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화 〉아이 동생 유키나 (7)
아이 동생 유키나 (7)
아이는 유키나가 민재 옆에 서지 못하게, 아예 자기가 유키나의 팔짱을 끼고 함께 걷는 중이었다.
이것저것 쇼핑하느라 양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있던 세 사람은 우선 짐들을 모두 쇼핑몰 지하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민재의 차에 실어놓고는 점심을 먹으러 이동하기로 했다.
식당을 찾기 위해 먹거리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아이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닭꼬치를 파는 포장마차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유키나짱, 야끼토리 (일본 닭꼬치) 좋아하지? 한국식 야끼토리, 닭꼬치 먹어보지 않을래?”
“한국식 야끼토리? 응! 나도 먹어보고 싶어!”
“그래, 점심 먹기 전에 저거 하나씩 사 먹자. 오빠도 같이 가요.”
이러면서 아이가 유키나를 데리고 포장마차 앞으로 가는데,
거기 포장마차에 걸린 플래카드에 ‘졸라 매운 핵폭탄 소스 닭꼬치’라고 쓰여 있는 게 아닌가?!
아이가 매운 걸 잘 못 먹는다는 걸 안 민재가 걱정이 되어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아이 여기 엄청 맵......”
“쉿!”
아이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재빨리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러면서 살짝 윙크를 날리며 손가락으로 유키나를 가리키는데,
‘응? 이건?’
아이는 유키나를 골탕 먹일 생각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지난번에 일본에서부터 폿챠리 (육덕) 이라고 놀리지 않나, 한국 와서도 두 사람의 좋은 시간을 깨놓지 않나, 유키나가 여러모로 얄미울 수밖에 없겠지.
단단히 벼르고 있던 차에 마침 좋은 것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포장마차에 앉아 있던 마음씨 좋아 보이는 주인아저씨가 이들을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세요~! 뭘로 드릴까요?”
“네 저희 닭꼬치 3개 주세요~!”
“네, 어떤 맛으로 드릴까요?”
그러자 아이는 유키나에게 안 보이게 입을 살짝 가리고는,
주인아저씨만 보이게 입을 벙긋 거리기 시작했다.
“(졸) (라) (매) (운) (핵) (폭) (탄) (소) (스) (닭) (꼬) (치) (요) (완) (전) (맵) (게) (와아아아아안전) (맵) (게) (해) (서) (주) (세) (요).”
주인아저씨는 그녀의 입을 보고 뭐라는지 다 알아들은 듯, 키득키득 웃으시며 닭꼬치 제조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가 잘 구워진 닭꼬치에 캡사이신이 다량 함유된 것이 분명해 보이는 검붉은 소스를 바르기 시작하는데,
이를 본 유키나도 조금씩 위험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어...... 오네짱......? 저거 야끼토리 색이 원래 저런 거야? 색이 너무 위험한 빨간색인데......?”
“아라? 유키나짱. 원래 한국 음식들 빨간색이 많이 들어가는 거 몰라? 김치도 빨간색, 순두부찌개도 빨간색, 떡볶이도 빨간색.......”
“근데, 그거 다 고추 들어가서 빨간 거 아냐? 그럼 저것도 혹시 고추 들어가서 매운 거야? 나 매운 거 못 먹는데......?”
“아냐, 한국 음식들은 다 맛있게 매운맛이야. 너도 떡볶이 맛있게 잘 먹잖아? 저것도 마찬가지야. 한 번 먹어보면 일본 음식들이 너무 싱겁다고 느껴질 정도로 매운 맛을 좋아하게 될 지도 몰라.”
아이는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자, 주문하신 그 맛....... 닭꼬치 나왔어요~! 조심해서 드세요~!”
주인아저씨가 웃으며 닭꼬치를 내밀었다.
유키나가 닭꼬치를 받아들며 불안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오네짱.......? 왜 주인아저씨가 맛있게 드세요, 라고 안 하고 조심해서 드세요, 라고 해? 이거 무슨 경고의 의미인거 같은데......?”
“경고는 무슨. 소스 옷에 흘리지 않게 들고 먹을 때 조심하라고 하는 말이지~!”
“아, 그렇구나. 난 또~”
유키나는 안심한 듯 닭꼬치를 한 입 베어 오물오물 씹기 시작했다.
아이도 닭꼬치를 먹는 척 하면서 유키나가 닭꼬치를 입에 넣는 걸 확인하고는,
“오빠 배고프시죠?”
하면서 자신의 닭꼬치를 민재에게 건넨다.
아니, 졸라 매운 핵폭탄 소스 닭꼬치를 나더러 한꺼번에 두 개나 먹으라고?
뭐...... 그래도 아이가 주는데 먹어야지. 암.
그렇게 민재도 닭꼬치를 먹어보는데,
역시 먹으면서 슬슬 매운맛이 입안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와~ 이거~! 한국 사람한테도 엄청 매운데, 유키나가 이걸 먹을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벌써 닭꼬치를 반이나 먹고 있던 유키나의 표정이 심각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으으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아앙~! 나니~?! 나니 코레~?! (뭐야, 뭐야, 이거~?!) 스고쿠 츠라이~!! (엄청 매워) 카루피스 (칼피스, 우리나라 야쿠르트, 밀키스와 유사한 유산균 음료) 카루피스가 필요해~! 하으으으으으으~! 우우우우우으~!”
유키나는 닭꼬치를 손에 들고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진짜 매운지 얼굴도 다 시뻘게지고 이마에서는 땀까지 삐질삐질 나는 상황,
아이는 유키나를 보고 깔깔 웃으며 말했다.
“유키나짱이 아직 한국 음식에 적응이 덜 돼서 매운 건가봐.”
“적응이 안 된 게 아니라 이거 원래 사람이 먹으면 안 되는 정도의 매운 맛 아냐? 닭꼬치 색이 빨간 거 봤을 때부터 알아봤었어야 하는 데에~! 하르르르르르~!”
유키나는 매운 맛에 호되게 당한 듯,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아이는 유키나를 데리고 근처의 편의점으로 들어가 쿨피스를 사 먹였다.
유키나는 쿨피스 두통을 단숨에 들이키고도 입안의 매운맛이 가시지 않았는지, 거기에 우유와 요쿠르트까지 더 사서 먹어야만 했다.
“하으으으으으...... 돌아가신 오지상, 오바상 (할아버지, 할머니)이 눈에 보이는 맛이었어...... 어떻게 한국 사람들은 이런 걸 길거리에서 사 먹을 수 있는 거지? 이거 세 개만 먹으면 입에서 불도 뿜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유키나는 거의 반쯤 풀린 눈으로,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닭꼬치를 냠냠하고 있는 민재를 올려다보았다.
“혀-ㄴ-부...... 그거 안 매워요? 어떻게 그런걸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 있어요?”
“나한테도 조금 맵긴 한데, 그래도 맛있는데요? 한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매운 음식을 많이 먹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익숙해지게 된 거 같아요.”
“하으...... 소오 데스까 (그렇습니까)....... 그럼 지금 이거 닭꼬치는 한국 사람들한테 얼마만큼 매운 음식이에요? 베스트 10 뽑아보면 1,2,3위 쯤 될 정도로 매워요?”
“음...... 아뇨? 제 생각에는 베스트 10 안에는 못 들어갈 거 같은데요?”
그 말에 유키나의 두 눈이 휘둥그레 졌다.
“헤에에~?! 나니~?! 그럼 이거보다 더 매운 음식이 많다구요? 그럼 이거보다 더 매운 한국 음식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데요?”
“이거는 홍초 불닭하고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매운 수준인 거 같고, 이거보다 더 매운 음식들을 찾아보면...... 여기 동대문에 엽기 떡볶이도 있고, 매운 갈비찜이나 무교동 낚지볶음도 있고, 신길동에 있는 엄청 매운 짬뽕도 있고, 체인점에서 파는 빨간 라면도 있고...... 아, 관악구에 왕돈까스집에서 파는 매운 돈까스도 엄청 맵다고 들었어요. 나는 그거 너무 맵다는 말에 먹을 엄두가 안 나서 아직 못 먹어 봤지만. 그리고 한국에 있는 일본 커리 전문점에서 파는 매운 커리도 엄청 매워요. 진짜 찾아보면 이 닭꼬치보다 더 매운 음식은 얼마든지 있을 걸요?”
유키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세상에, 그럼 식당 잘못 찾아들어갔다가 음식 이상한 거 시키면 이런 매운 음식들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네요...... 하르르르르....... 앞으로 한국 음식 먹을 때는 일단 빨간 거는 무조건 패스하고 봐야 할 거 같아요. 하으으으으으.......”
유키나는 아직도 입안에 남아 있는 매운 맛 때문에 고통스러운지 남은 요쿠르트를 원샷하고 있었다.
그래도 닭꼬치는 버리기는 아까운 듯, 조금씩 조금씩 계속 입술이 닿지 않게 앞이빨로 뜯어먹고 있는 유키나.
아이는 그런 유키나가 귀여운지 까르르 웃고 있었다.
“오빠, 아무래도 점심은 유키나 때문에 뜨겁고 매운 거 말고 차갑고 시원한 거로 먹어야 할 거 같아요.”
“차갑고 시원한거요? 그럼 역시 냉면이죠!”
마침 편의점과 가까운 곳에 함흥냉면집이 있었다.
“잘 됐네. 앞에 냉면집 있는데 저리로 갈 까요?”
“네, 좋아요. 유키나짱. 냉면 사 줄 테니까 그거 먹으면 매운 거 많이 나아질 거야. 가자!”
아이는 유키나의 팔짱을 끼고 냉면집으로 향했다.
한동안 매운맛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유키나는, 정작 아이는 닭꼬치를 먹지 않고 민재가 아이 몫까지 두 개 다 먹고 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헤에? 근데 오네짱은 왜 닭꼬치 안 먹어? 설마, 나한테만 매운 거 먹이고 오네짱은 안 먹은거야?”
“치, 치가으~! (아, 아니야~!) 오빠가 배고프시다고 해서 양보한거야~! 자, 얼른 시원한 냉면 먹고 입 안 진정시켜야지? 유키나짱, 어서 들어가자~!”
아이는 유키나의 팔을 꼭 끌어안고 냉면집 안으로 후다닥 뛰어 들어갔다.
* * *
세 사람은 냉면집을 들어가 살얼음이 동동 떠 있는 물냉면을 주문했다.
주문한 물냉면이 나오고, 민재는 평소 자신이 먹던 데로 면을 가위로 두 번 자르고 노란 겨자를 다섯 방울 쳤다.
이를 본 유키나도 민재를 따라 겨자를 치려고 했다.
“앗, 유키나! 그거 겨자, 머스터드에요. 넣으면 매울 수도 있어요.”
“핫, 소오데스까? 넣었으면 큰일 날 뻔 했네요. 먹지도 못하고 그냥 버릴 뻔......”
아이는 유키나의 냉면을 가위로 잘라주었다.
“냉면 육수부터 먼저 먹어봐. 시원해서 매운 맛이 사라질 거야.”
아이의 말에 수저로 냉면 육수를 떠먹어 보는 유키나.
그러다가 맞은편에 앉은 민재가 계란 반쪽을 먼저 먹은 후 냉면을 그릇 째 들고 육수를 후루룩 마시는 걸 보고 자기도 따라서 그릇을 들고 육수를 마셔본다.
“아으~ 얼음이 있어 차갑고 좋다~! 근데 형부, 냉면 먹을 때 원래 계란부터 먼저 먹는 거예요?”
“꼭 그래야 하는 건 아닌데요. 냉면의 면은 보통 메밀로 만들어지거든요? 그런데 메밀의 성질이 차서, 위나 소화기가 안 좋은 사람들이 먹으면 배탈을 일으킬 수 있데요. 그래서 이를 보완하려고 계란을 함께 먹어주면 위와 소화기를 보호할 수 있는데, 저는 그래서 계란을 제일 먼저 먹고, 육수를 마시고, 그 다음에 먼을 먹고, 마지막에 수육 (고기) 순서로 먹곤 해요. 그런데 반드시 그렇게 먹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편하게 먹어도 상관없어요.”
“아, 그렇구나~! 그럼 나도 배가 자주 차가워지고 배앓이도 많이 하니까 계란부터 먼저 먹어야지!”
유키나는 젓가락으로 계란을 집어 오물오물 먹고는 민재처럼 육수를 쭉 들이켜 보았다.
한국에 와서 이미 몇 번 냉면을 먹어 본 아이는 입맛에 맞춰 겨자와 식초를 적당히 넣어 냉면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음~ 오이시 (맛있어)~! 그런데 오빠, 여기서 파는 냉면이 함흥냉면이죠? 한국에서는 함흥냉면하고 평양냉면이 되게 유명하던데, 평양냉면도 드셔보셨어요?”
“네, 먹어봤어요. 한국 사람들 중에서는 냉면 중에 평양냉면 만 좋아하는 매니아도 많다고 하던데, 저는 호불호가 갈린다고 봐요.”
“오빠는 좋아하는 편이세요, 아니면 싫어하는 편이세요?”
“음...... 굳이 가리자면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이에요. 아이, 혹시 슴슴하다, 라는 말 들어봤어요?”
“네, 평양냉면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에서 평양냉면 맛을 슴슴하다, 고 표현하는 거 들어본 적 있어요. 그런데 그 뜻이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슴슴하다, 라는 말은 원래 방언, 사투리인데요, 한 마디로 싱겁다, 라는 뜻이에요. 즉, 평양냉면 맛의 특징이 싱겁다, 라는 거죠.”
“싱겁다구요? 원래 한국 사람들은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들을 좋아하지 않나요?”
“대체로 그런 편이죠. 어찌보면 한국인들의 대중적인 입맛의 완전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평양냉면을 매력적으로 느끼는 사람들도 생기게 된 것 같아요. 메밀 자체의 은은한 맛과 향하고, 고기 육수의 담백함을 온전히 즐길 수 있어서 좋다는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사실 제 입맛에는 많이 싱겁고 별 풍미도 안 느껴져서 그리 자주 찾는 음식은 아니에요.”
민재와 아이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유키나는 벌써 냉면을 반이나 다 해치우는 중이었다.
그리고 아까 먹다 남은 핵폭탄 소스 닭꼬치도 냉면 육수로 입안을 달래가면서 끝까지 다 먹고 있었다.
“하아~ 차가운 냉면이 있으니까 한국 야끼도리도 별거 아니네~! 한국 매운 음식, 나도 조금씩 적응이 될 거 같아!”
유키나는 다 먹은 나무꼬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래? 그럼 유키나짱. 이 옆에 동대문 엽기 떡볶이도 있는데, 그거도 먹어 볼래? 거기 매운 맛도 보통이 아닌데.”
“으응? 아, 지금은 말고. 다음 기회에, 다음 기회에~”
아이의 말에, 유키나는 이마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