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5화 〉아이 동생 유키나 (4) (85/140)



〈 85화 〉아이 동생 유키나 (4)

아이 동생 유키나 (4)



주형을 통해 알아보니 시중에서 구할  있는 10년 근 산삼은 아무리 좋은 것도 1뿌리에 5만원도 안하는 게 일반적이란다.


“야, 그럼 그거 그냥 인삼이랑 다를 바 없는 거 아니냐?”

[형님, 일반적으로 산삼이라고 파는 건 지종, 산양삼, 장뇌삼이라고 해서 사람이 직접 씨를 뿌리고 키운 거라 인삼하고 가격차가 별로  난답니다. 진짜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산 야생 산삼은 50년 이상 묵은 천종이라고 하는데요, 이건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돈이 있어도 바로 구하기 힘들답니다. 진짜 심마니들도 몇 년에 한 번 겨우 발견할까 말까 한다는데요?]

흠, 돈이 있어도 바로 안되는 게 있었군. 아쉽지만 자연산 산삼은 나중에 사드리는 걸로.



민재는 일단 주형을 통해 국내에서 산삼 20뿌리를 사서 DHL로 받게 되었다.



호텔 컨시어지에게 산삼 박스를 전해 받은 그는 아이의 가족들이 모두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저녁 시간에 맞춰 호텔을 나섰다.



* * *



아이의 집을 찾아간 민재는 린코에게 한국에서 공수한 산삼을 전해주었다.



“아버님 병환에 산삼이 좋다고 해서 한국에서 산삼을 가져와 봤습니다. 담당 의사 선생님과 상의해보시고 아버님께 드리시지요.”



산삼을 받아 든 린코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이도 민재의 이런 모습에, ‘엄마 사윗감이 이런 사람이에요~!’ 라는 듯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까상께서 너무 감사하시데요. 내일 병원 가서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고 오또상께 먹여보시겠데요.”


일본에서는 한의학이 한국처럼 활성화되지는 않았지만, 일반 의사들과 약사들 모두 침과 한약 등 한의학을 통한 처방을 많이 내리는 편이었다. 한약재를 이용해 탕약을 끓여 환자에게 먹이는 경우도 여전히 많아서, 산삼을 요시노부에게 먹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함께 있던 유키나가 물었다.

“산삼이면 한국 드라마에서 심봤다~! 하는 그거? 그럼 엄청 비싼  아니에요? 오또상한테 이거 드릴  뭐라고 하고 드려야 해? 우리가 샀다고 하면 좀 이상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형부가 사왔다고 바른대로 말할 수도 없고.”



“이거 그렇게 비싼 거 아니에요. 한 뿌리에 4,800엔 (한화 5만원) 정도 밖에  해요. 그러니 그냥 어머님께서  오신 거라 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헤에? 그럼 4,800엔짜리 찾고 심봤다~! 이러는 거였어요? 아르바이트 일당도 안 되는 돈 벌고 좋아하는 거?”



“심봤다~! 이건 진짜 100년 묵은 자연산 찾았을 때나 그렇게 소리 지르는 거래요. 그런 건 한 뿌리에 950만  (한화 1억 원)  한다는데요?”




“헤에에에~?! 950만 엔이요? 그럼 거의 로또 되는 거나 마찬가지?”

민재와 유키나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린코가 아이에게 무어라 일본말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이가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오까상이 오빠 저녁 드셨냐고 물어보세요.”

“네, 호텔에서 먹고 왔어요. 그럼 다들 아직 저녁 안 드시고 계셨던 거예요?”



“아뇨, 저희도 모두 저녁은 먹었어요. 오까상이 오빠 그냥 보내기는 서운하니까 술 한  대접해 드리고 싶으시다는데, 괜찮으시죠?”




“당연히 괜찮죠, 어머님이 주시겠다는데!”



민재는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산삼이 정말로 효과가 있었는지, 아이의 아버지 요시노부는 점점 건강을 되찾기 시작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동안 가족들이 계속 병간호로 붙어 있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몸 상태가 좋아졌다.

이제 병원 담당 의사도 요시노부의 건강상태가 매우 호전되었으니 조만간 퇴원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다.

오랜만에 가족들 모두 저녁 5시쯤 일찍 병원에서 돌아오던 날,



린코는 이번에도 민재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이제 확실히 어머님에게 만큼은 예비사위로 인정받고 있는  같아 기분이 좋은걸? 나중에 아버님도 내가 사드린 산삼 덕분에 몸이 좋아지셨다는 걸 알면, 한국인에 대한 나쁜 인상을 많이 지우실  있겠지?’



민재는 유쾌한 마음으로 호텔을 나섰다.



* * *




민재는 아이 가족과 함께 나베 (일본식 냄비 전골) 요리로 저녁을 먹은 후, 치바 현의 명물이라는 땅콩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시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유키나가 린코에게 일본어로 무어라 말하고, 이를 들은 아이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



“나이, 나이 (안 돼, 안 돼)~! 코나이데 (오지 말어)~!”




나이 (안 돼)라는 말을 알아들은 민재가 아이에게 물었다.


“뭐가  된다고 한 거예요?”

아이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유키나짱이, 오또상 건강 괜찮아지셨으니까 방학 남은 기간 동안 한국 다녀오고 싶다고, 한국 가서 오빠 집에 머물면서 한국 구경하고 싶다고 그래서요......!”

“그게 왜요? 유키나가 한국 오면   이유도 없잖아요?”



“유키나짱이 한국 와서 오빠 집에 같이 있으면...... 우리...... 어떻게 같이 자요......?”



아하~!!!

그런 문제가 있었지~?!?!




지금도 아직 결혼 안한 것 때문에 아이 가족들에게 눈치 보여서 일본에 있는 동안 단 하룻밤도 같이 있지를  했는데,



유키나 짱이 만일 민재 집에서 같이 있게 된다면 그건.......!




‘내가 지금 얼마나 참고 있는 건데?! 아이와의 밤을 위해서라도 그건 안 되지~!’



이건 아무래도 민재가 먼저 선수를 쳐야 할 것 같았다.




“아이! 어머니하고 유키나에게, 한국에 오면 제가 우리 집 근처에 있는 고급 호텔 잡아주고 한국 구경 시켜주겠다고 전해주세요! 고급, 최고급 호텔 잡아준다는 거, 이거 강조해주시구요!”


“네! 바로 전해줄게요!”




역시 척하면 척, 벌써부터 부부 일심동체  팀워크를 보여주고 있는 두 사람,


그런데 유키나는 이들 마음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살짝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아이를 보며 말했다.

“형부 집, 뛰어다녀도 될 만큼 엄청 넓다며? 그런데 왜 호텔에 돈을 써? 형부 집 아무데서나 자면 되지? 흐흐흥~”



“유키나짱? 오빠도 일본 와서 폐 끼치지 않으려고 우리 집에서 안자고 호텔 잡아서 잤잖아? 그럼 유키나도 한국 갈 때 오빠한테 폐 끼치면 안 되지?”




“형부는 남자라서 혼자 아무데서나 자도 되지만 난 여자잖아? 한국에 오네짱도 있고 형부도 있는데, 집이 아니라 호텔에서 혼자 재울거야? 오네짱, 나사케오 시라나이 (인정을 모른다, 인정 없다.)~!”

민재와 아이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 * *



요시노부가 곧 퇴원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아이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 요시노부는 이번에 먹은 산삼이 아내 린코가 구입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남자친구 생겼냐는 말도 함께 물어봤다고 하는데, 병상에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 눈치는 다 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제 아이는 민재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대로 작은 문제가 하나 생기고 말았는데,



요시노부와 린코가, 유키나에게 방학 남은 기간 동안 한국 구경 다녀오는 것을 허락해 주었던 것이다.


단, 유키나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묵게 될 숙소는 민재의 대치동 건물에서도 가까운 L호텔로 정해졌다. 이곳은 숙박비가 저렴한 중저가형 호텔이었는데, 린코가 직접 잡아준 곳이었다.

민재는 자신이 유키나를 위해 삼성역 근처의 고급호텔을 예약해주겠다고 제의했지만, 린코는 어린 유키나에게 그런 고급스러운 호텔은 아직 이르다며 완곡하게 거절했다.

결국  사람은 비행기를 타고 함께 한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 * *



유키나는 아이와 함께 L호텔에 짐을 정리한 후, 테헤란로를 따라 걸어서 민재의 집으로 돌아왔다.


“우와~! 여기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들이 사는 집 같아~! 무슨 집이 이렇게 넓어요?”


유키나는 민재의 집을 신기한 듯 둘러보았다.

그러다 마스터룸으로 들어가 보는데,


“아레......? 방에 왜 한모쿠 (해먹)가 있어? 헤에~? 저게 다 드레싱룸이야? 내 기숙사 방 두세 배는 될 거 같은데? 여기가 오네짱 화장하는 파우더 룸? 와, 오네짱, 프린세스  요  순데 이루 (공주 같이 사네)~?”



유키나는 부러운 듯 연신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아이가 드레싱룸에서 일본으로 가져갔던 옷들을 정리하는 동안, 민재가 유키나에게 다가와 물었다.



“유키나, 이제 점심 먹으러 가야죠? 한국 음식 제일 먹고 싶은 게 뭐에요?”

“저, 간잔게잔 먹고 싶어요, 형부~!”




“응? 간잔게잔?”




“네, 간잔게잔!”

간잔게잔? 한국음식 중에 그런 것도 있었나?



간잔게잔, 간잔게잔.......


“아~! 간장게장~?! 간장게장 맞죠?”



“네, 맞아요, 간잔게잔~!”



아, 일본 사람들에게 ‘ㅇ’ 받침 발음은 많이 힘들 수밖에 없나 보다. 하기야 한국어에 능한 아이도 ‘ㅇ’ 받침 발음은 지금도 많이 힘들어 하니까.

“유키나, 일본에서 간장게장 먹어본  있어요?”



“아니오. 한 번도  먹어 봤어요. 그래서 한국 왔을 때  먹어보고 싶었어요!”


민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이를 향해 물었다.




“아이, 유키나가 간장게장 먹고 싶다는데 아이도 괜찮죠?”

“네, 저도 좋아요! 그럼 어디로 가실 건데요?”


“동대문이나 종로에 유명한 간장게장집이 있긴 한데 거기는 너무 멀고, 강남에도 꽤 소문난 집이 있거든요? 오늘은 그리로 가볼까요?”



“네, 좋아요! 옷 갈아입고 그리로 가요!”


민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옷을 갈아입기 위해 드레싱룸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유키나가 안에 드레싱룸 구경하느라 자리를 안 비켜주는 중!

하는 수 없이 민재는 갈아입을 옷들을 들고 화장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 * *


원래 P간장게장 본점은 강남 신사동에 있지만, 민재의 집에서 가까운 삼성동에도 2호점이 있었다.



민재는 나루사와 자매를 데리고 그곳 2호점으로 찾아갔다.




일반 가정집을 개조해 꾸며 놓은 듯한 P간장게장은 제법 고즈넉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마침 평일이라 그런지 손님들도 너무 많지 않고 딱 좋았다.



민재는 자매를 위해 특대간장게장과 양념게장 소짜 (매운 것을  못 먹을까봐 일부러 작은 걸로 주문), 계란찜과 새우장, 거기에 지난번 부산 태종대에 갔을 때 아이가 잘 먹었던 산낙지도 주문해주었다.

“우와~! 스고이데스네~!”


유키나는 한상 가득 차려 나오는 음식들을 보고 손에 든 젓가락을 흔들며 흥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타다키마스~!”



간장게장을 먹기 시작하는 유키나,

아직 한 번도 게장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유키나는 젓가락으로 어설프게 게살을 집어먹으려고 한다.



“유키나짱, 게장은 이렇게 먹어야 해.”

이를  아이가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손수 먹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헤에에? 간잔게잔 원래 그렇게 손으로 들고 먹는 거야?”


“아타리마에 (당연하지). 들고 쪽쪽 살만 빨아서 먹어.”


“그럼 안 짜? 그렇게 먹어도 돼?”



“맛있는 집 간장게장은 이렇게 먹어도 안 짜. 짜면 밥이랑 누룽지랑 계란찜이랑 같이 먹으면 되지.”

유키나는 아이가 손으로 게장을 들고 먹는 것이 신기한 듯, 그녀를 따라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똑같이 따라 먹어 보기 시작했다.



“으음~! 오이시~! 진짜 안 짜고 맛있어! 이거 혼토니 야바이 (대박) 야!”

신나게 간장게장을 먹는 나루사와 자매들, 역시 유키나도 언니처럼 잘 먹는 타입이었다.

“자, 다 먹은 게딱지 위에는 쌀밥 올려서 비벼 먹는 거야. 이렇게......!”

아이는 공기밥의 쌀밥을 한 스푼 떠서 게딱지 위에 야무지게 비벼먹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역시 언니 따라 게딱지 위에 밥을 비벼 먹어보는 유키나. 맛의 신세계를 경험하고 감동에 벅차오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금세 특대 간장게장을 다 비운 두 사람, 민재는 특대로  그릇 더 주문해 주었다.



“유키나, 일본에서도 한국 음식 먹어본 적 있어요?”



“대학교 근처 식당에서 치즈닭갈비 먹어 봤어요. 그것도 되게 맛있었어요!”




아이는 게장이 새로 나올 동안, 아직 살아서 꿈틀꿈틀 거리고 있는 칼로  산낚지를 젓가락으로 집어 맛있게 냠냠하고 있었다.



이를  유키나가 살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네짱......? 그거 괜찮아? 되게 징그러워 보이는데?”



“보이는 건 그래도 되게 맛있어~! 유키나짱도 한 번 먹어볼래?”



유키나는 몇 번 사양을 하다가 결국 젓가락으로 산낙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으윽~! 꿈틀꿈틀 살아있어~!”


그녀는 젓가락으로 산낙지를 들고 먹을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마침내 굳은 결심이라도 한 듯 두 눈을 질끈 감고 입 안에 넣어보았다.

그리고 이로 꼭꼭 씹어 먹어보는데......



“아라? 이것도 혼토니 야바이인데?!”


유키나는 맛에 놀란 듯 두 눈을 귀엽게 동그랗게 뜨고 산낙지를 낼름낼름 집어먹기 시작했다.

“어때, 유키나짱? 내말대로 진짜 맛있지? 그치?”



“응! 생각하던 것하고 완전 달라! 그냥 끈적끈적 미끌미끌 한 게 되게 이상할 것 같았는데, 먹을수록 고소하고 씹는 느낌도 되게 좋아! 맛있어! 오이시데스네!”

원래 일본인들도 산낙지는 잘 안 먹는다더니, 역시 먹어보지 않아  참맛을 몰랐나 보다.




유키나의 한국 여행은 이렇게 기분 좋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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