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프로 골퍼 이혜인 (1)
프로 골퍼 이혜인 (1)
4박 5일 부산 여행을 마치고 서울 강남구 삼성동 A아파트로 돌아온 민재와 아이.
그 후로 두 사람은 상암 경기장으로 프로 축구 경기도 보러 가고,
인천 여행도 다녀오고,
용인 민속촌과 에버랜드, 케리비안베이에서 놀다오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만끽했다.
그러던 7월의 어느 날,
민재와 아이는 오랜만에 단정한 정장을 입고 외출을 하게 되었다.
민재의 대학교 시절 은사, 정 교수의 책 출판 기념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정 교수는 국내에 유명한 심리학자로, TV와 언론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진 인물이었다.
63빌딩 컨벤션에서 열린 그의 출판 기념회에는 학계는 물론 정계, 재계, 방송계의 여러 유명 인사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주고 있었다.
“어머, 저 분 아나운서 아니에요? 아레? 저 사람은 탤런트인거 같은데? 요즘 드라마에도 나오는 중견 탤런트?”
아이는 TV에서 보던 유명인들이 여럿 지나다니는 것을 보고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출판 기념회는 스테이크와 와인이 곁들여진 저녁 식사 모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때를 기다리던 민재가 아이를 데리고 정 교수에게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교수님, 새 저서 출판을 축하드립니다.”
그를 본 정 교수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이게 누구야? 강 군 아닌가? 요새 삼성동으로 이사 갔다며? 그래서 그런가, 신수가 아주 훤해 보이는구먼? 허허허. 옆에 있는 아가씨는 누구신가? 여자 친구야?”
“네, 맞습니다. 나루사와 아이라고, 일본에서 온 유학생입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아이는 정 교수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다.
“일본에서 오셨는데 한국어가 아주 유창하신데요? 일본에서도 한국어를 배우셨던 건가요?”
“아니오, 지금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어요. 그 전에는 한국 드라마 보면서 조금씩 독학을 했었구요.”
“오, 그래도 한국어가 정말 자연스러우시네요. 단기간에 이 정도로 말 할 정도라면, 타고난 어학적 재능이 있으신가 봅니다.”
“아니에요. 재능은 아닌 거 같고...... 그냥 오빠랑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한국어를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어요......”
아이는 얼굴을 붉히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민재는 정 교수와 함께 와인을 마시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정교수가 민재에게 물었다.
“그런데 강 군, 자네는 언제 골프 시작할거야? 나랑 같이 필드도 나가보고 그래야지?”
“앗, 그게...... 제 나이에 골프를 하는 건 너무 이르지 않을까 하고 생각 돼서요...... 지금 따로 하고 있는 운동들도 있구요.”
민재는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따로 하고 있는 운동? 그 태국에서 하는 무에타이인가 뭔가 하는 격투기 말인가? 뭐, 아직 자네가 20대라 상관없겠지만, 그 운동 나중에 나이 먹고 계속 하기는 힘들지 않겠나? 골프는 나중에 나이 먹어서도 즐길 수 있지만, 그 때가서 배우려면 힘들어. 젊어서부터 미리 배워두는 게 좋지. 게다가 자네처럼 투자할 일도 많은 사람들한테 골프만큼 좋은 취미도 없을 거야. 함께 골프 라운딩 하면서 사람도 사귀고 사업과 투자, 경제 돌아가는 거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여러모로 유익한 점이 많을 걸세.”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민재는 은사와의 대화를 통해 이번에 한 번 골프를 시작해볼까 마음먹게 되었다.
* * *
바로 다음 날,
민재는 바로 전문 업체에 연락해 대치동 건물 나만의 헬스장 공간에 스크린 골프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타석은 아이와 함께 연습할 수 있도록 2개를 설치하기로 했다.
스크린골프장 작업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타석과 스크린, 암막커튼과 그물망, 조명, 영상 장비와 터치식 모니터까지 모두 설치하고 프로그램까지 세팅하는 데 이틀이면 충분했다.
이제 골프를 배우고 연습할 수 있는 시설이 준비 되고, 기본적인 우드와 퍼터, 골프가방 같은 장비들도 구입 완료.
다음은 골프를 가르쳐 줄 사람을 구할 차례였다.
민재는 정 교수로부터 레슨을 도와줄 프로 골퍼 한 명을 소개 받았다.
“이혜인이라고 프로 골퍼가 있는데 참 싹싹하니 친절하게 잘 가르쳐 준다고 하더군. 지난번에 K대 김 교수가 이 프로한테 레슨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나쁜 습관도 많이 고쳐지고 비거리도 늘고 진짜 레슨 효과가 괜찮았다고 엄청 좋아하더라고.”
민재도 아이와 함께 레슨을 받게 되는 거니만큼 남자 강사보다는 여자 강사를 섭외하는 게 더 괜찮을 듯 싶었다.
섭외하기 전 강사 프로필을 받아보니 나이는 스물다섯으로 민재보다 한 살 어렸다.
‘경력을 보니 아마추어 때 우승도 해보고 국내 프로 대회에서도 탑 10에 든 적도 있네? 이 정도면 괜찮은 선수겠지?’
민재는 프로필을 죽 훑어보고 그녀를 채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레슨은 며칠 후부터 바로 진행되었다.
레슨 첫날, 몸에 피트 되는 골프바지와 반팔 골프웨어를 입고 포니테일 머리를 질끈 묶은 혜인이 대치동 민재의 건물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프로 골퍼 이혜인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혜인은 170cm의 큰 키에 상당히 건강미 넘치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게다가 얼굴도 살짝 성형 수술을 한 거 같긴 했지만 연예인처럼 예쁜 편,
가슴도 아이만큼은 아니지만 티셔츠 윗부분이 꽉 끼어 보일 정도로 제법 커다래 보였고,
다른 곳보다 허벅지와 엉덩이가 무척이나 탄탄해 보였다.
혜인은 두 사람에게 기본적인 스윙 자세부터 꼼꼼히 지도해 주었다.
“회원님, 이 때 스윙하면서 머리가 같이 돌아가면 안 되구요, 시선은 계속 고정해 주시고...... 네, 그렇죠! 나이스샷~!”
정 교수의 말대로, 혜인은 무친절하고 꼼꼼하게 잘 지도해 주는 스타일이었다.
잘못된 동작을 지적해 줄 때도 듣는 사람 기분 상하지 않게 말도 조심조심 하고, 무척 상냥하고 모습이었다.
특히, 같은 여자인 아이에게 허리와 엉덩이도 직접 손으로 잡아주며 스윙을 할 때 불필요한 동작이 없도록 자세 교정도 시켜주는데,
아이도 그녀의 사근사근함이 좋았는지 둘은 금세 친해지는 모습이었다.
레슨이 끝난 후, 민재와 아이는 혜인과 함께 옆에 있는 휴게실로 이동해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혜인이 무척 마음에 드는 듯,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그럼 언니는 지금도 프로 선수 생활 하시는 거예요?”
“네, 국내 대회하고 일본 대회에 주로 나가고 있어요.”
“와~! 대회 나가면 상금도 있죠? 언니 돈 많이 버시겠어요?”
혜인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우승하거나 상위권에 들지 못하면 상금은 그리 많지 않아요. 대부분의 골퍼들은 상금보다는 스폰서 후원을 받아 운동을 계속하거나 아니면 저처럼 골프 레슨하면서 투잡을 뛰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민재가 스포츠 드링크를 들이키다 말고 물었다.
“그래도 스포츠 선수들 중에는 실력보다 외모나 광고 효과만으로도 후원을 받는 경우가 있다고도 하던데요? 강사님 정도라면 광고 효과 때문에라도 후원제의가 들어오셨을 거 같은데 아닌가요?”
이번에도 혜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외모 때문에 후원 받는 운동선수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정말 극소수에요. 진짜 빼어난 실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광고 효과가 그리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거, 후원사 측에서도 잘 알고 있거든요. 저 같은 경우도 스폰서 제의가 들어오긴 했지만 조금...... 이상한 요구를 하는 곳들이 많아서 전부 거절했어요. 그런 스폰서 받을 바에야 이렇게 레슨 뛰면서 투잡 하는 게 훨씬 더 마음 편하고 떳떳하게 운동할 수 있으니까요.”
조금 이상한 요구, 라는 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민재나 아이 모두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 운동하는 분들 사이에서도 그런 일이 있어요? 난 그런 일은 연예계에만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저도 일본에서 활동할 때 이상한 사람들이 그런 제의를 하면서 하도 못 살게 구는 것 때문에 결국 한국으로 오게 된 거거든요. 그래서 언니가 그런 말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조금 이해가 될 것 같아요.”
“어? 그럼 회원님 일본에서 연예인 하셨던 거예요?”
“네, 아이돌하고 모델 일 했었어요.”
“어쩐지, 외모가 일반인 외모는 절대 아닌 거 같더라니! 전 회원님 처음 보고 너무 예뻐서 속으로 일본에서 연예인 한 사람 아냐? 이렇게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거든요!”
아이와 혜인은 금방 친구가 되어버렸다.
레슨이 끝난 후에도, 혜인은 민재의 나만의 헬스장에 있는 운동 도구들을 이용해 아이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웨이트 트레이닝들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와~! 언니! 골프 말고 이런 운동법들도 모두 공부하신 거예요?”
“골프 선수들은 비거리도 늘리고 몸의 밸런스도 유지하기 위해 늘 웨이트를 해야 하거든요. 여기 괜찮은 운동 장비들이 되게 많은데, 아직 이것들 가지고 운동해보신 적은 없는 거예요?”
“네, 제가 운동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해서요. 보통 여기 오면 K-POP 춤 연습을 많이 해요. 운동이라고 해봐야 트레드밀이나 스텝밀 정도만 하고 있구요.”
“그랬군요. 그럼 제가 오늘은 코어 근육을 단련할 수 있는 기본적인 프랭크 자세랑, 여기 이 보수볼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몸의 균형 잡아주는 운동들을 가르쳐 드릴게요.”
혜인은 아이에게 프랭크 자세 등 각종 운동들까지 열심히 가르쳐 주었다.
민재도 그녀가 아이에게 다른 운동들을 가르쳐 주는 것을 보게 되었다.
상냥하면서도 전문적으로 운동을 지도하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운동하기 싫어하던 아이도 무척 재미있어 하네? 저 강사, 진짜 괜찮은 거 같은데?’
민재는 두 사람이 운동하는 곳으로 다가갔다.
“혹시 앞으로도 골프 레슨 후에 아이에게 퍼스널 트레이닝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히 트레이닝 비용은 추가로 드릴게요.”
그의 말에 혜인은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해드릴 수 있죠. 그럼 앞으로 첫 시간은 골프 레슨, 두 번째 시간은 아이 회원님 퍼스널 트레이닝, 이렇게 진행할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그리고 레슨을 하시는 동안 이 공간에서 얼마든지 운동을 하시거나 골프 연습을 하셔도 되요. 저희가 없을 때도 들어오실 수 있도록 출입문 비밀번로 가르쳐 드릴게요.”
혜인은 밝은 얼굴로 감사를 표했다.
아이와 혜인은 운동이 끝나고도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수다를 떨었다.
민재는 그 둘이 좀 더 같이 시간을 보내줄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기로 했다.
“그럼 난 먼저 집에 돌아가 있을게요. 혹시 강사님하고 커피 마시거나 저녁 같이 먹을 거면 내꺼 카드 써요.”
민재는 아이에게 자신의 아맥스 카드를 건네주고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
* * *
아이는 저녁 8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민재는 어니언 베이글에 크림치즈 듬뿍 발라 커피와 함께 먹으며 넷플릭스로 드라마 몇 편을 보던 중이었다.
“오빠, 저 왔어요~!”
아이는 혜인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는지, 집으로 들어오면서도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강사님하고 같이 저녁 먹은 거예요?”
“네, 저녁 먹고 차 마시고 왔어요. 참, 오빠 저녁 챙겨드려야지!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민재는 아이가 주방으로 달려가려 하는 걸 붙잡고 그녀의 허리를 다정하게 끌어안아 주었다.
“괜찮아요. 오늘 운동도 많이 하고 피곤할 텐데, 난 괜찮으니 저녁 안 해도 되요.”
“으응~ 그래도 오빠 저녁 안 드셔서 배고프시지 않아요?”
“아뇨, 나 베이글에 커피 먹었어요. 그거면 됐어요, 난.”
“또 빵? 우으응~! 안 돼요, 빵은 간식이지 밥이 아니에요~! 제가 지금 당장 저녁밥 해드릴게요. 배고프셔도 조금만 참으세요~!”
아이는 쪼르르 마스터룸으로 들어가 집에서 입는 편한 옷을 갈아입고,
앞치마를 두르고 저녁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금세 한국식 불고기에 조개가 든 미소시루로 저녁 식사를 준비한 아이,
민재도 기쁜 얼굴로 그녀가 만들어준 저녁 식사를 맛있게 먹었다.
아이는 이미 혜인과 저녁을 먹은 탓에 민재와 함께 식탁에 앉아 디저트로 사온 치즈 케익을 먹고 있었다.
“강사님하고 어디서 식사했어요?”
“혜인 언니가 코엑스 안에 즉석떡볶이 맛집 데리고 가줬어요. 거기 진짜 주중에도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릴 정도로 맛집이더라구요! 차돌박이랑 매운까르보나라 두 개 시켜서 튀김이랑 라면사리 추가해서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강사님하고 오늘 처음 만났는데 정말 빨리 친해졌네요? 같이 식사도 하고 오고.”
“혜인 언니 정말 좋은 사람인거 같아요. 말도 너무 친절하게 하고 저랑 통하는 것도 많구요......”
그러면서 아이는 그녀와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도 소상히 말해주었다.
“요즘도 혜인 언니한테 이상한 사람들이 연락해오고 그런데요. 자기가 얼마를 후원해 줄 테니 얼마간의 기간 동안 자기랑 만나 달라, 이런 말 하는 사람들이 인스타 DM으로 막 연락 보내고 그런다는 거 있죠?”
“그런 목적으로 스폰서 해주겠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모양이네요. 얼마나 돈이 많으면 그런 말을 할까 궁금하기도 하네요. 그런데 그런 요구를 딱 잘라 거절하는 것 보면 생각하는 것도 바른 분인 거 같아요. 사실 돈 욕심에 그런 제의 승낙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텐데 말이죠. 남자친구나 사귀고 있는 사람 있어서 그러는 것일 지도 모르겠지만.”
“혜인 언니 남자 친구 없데요. 아예 결혼할 생각이 없다던데요?”
“응?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그럼 독신으로 혼자 살 거래요? 아니 왜? 무슨 종교적 신념 같은 거라도 있는 거래요?”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언니 말로는 자기가 비혼주의래요. 결혼이나 출산, 육아, 이런 거에 메이지 않고 편하게 사는 거, 그게 언니 꿈이래요.”
흠, 요즘 들어 ‘나 혼자 산다’처럼 혼자서 멋지게 사는 싱글족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굳이 평생 결혼하지 않고 살 필요가 있을까.......
지금 아이와 함께 있는 게 너무나 행복하기만 한 민재는 혜인의 비혼주의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