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6화 〉아이 동생 유키나 (5) (86/140)



〈 86화 〉아이 동생 유키나 (5)

아이 동생 유키나 (5)



간장게장으로 든든히 점심을 먹은  사람은 H백화점과 코엑스몰에 들려 쇼핑을 하고 가기로 했다.

어차피 간장게장 식당도 집에서 가까운 편이라 차를 가지고 오지 않은 상황,




세 사람은 소화도 시킬 겸 천천히 걸으며 여러 매장들을 들어가 보고 있었다.

유키나가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곳은 백화점 1층에 있는 여성용 화장품, 뷰티 용품 코너.



“야아.......! 여기가 마지 (진짜, 진심, 레알 이란 뜻의 일본식 은어) K 코스메틱의 혼바 (본고장)......! 우레시이네 (기쁘다)~!”




유키나는 신이 난 표정으로 여러 매장을 다니며 화장품 샘플들을 발라도 보고 테스트도 해보고, 구경하기에 바쁜 모습이었다.




민재가 아이에게 말했다.

“아이, 유키나가 한국 온 기념으로 내가 화장품 선물 해줘도 될까요?”



아이도 웃으며 대답했다.

“네, 물론이에요. 제 동생 챙겨 주셔서 고마워요.”


유키나는 민재가 화장품을 선물해줄 테니 골라보라는 말에 입이 귀에 까지 걸릴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우와~! 형부, 사이코 (최고)~! 아리가토, 형부~!”



이것저것 화장품을 고르는 유키나.


립스틱이며 로션이며 파운데이션이며......



생각보다 많이 고르는 통에, 아이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유키나짱, 이이카겐니 시나사이 (적당히 좀 해라, 어지간히 좀 해라).”



아이와 함께 살며 일본어를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한 민재는 그녀에게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아이. 유키나가 마음껏 고를 수 있게 두세요.”


“그치만, 아직 어린 애가 버릇 나빠질까봐서요.”




“비싼 명품도 아니고 화장품인 걸요. 일본에 있을 때 처제에게 제대로 된 선물도 못해줬는데, 여기서라도 유키나 마음에 드는 걸 사주면 좋을 거 같아요.”

덕분에 유키나는 화장품을 한 보따리나 득템 할 수 있었다.


완전 기분이 좋아진 유키나는 이때부터 아이의 반대편에 서서 민재와 손을 잡기도 하고 팔짱을 끼기도 하고, 어리광을 부리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고마워요, 형부! 이거만 있으면  달 동안 코스메틱 걱정 안 해도  거 같아요!”




“나중에 일본 돌아갔을 때 화장품 필요하면 말해요. 내가 사서 보내줄게요.”

“아리가또~! 혼토니 고마워요, 형부~!”


“에이, 뭐 이런 걸로. 그런데 일본에서도 한국 화장품을 많이 쓰나요?”



“그럼요! K 코스메틱은 필수에요, 필수! 싸고 질도 좋고, 한류 스타들처럼 화장할 수도 있고...... 일본 여자들은 K 코스메틱 없이는 하루도  수 없어요!”

흠, 한국 화장품의 위상이 정말 엄청나게 올라간 모양이다. 예전에는 이와 반대로 한국에서 일본 화장품 인기가 높았던 시절도 있었다는데.

‘그러고 보니 화장품은 불황에도  팔린다는 말이 있었지? 경기가 안 좋아도 여자들은 화장을 해야 해서 화장품 사업만은 잘 돌아간다고 말이야. 나중에 투자할 때 화장품 관련주를 좀 더 주의 깊게 보면 좋겠어.’



그런데 아까부터 민재의 옆에 꼭 달라붙어 있는 유키나.



아이는 이 모습이 은근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유키나! 왜 그렇게 오빠한테 찰싹 달라붙어 있는 거야? 오빠한테 너무 무례하게 굴지 마!”



“흥, 무례한 거 아니거든! 팔짱 끼는 게 무슨 무례한거야? 형부, 팔짱 껴도 괜찮죠? 그쵸?”


그녀의 물음에 민재는 난감하게 웃을 뿐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오빠가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 많이 했었는데, 만약 형부가 우리 진짜  오빠였어도 맨날 이렇게 팔짱 끼고 다니고 싶었을 거야!”


그러면서 민재의 굵은 팔뚝을 두 팔로 꼭 끌어안는 유키나,

아이는 그런 동생을 얄밉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 * *

세 사람은 쇼핑을 마치고 백화점 10층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저녁까지 먹은 후,

유키나는 호텔로, 민재와 아이는 A아파트로 돌아왔다.

함께 있는 동안 크게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아이는 아까 유키나가 계속 민재와 팔짱을 끼고 다닌 것이 무척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오빠, 앞으로 유키나가 팔짱 끼려고 하면  부러지게 안 된다고 해주세요. 걔도 저랑 비슷한 구석이 많아서 스킨십 하는 거 은근 좋아한단 말이에요. 아무리 동생이라지만 계속 오빠랑 팔짱 끼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민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근데 아이, 이거 봤어요? 아이가 일본 가기 전에 주문한 해먹 도착한 거?”



“네, 봤어요. 너무 좋아 보여요! 저기서 빨리....... 그 때 그거, 다시 해보고 싶다...... 헤헤.”

마스터 룸에 설치된 해먹을 보고 금세 얼굴이 붉어지는 아이,


아마 종로 P호텔에서의 일을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민재는 그녀를 품에 꼬옥 안으며 말했다.

“나도 집에 오면 아이랑 같이 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아주 절실하고, 간절하게 말이에요.”

“그게 뭔데요, 오빠?”

민재는 그녀를 안고 침대에 누으며 말했다.


“이렇게 우리 둘이 같은 침대에 누워 함께 자는 거요.”




“그냥 같이 자는  해 보고 싶으셨다구요?”



“네, 아이가 일본 가기 전 까지는 잘 몰랐는데, 혼자 침대에 누워 있는 게 너무나 싫고 외롭게 느껴졌어요. 예전에 부모님과 가족들을 모두 잃고 나 혼자 남겨졌을 때 기분이 다시 들기도 하고......  곁에 아이가 함께 누워 있다는 거, 그래서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쉬며 잠든다는 거...... 그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그제서야 깨달았던 것 같아요.”

“아, 오빠......”


아이의 손이 민재의 뺨을 쓰다듬었다.

“아이가 너무 보고 싶어 일본까지 갔지만, 우리 함께 이렇게 누워 같이 자지는 못했잖아요? 밤에는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그래서 오늘만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냥 우리 둘이 끌어안고 잠들고 싶어요. 잠들기 전까지 계속 키스도 하고 싶고, 내 품에 안겨 잠든 아이 얼굴도 마음껏 보고 싶고...... 그동안 그게 너무나 하고 싶었어요.”



“저두요, 오빠...... 오빠 저두 오빠랑 같이 자고 싶어서 못 견딜 것 같았어요. 그냥 밤중에 뛰쳐나와서 오빠한테로 달려갈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랬다가는 부모님께 오빠까지 이상하게 보일까봐 억지로 참았어요.”




“우리 이제 앞으로 절대 떨어지지 말아요. 나도 만약 나중에 멀리 가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잠은 꼭 집에 돌아와서 아이 곁에서 함께 잘게요.”

“저두요, 오빠...... 저도 오빠 옆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게요. 이제는 두 번 다시 오빠 외롭지 않게, 내가 오빠 가족 돼서 절대 떠나지 않을게요...... 오빠, 사랑해요...... 오빠, 사랑해요......”



아이가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민재도 그녀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 * *

두 사람은 함께 샤워를 마친 후,

언제나 그랬듯 알몸상태로 함께 침대에 누웠다.



8월의 여름인지라 방에 에어컨을 틀어놓은 상황.



두 사람은 이불 속으로 함께 들어가 서로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오빠, 우리 집에 와서 이렇게 다시 오빠랑 자니까 너무 좋아요......!”

아이는 이제 이 집을 ‘우리 집’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도 너무 좋아요. 정말 오랜 소원이 성취된 거 같아 너무 기뻐요.”



민재의 말에, 아이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부비며 말했다.



“그런데 오빠,  사실 고백할게 있어요.”

“뭔데요?”


“나 일본 돌아가면서 엄청 걱정했었어요. 혹시 내가 없는 사이 오빠가 다른 여자 만나면 어떡하나....... 진짜 그렇지는 않겠지만 클럽 같은 데 가서 여자 만나고 그러면 어떡하나 진짜 불안하고 조마조마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있으면 당연히 그런 걱정이 들기 마련,


내 사랑은 믿어도,  사랑 주변에 얼쩡거리는 이성들까지는 믿을 수 없는 건 당연하지 않겠나?




“그런데 오빠가 바로 며칠 만에 일본으로 와줘서, 나 너무 감동이었어요. 오빠가 나 보고 싶다고, 나랑 떨어지고 싶지 않다고 비행기 타고 날아오셨다는  듣고 진짜 너무 행복해서 잠이 안 올 정도였구요! 근데 저...... 오빠가 일본에 계신 중에도 오빠 의심하고 걱정되고 불안하고 그랬던 거 있죠?”



“내가 일본에 왔는데도 의심하고 걱정이 되었다구요? 왜요?”



“사실, 오빠가 묵었던 호텔에서 조금만 나가면 술집이랑 유흥가도 펼쳐져 있고, 거기서 더 가면 도쿄로도 바로 연결이 되잖아요? 그래서 혹시 오빠가 밤에 몰래 그런데 가시지는 않을까....... 오빠도 남자니까 호기심에 그런데 가시는 거 아닐까, 하고 그런 생각을 했던 거 있죠......?”




민재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하, 아이도 알잖아요,  웬만하면 밤 12시 넘어서 그냥 잠든다는 거. 게다가 일본말도 잘 못하는데 혼자서 술집이라니, 그건 너무 청승 맞아 보여서 가라도 안 갔을 거예요.”



“아니 아니~ 내가 말하는 데는 그냥 술집이 아니라...... 오빠가 혹시...... 여자들 있는 그런...... 풍속....... 이상한 데 가실까봐 걱정했다는 거예요......”



“풍속? 그게 뭔데요? 뭐, 여자 있는 술집? 홍등가? 뭐 이런데 말하는 거예요?”



“네, 대충....... 암튼 여자들 있는 그런 이상한데요......”



민재는 그녀를  안아주며 말했다.


“여자? 내 눈에 여자는 오직  명, 아이 밖에 안 보여요.”



“치...... 그럼 다른 여자들은 어떻게 보이는데요?”



“다른 여자들은 그냥...... 나와 같은 인류 (人類, Humankind)요.”

그 말에 아이도 깔깔 웃게 되었다.

“그럼 진짜 오빠는 그런 여자 있는 술집이나 유흥업소, 남자들만 가는 이상한 데, 그런데  번도  가보신 거예요?”

“저번처럼 클럽에는 몇 번 가본 적 있고, 나한테 투자 의뢰했던 사람이 모던바라고 여자들 있는 술집에 데리고 간 적도  번 있긴 한데, 별로 내키지 않아 바로 나와 버렸어요.”



“남자들은 그런 여자들 있는 술집 다 좋아한다는데, 오빠는 그런  싫어하시는 거예요?”

“술을 마시는데 모르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부담되고 어색해서 싫어요. 그리고 술을 마셔도 평소에 우리가 하는 것처럼 식사 후에 거실에 편하게 앉아 TV 보면서 한 잔 하는 게 제일이지, 그런데 가서 비싼 돈 주고 마시면 도리어 술맛도 안 나고 불편하기만 해요.”


“맞아요. 나도 오빠랑 같이 나가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한 잔 하거나 집에서 마시는 게 제일 좋은 거 같아요. 그럼 오빠는 나중에 결혼해도 그런 데 안 가실 거죠?”




“당연하죠. 혹시 사업이나 투자 때문에 사람을 만나도 저번처럼 모던바 같은데 가면 그냥 바로 나와 버릴게요. 그거보다 더 이상한 데는 아예 발도 들이지 않을 거구요.”


민재는 약속의 도장이라도 찍듯, 아이의 입술에 입맞춤을 해주었다.



“참, 오빠 조만간 오빠네 관장님하고 태국 같이 가신다고 하셨잖아요? 태국에는 유흥업소 같은 곳도 많고 게이쇼나 별의별 이상한 데 엄청 많다고 하던데, 관장님도 그런데 안 가시는 분이세요?”



“강운예 관장님이요? 그분은 저보다 더 그런 거 완전 질색 하실 걸요? 게다가 관장님 사모님이 되게 미인이신 데다가 나이 차이도 많아서, 그런데 가실 생각을 일절 안하실 분이에요.”




“관장님하고 사모님하고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나는 데요?”



“15살인가......? 아무튼 띠동갑은 훨씬 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순간,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헤에에에에에~?! 15살이라구요~?! 도로보오오 (도둑, 도둑놈)~!”


민재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웃었다.


“아무튼 태국에 가도 관장님은 사모님이랑 아이들까지 모두 데리고 가실 거예요. 그래서 아이가 말하는 그런 이상한데 갈 시간도 없을 거구요. 아마 리조트랑 훈련장, 관광지 이렇게만 다니기도 바쁠걸요? 참, 아이도 태국에 같이 가게 되면 사모님과 인사 나누면 좋을 거 같아요. 사모님도 아이처럼 엄청 착하고 마음씨 좋은 분이어서, 그 때 둘이 만나면 엄청 친해질  같아요.”

“저도 그 분 만나 뵙고 싶어요. 아무튼 15살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하다니, 대단하네요...... 하기야 사람이 좋고 서로  맞는다면 나이는 아무 상관없다고 하니까...... 나도 만약 오빠가 그만큼 나하고 나이 차가 난다 하더라고 오빠는 그대로 오빠니까...... 그래도 난 오빠를 좋아했을 거 같아요.”



“나도 그래요. 우린 아마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해도, 서로 만나기만 한다면 이렇게 꼭 붙어 서로 좋아하게 되었을  같아요.”


“맞아요. 오빠가 나 찾아 일본으로 왔던 것처럼 내가 오빠 찾아 세상을 돌아다녔을지도 모르고...... 우리 다음 생에도 꼭 이렇게 함께 붙어 있어요. 꼭이요......”



아이는 민재의 품에 꼭 안겨왔다.



서로의 맨살이 느껴지고,




서로의 숨결마저 피부에  닿고 있었지만,



지금 이 시간만은 정욕이 아닌,




오직 서로를 통한 평안함과 행복함만을 느끼는 두 사람.



그렇게 두 사람은  주 동안 그토록 원해왔던 것처럼,



서로를 품에 안고 편안하게 잠이 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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