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8화 〉아이 찾아 일본으로 (1) (78/140)



〈 78화 〉아이 찾아 일본으로 (1)

아이 찾아 일본으로 (1)



원래 매주 월요일은 덕환의 스튜디오로 찾아가 유튜브 컨텐츠를 촬영하는 날이다.




하지만, 아이가 아버님의 병환으로 몇 주 동안 일본에  있게 되었기에, 덕환에게 미리 연락을 해주게 되었다.


아이 덕분에 한창 유튜브 채널 구독자와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던 중이었는데, 덕환은 그 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낙담하는 듯 했다.



[아버님이 아프시다는데 어쩔 수 없지...... 그럼 내일 너라도 촬영하러 나올 거지?]



“아이가 못가니까 나라도 가야지.”




[응, 그래. 알았어. 월요일에 보자.]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덕환의 목소리가 무척 힘없이 느껴졌다.



지난 야쿠자 타미야 사건 이후, 민재는 덕환에게도 지금 아이와 동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게 되었다. 단, 유튜브 컨텐츠를 찍는 도중에는 서로 남남인 것처럼 하는 컨셉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지만, 둘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고 하트 뿅뿅 날아가는 게 진짜 시청자들 눈에도 보이는 건지, 댓글창에는 늘 ‘패널로 나오는 아이짱하고 민재가 혹시 사귀는 거 아님?’ 이런 댓글들이 여러 개 달리곤 했다.

민재는 혜인에게도 문자를 보내어 아이가 한동안 일본에 가 있게 되어 레슨을 잠시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아이가 돌아오면  때부터 다시 레슨을 부탁드린다고 정중하게 메시지를 보내었다. 물론, 이번 주 대회에서 좋은 성적 거두길 바란다는 말도 함께 덧붙여서 말이다.



혜인으로부터의 답장은 바로 날아왔다.



[그렇군요. 나루사와  부모님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저 그런데, 나루사와 씨가 돌아오기 전에도 가끔 대치동 건물에 운동하러 와도 될까요?]

살짝 신경 쓰이는 질문,



그래도 카페에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으니 저번처럼 찝적거리지는 못하겠지.

[네,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민재는 그냥 쿨 하게 허락하기로 했다.


아이가 일본으로 떠난 다음날 아침,




민재는 오랜만에 아파트 조식 서비스를 배달 시켜 아침 식사를 먹었다.

그 전에는 매일 같이 주문해 먹었던 아파트 조식이건만, 한동안 아이가 만들어주던 식사 때문인지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고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아이가 만들어 놓고 간 커리와 불고기 등 여러 가지 음식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아이가 일본으로 가기 전, 민재를 위해 밤새 그가 먹을 음식들을 만들어 놓고 간 것이다.

‘아이......’



음식들을 보자마자 벌써부터 그녀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정도였다.

어제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민재에게 전화를 걸었던 그녀,

이번엔 민재가 먼저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아이는 한국에서 사용하던 전화를 로밍해간 상태였다.



[모시모시? 여보세요? 오빠?]




아이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아이, 잘 잤어요? 지금 집이에요?”



[아뇨, 오까상이랑 같이 오또상 계신 병원으로 가고 있어요. 오늘부터 오까상이랑 같이 오또상 병간호 하려구요.]



“그렇구나....... 아이, 아침은 먹었어요?”



[네, 집에서 먹고 나오는 길이에요. 오빠는요? 오빠는 아침 드셨어요?  없다고 또 빵만 드시면 안 돼요. 제가 이것저것 만들어 놓고 왔으니까 꼭 그거랑 밥이랑 해서 식사  챙겨 드셔야 해요. 알았죠?]

그녀의 말에, 민재는 공연히 마음이 울컥해질  했다.


“네, 꼭 그럴게요. 참, 어머니께 그거 여쭤봤어요? 내가 가서 아버님 병간호 도와드리는 거?”




[네...... 오까상께 그래도 되냐고 물어보긴 했는데...... 역시 힘들 것 같아요. 지금 병원에 수시로 친척분들하고 오또상 지인분들이 병문안 오고 계신데, 그  오빠가 있는 거 보면 좋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면서요.......]



“그렇군요.......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집하고 병원은 가까워요?”



[네, 차로 20분 정도 밖에 안 걸리는 곳이에요. 다니기도 불편하지 않구요.]


“병원에서는 아버님이 언제까지 입원해 계셔야 한데요?”

[의사 선생님이 일단 한 달 정도 예상하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도 상태가 호전되면 그보다 일찍 퇴원하실 수도 있데요...... 아, 이제 병원 들어가 봐야 해요. 이따가 다시 통화해요, 우리!]

“그래요, 이따 다시 통화해요. 사랑해요.”

[나두 많이 사랑해요. 보고 싶어요, 오빠.]



보고 싶어요, 오빠.



민재는 이 말이 이렇게 애틋한 단어였는지 오늘에서야 실감이 됐다.



아침을 먹고 슬슬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을 때, 집으로 택배가 배달 왔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주문한 해먹,



아이와 함께 종로에 있는 P호텔 갔을 때 써보고 감탄(?)했던 바로  해먹 (똑같은 제품은 아니고, 인터넷 해외 직구로 구입한 보다 튼튼하고 럭셔리한 제품.  튼튼해야 하는지는 다들 아실 터...... 흠, 흠!) 이 도착한 것이다.

그는 마스터 룸 침대 옆에 해먹을 설치해 보았다.

이 해먹을 보고 있으니, 아이가 보고 싶은 마음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었다.

* *



그날 오후, 덕환의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마쳤을 때였다.

“야, 아이짱 없는 동안 다른 컨텐츠 할 만한 거 뭐 없을까?”

덕환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 때, 민재의 머릿속에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아! 나 대학교  교수님이 이번에 심리학 책 하나 출판하셨거든? 그럼 교수님 모셔서 심리학 컨텐츠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책 홍보도 하고 말이야!”



“심리학? 어...... 그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그 교수님 바로 섭외할  있어?”


“잠깐 기다려봐, 내가 바로 전화해볼게.”

민재는 지난번 출판 기념회에서 만났던 정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 * *




정 교수는 여름 방학 기간 중에도 학교에 나와 다음 학기 강의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민재와 덕환은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 유튜브 컨텐츠 출연 의사에 대해 조심스레 문의해 보았다.



“우리 강 군에게 자네 얘기 많이 들었네. 자네 유튜브 채널이라면 얼마든지 출연해 줄 수 있지. 촬영 일시하고 장소만 알려주게.”




“감사합니다, 교수님! 조만간 콘티 준비되는 대로 촬영 일시 다시 상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가 없는 동안 이를 메꿀 수 있는 컨텐츠를 잡게 된 덕환은 금세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교수를 만나고 돌아가는 길, 두 사람은 커피 한잔 마시고 가기 위해 대학 매점에 들렀다.


“야,  덕분에 살았다! 정 교수님이라면 TV 방송에도 많이 나오신 분인데,  분을 우리 유튜브 채널에서 모시고 컨텐츠를 만들  있게 되다니! 진짜 대박이다, 대박~!”


“이제 네가 재미있게 영상 만들기만 하면 되겠네. 열심히 해봐.”




“고맙다, 민재야. 오늘 커피는 내가 쏠게~!”

그렇게 들어간 대학 매점,




그런데 매점 구석 작은 공간에 공실이 하나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예전 민재가 이곳 대학에 다닐 때 자그마한 생과일 쥬스 가게가 있었던 자리였다.


‘그 생과일 쥬스 가게가 없어졌나 보네? 하긴, 지금 생과일 쥬스 인기도 많이 사라졌으니 이제 찾는 사람도 줄어들었겠지.’


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공실에 눈길이 가는데,

갑자기 등촌동 건물 토스트 가게 사장님 내외분이 생각났다.


‘아 맞다! 여기라면.......!’

민재가 후다닥 정 교수의 사무실로 뛰어가며 말했다.



“덕환아, 오늘 먼저 돌아가!  교수님께 말씀 드려야 할 게 아직 남아있어!”



“야, 커피 나왔는데 이거나 들고 가~!”


덕환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민재는 이미 쌩하니 사라진 후였다.



“뭔 일이길래  저렇게 헐레벌떡 뛰어가? 에잉, 커피 둘 다 내가 마셔야지!”



덕환은 양손에 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동시에 빨대로 빨며 자기 차로 돌아갔다.



* *

민재는 정 교수를 통해 전 생과일 가게 자리가 아직 비어있으며, 대학교에서도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로 새 사업자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듣게 되었다.


‘지금까지 등촌동에서 내가 받던 월세보다는 조금 비싸더라도 서초동이나 이촌동에 비해서는 훨씬 싼 가격이야.  정도면 토스트 가게 사장님도 마음에 들어 하실 거 같아!’




이제 건물마저 매각하고 보증금까지 돌려주었으니 더 이상 임대인과 임차인 관계도 아닐뿐더러,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이런 것까지 도와줘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민재는  분들을 끝까지 도와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 건물에서 장사하시던 분들인데, 그 분들이 끝까지 잘되셨으면 좋겠어!’


민재는 급히 강서구로 차를 몰았다.



마침 민재가 ‘전(前)’ 그의 건물에 도착했을 때,



토스트 가게 앞에 재개발 조합장 이기봉이 덩치  용역 회사 직원들을 데리고 와서 토스트 가게 사장 내외와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이미 강 사장으로부터 보증금도 다 받았다면서요? 그럼 이제 나가야지 뭐 하는 겁니까?”


“아직 이전해 갈 곳을 못 찾아서 그런 거라 말씀 드렸지 않습니까? 누가 여기 알박기 한답니까? 우린 그런 짓 안하니 걱정하지 마시라구요!”




“그런  하는 사람이 어디 한두 명인지 아쇼?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짐 다 빼고 내일부터  열고 장사하지 마세요! 만약 그러면 당장 구청에 연락해 강제 퇴거 조치 들어갈 겁니다! 강제 퇴거 되고 짐 다 빼면, 그 짐 찾는데도 돈 들어간다는 거 알죠? 괜히 이중으로 돈 들이지 말고 오늘 중으로 알아서 빠지세요!”



그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 차에서 내린 민재가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잠시 만요, 조합장님!”




민재의 얼굴을 본 이기봉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강 사장 아니시오? 이미 건물도 다 매각하셨는데 여기는 어쩐 일입니까?”


“제가 건물 매각하면서 이분들께 너무 가혹하게 대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렸을 텐데요? 아직 철거 시작도 안하고 있는 마당에 뭐가 급하다고 이리 박하게 구시는 겁니까?”


“이런 사람들이 하나둘씩 남아 있으니까 재개발 공사가 늦어지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수천수만의 선량한 조합원들과 그 가족들이 얼마나 피해를 보게 되는지 알기라도 합니까? 그로인해 발생하는 금전적 손해는 또 누가 감당하란 말입니까?”

민재가 이기봉 앞으로 다가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이 분들 이주는 내가 도와드릴 테니 더는 상관하지 마십시오. 만약 이분들 때문에 정말 재개발이 늦어지고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 점은 모두 내가 책임지고 보상해드리죠! 대신, 재개발이 늦어진 원인이 정말 이분들에게 있는지는 조합장님이 스스로 입증할 수 있으셔야 할 겁니다!”




“뭐, 뭐요? 아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뭐긴 뭐에요? 여기 이 건물  건물주지. 그런데 조합장님! 조합장님 따님이 이번  골프 대회에 출전하는데 D그룹 후원을 받게 되었다면서요? 그러고 보니 그 D그룹은 이번 재개발 시공사 후보 중 하나네요? 이거, 되게 재미있는 우연 아닌가요? 다른 건설사하고 수천억 원에서 수조원이 걸린 재개발 시공 사업권을 두고 경쟁하고 있는 D그룹이 갑자기 골프 선수를 하고 있는 재개발 조합장님의 따님 후원을 하고 나섰다? 게다가 따님은  전까지 다른 곳에서 단 한 번도 후원 받아본 적이 없는 선수라던데?”

이기봉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아, 아니 강 사장,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아, 아니, 그래서 뭘 어쩌란 말이오? 후원이야 우리 딸이 골프 잘 해서 받는 거지, 내가  어찌해서 그렇게 된 거란 증거라도 있소?  사람이 어디서 거짓 뉴스로 선동질이야? 당신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고 싶어?”




“하하하, 별 말 안했는데 혼자서 되게 발끈하시네요? 돌아오는 조합 총회가 다음 달이라고 하셨던가요? 그때 조합장님 재신임 투표도 있을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조합장님에 반대하는 세력도 제법 많은 상황 아닌가요? 그래서 이렇게 용역 직원들 엄청 많이 고용하고 계신거구요. 조합장님 밀어내고 자신이 조합장 되고 싶어 하시는 분도 여럿 있는 걸로 아는데, 그 분들이 D그룹에서 조합장님 따님을 후원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알면 어떻게 될까요? 재신임, 받기 싫으세요?”




이기봉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으흠! 으흠! 젊은 사람이 말도  되는 소리로 어디서 협박질이야? 제대로 알고서나 하는 말이야?”



“팩트 체크를 원하시면 이 문제 언론에도 뿌려드릴까요? 이런 일이라면 관심 있어 하는 기자들 되게 많을 거 같은데?”

“됐어! 젊은 사람이  짓이 없어서 늙은 사람한테 위협이나 하고 말이야! 자네 부모님이 그리 가르치던가?”


“아니,  부모님은 늘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살라고 가르쳐 주셨지. 당신 같이 야박하고 비열한 사람들로부터 괴롭힘 당하지 않게 말이야! 여기 토스트 가게 사장님들 이주는 내가 책임지고 해 드릴 거니까 이제부터 당신은 빠져. 가서 당신 일이나 똑바로 하라고!  같지도 않은 조합장 자리 하나 꿰차고 앉았다고 돈이나 헤쳐 먹을 생각이나 하지 말고 말이야!”

민재는 살기어린 눈빛으로 이기봉을 쏘아 보았다.

그의 눈빛에 질린 이기봉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용역 회사 직원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토스트 가게 사장 내외분은 밖으로 나와 민재에게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저 사람이 덩치들 데리고 와서 막 협박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무서워 떨고만 있었는데...... 이렇게 도와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민재는 토스트 가게 사장님의 손을 잡으며 기쁜 얼굴로 말했다.

“사장님, 제가 좋은데 발견했어요!”


“좋은 데라니요?”


“여기서 멀지 않은 대학교에 장사하실 만한 곳을 찾았어요! 보증금하고 세도 그렇게 비싸지 않아서 부담도 없으실 거고, 학생들도 많이 다니는 학교라서 장사도 잘되실 거 같아요! 저 믿고 같이   보러 가지 않으시겠어요?”



민재는 활짝 웃는 얼굴로 토스트 가게 사장 내외를 바라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