑 전복구이 대짜 하나, 소주 두 병 주세요!”
민재가 주문을 하자 아이가 갑자기 추가로 주문을 했다.
“저희 낙지 탕탕이도 하나 같이 주세요~!”
민재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 낙지도 먹을 줄 알아요?”
“아뇨, 아직 한 번도 못 먹어 봐서 어떤지 먹어보고 싶기도 하고, 또...... 그게 남자 건강에 엄청 좋다고 하던데요.......?”
그러면서 살짝 얼굴을 붉히는 아이.
어......?
남자 건강......?
낙지도 남자 건강에 좋기는 좋지......?
그런데 옆에 메뉴표에 남자 몸에 좋기로 유명한 장어구이도 같이 붙어 있는데 굳이 낙지 탕탕이를 주문한 걸 보면 순전히 본인이 먹고 싶어서 시키는 거 아님......?
“외국인들 중에 낙지 싫어하는 사람 많던데, 아이는 괜찮아요?”
“일본에서도 문어나 오징어 많이 먹어서 별로 이상하지는 않아요. 그래도, 한국 사람들이 영화 올드보이 에서처럼 산낙지를 그냥 한입에 먹는 거 보면 조금 무섭기는 해요. 오빠도 산낙지 드셔 보셨어요?”
“나도 아직 산낙지를 먹어보지는 못했어요.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산낙지 잘못 먹다가 목이 막혀 죽은 사람이 많다고, 낙지는 절대 산채로 먹지 말고 잘게 썰어서 먹거나 불에 익혀 조리한 것만 먹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거든요.”
“아아~ 역시 산낙지도 개고기처럼 한국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게 아니라 호불호가 있는 음식이었군요?”
“그렇다고 봐야죠? 나는 산낙지가 복어 요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맛은 있지만 먹을 때 정말 주의를 요하는 복어 요리 말이에요.”
“맞아요. 일본에서도 가끔 잘못 요리한 복어 요리 먹고 사람들이 죽는 경우가 있었어요. 복어 독을 제대로 제거하지 못하고 그거 먹다가 죽은 사람도 있고, 심지어 일부러 복어 독을 같이 요리해 먹다가 먹는 양을 조절 못해서 죽은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요.”
“일부러 복어 독을 같이 먹는다구요? 그런 요리도 있어요?”
“네, 아주 소량의 독을 복어 고기랑 같이 해서 먹으면, 약간 마약처럼 색다른 자극을 느낄 수 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이때 복어 독을 아주 조금만 넣어야하고, 점점 독의 내성이 쌓일 수 있게 아주 가끔씩 먹어야 하는데, 그 복어 독의 짜릿한 기분을 느끼겠다고 멋모르고 많이 먹다가 죽는 사고가 가끔 일어나곤 했거든요.”
그 때 조개구이집 사장님이 먼저 홍합탕과 콘치즈를 가져다주었다.
일회용 호일 접시에 올린 콘치즈를 연탄불 위에 올리니 그 위에 치즈가 사르르 녹아내리는데......
고소한 콘치츠 익는 냄새에 절로 군침이 돌았다.
“이타아키마스~! 잘 먹겠습니다~!”
아이는 기뻐하는 얼굴로 수저와 젓가락을 양손에 들고 먼저 홍합탕의 홍합부터 먹기 시작했다.
“와, 홍합탕 진짜 대박이에요~! 한국 식당은 어딜 가나 메인 요리 말고도 이런 사이드 메뉴들, 반찬들이 푸짐하게 나와서 너무 좋아요. 일본에서는 이런 사이드 메뉴 시키려면 다 돈을 내고 따로 주문해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마 다른 나라들도 거의 대부분 그럴 거예요. 한국 식문화의 조금 독특한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이윽고 치즈와 양념이 올라간 조개구이가 나오고, 전복구이, 낙지 탕탕이가 같이 나왔다.
조개구이집 사장님이 직접 연탄불 위에 가리비와 조개를 올려주시며 먹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다.
하얀 가리비 위에 올려진 치즈와 양념들이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며 고소하면서도 짭조롬한 바다의 향이 식욕을 마구 자극하고 있었다. 아이는 양손에 젓가락을 들고 조개구이, 전복구이가 어서 빨리 익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일본에도 조개구이가 있죠?”
“네, 있어요. 그런데 한국하고는 달라요. 그냥 조개나 해산물을 별다른 양념도 없이 가스불에 구워 먹는 게 다에요. 한국처럼 치즈 같은 것도 안올려주고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한국 사람들은 진짜 천재인거 같아요. 어떻게 조개에 치즈를 같이 올려 먹을 생각을 했는지 몰라요. 원래 한국 사람들은 몽골 사람들이나 유럽 사람들처럼 치즈를 즐겨 먹던 사람들도 아니었는데 말이죠. 이런 거 보면 정말 신기해요.”
사장님이 주문한 소주도 가져다주신다. 부산에서 나온다는 ㄷㅅ 소주였다.
“자, 그럼 우리의 행복한 첫 번째 여행을 위해!”
“네, 간빠이~!”
민재와 아이는 소주로 건배를 나누었다.
“크으~! 와~! 역시 소주 조개구이 같은 해산물하고 정말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아, 맞다! 낙지 탕탕이도 먹어봐야지?”
아이는 낙지를 날게 썰어 참기름에 무친 낙지 탕탕이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으음~? 이거 완전 맛있는데요? 누가 낙지를 이상한 음식이라고 한 거예요?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아이는 낙지 탕탕이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직 참기름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낙지들을 젓가락으로 열심히 공략하고 있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연탄불 위에 조개구이를 올려놓고,
너무나 아름다운 아이와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으니,
민재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취한 듯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참, 아이. 우리 내일 요트 타고 바다로 나갈 거고 호텔 수영장도 갈 건데, 수영복 가지고 왔어요?”
“당근이죠! 혹시 몰라서 7벌이나 챙겨왔어요!”
“와~! 수영복이 그렇게나 많아요?”
“네, 제가 산 것도 있고, 그리비아 화보 촬영할 때 협찬사에서 준 것도 있어요. 오빠가 어떤 수영복을 좋아할지 몰라서...... 그래서 많이 가지고 와 봤어요......”
수줍은 듯이 미소 짓는 그녀,
그녀의 몸매에 어떤 수영복이 안 어울리겠나?
민재는 지금도 인터넷에 남아 있는 아이가 비키니, 수영복, 속옷 등을 입고 찍은 그라비아 화보를 가끔 찾아보고 있는 중이다.
물론 어느 정도 보정을 한 사진이겠지만 그녀의 사진을 볼 때면 정말로......
어우야......
뭐, 매일 서로의 벗은 몸을 보고 함께 자고는 있지만 수영복, 비키니를 입는 건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기회 아니겠나?
민재는 하루 빨리 내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