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프로 골퍼 이혜인 (4)
프로 골퍼 이혜인 (4)
짬뽕 라면과 갈비탕으로 아점을 먹은 이후,
아이는 또 혜인에게 오늘 오후까지만 같이 놀다가달라고 부탁했다.
혜인도 알았다며 이를 흔쾌히 승낙하고,
두 사람은 바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호텔 수영장으로 달려갔다.
혜인은 어제 가져온 붉은색 모니키니를,
아이는 일부러 그녀와 같은 색을 고른 듯, 마찬가지로 붉은색 비키니를 입고 있었다.
다정하게 손을 잡고 수영장으로 향하는 두 사람, 뒤에서 보면 영락없이 다정한 자매 같아 보일 정도였다. 키도 크고 나이도 세 살 많은 혜인이 언니, 10cm 작은 키에 동안의 아이가 동생. 누가 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민재 역시 두 사람을 따라 호텔 수영장으로 향한다.
하지만 오늘은 수영복 위에 자켓 스타일의 래쉬가드를 입어 상체를 가리기로 했다.
혜인의 눈길이 계속 신경 쓰였던 것이다.
아이가 혜인의 손을 잡고 카바나에 들어오며 말했다.
“언니, 여기 치킨이랑 떡볶이, 피자하고 맥주가 진짜 맛있는 거 알아요?”
“네, 나도 블로그에서 많이 봤어요. 나루사와 씨 어제 그거 다 먹어본 거예요?”
“네, 어제 오빠랑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언니도 같이 드실래요?”
“네, 좋아요.”
아이는 민재를 바라보며 ‘그거 시켜주세요~’ 하는 듯 웃어 보였다.
민재는 알았다는 듯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술은 뭘로 주문할까요? 샴페인? 아니면 칵테일?”
“샴페인은 어제 원 없이 마셨으니까 오늘은 그냥 맥주 마시면 좋을 거 같은데요? 어차피 치킨이랑 피자 먹을 거니까. 언니는 어때요?”
“네, 저도 맥주 좋아요. 치킨, 피자에는 역시 맥주죠!”
“그쵸? 흐흐흥~♡”
아이와 혜인은 까르르 웃으며 다정하게 개인 풀로 들어가 함께 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오고, 세 사람은 테이블에 둘러 앉아 맛있게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혜인도 운동선수라 그런지 아이 못지않게 잘 먹었다. 민재가 피자 한쪽, 치킨 두 조각 먹는 사이, 아이와 혜인 둘이서 순식간에 음식을 냠냠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는 바로 대형 풀로 내려가 함께 수영하며 노는 두 사람.
그녀들이 즐겁게 노는 동안, 민재는 타올이 깔린 베드에 누워 핸드폰을 확인해 보고 있었다.
마침 등촌동에 있는 건물 관리인으로부터 톡이 와 있었다.
도시 재개발 건에 대한 일이었다.
지금 그가 건물을 가지고 있는 등촌동 지역은 몇 년 전부터 재개발 계획 구역 내에 포함되어 있었다.
민재가 비교적 외지라고 할 수 있는 강서구에 건물을 매입했던 것도 사실 재개발을 통한 차익을 노렸던 것.
당시 30억 원에 매입했던 등촌동 건물은 재개발이 추진되면서 50억 원까지 가치가 치솟아 있었다.
그래서 등촌동 건물 각층 세입자들과의 임대차 계약은 모두 지난 달 6월을 끝으로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합의가 된 상태였고, 1층에서 토스트와 커피를 파는 자그마한 가게만 빼고 모두 퇴거한 상황이었다.
토스트 가게는 아직 새로 장사할 곳을 구하지 못해 나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긴, 등촌동이 그래도 서울 내 다른 지역에 비해 세가 싼 편이었는데,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그와 같은 조건의 건물 찾기는 힘들겠지. 게다가 나도 차익 때문에 그 건물 매입한거라 그분들께 세도 더 싸게 받았었잖아?’
민재는 바로 퇴거를 요청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토스트 가게 사장님들을 도울 수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보았다.
‘토스트 가게 사장님은 주민 이주 시작하기 전까지 장사하시겠다고 하시지만, 거기도 엄청 어수선할 텐데 장사나 제대로 하실 수 있을까? 아무래도 주중에 한 번 찾아뵙고 내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얘기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아. 혹시 내가 가진 다른 건물 공실에 들어오실 의향이 있으면 좋을 텐데. 월요일은 덕환이 유튜브 촬영하는 날이니까, 화요일에 가는 게 좋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들이 민재가 가진 건물에서 토스트 가게를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대치동은 이미 카페와 병원, 나만의 헬스장으로 전 층이 꽉 들어찬 상황이고, 이태원은 클럽, 펍, 라운지가 들어서 있어 더는 들어갈 공실이 없는 상황. 합정동은 공실이 있긴 한데 1층이 아니라서 어려울 것 같았고, 압구정, 방배동도 1층 공실은 없고......
서초동과 이촌동 건물에 들어갈 만한 자리가 있긴 한데 아무래도 강서구에 비하면 세가 비쌀 수밖에 없었다.
도와주려는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 *
혜인은 오후 5시까지 아이와 함께 놀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도 이제 수영장에서 원 없이 다 놀았다는 표정이었다.
“역시 여름엔 수영장 오는 게 최고인거 같아요!”
“아이는 캐리비안베이 같은 워터 파크하고 이런 호텔 수영장 중에 어느 쪽이 더 좋은 거 같아요?”
“우응...... 전 호텔 수영장이 더 좋은 거 같아요. 캐리비안베이도 엄청 재미있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복잡도 하고, 물놀이 기구 타려면 오래 기다려야 하기도 하고...... 차라리 이렇게 수영장에서 여유롭게 노는 게 더 좋은 거 같아요.”
“그래요. 아직 여름이 지나가려면 멀었으니까, 다음에 다른 호텔 수영장도 같이 가 봐요. 이번에 찾아보니까 광진구에 있는 W호텔하고 이태원에 있는 H호텔도 수영장이 되게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구요.”
두 사람은 짐을 챙겨 객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오빠, 아까 카바나에서 핸드폰으로 누구랑 그렇게 톡을 하셨던 거예요?”
아이도 아까 민재가 카바나 베드에 누워 톡을 주고받는 걸 본 모양이었다.
“등촌동 건물 관리인이요. 거기 지역이 재개발 되서 건물을 팔게 되었거든요. 그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아~ 하긴, 재개발이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겠죠? 저도 오또상(아빠, 아버지)도 재개발 지역에 가지고 있던 건물 때문에 그 지역 조합 사람들이랑 엄청 싸우시던 거 본 적이 있거든요. 그 때 조합에서 보낸 사람들이 오또상 건물 철거하려고 오고, 오또상은 아직 보상 안 끝났다고 막 싸우시고 그랬어요, 근데...... 그 때 조합에서 보낸 사람들이 자이니치 (재일 한국인, 조선인) 들이었죠. 그 때부터 오또상이 한국인이나 자이니치를 보면 그렇게 싫어하시게 된 거예요.”
아, 그랬구나. 아이의 아버지가 한국인을 싫어하게 된 게 바로 그 때문이었구나......
“재개발 문제는 참 복잡할 수밖에 없어요. 누군가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인데, 반대쪽에서 보면 자신들의 이권을 침해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 그래서 협의가 잘 나지 않으면 폭력도 불사하는 경우도 생기도...... 법을 통해 원만히 해결하려 해도 그것조차 쉽지 않은 경우가 많죠. 그런데 그 때 아이 아버님 건물에 해코지하러 왔다는 사람들이 전부 재일 한국인들이었을까요? 일본인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도 있었던 걸 오해하신 건 아닐까요?”
“오또상 말씀으로는 그 때 왔던 사람들 말하는 거 들어보니 전부 자이니치들이 틀림없었다고 그러셨어요. 근데 사실, 일본 내 자이니치들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 좋아서 더 그렇게 여기셨을 수도 있어요. 일본 사람들은 자이니치 하면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 변호사, 학자가 되거나 운동선수, 연예인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은 정말 극소수고, 대부분 야쿠자나 범죄에 가담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실제로 그렇지는 않지만 일부러 그렇게 자이니치들을 나쁘게 보는 시선들이 분명 남아 있는 거죠. 그들도 엄연히 일본 국적을 가진 같은 나라 사람인데도 말이에요.”
아이는 안타까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말에 민재는 지난번 야쿠자 타미야의 말을 통역해 주던 재일 한국인으로 보이는 야쿠자 똘마니의 얼굴이 생각났다.
“실제로 자이니치들이 일본 내에서 야쿠자나 안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건전하게 열심히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 일본에서의 친구들 중에서도 자이니치가 있긴 했지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전 오또상과 다르게 한국인들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았던 거고, 오빠를 처음 만났을 때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사귈 수 있었던 거 같아요. 편견만 갖지 않는다면 더 좋은 걸 볼 수 있을 텐데, 우리 오또상도 어서 빨리 자이니치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셨으면 좋겠어요.”
아이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민재의 손을 꼬옥 잡았다.
* * *
그날 저녁 두 사람은 B호텔 다이닝 라운지에서 이곳의 명물이라는 1.3kg짜리 토마호크 스테이크에 와인을 곁들여 즐겁게 식사를 나누었다.
식사를 하며, 민재가 아이에게 물었다.
“어제 오늘 강사님하고 계속 붙어 있다가 이제야 나하고 단둘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네요? 강사님하고 아이가 금방 친해진 거 같아 보여 좋았어요.”
아이가 활짝 웃는 얼굴로 답했다.
“혜인 언니는 정말 좋은 사람인거 같아요! 같이 있으면 너무 재미있어요!”
“응? 나보다도 더 재미있어요?”
“언니는 같이 있으면 재미있는 거고, 오빠는 같이 있으면 너무 좋아요. 둘이 많이 틀려요. 흐흐흥~♡”
뭐가 틀리다는 건지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민재도 그녀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데 그리 재미있어요? 퍼스널 트레이닝 때에도 둘이 운동을 하는 거 반, 얘기 나누는 거 반 이던데?”
“언니 연애 얘기요. 언니가 만난 남자들 이야기 해주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응? 강사님 비혼주의고 남자 친구도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결혼은 하지 않을 거라 비혼주의 맞고 정식으로 사귀는 남자도 없는데, 연애는 다 하고 지낸다는데요? 언니는 자유로운 연애를 하는 게 좋데요. 한 사람에게 매달리는 것보다는 그렇게 자유롭게 사는 게 좋다면서요. 그러면서 언니가 만난 사람들 얘기를 해주는데, 와~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되게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자유로운 연애, 라구요?”
흔히 자유로운 연애, 라고 하면 연예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거나 연인이 있지만 이성 친구들과 친구 사이로 자유롭게 만나는 것을 ‘자유로운 연애’ 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서양에서 자유로운 연애, ‘Open Relationship’ 이라고 하면 연인이 있어도 다른 사람과 자유롭게 만나고 심지어 성관계도 맺을 수 있도록 합의된 관계를 자유로운 연애라 말하곤 한다.
민재는 혜인이 이 둘 중 어느 개념의 ‘자유로운 연애’인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니까, 결혼은 하지 않을 건데 이성도 마음껏 만나고 연애도 마음껏 하고 즐기면서 살겠다. 섹...... 아니, 그것도 마음껏 하면서?”
“네, 그렇데요. 그래서 지금 언니는 사귀는 사람은 없지만, 섹....... 어머, (목소리를 한 충 낮추며) 섹스프렌드는 여럿 있데요. 심지어 그 사람들 중에 서양 외국인들도 있다고 하던데요?”
민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뭐...... 그런 건 그 사람 사생활이니까 뭐라고 할 건 아니지만...... 아이는 그런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설마, 아이도 강사님처럼 자유로운 연애, 라는 걸 해 보고 싶고 그런 건 아니죠?”
아이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어차피 평생 오빠 밖에 눈에 안 들어와서 다른 남자들 만날 생각 눈곱만큼도 없어요. 근데 언니 얘기 듣고 있으면 무슨 외국에 야한 드라마 얘기 같아서 너무 흥미진진한 거 있죠?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계속 듣게 되더라구요.”
“아이가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세헤라자드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임금님이 된 것 같네요.”
“맞아요. 딱, 그런 느낌이에요. 특히 언니가 전에 누구랑 어떻게 잤는지도 얘기해주는데...... 저도 그 얘기 듣고 나중에 오빠하고 같이 해봐야지, 이런 생각도 해보고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언니 얘기 듣다가 저도 언니한테 오빠 얘기도 해주거든요? 그럼 언니가 너무 부럽다고, 진짜 자기도 오빠 같은 남자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그러기도 했어요.”
민재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자, 잠깐, 아이! 그럼 강사님한테 우리 그...... 저기, 그 거시기한 이야기도 했던 거예요?”
“당연히 자세한 이야기는 안 했죠~! 그냥 오빠 꺼가 엄청 크고 엄청 잘해서 할 때마다 화장실 가고 싶어지고 너무 좋다, 이런 얘기 밖에 안 했어요~!”
아니, 이런 얘기를 이렇게 청순하고 아름다운 얼굴에 천진난만한 표정을 하면서 말하면 어떻게 하냐고~?!
민재는 살짝 난감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허 참...... 그러면 강사님이 계속 날 힐끔힐끔 쳐다본 게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민재는 아무래도 혜인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