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9화 〉아이 찾아 일본으로 (2) (79/140)



〈 79화 〉아이 찾아 일본으로 (2)

아이 찾아 일본으로 (2)



민재와 함께 대학교 매점 공간을 둘러 본 토스트 가게 사장님 내외는 무척 마음에 들어 하며 당장 계약하고 내일부터 바로 이전할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지금 방학 중이라 오픈하고 당장은 힘들지 몰라도, 개강하면 학생들도 많이 오고 장사하시는 것도 나아지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사장님 내외분의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은혜는요, 이제 이전할 곳도 찾으셨으니, 대박 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잠시나마 자신의 건물에 계셨던 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민재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그는 사장님 내외분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왔다.


* * *

집으로 돌아와 아이가 만들어 준 불고기에 저녁밥을 먹는 민재.

항상 자신의 옆자리에 앉아 함께 밥을 먹던 아이의 모습이 그리워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밥을 먹고 거실 소파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TV를  때에도,

늘 그의 곁에 앉아 디저트를 먹으며 함께 드라마를 보던 아이 생각에, 좋아하던 맥주도 마시지 못할 정도였다.

‘아, 안 되겠어! 이러다 진짜 병나고 말지! 내일 당장 아이 찾아 일본으로 가야겠어!’

민재는 핸드폰을 들어 일본행 비행기와 호텔들을 빨리 찾아보기 시작했다.



* * *

한  여러 외교적 문제로 인해 한일 양국  긴장이 고조되면서 일본을 오가기 힘들어졌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시 여권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일본을 왕래할 수 있을 정도로 관계가 호전되어 있었다.


민재는 아침 일찍 인천 공항으로 달려가 일본 나리타 공항  출국 수속을 마쳤다.

아직 아이에게는 일본에 가겠다는 말을  한 상황. 가겠다고 말했다가 혹시 오지 말라고 하면 머쓱해질까봐, 아예 일본에 도착해서 그녀에게 연락할 생각이었다.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 1시간 정도 남아 있는데, 그냥 항공사 라운지에서 쉬고 있을까?’



이번에 일본으로 타고 갈 여객기는 국내 항공사 비즈니스 클래스,




게다가 여행을 자주 다니느라 공항 PP카드 (Priority Pass Card) 프레스티지 멤버십을 발급받아 가지고 있었기에 세계 어느 공항을 가던지 라운지로 들어가 쉴 수 있었다.


‘아, 맞다! 빈손으로 갈게 아니라 아이 부모님 선물이라도 사가야지! 라운지가 아니라 공항 면세점으로 가는 게 좋겠다!’



민재는 출국장으로 들어가 공항 면세점 구역으로 바로 이동했다.



면세점 여러 매장을 돌아다니며 어떤 선물을 고를까 고민하기를 30여분,

‘일단 아버님은 내가 오는 거 모르시는 게 나을 테니 어머님 선물만 고르는 게 좋을 것 같고..... 처음부터 너무 비싼 선물 사드리는  좀 그럴 테니 적당히 가치 있고 적당히 쓸 만한 걸로......’



라고, 생각했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선물이 없었다.

한국에서 여자 친구 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간다면 한우 세트나 쥬스, 홍삼, 녹용 세트 뭐 이런 걸 사가면 좋아하신다고 하지만, 일본인 여자 친구 부모님께는 무엇을 사드려야 좋아하실지 쉽게 감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민재가 고른 선물은 크리스찬 디올 여성 지갑과 김구이 선물 세트,



‘어머님 백은 나중에 사드리는 게 좋을 거 같고 지갑이 제일 무난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김은 일본인도 많이 좋아한다하니까 괜찮을 법한데? 선물이  부족하다 싶으면 일본 가서  사드리지 뭐.’



이미 다른 짐들은 화물로 맡겼기에, 지갑과 김구이가 든 쇼핑백은 직접 들고 비행기에 오르기로 했다.



* * *

아이가 살았던 곳은 도쿄 남쪽에 있는 치바 현, 나리타 국제공항과도 가까운 지방이었다.



루이XX 여행용 가방을 아이가 일본 가며 가져간 덕에, 민재는 이번에도 수트케이스에 짐을 넣어 왔다.



공항에 내려 짐을 찾고 로밍해  핸드폰을 켜보니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아이가 전화를 했던 것이다.



‘내가 일본에   알면 많이 놀라겠지? 바로 병원으로 가기 전에 호텔에 짐부터 놓고 가는 게 좋겠군.’



어제 호텔을 검색해보니 유명한 디즈니랜드 호텔 리조트가 그녀가 살던 곳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다. 처음에는 그곳을 숙소로 삼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 놀러온 것이 아니므로 그냥 번화가의 5성급 호텔, M호텔로 가기로 했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이동하면서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시모시? 오빠?]

아이의 반가운 목소리,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민재도 가슴이 뛰었다.



“아이, 아버님 병원에 왔어요?”



[네, 오빠. 오빠, 그런데  오빠 전화기 꺼져 있었어요?]




“으응~ 배터리  떨어졌는데 그것도 모르고 충전을 안 해놓고 있었어요.”



[아, 그렇구나. 오빠, 오늘도 내가 만들어  음식으로 식사 하셨죠? 빵 같은 건 안 드셔죠?]

헉, 아침에 배고파서 공항에서 햄버거로 끼니 해결했는데.



“어, 당연하죠! 그런데 아이,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몇 시까지 있어요?”


[저녁 8시까지 있어요. 식사도 오까상이랑 교대로 하고 있구요.]

“그럼 8시 이후에는 집으로 가는 거예요?”

[네, 맞아요. 오빠, 그런데 지금 어디 가세요? 차 안에서 운전하면서 통화하는 거 같은데?]



허헉! 그런 소리까지  들리나?


“어, 마, 맞아요. 차타고 일보러 어디 가는 중이에요.”


[아, 그렇구나. 그럼 이따 통화해요. 운전할 때 전화하면 위험하니까.]




“응, 알았어요. 그럼 내가 도착하는 대로 바로 다시 전화 할게요.”

[네, 오빠, 안전운전 하시구요. 사랑해요~♡]

이래서 사람이 거짓말 하면 안 되나 보다. 선의의 거짓말을 하려고 해도 떨려서 말이  떨어지지도 않으니.

민재는 우선 호텔에서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가 아이와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갈  즈음에 맞춰 아이의 집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아이가 일본으로 가기 전 부모님 집 주소를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찾아가기는 그리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민재가 예약한 객실은 킹사이즈 침대가 있는 스위트 룸.




아이가 이리로 올수도 있으므로 처음부터  방으로 예약했던 것이다.


40층 높이의 객실에서는 치바 시내 전경은 물론 가까운 저 멀리 도쿄의 모습까지도 내려다보이고 있었다.



‘휴우, 잠실 L호텔에서 보던 서울의 모습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망이 멋진 곳이네. 나중에 아이와 함께 여기서 야경 보면  좋겠다.’



이제 모든 것을 아이와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

이래서 사랑인가 보다.



* * *



민재는 여행복에서 말끔하고 단정한 정장으로 갈아입었다.




이번에 그가 가지고 온 건 이탈리아의 남성 명품 브랜드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수트. 그의  다리와 역삼각형 등 근육 라인 등 몸매를 잘 살리는 검정색 맞춤 정장이었다.

안에 셔츠는 아이가 부산에서 사준 톰포드의 하얀색 셔츠를 입고, 타이는 부드러운 인상을 주기 위해 분홍색 계열의 타이를 골라가지고 왔다. 커프스와 타이핀은 튀지 않고 모던한 느낌을 주는 몽블랑 제품을 착용했고, 시계는 화려하지 않고 심플한 디자인의 드레스위치인 파텔필립 칼라트라바를 착용했다.


아무래도 여자 친구 어머니, 가까운 미래의 장모님께 처음으로 인사드리러 가는 자리이니만큼, 최대한 깔끔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8시 즈음, 그는 호텔을 나서기 전 미리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 이제 집으로 가는 길이에요?”



[네, 이제 오까상이랑 돌아가려구요.]


“아버님 상태는 어떠세요? 많이 좋아지셨어요?”



[네, 의식도 있으시고,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점점 회복 중이신 거 같데요. 어쩌면 예정일보다 일찍 퇴원할 수도 있을  같다고 하시던데요?]

“잘 되었네요. 참, 병원에서 집까지 차로 20분 정도 걸린다고 했죠? 갈 때는 어떻게 가요?”

[오까상이 차를 가지고 오셨어요. 돌아갈 때도 그 차타고 갈 거구요.]


아까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M호텔에서 아이 부모님의 집까지 차로 이동하는데 20분 정도 걸린다고 결과가 나왔었다.



‘그럼 어쩌면 비슷하게 집에 도착할 수도 있겠는데?’



민재는 준비한 선물들을 들고 택시를 잡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 * *

아이 부모님이 사는 곳은 번화가에서 멀지 않은 조용한 주택가의 단독주택이었다.




일본 집들은 조금 작을 것이라는 선입관이 있었는데, 와서 보니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다. 치바현에 있는 대부분의 단독주택들은 한국에 있는 2층집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크기였다. 넓은 정원이 있는 집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집들이 작다는 느낌은 없었다.


아이 부모님이 사는 집은 모던한 디자인의 하얀색 콘크리트로 된 2층집이었다.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뾰족한 삼각형 지붕과 다소 작은 창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나중에 듣기로 이는 일본에 태풍과 지진 등 자연재해가 잦은 탓에 이런 구조의 집들이 많은 거라 했다.


마침 아이와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왔는지, 창밖으로 불빛이 보이고 있었다.


민재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조심스럽게 초인종을 눌러보았다.

띵동~!


잠시  인터폰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레데스카 (누구세요)?]



목소리로 보아 아이의 어머니인 듯 했다.




민재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는 인터폰에 입을 가까이 대고 미리 외워온 일본어로 말했다.

“아, 스미마센, 아이, 한고쿠 보이프렌드 데스 (실례합니다, 아이 한국 남자친구입니다).”

그 말에 아이 어머니도 크게 당황하신 듯 했다.

[헤에? 나니? 아이짜앙~ 아이짜앙~!]



잠시 후 인터폰이 끊어지고, 집 안에서 살짝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이내 밖으로 사람들이 나오는 소리가 들리고,




현관문이 열리더니 그토록 그리워하던 아이가 밖으로 뛰어 나왔다.



“오빠~! 오빠~!”



민재의 집에서 챙겨간 돌핀 팬츠에 티셔츠를 입고 나온 아이는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같은 표정으로 그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오빠, 어떻게 여기까지 오신 거예요?”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요. 하루 밖에  지났는데도 보고 싶어 못 견딜 거 같아서 바로 비행기 잡아타고 날아왔어요.”

“오빠...... 하잉, 오빠.......!”

아이는 당장이라고 그에게 끌어안고 키스를 하고 싶은 듯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하지만 현관문 뒤로 그녀의 어머니가 보고 계시기에  다 꾸욱 참는 중,



민재는 아이와 함께 나온 그녀의 어머니에게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드렸다.




“하지메마시떼, 강민재 데스. 요로시꾸오네가이시마스 (처음 뵙겠습니다, 강민재 라고 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본에서 사람을 처음 만났을  자주 쓰는 가장 일반적인 인사말).”


그를 찬찬히 내려다보던 아이의 어머니도 얼굴에 미소를 띠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하지메마시떼, 강 군. 코치라코소, 요로시꾸오네가이시마스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쟈, 도조 (상대방에게 어떤 행동을 권할 때 하는 말, 여기서는 ‘함께 집으로 들어가시죠’, ‘어서 같이 안으로 들어가시죠’ 와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아이의 어머니는 민재의 첫인상을 무척 좋게 보신 모양이다.




하긴 185cm의 키에 딱 벌어진 어깨, 얼굴은 뭐 말할 것도 없고 복장도 거의 완벽.

 정도 비주얼의 사윗감은 일본에서도 찾기 힘들겠지.

아이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집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오빠, 그래도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어떻게 멀리 일본까지 오실 생각을 다 하셨어요?”



“어차피 비행기 타면 한국에서 일본까지  시간밖에 안 걸리는데요. 그리고 아이가 옆에 없으니까 너무 괴로워서 내가 못 참겠더라구요.”

“제가 없으니까 괴로웠다구요? 어떤 점이 괴로우셨길레 하루 만에 일본까지 오신 거예요?”


“아이가 없으니까, 시간이 안 가더라구요.”


“네? 시간이요?”

“네, 아무리 기다려도 시간이 안 가고, 이대로 가만히 아이가 오기만을 기다리다가는 정말 내가 병이 날  같아서 그냥 아이 찾아서 날아왔어요.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해요.”

아이는 발그레해진 얼굴로 그의 얼굴을 올려보다가,

어머니가 먼저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후다닥 민재의 입술에 키스를  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