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아이 동생 유키나 (3)
아이 동생 유키나 (3)
아침 7시,
민재는 미리 준비한 바구니 하나를 손에 들고 렌트한 택시를 타고 아이의 집으로 향했다.
띵동~!
도착해 벨을 누르자마자 집 안에서 사람들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형부, 안녕~!”
현관문이 열리고, 아이와 유키나가 웃는 얼굴로 그를 맞아 주었다.
“아이, 잘 잤어요? 유키나도 다시 보게 되어 기뻐요.”
아이가 그의 손에 들린 커다란 바구니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오빠, 웬 바구니에요?”
“아, 이거, 꽃하고 과일 담긴 바구니에요. 이따가 아버님 병실에 가져가셔서 과일이라도 드셨으면 해서 골라와봤어요.”
보자기를 벗겨보니 바구니 안에 생화와 여러 제철 과일들이 풍성하게 들어 있었다.
유키나가 그가 들고 있는 바구니를 받아들며 말했다.
“형부, 되게 착하다~! 이건 내가 병원 갈 때 들고 갈게요~!”
아이가 살짝 눈을 흘기며 말했다.
“유키나짱, 그거 병원 가져가서 네가 다 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아니거든? 오또상 드실 수 있게 옆에서 내가 과일 깎아드릴 거거든? 네가 무슨 오네짱처럼 고부타짱 (새끼돼지)인 줄 알아? 메에에에롱~!”
서로의 이름은 사랑 (아이)과 행복 (유키나)인데, 둘이 붙어만 있으면 티격태격이다.
민재는 웃으며 그녀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으로 들어오니 맛있는 음식 냄새가 가득하다.
아이의 어머니 린코가 주방에서 나오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오하요 고자이마스 (일본의 아침 인사), 강군?”
“오하요 고자이마스, 오까상. 오마네끼 이타다이떼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이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어젯밤 열심히 인터넷을 뒤져가며 공부했었지.
민재가 일본어로 예의바르게 말하자 린코도 무척 마음에 드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의 가족들이 다 함께 즐겁게 식탁에 둘러앉았다.
4인용 식탁에 린코와 유키나가 나란히 함께 앉고 맞은편에 민재와 아이가 함께 앉게 되었다.
메뉴는 생선구이와 미소시루, 계란말이 등, 아이가 한국에서도 자주 해주던 일본식 가정식,
그래도 민재가 온 탓인지 일본식 쇠고기 전골요리인 스키야키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이타다키마스 (잘 먹겠습니다)~!”
민재는 일본식으로 감사의 인사를 하고 린코가 준비한 음식들을 먹어 보았다.
그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린코가, 아이에게 일본어로 무어라 말을 했다.
“오까상이, 음식들이 입맛에 잘 맞으시는지 물어보세요.”
스키야키 국물을 한 모금 마셔돈 민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혼토니 오이시 데스, 정말 맛있어요! 아이가 음식을 잘하는 게 이제 보니 어머님을 닮아 그런 거였군요?”
그 말에 린코도 웃음을 지으며 아이에게 계속 질문을 했다.
“오까상이 제가 한국에서 오빠 밥은 잘 차려주는지 물어보세요. 이건 그냥 제가 대답해도 될 거 같은데, 그래도 되죠?”
“네, 아이가 저 잘 챙겨 먹여주고 있는데 당연하죠! 아이가 일본 음식은 물론 한국 음식들도 모두 맛있게 잘 만든다고 말씀해주세요.”
린코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까상은 제가 연예인 활동만 해서 요리나 가정일은 잘 못할 줄 알고 걱정 많으셨데요. 그래도 아이돌 할 때 숙소 생활할 때부터 요리도 하고 청소나 빨래도 다 직접 하면서 지내서 다 할 줄 아는데, 아직도 절 어린애로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히잉~”
“하하, 부모님 눈에 자식들은 언제나 어린애로 보인다고들 하잖아요.”
린코의 옆에 앉아 스키야키의 고기를 건져 먹던 유키나가 두 사람은 번갈아 보며 말했다.
“아라? 오네짱이 매일 형부 밥해주고 그러면, 지금 두 사람, 결혼도 안하고 같이 살아? 혼토니, 진짜? 오까상, 싯테타요(엄마, 알고 계셨어요)?”
유키나는 아직 이 둘이 동거하고 있다는 것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린코와 아이가 일본어로 뭐라고 말하자, 유키나는 놀란 듯 입을 쩍 벌렸다.
“야레야레 (이런, 아이고 맙소사), 오또상이 알면 진짜 난리 난다, 이거.”
“그러니까 오또상 다 나으실 때까지는 우리끼리 비밀 지켜야 한다구. 유키나짱, 알았지?”
아이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말했다.
“오또상도 그렇지만, 오네짱 팬들도 알면 완전 난리 나겠는데? 나 다니는 대학에도 오네짱이 복귀하길 기다리는 팬들 엄청 많은데.”
민재가 유키나에게 물었다.
“아직도 언니 팬들이 그렇게 많아요? 그럼 유키나가 아이 여동생인거 알고 언니 소식 물어보고 그러는 거예요?”
“네, 연예인 활동 안한지 꽤 되었는데도 지금까지 오네짱 팬들 엄청 많아요. 가끔 집에도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인 걸요? 아마 오네짱이 시내 돌아다니다 보면 지금도 알아보고 달려오는 사람들 엄청 많을 걸요?”
하긴, 어제 안데르센 마을 갔을 때에도 그녀를 알아보는 이들이 있었지.
“그리고 저는 어려서부터 오네짱하고 모르는 사이인 것처럼 하고 지내는 중이에요. 오네짱 여동생인 거 사람들이 알면 귀찮은 일이 많아질 거 같아서요. 대학 갔을 때도 치바현에서 온 나루사와 라고 하나니까 그럼 나루사와 아이 알아? 혹시 가족이나 친척 아니야?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엄청 많았거든요. 게다가 제가 오네짱이랑 얼굴도 비슷해서 사람들이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죠. 뭐, 일단 지금까지도 전 오네짱과 모르는 사이고 가족, 친척도 아니라고 하고 있긴 하지만, 학교에 가족 사항 기재할 때 오네짱 이름이 들어가 있어서, 아마 학교 관계자 분들은 거의 대부분 제가 오네짱 동생이란 거 알고 있을 거예요.”
전에 주형이 아이에 대해 조사하며 탑스타는 아니어도 인지도는 꽤 높다고 했던 말이 진짜 허언이 아니었나 보구나......
민재는 새삼 아이가 대단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럼 형부! 오네짱이랑 언제 결혼할 건데요?”
“아버님이 허락하신다면, 언제든 바로 할 생각이에요.”
“이렇게나 빨리요?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결혼 일찍 안하려고 한다는데? 아니에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너무나 사랑해서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빨리 결혼하는 것도 좋은 일이잖아요?”
“흐응~ 오네짱이 그렇게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다?”
유키나는 이 말을 린코에게 일본어로 전해 주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린코도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번에도 아이가 린코의 말을 그에게 옮겨 주었다.
“지금 한 말 기억하며 평생 서로 싸우지 말고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세요......”
아이의 볼이 살짝 붉어지고,
민재는 식탁 밑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꼬옥 붙잡으며, 린코에게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했다.
“요로콘 데 소 사 세테 이타다키마스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상당히 정중한 표현.).”
* * *
아이의 가족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한 민재.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아이 가족들과의 아침 식사 이후,
민재는 호텔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아이의 아버님이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이제 어머니 린코를 모시고 호텔에서 점심 식사를 대접해드리기 위해서였다.
렌트한 택시에 린코와 아이를 태우고 M호텔 S레스토랑으로 들어온 민재,
아무래도 일본 현지에 어느 식당이 맛있고 잘하는지 모르는 민재가 선택할 수 있는 식당은 호텔 안에 이는 것들뿐이었다.
세 사람은 어제와 비슷한 프랑스 코스 요리를 주문해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민재와 아이가 어제에 이어 오늘도 또 온 것을 기억한 레스토랑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트러플 (송로버섯)을 얇게 썰어 올린 샐러드를 서비스로 내어 주는 등, 어제보다 더 신경을 써주는 모습이었다.
이번에도 린코는 민재와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가 중간에서 통역을 해주면서 말이다.
“아, 그럼 어머님께서도 어렸을 때 아역 배우를 하셨던 거예요? 어쩐지, 지금도 너무 아름다우셔서 분명 연예계 쪽에서 일을 하신 적이 있으실 것 같았어요.”
민재의 아름답다는 말에, 린코도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웃었다. 정말 웃는 모습마저 모녀가 판박이처럼 닮아 있었다.
“오까상은 16살 때까지만 아역 배우 일을 하셨데요. 성인 배우 일을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 때 일본 연예계는 지금보다 훨씬 질이 안 좋은 일도 많았고 여배우로서 성공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든 시절이라 결국 포기하고 평범한 삶을 사는 쪽을 택하셨대요.”
“그러셨군요. 그럼 아이가 아이돌이 되겠다고 했을 때 걱정이 많으셨겠어요.”
“네, 제가 아이돌 한다고 했을 때 오까상이 정말 걱정 많이 하셨어요. 나중에 아이돌 그만 둔다고 하셨을 때 제일 반기셨던 것도 오까상이었구요. 차라리 지금처럼 오빠같이 좋은 사람이랑 평온한 삶을 사는 걸 지켜보는 게 더 좋으시데요.”
이 때 린코가 아이에게 일본어로 무언가를 길게 설명을 했다.
“음...... 오까상이 지금 한국에 있는 아파트나 건물 투자에 관심이 있으시데요. 여기 일본 부동산 경기가 너무 나빠서 수익이 좋지 않은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오또상이 회복되는 데로 한국에 가보고 싶은데, 그 때 시간 내줄 수 있으신지 물어보세요.”
민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님이 오시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저도 마침 건물 하나를 매각하고 다른 부동산을 매입하려 준비하고 있는데, 어머님도 함께 하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린코는 밝게 웃으며 조만간 한국으로 갈 때 연락 주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부동산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린코 역시 남편 요시노부 (아이와 유키나의 아버지 이름, 나루사와 요시노부) 와 함께 건물 임대업과 부동산 투자를 해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지식이 무척 해박한 편이었다. 오히려 경험적인 면은 민재보다도 더 풍부할 정도였다.
부동산에 대한 공통 관심사 때문인지,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누며 친해지게 되었다.
* * *
이렇게 민재가 일본에 머문 시간이 1주 정도 지날 때쯤이었다.
그동안 아이는 유키나와 하루씩 번갈아가며 아버지 병간호를 돕고 있었는데, 쉬는 날이면 늘 민재의 호텔로 와서 함께 운동도 하고 마음껏 그와의 시간을 즐긴 후에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래도 아이는 밤이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둘 다 함께 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기는 했지만, 그 점에 있어서는 아직 눈치가 많이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중, 민재는 주형과 전화로 투자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형님, 그럼 형수님 때문에 일부러 일본에 계신 겁니까?]
주형은 벌써 아이를 형수님이라고 부르는 중이었다.
“응, 그래. 아이가 아버님 병간호하는 동안 옆에서 같이 있어주려고.”
[형수님 아버님, 병명이 어찌 되시는데요?]
“심근경색이라는데? 그것 때문에 쓰러지셨데.”
[심근경색이요? 그거에는 산삼이 즉효라는데?]
“산삼?”
[네, 산삼. 형님 거기 일본 간 김에 미래 장인, 장모님께 점수 좀 따려면 산삼 한번 선물해 드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일본사람들이 서양 사람들도 아니고, 우리랑 체질이 비슷할 테니까 산삼 약빨도 잘 받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러고 보니 맞는 말이다. 일본에서도 한국산 인삼, 홍삼을 찾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데, 그 귀한 산삼을 마다할 리가 있겠나?
게다가 그 산삼 덕에 아이 아버님 병이라도 낫게 된다면,
아무리 요시노부가 한국인과 자이니치를 싫어한다 해도 이건 못 참지!
“야, 주형아. 산삼 어디서 사냐? 담배인삼공사, 아니, 금산 인삼 센터 이런데 가야 하냐? 아니면 북한 개성에 알아봐야 하나?”
[진짜 산삼 사드리려구요? 그럼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제가 알아봐 드릴게요. 10년근 산삼 좋은 거로다가 알아보겠습니다, 형님.]
“고맙다 주형아. 네가 지금 있는 호텔 주소 찍어서 보내줄게. 그리고 네 통장으로도 바로 산삼값 입금시켜 줄게~!”
나이스!
드디어 아이 아버지에게 점수 딸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