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7화 〉아이의 한국 여행 - 부산 (8) (67/140)



〈 67화 〉아이의 한국 여행 - 부산 (8)

아이의 한국 여행 - 부산 (8)

다음 날 오전,


아이는 자신이 한 말대로 정말 어제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급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오전에 있을 촬영을 위해서였다.



민재는 아이를 두고 혼자서 밥을 먹을  없었기에, 호텔에서 웰컴티와 함께 나오는 쿠키를 까먹으며 허기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호텔 조식 뷔페마저 패스한 두 사람,



10시가 되자 다정하게 손을 잡고 호텔에서 소개해준 드레스샵으로 향했다.

민재가 촬영을 위해 선택한 예복은 검은색 싱글버튼에 나비넥타이를 하는 스텐다드한 스타일의 정장,

아이는 어깨와 가슴골을 시원하게 노출한 A라인 스타일의 웨딩드레스를 선택했다.


드레스와 연미복을 1회 대여해주는 비용은 둘이 합쳐 60만  정도.




유명 디자이너의 의상이 아니라면 예복 대여료는 그리 비싼 편이 아니었다.



예복을 입은 두 사람은 진짜 막 결혼한 신혼부부처럼 즐거워하며 호텔에서 계약한 포토그래퍼와 함께 촬영을 하러 이동했다.



그들이 사진을 찍기로 한 곳은 호텔과 가까운 요트 선착장.




푸른 바다와 하얀 돛을 단 요트를 배경으로, 두 사람은 포토그래퍼가 주문하는 포즈들을 열심히 취하고 있었다.

서로 다정하게 선 모습, 서로 안고 사랑스럽게 쳐다보는 모습, 서로에게 키스를 하는 모습, 민재가 그녀를 번쩍 안아드는 모습......



포토그래퍼는 아이가 너무나 능숙하게 포즈와 표정들을  살리며 촬영해 임하자 매우 만족스러워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야~! 신부님 완전 모델이시네요~! 얼굴 표정부터 자세 잡으시는 것까지, 진짜 모델이라고 해도 믿겠습니다.”


응, 나루사와 아이 원래 모델이야. 그냥 모델이라고 믿어도 돼.

촬영이 모두 끝나고, 포토그래퍼는 사진들을 보정까지 완료해서 민재의 이메일로 보내주기로 했다.



이제는 예복을 반납하러  시간.




“흐응...... 웨딩드레스 너무 예쁜데, 이제 벗어야 되다니 아쉽다......”

민재는 아쉬워하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주었다.



“걱정하지 마요. 우리 결혼할 때, 그  내가 이거보다  예쁜 웨딩드레스 사 줄게요.”



“정말요? 아, 그런데......”



아이가 좋아하려다 말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생각해보니 웨딩드레스는 한 번 입고 또 입을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오빠한테 낭비하지 말라고 말해놓고서는 내가 그런 걸 사달라고 하면  되겠지요. 오빠, 웨딩드레스는 괜찮아요. 나중에 우리 결혼할 때에도 지금처럼 대여해서 입을게요. 대신에 오늘은 촬영 때문에 급하게 골라 입었지만, 우리 진짜 결혼할 때에는 정말 예쁜 드레스로 심사숙고해서 고를게요!”


아이는 이렇게 말하며 활짝 웃어 보였다.

* * *

예복을 반납하고 나오니 벌써 2시가 넘어 있었다.


“자, 이제 촬영 다 끝났으니 점심 먹으러 가요!”

아이가 이제부터 다시 먹방을 찍을 모양이었다.



“배 많이 고프죠? 뭐 먹으로 가고 싶어요?”



“음...... 어제는 돼지국밥 먹었으니까 오늘은 밀면이요! 어학당 친구들이 부산가면 돼지국밥 말고도 밀면도  먹어보라고 했거든요!”



민재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으로 부산의 밀면집을 검색해 보았다.

* * *



부산의 대표 밀면집을 검색해서 나온 집은, 의외로 상호명이 ‘밀면’이 아닌 ‘냉면’으로 간판을 하고 있었다.


부산의 외지, 우암시장 뒷골목에 있는 이 오래된 밀면집은 만화 ‘식객’은 물론 여러 맛집 프로그램에 소개되었을 정도로 상당히 유명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시원한 육수가 부어진 물밀면을 주문해 맛을 보았다.



“어? 이 맛은?”




밀면을 오물오물 먹던 아이가 이상하다는 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맛이 이상해요?”



“아뇨, 그게 아니라. 일본에 있는 모리오카 냉면하고 맛이 상당히 비슷해서 놀랐어요,”

“모리오카 냉면? 일본에도 냉면이 있다구요?”

처음 듣는 말에 민재도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네, 옛날에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분이 만든 모리오카 냉면이라는 게 있는데요. 이름이 냉면이긴 하지만 이 밀면처럼 밀가루로 만들었거든요? 그래서 맛이 되게 비슷하다고 느껴진 거 같아요. 물론 모리오카 냉면은 이 밀면처럼 다대기가 들어간 게 아니라서 맵지 않고 단맛이 강하다는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에요.”



“응, 그랬구나. 일본에 그런 냉면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근데 모리오카 냉면, 그거 일본에서도 유명한 음식이에요?”



“우동이나 라멘 만큼은 아니어도 그래도 인지도가 있는 편이죠.  여기 부산 밀면처럼, 모리오카 냉면도 모리오카 지역에서는 특산물로 여겨지고 있어요.”



“한국 사람이 만든 냉면이 일본 지역의 특산물이라니, 이거 놀라운 이야기인데요. 근데 이집 밀면은 어때요? 아이 입맛에는 맛있는  같아요?”

아이는 밀면 시원한 육수를 그릇째 주욱 들이키고는 손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맛은 있는데요, 약간 조미료 맛이 나는데......? 뭔가 조금 아쉬운 맛이긴 해요.”



말로는 아쉽다고는 하지만, 결국 밀면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야 마는 아이였다.




* * *



이렇게 부산의 원조 냉면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이후,

 사람은 그래도 서울로 돌아가기 전 부산 바다를 걸어보기 위해 광안리를 찾았다.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하고 수변 공원으로 들어가려던 중,



아이의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어머! 저기 회 센터! 생선 회 파는 곳이 있어요!”

보아하니 아까 밀면 만으로는 조금 양이 차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이, 한국에서 회 먹어  적 있어요?”




“네, 어학당 친구들이랑 같이 먹은 적 있어요. 원래 일본에서는 회를 주로 숙성시켜서 먹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싱싱한 채로 잡아서 바로 회를 뜨잖아요? 그 때 그거 처음 보고 조금 놀라기도 했어요. 그리고 간장, 와사비 말고도 초장에 회를 찍어 먹는 모습도 조금 낯설었구요. 저는 처음에 초장에 회를 찍어 먹는 게  싫었었는데, 초장의 새콤달콤한 맛을 알게 되니까  괜찮아지더라구요.”

“아이, 그럼 저기서 회 한 접시 떠와서 같이 먹을래요?”

“네, 좋아요! 그럼 소주도 같...... 아, 오빠 운전해서  되겠구나. 그럼 사이다랑 같이 회 먹어요!”



두 사람은 가까운 회센터로 들어가 광어회와 우럭회를 한 접시 사왔다.

광안리 수변공원에 앉아 함께 회를 즐기는  사람,

아이는 정말 초장맛이 익숙해졌는지, 회를 초장에 찍어  먹고 있었다.



 사람은 앞에 펼쳐진 광안대교와 진한 푸른빛이 감도는 부산 바다를 마음껏 감상하며, 사이다로 대신 건배를 나누었다.


“여기는 한강 공원의 바다 버전인거 같아요. 한강 공원보다 훨씬  트이고 시원한 느낌이에요.”




“그래서 이름부터가 수변공원이라고 하지요. 바다가 있는 도시라면 모두들 이런 공원이 하나쯤 있었으면 하고 부러워 할 정도로 잘 꾸며 놓은 것 같아요.”



“맞아요. 일본 나가사키에도 이런 수변공원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바다 옆에 예쁜 숲을 꾸며놓은 건 좋지만 여기 부산처럼 탁 전망이 트여있지도 않고 먹거리, 즐길거리도 많지 않아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죠.  번 가보면 좋기는 한데, 그렇게 기억에 오래 남을만한 곳은 아니에요, 거긴.”

아이가 회를 초장에 찍어 연신 오물오물 냠냠하며 물었다.

“오빠, 근데 만약에 오빠가 건물주가 안 되었으면 무슨 일을 하셨을 거 같으세요?”




“음...... 대학 가기 전까지는 진짜 무에타이 선수나 격투기 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나중에  체육관도 가지고 싶었구요. 그 때까지는  롤모델이 우리 체육관 관장님이었거든요.”



“아, 그 체육관에서 젓가락 던져서 기둥에 꽂으신 분이요?”


아이에게도 그 장면이 너무나 뇌리에 깊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네, 맞아요. 국군정보사라고, 우리나라 최고 특수부대 나오신 분이시기도 하시죠. 사실 군대 갈 때도 관장님 따라서 국군정보사에 들어갈까 생각하고 관장님께 상담 드린 적이 있었는데,  때 관장님이 저더러 국군정보사 가지 말고 그냥 평범하게 군 생활 하고 나오라고 만류하셨었죠. 그 때는 왜 절 거기 못 가게 하셨는지  몰랐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관장님께서 혹시 내가 잘 될 걸 아시고 절 국군정보사 못 가게 잡으셨던 게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어차피 한국 남자들은 모두 군대에 간다면서요? 그런데 국군정보사 거기 가는 거랑 다른 데 가는 거랑 뭐가 많이 달라요?”

“국군정보사는 간부, 직업군인으로 들어가야 해요. 일반 병으로 군대를 가면 1년 반인데, 국군정보사 같은데 간부로 들어가면 최소 4년은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헤에에? 4년이씩이나요? 1년 반도 너무 긴데 4년은....... 오빠, 거기 안 가시길 정말 잘하셨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만약 내가 거길 들어갔더라면 지금 이렇게 아이와 함께 수변공원에 앉아 함께 맛있는 회를 먹으며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도 못하고 있겠죠.”




그의 말에 아이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오빠가 국군정보사에 있었어도, 나는 오빠랑 만났을  같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만나야 하는 사람은, 결국 만나게 되어 있으니까요.”

아이는 수줍게 웃으며 그의 손을 맞잡았다.



* * *


광안리에서 호텔로 돌아가는 길,




민재는 센텀시티에 있는 S백화점으로 들어갔다.

세계최대규모의 백화점이라는 센텀시티 S백화점은 정말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와, 여기 백화점 진짜 넓다.......! 근데 오빠, 백화점에는 왜 오셨어요?”

민재가 아이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아이 구두 사주려구요.”



“구두요? 왜 갑자기요? 저 구두 많은데?”

“아까 우리 예복 입고 사진 촬영 할 때 생각한 건데, 아이가 가진 구두 중에 햐얀색 계통의 구두가 없더라구요. 나중에 진짜 웨딩드레스 입었을  신을 만한 하얀색 구두, 지금 사주려구요.”



그는 아이를 지미추 매장으로 데려가 마치 신데렐라가 동화속에서 신었을 법한 화려한 크리스탈이 가득 박힌 하이힐은 선물해 주었다.

뜻밖에 구두 선물에 아이는 표정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빠...... 너무 예뻐요...... 그런데......”


“그런데 비쌀 거 같아 부담스럽다는 말은 안 해도 되요. 이거 100만원도 안하는 거니까.”


“그래도...... 오빠, 너무 고마워요......”

그렇게 구두를 사서 매장을 나올 때,



아이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민재의 손을 잡고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위층의 남자 브랜드 매장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아이, 위에 더 보고 싶은 거 있어요?”




“네, 오빠 사주고 싶은 거 위에 있나 보려구요.”



그 말에 민재도 놀라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아이가 나한테 사주고 싶은 거요?”

“네, 나도 오빠 선물 사주고 싶어요. 내가 사 줄 거니까, 오빠 아무 말씀도 하지 말고 따라오세요.”

아이는 그의 손을 꼭 붙잡고 5층 톰포드 매장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고른 것은 톰포드 특유의 라인이 살아있는 깨끗한 하얀색 셔츠.


“오빠, 셔츠 입는  좋아하시니까, 이거 사주고 싶었어요.”



“아이, 그래도 난.......”



“나 돈 없는 사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를 위해서 나도 이런 선물 사주고 싶었으니까요.”

아이는 가지고 있던 카드로 결제를 하고는, 쇼핑백에 든 셔츠를 그의 손에 들려주었다.



* * *



두 사람은 호텔로 돌아오기 전, 동래파전과 막걸리를 사서 프레지덴셜 스위트 객실로 돌아왔다.




조명이 밝혀진 광안대교의 아름다운 야경이 바라보이는 거실에서

해산물이 가득 든 맛있는 동래파전을 먹으며, 와인글라스에 막걸리를 따라 건배하면서 부산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 두 사람.


“이번 부산 여행은 어땠어요?”

막걸리 한잔에 벌써 취한 듯, 두 볼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아이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무 좋았어요! 태종대도 너무 좋았고, 야구장도 너무 재미있었고, 특히 웨딩드레스 입고 선착장 배경으로 오빠랑 같이 사진도 남길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우리  사진 오면 크게 인화해서 액자에 담아 거실에 걸어놔요!”




“결혼사진처럼 말이죠? 그럼 우리 진짜 결혼할 때 찍은 사진은 어떻게 하려구요?”



“우웅...... 그건 그 옆에 걸면 되겠죠?”


민재는 그녀 말에 웃으며 키스를 나누었다.



이렇게 두 사람 모두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바로 결혼까지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앞에 거짓말처럼 생각지도 못한 이변이 일어나게 되는데,


갑자기 그녀가 그들 앞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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