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2화 〉아이 동생 유키나 (1) (82/140)



〈 82화 〉아이 동생 유키나 (1)

아이 동생 유키나 (1)

민재는 아이가 렌트해 준 택시를 타고 아이 아버님이 입원해 계신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택시 기사가 재일 교포여서 한국말을 할 줄 알아 소통하기 편했다.

“기사님, 우선 1주일정도 렌트하고 이후 추가로 렌트해야 할  기사님께 바로 말씀드려도 될까요? 제가 일본어가 안 되서 회사에 직접 얘기하는 게 부담스러워서요.”

“네, 제게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그런데 관광 목적으로 오신 거면 여기 치바현에만 계실 건가요? 외지로 나가실 일은 없으세요?”




“글쎄요, 관광으로 오긴 했지만 본래 목적은 결혼할 사람이랑 그 가족 분들 만나러 온 거라서요. 여기서 가까운 도쿄는 갈 수 있겠지만 너무 멀리  일은 없을 거 같아요. 참, 치바현에 갈만한 데이트 장소, 어디 없을까요?”




“치바에서의 데이트라...... 역시 제일 유명한 곳은 디즈니랜드겠지요?”

민재 역시 이곳의 디즈니랜드가 유명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신 마당에 아이를 데리고 놀이동산에 가는 건 좋아 보일  없을 터.



“거기 말고 다른 곳은 없을까요?”


“다른 데라....... 가모가와 시월드라고 알고계세요? 상당히 유명한 수족관이죠. 거기도 사람들이 많이 가는 편이고, 후나바시에 있는 안데르센 공원, 훗스시에 있는 마더 목장, 도쿄 독일 마을도 가볼만 하실 거예요. 아, 사쿠라시에 있는 고향 광장도 괜찮겠네요! 거기 지금 해바라기 밭이 무척 장관인데, 젊은 연인들이 사진 찍으러 많이 찾는 곳이죠.”



민재는 택시 기사가 해주는 팁들을 일일이 핸드폰에 메모해 두었다.

약속한대로 12시 정각 병원 앞에 도착한 민재.

마침 아이도 정문 앞에 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 잘 잤어요?”

민재가 택시에서 내려 그녀에게 다가왔다.



곧바로 그녀를 꼬옥 끌어안고 키스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이의 뒤로 한 소녀가 서있는 걸 보고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키는 아이보다 조금 작은 157cm 정도. 투사이드업 (트윈테일의 한 종류, 양쪽 옆머리를 살짝 묶고 뒷머리는 길게 늘어뜨린 스타일)의 귀여운 헤어스타일에 날씬한 몸매와 다리,



하지만 역시 어머니 린코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덕인지 가슴사이즈만은 후덜덜한,



아이처럼 예쁜 눈을 가진 어여쁜 소녀, 유키나였다.



“오빠, 제 동생 유키나에요. 유키나, 인사드려.”



“안녕, 형부. 저 유키나에요.  부탁해요.”

유키나가 귀여운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일본어가 아니라, 조금 서툴지만 분명한 한국말이었다.


“안녕하세요, 처제...... 아, 아니, 유키나. 어, 근데 유키나도 한국말 할 줄 알아요?”


“쪼끔요. 언니처럼 잘은 못해요. 그래도 듣는   알아 들어요.”


아이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웃었다.

“제 동생 되게 똑똑해요. 저처럼 정식으로 한국으로 유학 와서 공부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 드라마 보면서 공부 한건데 이 정도에요!”


아이의 한국어 솜씨도 놀라운데, 그 동생은 혼자서 드라마만 보고도 진짜 한국인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우리말을 구사할 수 있다니......

민재는 자매의 어학 능력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는 두 자매를 위해 택시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그럼 함께 점심 식사하러 가실까요?”




아이와 유키나는 웃으며 뒷좌석으로 들어갔다.


민재가 조수석에 타 안전벨트를 매며 물었다.


“아이, 어머님께서는 식사 하셨어요?”

“네, 오까상은 점심 일찍 드시고 오셨어요.”



“다음번에는 어머님도 함께 식사해야 하는데, 내일 점심에 모시면 어떨까요?”




“네, 오까상께 말씀 드릴게요. 유키나짱, 아시타 (내일) 오까상 모시고 오빠랑 점심 먹고 올 테니, 그  오또상 병간호  부탁해.”



“오네짱 (언니), 오늘도 먹고 내일도 먹으려고? 그만  먹어, 이 폿챠리케이 (육덕, 꽃돼지, 일본에서 통통하고 귀여운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 야~!”



민재는 ‘폿챠리케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말에 저게 무슨 뜻이지? 하는 표정으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민재의 눈치를 살피며 유키나에게 귀엽게 화를 내고 있었다.


“마아? 누구더러 폿챠리케이래? 나 그 정도로  안 쪘거든?”


“살 안찌긴 뭘 안 쪄? 예전처럼 고부타짱 (새끼돼지)이라고 불러줘도 되겠구만. 한국 가서 형부랑 매일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닌  아냐? 메에에롱~!”



뭐, 둘이 맛있는 거 찾아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긴 했지. 서울 광장시장도 뿌시고 다니고, 부산 가서도 태종대부터 깡통시장까지 먹거리 여행도 다니고, 인천 갔을 때에도 차이나타운 백짜장 부터 성젠바오 (육즙만두), 화덕만두와 펑리수 (월병의 일종), 탕후루까지 두루 섭렵하고 오기도 하고......



먹을 건 다 챙겨먹었어도 살은 안 쪘다고 우기는 아이와 거기 팔뚝 뒤에 살 잡히는 것 좀 보라며 놀리는 유키나.

두 사람이 택시 뒷좌석에서 옥신각신 티격태격 거리고 있는 걸 보니, 역시 현실 자매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 *

민재는 자매를 M호텔 내에 있는 S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갔다.



레스토랑은 미슐랭 가이드 일본판에 소개된 바 있는 유명한 프렌치 레스토랑.



세 사람이 동그란 테이블에 둘러앉자 웨이트레스가 다가와 그들에게 메뉴판을 하나씩 건네주었다.




메뉴판을 둘러보던 유키나가 아이에게 말했다.

“오네짱, 여기는 메뉴판에 왜 price 가 안 써 있어?”

민재는 처음 유키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면 자신이 받은 메뉴판에는 각 코스별 가격이 모두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이의 메뉴판을 받아 보니 역시나.

아이의 메뉴판에도 가격이 쓰여 있지 않았다.


‘흠, 의례 남자들이 계산할 거라 생각하고 남자 손님에게만 가격표가 쓰여 있는 메뉴판을, 여자 손님에게는 가격표가 쓰여 있지 않은 메뉴판을 주는 모양이구나? 서구권에 이렇게 여성들을 배려하는 레스토랑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여기 일본에서도 이럴 줄은 몰랐네?’




물론 일본이라고 다 그런  아니고 여기 M호텔 S레스토랑과 몇몇 고급 레스토랑에서만 있는 일이었다. 국내에서도 간혹 이런 곳이 있기도 하고.

세 사람이 모두 코스를 고른 후, 주문은 아이가 일본어로 해주었다. 부친 병간호  나온 것이므로 와인이나 샴페인 등 술은 시키지 않기로 했다.

에피타이저부터 코스 요리가 하나씩 서브되고, 민재는 나루사와 자매들과 함께 음식을 들기 시작했다.




민재가 유키나에게 물었다.

“지금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하고 있나요?”




“교육학부 사회과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지금 1학년이구요.”


아이와 유키나는 두 살 터울이었다. 아이가 올해 스물 둘, 유키나는 스무 살로 올해 막 성인이 되었다.

교육학부, 라고 하니 조금 생소하게 들렸다. 아무래도 일본의 대학은 한국의 학부, 학과 이름과 조금 다른 모양이다.


“교육학부면 우리나라 사범대학이나 교육학과 같은 거랑 같은 걸까요? 나중 교원, 학교 선생님 되는 코스인거죠?”



“네, 맞아요. 저 나중에 학교 선생님 되는 게 꿈이에요!”



흠, 한국말도 혼자서 터득했을 정도면 나중에 선생님 되서 애들은 정말 잘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유키나는 이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 처음 와 봐 모든 것이 신기한 듯, 핸드폰 카메라로 이  저  사진을 찍고 있었다. 코스마다 들어오는 음식들은 모두 다 사진으로 남겨 놓고,




“형부, 조또 마떼 (조금만 기다려 줘요)! 사진 한 장 찰칵 할게요! 오네짱도 쪼또 마떼!”

민재와 아이의 음식도 모두 사진으로 남겨놓았다.


“우와, 얏따 (우와, 됐어)~! 오늘 인스타 올릴 포토 이빠이 데쓰네~!”

유키나는 사진들을 확인하며 즐겁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형부!”


아까부터 너무나 자연스럽게 형부, 라고 부르는 유키나.


일본에서는 ‘형부’라는 뜻의 호칭이 있긴 해도 실제로는 잘 쓰이지도 않고 그냥 서로 이름으로 부른다고만 알고 있는데, 아이한테 배운 건지 민재를 보고 계속 형부, 살짝 ‘ㅇ’ 발음이 안 되서 ‘혀-ㄴ-부’ 라고 부르고 있었다.

“네?”




“우리 오네짱, 어디 보고 반했어요?”

“하하, 어디 보고 반했냐구요?”

“네, 어디가 제일 예뻐서 사귀게 된 거예요?”



유키나는 테이블 앞으로 몸을 당겨 안고 민재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귀엽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가 제일 예뻤냐구요......?”

민재가 고민하는 표정으로 곁눈질해보니, 아이도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다 예뻤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그 말에 환하게 웃는 아이,



유키나는 귀엽게 얼굴을 찡그리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 한국에서는 오네짱 같은 스타일 인기 많아요? 폿챠리 같은 스타일?”


“유키나! 너어~?!”


또 한 번 ‘폿챠리’라는 말이 나오자 아이가 살짝 화를 내는 표정을 지었다.



“흠...... 그런데 유키나? 폿챠리가 무슨 뜻이에요?”



“폿챠리를 한국말로 뭐라고 해야 하지? 음....... 영어로 하면 Chubby? 형부, Chubby가 한국말로 하면 뭐에요?”




“Chubby면....... 토실토실? 통통? 육덕?”


“응, 맞아 맞아! 육덕! 폿챠리는 육덕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아요! 육덕 스타일, 흐흐흥~♡”




유키나의 놀림에 아이가 가볍게 화를 내며 말했다.


“나 폿챠리, 육덕 아니야~! 오빠 나 육덕 아니죠, 그쵸~?”



어......?


육덕이 아니라고 하기엔....... 흠, 흠!

아이가 G cup에 엄청 글래머러스하기도 하고 모델처럼 날씬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Chubby, 폿챠리, 육덕 소리까지 들을 정도는 아니지.

그저 가슴하고 엉덩이가 큰 것 뿐이지 다른 부위에 살이 많은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유키나도 다른 데는 언니 아이보다 날씬할지 몰라도 가슴과 엉덩이는 어머니 유전자 덕에 제법 육덕진  마찬가지인데, 요 녀석, 언니만 놀리기는......!



“하하하, 유키나가 보기에는 언니가 살짝 통통 해보여요?”


“응? 아니에요? 오네짱 아이돌  때부터 다이어트 해야 할 거 같다는  엄청 들었어요!”




유키나는 오랜만에 만난 언지 놀려 먹는 게 재미있었나보다.




“그런데 형부, 한국 남자들은 다 형부처럼  잘 생겼어요?”




음?

왜 이런  물어보지? 유키나도 한국 남자에 관심이 있는 걸까?



“아니,  그렇지는 않아요. 잘생긴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그래도 요즘 한국 남자들 대부분이 자기 자신을 잘 꾸미고 다니는 편이죠. 여자들만큼이나 화장이나 옷에 관심 많은 남자들도 많고.”


“그럼 형부 친구들 중에서도 잘생긴 한국 남자 있어요?”



유키나는 반짝반짝 기대에 가득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흠, 잘생긴 사람이라......’




그나마 유튜브 하는 덕환이가 잘 생겼긴 한데 지금 사귀는 사람이 있어서  될  같고......




민재도 마땅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내 주변에 있는 잘생긴 사람이 바로 생각나지는 않네요? 유키나, 한국 남자 친구 사귀고 싶어요?”

“네! 오네짱 보고 저도 한국 남자 사귀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럼 지금, 일본에서 사귀고 있는 사람은 없는 거예요?”



“고등학교 때까지 사귀던 애가 있긴 있었는데, 걔가 대학 떨어지고 재수하면서 저랑 헤어지자고 했어요.......”




헉, 이렇게 귀엽고 예쁜 애를 차버렸다고? 미친  아냐, 그 놈?

아무리 재수를 해서 공부에 전념하려 해도 그렇지, 유키나 정도 외모면 헤어지기 너무 아깝지 않나?



“일본에도 좋은 남자들이 많을 텐데, 한국 남자랑 사귀고 싶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요?”

“아! 오네짱한테 들은 건데요. 한국 남자들을 대부분 군대에 다녀온다면서요? 형부도 군대에 가서 북한군인도 보고 그러셨다는데, 맞아요?”


저번에 P호텔에서 아이에게 해준 귀순자 유도 작전에 참가했던 이야기를 유키나에게도 해주었던 모양이다.



민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얏바리~! 그래서 한국 남자들이 일본 남자보다  강하고 멋있게 느껴지는  같아요! 일본 남자들은 체구도 작고 목소리도 잉잉 거리고 남자다운 강한 모습보다 여자 같이 나약한 모습이  많은 거 같은데, 한국 남자들은 다 키도 크고 멋있고, 되게 터프하고 리더십도 있고...... 왠지 일본 남자들보다 다들 멋있을 거 같아요!”


흠, 흠......! 기대와 현실은 서로 다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아주 한국 남자들에 대해 바람직한 인상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한국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언제 한  유키나도 언니처럼 한국에 와 보면 좋겠네요.”


“네, 맞아요! 저도 기회가 되면 교환학생 같은 거로 한국에 가보고 싶어요. 아니면 오네짱처럼 한국 어학당에라도 들어가 보고 싶구요!”



세 사람은 점심 식사를 같이하며 계속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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