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9화 〉아이 동생 유키나 (8) (89/140)



〈 89화 〉아이 동생 유키나 (8)

아이 동생 유키나 (8)



명동 거리를 돌아보고 저녁까지 먹은 후 강남으로 돌아온 세 사람,


유키나는 쇼핑한 짐들을 호텔 방에 가져다 놓고 민재, 아이와 함께 삼성동 A아파트로 향했다.

“형부! 저 한국 치킨 먹고 싶어요! 한국 치킨 시켜주시면 안 돼요?”

“하하, 그래요. 아이도 치킨이랑 맥주 함께 하는 게 어때요?”



“네, 저도 좋아요. 맥주는 집에 많으니까 치킨만 시키면 될 것 같아요.”



민재는 고개를 끄덕이고 앱으로 치킨을 주문했다.

‘저 두 사람의 먹성을 고려하면 1인 1닭이 아니라 1인 2닭까지도 가능할 듯?’


그는 프라이드와 양념, 치즈맛, 파맛, 순살까지 치킨을 모두 5마리나 주문하기로 했다.

그동안 아이는 유키나를 주방으로 데리고 가 냉장고에서 맥주를 고르게 했다.



유키나는 냉장고 안에 여러 브랜드의 캔 맨주, 병 맥주 들이 잔뜩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헤에에~? 냉장고에 술이 편의점 냉장고에 든 거 만큼 가득 들어 있네? 오네짱이랑 형부 둘 다 카라토 (술꾼) 야?”



“무례하긴! 그냥 저녁 먹고 한 잔씩 마시는 것들이야. 마트 갈  한꺼번에 싸게 많이 사와서 이런 것 뿐이지, 매일같이 잔뜩 마시지는 않는다구. 게다가 밖에 나가서 술 마시는 것보다 집에서 같이 마시는 게  좋잖아?”



“그럼 오네짱, 형부는 밖에서 술 안 마셔? 집에서 오네짱이랑만 같이 마시는 거야?”



“응, 거의 그러셔. 저녁 먹고 나랑 같이  마시는  외에 딱히 나가서 술 마시거나 그러시지는 않아.”

“오네짱, 혹시 형부 친구 하나도 없거나 이지메 당하는  아니지......? 어떻게 저 나이에 밖에 나가서 친구랑 술도  마실 수 있어.......?”




아이는 쓸데없는 소리 한다는 표정으로 유키나의 엉덩이를 팡팡, 두드렸다.


“아, 이따이 (아파)~!”



“넌 그럼 나중에 너랑 사귀는 남자가 매일 친구들이랑  먹고 다니면 좋을 거 같아? 얼른 술이나 골라. 냉장고  오래 열어도 전기세 더 나가~!”



“치이~! 폿챠리 고부타짱 (육덕 돼지), 두고 보자......!”


유키나는 일본에서 파는 츄하이와 비슷하게 생긴 이슬ㅌㅌ  두 개를 집어 들고 입을 삐죽 내민 채로 거실로 돌아갔다.



* * *



치킨 배달이 도착하고, 두 자매는 거실에 앉아 치킨을 들고 야무지게 뜯기 시작했다.


“역시 치킨은 한국 치킨이 최고야! 켄터키 치킨도 한국 치킨을 이길 수 없어!”



유키나는 감동스러워 하는 표정으로 열심히 치킨을 먹고 있었다.



“형부! 치킨이 한국 사람들한테도 소울푸드라는데, 맞나요?”


“그렇게 볼 수도 있죠. 한국인 중에 치킨을 싫어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테니 말이에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진짜 소울푸드라 부를 수 있는 음식은 치킨 말고 따로 있는 거 같아요.”

“어떤 음식들이 한국 사람들 소울푸드인데요?”


“남자, 여자가 생각하는 소울푸드도 조금 다를  같은데, 남자들의 소울푸드는 제육볶음이랑 돈가스, 국밥인거 같구요, 여자들의 소울푸드는 떡볶이랑 파스타, 닭발, 곱창인  같아요.”


“아하~! 그것이 진짜 한국 사람들의 소울푸드? 닭발은 되게 맵다고 들었으니 그건 패스하고, 제육볶음은 뭐에요? 그것도 매운 거예요?”



“돼지고기를 매콤하게 볶은 거예요. 한국인들 입맛에는 그리 매운 음식은 아닌데, 고추장이랑 고춧가루 들어가니까 유키나 입에는 조금 매울 수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하얀 쌀밥이랑 김치랑 해서 같이 먹으면 정말 맛있어요. 늦은 밤에 제육볶음이랑 소주랑 같이 먹어도 너무 좋고. 밥 반찬으로도 술 안주로도 정말 최고인 음식이죠. 그래서 남자들의 최고의 소울푸드가 아닐까 싶네요.”

“그래요? 그래도 맵다니까 패스~! 아까 한국식 야키토리 (동대문에서 먹은 졸라 매운 핵폭단 소스 닭꼬치) 때문에 당분간 매운 음식들은 모두 패스할래요! 그런데 돈가스가 한국 사람들한테도 소울 푸드인 줄은 몰랐어요. 한국에서 파는 돈가스는 일본 돈가츠랑 조금 다르다면서요?”

아이가 맥주를 마시며 말했다.



“전에 오빠랑 남산돈까스라고, 되게 유명한 돈가스 가게 가   있거든? 거기 돈가스는 일본 돈가츠랑 다르게 미리 썰어져 있지 않고 소스도 위에 뿌려져서 나왔어. 오빠가 그러는데, 예전에는 돈가스 소스에 밥도 비벼먹는 사람도 있었데. 물론 그렇게 먹어보니까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그래? 그럼 돈가스 자체는 맛있었어?”




“응, 맛있었어. 일본 돈카츠와는 또 다른 맛이야. 크기도 그릇만큼 엄청 크기도 했고.”



“아, 그럼 나도 먹어보고 싶다~! 돈가스도 먹어보고 싶고, 곱창도 먹어보고 싶고, 국밥도 먹어보고 싶고...... 아, 한국 국밥은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면서요? 오네짱이 먹어본 국밥 중에 제일 맛있었던 국밥은 어떤 거였어요?”



“난...... 오빠랑 같이 먹었던 뼈다귀 해장국이랑 부산 돼지 국밥!”

그러면서 아이는 살짝 취한 표정으로 민재에게 발을 뻗어 장난을 쳤다.



전에 함께 클럽에서 놀고 나온 뒤, 그와 뼈다귀 해장국을 먹을 때 했던 장난이었다.

민재도 그 때가 생각났는지, 그녀의 장난에 미소를 지었다.



민재의 예상대로 아이와 유키나는 앉은 자리에서 치킨을 두 마리씩 깨끗하게 해치우고 맥주도 거진 네다섯 캔을 마시고 있었다.




“아무래도 치킨이 부족할 거 같네? 내가 다른 치킨으로 세 마리 더 시켜줄게요!”

“네, 좋아요!”




“형부, 사이코 (최고)~!”




치킨을 더 시켜준다는 말에  자매는 박수를 치며 좋아라 했다.

돗수가 낮은 맥주지만, 네다섯 캔을 마시니 아이와 유키나 모두 얼굴이 발그레 해지고 취기가 오르는 모양이었다.


민재는 남아있는 순살 치킨을 자매들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주방으로 가서 병맥주 한 병을 꺼내 가지고 오는 중이었다.



“오빠, 이제 병으로 드시려구요?”


“네, 확실히 치킨을 먹으니까 맥주가 많이 땡기네요.”


“그래도 병맥주 입대고 드시지 마세요. 잠깐만 있어보세요......!”


아이는 살짝 취한 듯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주방으로 달려가 맥주전용 유리컵을 가지고 왔다.


“자, 제가 따라드릴게요.......!”

아이는 병을 공손히  손으로 들고 그 잔에 맥주를 따라주었다.



“이야~! 오네짱, 야마토 나데시코네? 오까상이 오또상한테 하는 거랑 똑같아서 놀랐어!”



민재가 잔을 들며 말했다.

“일본에서 어머님이 아버님한테도 이렇게 술을 따라드려요?”



“예, 오까상이 옛날 사람 같은 구석이 있어서, 아직도 오또상한테  따라 드릴 때 무릎 꿇고  손으로 따라드리곤 해요. 요즘 일본에서는  안 그러거든요? 술을 따라주어도 그냥 한손으로 따라주는 경우가 많은데 오까상은  그렇게 하시더라구요. 오네짱이 오까상이랑 하는 게 너무 똑같아서 조금 놀랐어! 딸꾹!”



유키나도 술을 좀 많이 마셨는지 딸꾹질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딸꾹질 하는 유키나가 귀여운  등도 두드려주고 물도 가져다주었다.

‘아이의 외모나 성격 모두 어머님을 많이 닮았는가 보구나?



곧 새로운 치킨이 배달오고, 이번에도 자매들은 전투적으로 달려들어 열심히 치킨을 먹고 있었다.


아이는 치킨을 먹다가도 민재가 맥주를 마실 때마다 첨잔, 아직 술이 남아 있는 잔에 술을 가득 따라 주곤 했다. 한국에서는 술이 남아 있는데도 더 따라주는 것이 실례가 될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이렇게 첨잔을 해주는 게 기본 예의. 아이가 술에 취한 덕에 한국의 주도 대신 일본에서 어머님께 배웠던 대로 그의 잔을 가득 따라주고 있었던 것이다.

민재도 일보에서는 첨잔이 술을 마실 때 예의라는 것을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그래서 그녀가 계속 술을 따라주어도 뭐라 하지 않고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아~ 오네짱이랑 형부 너무 부럽다. 두 사람 너무 다정해 보여. 난 언제 저런 남자 친구 생기나 몰라......”



아이가 민재의 잔에 술을 따라주고는 동생을 나무라듯 말했다.

“유키나, 지금도 일본에서  좋다는 남자 있잖아? 게다가 아이돌 그룹 멤버고.”



그녀의 말에 민재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이돌 그룹 멤버? 그럼 연예인이 유키나를 좋아한다는 거예요?”




“네, 맞아요. 아직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유키나 좋다고 연락도 하고 학교도 찾아오고 아르바이트하는 데까지 찾아왔었데요.”


“와......! 연예인이 만나달라고 할 정도라니......! 유키나 진짜 대단한데요? 아이돌 멤버면 얼굴도 되게 잘생기고 멋진 사람일 거 같은데, 그런데 왜 아직 사귀지 않는 거예요?”

유키나는 살짝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잘생기고 멋지면 뭐해요? 유명한 우와키 모노 (바람둥이, 난봉꾼) 인데.”



“네, 우와키 모노 라구요?”

유키나가 핸드폰으로 사진을 검색해 보여주며 말했다.



“뉴 크로스란 그룹에 있는 코우지 유토 라는 아이돌인데요, 이 사람이에요.”




“음...... 아이돌이라 그런지 잘 생겼네요. 근데 확실히 얼굴에 바람기가 보이는데요?”




“그쵸? 이 사람 소문난 우와키 모노, 바람둥이에요. 클럽 가서 원나잇도 엄청 한다고 하고, 야자도 엄청 밝힌다고 하고, 소문도 되게 안 좋아요.”


“그런데 유키나는 이 사람하고 어떻게 알게 된 거예요? 그리고 지금도  사람이 계속 유키나 따라다니는 거예요?”


유키나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이 사람이 저 쫓아다닌 지 꽤 오래 되었어요. 언니가 아이돌 했던 마지막 해인가, 그 때 친구들이랑 언니 공연 보러간 적이 있거든요? 그  언니가 공연 마치고 친구들을 백스테이지로 초대해서 친구들한테 사인도 해주고 같이 사진도 찍고 그랬던 적이 있었는데요, 근데 그 공연에서 뉴 크로스도 같이 공연을 했었는데, 거기서 코우지 유토가 제 번호를 따갔어요.”

“번호를 따갔다구요? 그 때 그냥 전화번호를 준 거예요?”




“네, 제가 어렸을 때라 연예인이 제 번호 따갔다고 그냥 기분 좋아 하기만 했었죠. 근데 그 사람에 대해 알고 보니까 영...... 그래서 계속 피하고는 있는데 학교도 찾아오고 아르바이트 하는데도 찾아오고 너무 귀찮게 해요.”


옆에서 치킨을 뜯고 있던 아이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 사람, 예전에 나한테도 번호 달라고 한 적 있었어. 아무튼 연예계에서 별로 좋은 평 받는 사람은 아니야.”



“치이~! 오네짱도 잘 알면서 왜 그런 사람 얘기를 해?”

“왜기는? 유키나짱 남자 친구 만들고 싶다며? 그래서 하는 말이었지,  사람하고 꼭 사귀라고 말  건 아니구.”


“오네짱, 그렇게 말 하지마~! 난 그 사람 따라다니는 것 때문에 얼마나 스트레스인데? 오네짱도 일본에서 이상한 사람 많이 따라다녀서 내 기분 알거 아냐~!”




유키나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이는 금세 미안해하는 표정으로 그녀의 어깨를 보듬어 주었다.


“미안해, 유키나짱. 난 그냥 아무 뜻 없이 했던 말인데...... 나도 오랫동안 스토킹 당해봐서 잘 알아. 그래서 한국으로 오게 된 거구. 니 마음도 모르고 괜한 말해서 미안해......”


그녀는 토라진 동생의 등을 토닥여주며 위로를  주었다.

“아이, 그럼...... 유키나가 일본 연예인한테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는 거?”



“저처럼 진짜 스토킹을 당하는 건 아니지만 귀찮게 구는 건 맞죠. 그것도 유키나가 어려서부터 계속 그래 왔으니까요.”


“연예인이면 이런 스캔들 터졌을 때 본인에게 상당히 좋지 않은 영향이 올 거라는 걸 잘 알 텐데, 그래도 유키나에게 계속 접근했던 거예요?”


“워낙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다니기로 유명해서 그런  신경도 안 쓰는가 봐요. 그런데 유키나는 다르잖아요. 연예인도 아니고 공인도 아닌데. 가끔 연예 기자들이 유키나를 파파라치처럼 따라다니며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고 한 적이 있었데요. 혹시 아무도 모르게 코우지 유토랑 만나는 게 아닌가 하고 따라다닌거죠.”

“유키나도 아이처럼 예쁜 얼굴이어서 남자들이 따라다니는 건 이해하지만, 기자들이 연예인도 아닌 사람까지 쫓아다니는  좀.......”

유키나는 살짝 울먹이는 말투로 말했다.

“그래서 내가 오네짱처럼 한국 남자 만나고 싶어 했던 거예요. 아...... 나 그냥 이번 기회에 오네짱이랑처럼 한국 유학 보내달라고 할까? 아니면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오던가.”

그녀는 속이 답답했는지 이슬ㅌㅌ을 한번에 쭉 들이켜 버렸다.




* * *

결국 유키나는 술에 취해 민재 집에서 자고 가기로 했다.

민재는 자매를 마스터룸 침대에 같이 재우고 자신은 거실로 나와 소파 카우치에 누웠다.

‘유키나가 아이 못지않게 예뻐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을 거라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연예인한테까지 대시 받았을 줄이야....... 그래도 상대가 바람둥이라면 암만 잘생기고 멋있어도 당연히 싫을 수밖에 없겠지. 게다가 아이한테 까지 전화번호를 따려는 놈이었으면...... 그런 놈은 더더욱  될 것이고.’



소파에 누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스터 룸에서 아이가 거실로 나왔다.




유키나가 온 탓에 그녀는 오랜만에 잠옷을 차려 입고 있었다.

“음? 아이?”




“유키나 이제 잠들었어요. 저는 오빠랑 같이 자려구요.”



아이가 웃으며 이불 속으로 쏙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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