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아이 동생 유키나 (2)
아이 동생 유키나 (2)
유키나가 병원으로 돌아간 후, 민재와 아이는 함께 객실로 올라왔다.
“칫, 유키나 지도 은근 폿챠리면서, 누구더러 폿챠리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어요. 흥!”
아이는 아까 유키나가 자신을 보고 폿챠리라고 놀린 것 때문에 단단히 삐져 있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우리나라에서도 육덕이라는 말 들으면 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일본에서도 비슷하게 느낄 수 있겠다.’
민재는 아이의 어깨를 다정하게 안아주며 말했다.
“여동생이 그냥 놀리려고 한 말 같은데요, 뭘. 너무 마음 쓰지 마요.”
그래도 아이의 토라진 마음은 금방 달래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빠, 오빠가 보기에도 나 많이 뚱뚱해요?”
“아뇨? 전혀 뚱뚱하지 않아요. 난 지금 아이 모습이 너무나 좋은데? 게다가 요즘 운동도 해서 전보다 많이 건강해 보이기도 하구요.”
“그쵸? 오빠가 봐도 그렇죠? 그런데 유키나 걔는 왜...... 히잉~ 아무래도 한국 돌아가자마자 혜인 언니랑 운동 열심히 해야겠어요. 그리고 여기서 오또상 병간호 하면서도 틈틈이 운동하구요. 오빠, 좁은 공간에서 할 만 한 운동 중에 살 잘 빠지는 운동이 뭐가 있을까요?”
“역시 좁은 공간에서 단시간에 살 빼는 건 버피 테스트 (엎드려서 팔굽혀 펴기하고 다시 일어나서 위로 점프를 하는 동작)가 최고...... 지만 병원에서 그거 하면 안 될 것 같고, 역시 스쿼트, 앉았다 일어났다 운동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은데요?”
“스쿼트? 아, 맞다! 그거 혜인 언니한테 배운 적 있어요. 그거 이렇게 하는 거 맞죠?”
아이는 원피스를 입은 채 손을 앞으로 나란히 하고 스쿼트를 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민재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볼에 살짝 키스를 해주었다.
“네, 맞아요. 이 자세로 15회씩 3세트로 꾸준히 운동하고 조금씩 반복횟수랑 세트수를 늘리면 좋을 거예요. 그것도 하면서 카프레이즈라고, 뒤꿈치 들어주기도 한 100회씩 같이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구요.”
“아, 뒤꿈치 들어주기요? 진짜 이것도 같이하면 좋겠네요! 그런데 이거 다 다리 운동인데, 이러면 상체는 살 안 빠지고 다리만 살 빠지는 거 아니에요?”
“원래 하체, 특히 허벅지 쪽에 근육이 생기면 기초대사량이 높아지면서 전신의 열량소모가 늘어나게 되요. 한 마디로 하체 운동만 잘 해도 전신의 살이 골고루 빠질 수 있게 된다는 말이죠. 물론 거기에 상체도 근육 운동을 해주면 더 좋을 거구요.”
“아, 그렇구나~! 오빠는 대학 전공이 심리학이라면서 어떻게 그런 것까지 다 아세요? 운동 관련 분야도 공부하신 적 있는 거예요?”
“아니에요. 그냥 혼자 운동하면서 유튜브나 인터넷 보고 귀동냥으로 들은 것들이에요. 운동에 대해서는 나보다 강사님 (혜인)이 더 잘 알거 같은데, 정확한 건 강사님한테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구나~! 그래도 오빠가 운동에 대해서 웬만한 건 다 아시니까, 혜인 언니 없을 때 오빠한테도 많이 물어볼게요!”
“네, 그래요. 아, 맞다! 내가 있는 동안 이 호텔 피트니스 센터에서 같이 운동해도 될 거 같은데요? 그럼 일본에 있을 동안은 내가 아이 운동 강사가 되어 줄게요!”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쁜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정말요? 와, 잘 됐다! 그거 너무 좋은 생각인거 같아요, 오빠! 낮에는 오또상 병간호 하고, 저녁에 오빠랑 같이 운동한다고 하고 호텔 오고, 그리고 또......”
호텔오고, 그리고 또 뭐......?
아이는 빨개진 얼굴로 그의 품에 꼬옥 안기며 몸을 부비부비 사랑스럽게 비비고 있었다.
“나 얼른 살 빼서, 다시는 폿챠리라는 말 안 들을래요!”
“그런데 아이, 난 아이가 살 안 뺐으면 좋겠어요.”
“왜요, 오빠?”
“난 지금 아이 모습이 너무 예쁘고 좋으니까, 굳이 살 안 빼도 될 거 같아요.”
“그래도, 내가 살 빼면 더 예뻐지지 않을까요?”
“지금보다 더 예뻐지면, 나 24시간동안 아이만 바라보느라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데요? 지금도 아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아 일본까지 날아온 건데.”
“헤에~ 정말요? 흐흐흥~♡ 내 어디가 어떻게 좋은데요? 내 몸 중에 오빠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 어디에요?”
“음...... 가슴도 좋고, 엉덩이랑 허벅지도 너무 좋고.......”
민재는 그녀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고 누가 들을세라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특히 아이랑 뒤로 그거 할 때....... 내 몸에 부딪치는 아이 엉덩이랑 허벅지살이 너무 좋아요...... 그래서 살만 더 찌지 말고 그냥 이대로 유지만 해도 좋을 거 같아요.......!”
“정말요? 나도 뒤로 할 때 내 엉덩이랑 허벅지에 닿는 오빠 느낌이 너무 좋은데...... 그럼 나 진짜 살 안 빼도 돼요?”
“네, 안 빼도 돼요. 그냥 지금처럼 건강할 수 있게 규칙적으로 운동 하고, 탄수화물 먹는 거랑 식사 후 디저트 먹는 거만 줄이면 그거로도 다이어트 효과는 충분할 거예요.”
“헤에~? 디저트 먹는 거를 줄여야 된다구요? 하긴, 디저트가 밥보다 더 칼러리가 높다고 했지......? 히잉~”
다른 건 몰라도 디저트는 포기 못하겠는지 아쉬운 듯 어깨를 도리도리 흔드는 아이.
민재는 그녀가 너무 귀여운 나머지, 그녀의 어깨를 안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 * *
두 사람은 택시기사가 소개해준 후나바시 안데르센 마을로 향했다.
이곳은 잘 가꿔진 푸른 잔디밭과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정원 위에 실물 크기의 커다란 풍차와 중세 유럽의 건물처럼 생긴 미니어처들을 꾸며놓은, 동화 속 마을 느낌의 테마 파크였다.
두 사람은 여름 꽃들이 만개한 정원 사이를 거닐며 함께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민재의 손을 잡고 함께 거닐던 아이가 물었다.
“그런데 오빠, 오빠는 심리학 전공하셨잖아요? 그럼 사람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다 아실 수 있는 거예요?”
민재는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나도 한낱 사람인데, 다른 사람 마음을 모두 꿰뚫어 볼 순 없겠죠? 다만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해 이 사람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겠다, 짐작하고 그에 대처를 잘 할 수 있게 된 거 같긴 해요.”
“정말요? 그럼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한다, 진실을 말하고 있다, 이런 것도 알아볼 수 있어요.”
“음,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웃는 모습을 예로 들어보면, 이 사람이 진짜 웃는지, 웃음이 나오지 않는데 일부러 웃는 건지 쉽게 구분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어떻게 알 수 있는데요?”
“그 사람이 웃을 때 어느 쪽 입꼬리가 먼저 올라가느냐를 보면 되요. 진짜 웃음이 나서 웃는 거라면 감정을 담당하는 우뇌가 먼저 반응해서 왼쪽 입꼬리가 먼저 올라가게 되거든요? 그렇지 않고 일부러 짓는 웃음이라면 사고를 담당하는 좌뇌가 먼저 반응해서 움직이게 되기 때문에 오른쪽 입꼬리가 먼저 올라가게 되죠.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진짜 웃음을 짓는 건지, 가짜 웃음을 짓는 건지 확인할 수 있어요.”
“와, 정말요? 이제 앞으로 오빠 앞에서 거짓말 하면 안 되겠다. 오빠가 다 알아 버릴 거니까. 히잉~”
민재가 그녀의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그래도, 아이는 나한테 한 번도 거짓말 한 적 없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딱 한번 거짓말 한 적 있긴 있네요.”
“앗! 제가 오빠한테 어떤 거짓말을 했었죠?”
“사XX 0.01mm 콘돔 직접 써본 적도 없으면서, 그거 사 달라 하려고 일부러 써본 척, 거짓말 한 적 있었죠?”
“앗, 그건......! 오빠 남들이 들으면 어쩌려고.......?!”
아이가 얼굴을 붉히며 그의 손을 흔들었다.
“뭐 어때요? 여기 일본이라 우리가 한국말 하는 거 알아들을 것 같지도 않은데.”
“그래도 사람들이 사XX 는 알아듣는 다구요~!”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미안해요, 하하.”
아이는 민재의 옆구리를 장난스럽게 때리고는 그의 팔짱을 꼭 끌어안았다.
안데르센 마을은 자연 체험장, 어린이 미술관, 동화의 언덕, 장난꾸러기 언덕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두 사람이 미니어쳐 건물들이 있는 동화의 언덕을 걸을 때,
아이가 민재에게 물었다.
“그런데, 오빠? 오빠는 전에 한국여자랑 사귀어 보신 적 있죠? 한국 여자랑 일본 사람인 저랑 어떤 면이 다른 거 같아요?”
“음...... 큰 차이는 없는 거 같긴 한데요....... 생각해보니 아이가 한국 여자들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긴 했어요.”
“뭔데요? 어떤 부분이 달랐는데요?”
“이게 국적이 다르고 문화가 달라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는 단 한 번도 내 핸드폰을 나 몰래 열어보거나, 전화번호부에 저장된 이름들이나 사진첩 속에 누구 사진이 들어 있나 보여 달라고 한 적이 없잖아요? 그런 걸 궁금해 한 적도 한 번도 없고.”
일전에 민재가 대학에서 잠시 사귀었던 여자는 수시로 그의 핸드폰을 확인해보곤 했다. 사진첩, 통화내용은 물론 톡방 대화 내용까지 전부 다 말이다. 민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혹시라도 다른 여자들이 자기 몰래 그에게 연락해 오는 건 아닌가 걱정 되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너무 심한 사생활 침해에 화가 난 민재는 그녀와 곧바로 헤어져 버리고 말았다.
이후에 만났던 여자들도 데이트 초기 자신의 핸드폰을 몰래 몰래 훔쳐보려다 걸린 적이 있어서 그런 문제 만큼은 조금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는 지금까지 자신의 핸드폰에 단 한 번도 관심을 두지 않는 모습이 신기했던 것이다.
“그거야 당연한거 아니에요? 아무리 오빠가 나하고 가까워도 핸드폰 안에 연락처나 사진까지 마음대로 보는 건, 그건 진짜 결례인데......? 마사까 (설마)......! 한국에서는 애인 핸드폰을 보고 그래도 괜찮은 거예요?”
“다 그렇지는 않은데, 한번쯤은 애인 핸드폰에 다른 이성 연락처가 들어있지 않나, 다른 이성이랑 같이 찍은 사진은 없나 하고 몰래 확인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헤에~? 사이아쿠(최악이다)......! 그건 프라이버시 침해잖아요? 물론 나도 오빠 핸드폰 안에 뭐가 들었나 궁금한 적은 있었지만, 그렇게 보는 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오빠가 내 핸드폰을 봤다면 엄청 실망스럽고 화가 날 텐데, 그런 짓은 정말 하면 안 되는 일이예요!”
민재는 아이의 이런 모습을 보니 그녀에게 더욱 신뢰가 느껴졌다.
두 사람은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아이들이 타는 자그마한 기차가 철로를 따라 지나가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때, 일본인 커플이 다가와 아이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들은 아이가 한 때 아이돌과 모델로 활동한 것을 알고 있는 듯, 그녀에게 일본어로 친근하게 말하며 함께 사진을 찍고 악수를 하고 갔다.
“역시, 아직도 일본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네요?”
“네, 절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니 놀랐어요.”
아이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치바 현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고 활동도 여기서 해서 그런가, 아직 절 알아보시는 분들이 있네요. 한국으로 떠난 후에 모두 절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의 표정에 만감이 교차되고 있었다.
“아이, 지금도...... 연예인 하던 때가 많이 그리워요?”
민재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까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아니에요. 그냥 지금처럼 가끔 유튜브에 나오는 것만으로도 전 만족해요. 앞으로도 계속 연예인 안하고 오빠랑 살고 싶어요. 난, 오빠만 있으면 되요.”
그러면서 그의 팔을 꼭 껴안으며 미소 짓는 아이,
웃을 때 왼쪽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먼저 올라간다.
그녀는 지금 진심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 * *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낸 후, 렌트한 택시를 타고 호텔 객실로 돌아온 민재.
킹사이즈 침대에 덩그러니 혼자 누우니 또 다시 아이가 그리워지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계속 함께 있었지만...... 함께 잠을 자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이제서야 알겠어! 단순히 섹스를 할 수 있어서 좋은 게 아니라 그 사람과 살을 맞대고 함께 누워 쉰다는 거, 그게 정말로 내게 행복한 일이었구나! 어서 빨리 아이와 함께 누어 잠자고 싶다. 섹스는 안 하더라도, 아이와 다시 함께 껴안고 잠들고 싶어.......’
민재는 마치 상사병에 걸린 소년처럼 아이의 얼굴이 다시 그리워지고 있었다,
위이이이잉~
그 때 그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아이였다.
민재는 재빨리 통화 버튼을 옆으로 밀었다.
[여보세요, 오빠? 호텔 잘 들어가셨어요?]
“네, 잘 들어왔어요. 아이도 이제 잘 준비하고 있어요?”
[아뇨, 유키나랑 놀다가 이따가 자려구요. 그런데, 오빠! 내일 아침 7시까지 우리 집에 올 수 있어요?]
“아침 7시요? 무슨 일인데요?”
[오까상이 내일 점심 식사하기 전에 먼저 오빠한테 아침 식사 만들어 먹이고 싶다고, 아침에 와서 같이 식사하자 하세요. 물론 점심에도 오빠랑 같이 나가서 점심 드시겠다 하셨군요.]
아이의 어머님이 아침 식사를 만들어 주겠다고?
이제 민재를 사윗감으로 인정하고 장모님 사랑을 보여주시려는 것인가?!
민재는 그녀의 말에 벌써부터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