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아이 동생 유키나 (10)
아이 동생 유키나 (10)
세 사람은 아침을 먹은 후 압구정 G백화점 쇼핑에 나섰다.
압구정동에 있는 민재의 건물이 G백화점과 가까웠기 때문에, 일단 차는 자신의 건물에 주차하고 걸어서 백화점으로 향하기로 했다.
나루사와 자매와 함께 EAST 관 1층 샤ㄴ 매장에 들어갔을 때, 민재가 아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이는 아직 선글라스 없죠?”
“네, 선글라스는 잘 안 써봤어요.”
“그럼 오늘 하나 골라 봐요. 선글라스는 하나 쯤 있으면 좋으니까.”
아이는 몹시 기뻐하며 마음에 드는 선글라스 하나를 골랐다.
“저 그럼 이거요! 오빠가 보기엔 어때요? 잘 어울리는 거 같나요?”
아이의 귀여운 얼굴에 잘 맞는 스타일의 선글라스,
민재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잘 어울려요. 그거 딱 아이꺼네요.”
“정말요? 흐흐흥~♡”
선글라스의 가격은 60만 원대, 민재는 결재를 하고 아이가 바로 쓰고 갈 수 있도록 텍을 제거해 달라 부탁했다.
“오빠, 고마워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요. 나온 김에 사가게.”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리고 선글라스 케이스에 넣어 갈게요.”
“밖에 해도 뜨거운데 쓰고 다녀도 될 거 같은데요? 게다가 아이 연예인 출신이라 한국에서 알아보는 사람 있을 수도 있으니 그냥 쓰고 다니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요.”
“아니에요, 알아보는 사람 없을 거예요. 그리고 오히려 이런 거 쓰고 얼굴 가리고 다니는 거 부끄러워요. 게다가 백화점 안인데....... 그냥 케이스에 넣어갈게요.”
아이는 선글라스를 케이스에 담애 백에 넣으며, 민재의 손을 꼭 잡았다.
민재도 그녀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의 뒤에서 유키나가 이들 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쭉 내밀고 질투어린 시선을 보내는 중이었다.
“이그, 바카푸루 (닭살 커플, 밉상 커플)~!”
아이는 유키나의 말에 1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민재의 손을 흔들며 쇼핑을 계속 했다.
그들이 길 건너 WEST 관 1층 루이XX 매장에 들어갔을 때,
이번엔 아이가 민재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오빠, 오빠는 키링 안 쓰세요?”
민재는 지금까지 메르세데스 벤츠와 페라리의 차키를 그냥 따로 들고 다닐 뿐, 키링을 달고 다니지는 않고 있었다.
“네, 아직 키링을 써보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있으면 편할 거 같은데, 내가 오빠 하나 선물해줘도 되요?”
아이는 루이XX 로고가 찍힌 키와 자물쇠 모양의 키링을 골라 민재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 우리 남산 갔을 때 거기 달아 놓은 사랑의 자물쇠 같이 생겼어요. 이거 예쁜 거 같은데, 오빠 선물해 드리고 싶어요. 마음에 드세요?”
“네, 예뻐 보여요. 그런데 이번에도 자물쇠 모양이에요?”
“네, 오빠 운전할 때도 나한테서 도망 못 가게 계속 잠가 놓을라고. 헤헤.”
아이는 자기 카드로 키링을 계산한 후 손에 잠시 꼭 쥐고 있다가 민재에게 건네주었다.
“이제 차키 여기에 달고 다니세요. 벤츠랑 페라리 둘 다. 내가 방금 마법 걸었으니까 오빠 이제 아무데도 못가고 나한테 꼭 붙잡힌 거예요. 흐흐흥~♡ ”
아이의 웃음 짓는 모습에 민재는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키스를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옆에 유키나가 보고 있어 꾹 참는 중.
유키나는 이들의 닭살 돋는 애정행각에 살짝 짜증난 표정으로 두 사람의 옷을 잡아당겼다.
“자자, 바카푸르들, 이제 그만하고 밥 먹으러 가요, 밥! 나 배고파, 점심밥 사줘~!”
* * *
세 사람은 청담 거리를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 W스테이크 하우스에 도착했다.
레드카펫이 깔린 계단을 올라가니 1,800년대 ~ 1,900년대 근대 미국의 클래식한 식당에 온 듯 한 고풍스런 인테리어가 그들을 맞이해주었다. 높은 천장위에는 옛 미국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부유한 미국 남부 귀족의 저택에서나 볼법한 샹들리에가 달려있었고, 1층과 2층 한쪽 벽면에는 수많은 와인들이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하얀 식탁보가 깔려 있는 테이블은 줄을 맞추어 나란히 배열되어 있었고, 그 사이를 깨끗한 하얀색 복장을 입은 직원들이 분주히 돌아다니며 손님들에게 식사를 서브하고 있었다.
아이와 유키나는 이곳 분위기가 무척 마음에 드는지 자리에 앉아 식당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오빠, 여기도 지난번에 갔었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같은 곳이에요?”
“그렇게도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역시 W스테이크 하우스는 미국 정통 스테이크 식당이라고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
“미국 정통 스테이크? 그럼 다른 스테이크하고 미국 스테이크는 좀 다른가요?”
“지난번에 한국이나 일본에서 가봤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은 유럽 스타일의 식당들이라서, 코스 요리가 상당히 많이 나오는 반면에 스테이크는 조금 작게 나왔던 거 기억하죠? 하지만 미국 스타일은 다른 코스 요리들보다 메인인 스테이크에 더 집중 하는 편인데, 그래서 유럽식 스테이크에 비해 그 크기나 양이 어마어마하죠.”
아이는 기뻐하는 표정으로 손바닥을 마주쳤다.
“어머, 그럼 딱 내 스타일이네요. 맛있고 양도 많은 거! 흐흐흥~♡”
유키나도 언니의 말에 맞장구 쳤다.
“나도 좋아요, 샐러드나 다른 것보다 고기 많이 나오는 거, 그게 제일인거 같아요!”
역시 자매는 식성도 비슷한가 보다.
민재는 세트 메뉴를 고르고 와인을 글라스로 한잔씩 주문했다.
우선 물이 먼저 서브되었는데, 물도 노르웨이 프리미엄 미네랄 워터와 탄산수 중 선택을 할 수 있었다. 민재는 미네랄 워터, 아이와 유키나는 탄산수를 선택했다.
그리고 식전빵과 버터가 나왔는데,
“헤에~? 이건 빵하고 버터가 너무 딱딱한데요?”
아이가 빵에 버터를 바르다가 잘 발라지지 않아 살짝 당황한 표정이었다.
“나도 전에 여기 처음 왔을 때 그거 때문에 조금 당황했었어요. 이거 혹시 빵이랑 버터 굳은 거 주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이 들을 정도였죠.”
“네, 맞아요. 여기 그래도 청담동에 있는 거면 상당한 고급 식당일 텐데.......”
“이 곳은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라 세계적으로 많은 체인점을 가진 스테이크 전문점이죠. 저도 그래서 빵하고 버터는 다른 곳과 다르게 너무 딱딱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뭐, 다른 음식들은 모두 괜찮으니까 그냥 넘기게 되더라구요.”
아이가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오물오물 씹으며 말했다.
“빵이란 버터 맛은....... 좋아요. 너무 맛이 강하지도 않고. 이거 혹시 메인 요리 나오기 전에 식전빵으로 배 채우지 말라고 이런 거 아닐까요?”
“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애피타이저도 양이 상당한 편이니 빵이 너무 맛있으면 그거로도 배가 그득해질 테니까 일부러 배려한다고 딱딱한 빵과 버터를 내놨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들이 빵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애피타이저로 차가운 랍스터와 새우, 가리비가 든 씨푸드 플래터와 캐네디안 베이컨과 곁들여진 비벌리힐스 찹 샐러드가 서브 되었다.
“아레? 오네짱. 이거 랍스터가 차가워. 식은 거 아냐?”
포크로 랍스터를 들고 냠냠하던 유키나도 이상한 듯 말했다.
“맞아, 맛은 있는데...... 가리비나 랍스터를 익혔다가 식혀서 나오니까 좀 이상하다. 그치?”
“응! 이거 베이컨도 두툼하고 맛있기는 한데, 아까 빵도 그렇고 이거 랍스타도 그렇고...... 형부, 아까 유럽 스타일하고 아메리카 스타일하고 다르다고 하셨잖아요? 이제 보니 애피타이저부터 유럽 스타일과 아메리카 스타일의 차이가 확실하게 느껴지는 거 같아요.”
민재가 웃으며 물었다.
“어떤 차이가 느껴지나요?”
“저번에 M호텔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유럽 스타일은 유럽 귀족들이 먹는 것 같은 우아하고 섬세한 기분이 들었다면, 이번에 먹는 아메리칸 스타일은 양키들이 먹는 것 같은 와일드하고 터프한 느낌? 빵도 딱딱하고 해산물을 차갑고 베이컨은 두껍고....... 무언가 음식에서도 국가적인 특성이 보이는 거 같아요.”
유키나의 말에, 아이도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럼 우리가 먹는 게 양키 카우보이 스타일?”
“응, 돈 많고 잘사는 양키 카우보이들이 먹는 스타일. 유럽 귀족들처럼 먹고는 싶은 데 그걸 완벽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양키들이 그냥 따라 하기에 그친 스타일. 일단 맛있기는 한데, 느낌이 미묘해.”
이제 이집의 시그니쳐 드라이 에이징 포터하우스 스테이크가 서브되었다. 세트는 4인 기준 900g을 주문했는데, 보기에도 상당히 두껍고 큼지막했다.
“아아, 역시 아메리카 스타일!”
유키나가 스테이크의 크기에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테이크를 그릇 째 오븐에 구웠는지, 아직도 그릇위의 버터가 지글지글 맛있는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다.
직원은 직접 스테이크 고기와 아스파라거스, 매쉬드 포테이토, 크림 스피나치를 세 사람의 그릇에 서빙해 주었다.
이것 외에도 토마토와 어니언도 같이 나왔는데, 이 사이드 메뉴 중 토마토와 어니언 대신 구운 숙성 김치를 고를 수도 있었다. 아마 한국 청담점에서만 있는 특별 메뉴인 거 같은데, 예전에도 이곳 W스테이크 하우스를 몇 번 방문한 적 있는 민재는 자매들이 사이드로 김치를 고르려는 것은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고기랑 구운 김치 먹으려면 삼겹살집 가는 게 100배 더 나아요. 스테이크와 김치는....... 일단 스테이크가 버터 때문에 조금 느끼해서 김치가 그 느끼함을 잡아주는 건 맞는데, 한국인인 내가 느끼기에도 절대 맛있는 조합은 아니었어요. 역시 스테이크는 스테이크와 맞는 사이드 메뉴와 먹는 게 제일인거 같아요. 특히 이곳 스테이크는 더더욱 그런 거 같구요.”
민재가 스테이크 고기를 한입 크기로 썰어 아스파라거스와 함께 포크로 찍어서 크림 스피나치를 살짝 묻혀 아이의 입에 넣어 주며 말했다.
“앙~♡ 맛있어요~! 김치랑 같이 먹으면 어떤 맛인지 궁금하긴 했는데, 이렇게 먹는 게 역시 나은 선택인거 같아요.”
“맞아, 고기랑 김치 같이 먹는 건 나중에 삼겹살 먹으러 갈 때 먹어요. 나도 삼겹살집에서 마늘이랑 김치 구어서 삼겹살이랑 같이 쌈 싸서 먹고 싶었어!”
민재가 글라스에 든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전에 아이한테 일본에서도 삼겹살집이 있다고 들었는데, 유키나도 일본에서 삼겹살 먹어봤어요?”
“있기는 한데 많지는 않아요. 유튜브에 나오는 것처럼 상추랑 깻잎 쌈이 서비스로 나오는 것도 아니고, 김치나 마늘 구워서 같이 먹을 수 있는 식당도 거의 못 본 거 같아요. 아직도 일본 사람들 중에서는 마늘을 불에 구워먹을 때 냄새를 엄청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유키나는 그럼 마늘이나 김치 구워 먹는 거 괜찮아요?”
“아직 그렇게 안 먹어봐서 한번 먹어보고 싶어요. 사실 일본 사람들 마늘 별로 안 좋아해요. 일본 마트 가면 식재료로 마늘을 팔기는 하는데, 사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낱개로 포장해서 팔 정도에요. 그래도 저처럼 젊은 사람들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거에 도전하고 싶어 하잖아요? 그래서 삼겹살에 마늘이랑 김치 구워먹는 거, 언제라도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역시 스테이크 4인분 900g을 주문했지만 나루사와 자매에게는 결코 많지 않은 양이었던 것 같다.
고기를 깨끗하게 해치우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과 티라미슈 케익, 티까지 마시고 나니 벌써 오후 2시.
“잘 먹었습니다, 형부~!”
“잘 먹었습니다, 오빠. 여기 스테이크 좋은 거 같아요. 우리 여기 또 와요, 네?”
처음에는 조금 이상해하는 것 같더니, 그래도 둘 다 이번 식사에 만족한 모습이다.
민재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 기분 좋게 계산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와인도 한잔 마셨으니 바로 운전은 안 되고, 민재는 아이, 유키나와 함께 청담 명품 거리를 걸으며 매장들을 한 곳씩 방문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유키나가 어느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와~! 여기 되게 멋진 건물이 있어요! 우리 저기도 가 봐요!”
그녀가 가리킨 멋진 건물은 하얀색 대리석에 투명한 글라스로 꾸며진 화려한 외관의 명품 매장,
유명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한국의 동래학춤을 보고 도포자락이 흩날리는 우아한 모습에 영감을 얻어 이를 모티브로 건축 (정확히는 리모델링) 했다는 그 곳,
청담 루리XX 메종 이었다.
맞다.
과거 시은이 근무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아이와 유키나는 함께 손을 잡고 매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여기는 루이XX 매장이야.”
“아라? 아까 백화점에도 루이XX 매장 있었잖아? 근데 여기 또 있어?”
“왜? 이 주변에 아까 백화점에 있던 명품 브랜드 매장 건물들이 다 모여 있는데?”
“아, 그래서 여기가 명품 거리라고 불렀던 거구나?”
두 사람이 매장 안으로 들어가고,
민재도 조금 불편한 표정으로 그녀들을 뒤 따라 들어갔다.
‘흠, 나 알아보는 직원들 있으려나? 그럼 조금 불편한데......’
그녀들이 안으로 들어오자, 1층 현관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이 다가와 그들을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저희 매장...... 어머, 고객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직원은 아이와 유키나를 응대하려다가 뒤 따라오는 민재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예전, 시은이 이곳 매장에 있을 때부터 자주 본 적 있는 시니어 직원이었던 것이다.
민재도 살짝 놀란 표정으로 그녀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하필 아는 사람이 있을 줄은......’
직원이 민재를 알아보는 모습에 아이와 유키나도 그를 돌아보고,
민재는 애써 표정을 감추며 웃어 보이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