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아이의 한국 여행 - 유키나짱과 전주로 (3)
아이의 한국 여행 - 유키나짱과 전주로 (3)
첫 번째 음식들이 들어오고 얼마 후, 이어서 불고기에 제육볶음, 구운 버섯과 마, 회와 간장게장 볶음밥이 더 나오고, 또 홍어 삼합과 조기구기, 육회와 전복회, 계란찜에 산낙지까지도 나왔다. 더 이상 그릇을 올릴 데가 없어 음식 그릇 위에 다른 그릇을 더 올려야 할 정도였다.
“와, 스고이(대단해)......! 형부가 왜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나온 다는지 알겠어......!”
유키나는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양의 음식들을 보며 좋아서 방방 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그럼 잔부터 채우셔야죠?”
아이가 각자의 막걸리 잔에 맑은 막걸리를 따라주며 말했다.
“자, 그럼 건배?”
“네, 간빠이~!”
세 사람은 잔을 가볍게 부딪치고는 쭈욱 들이켰다.
“음? 이건 카루피스 (칼피스)에 라무네 (일본의 탄산음료, 레모네이드가 와전된 이름이다.) 탄 느낌이야! 달콤하고 톡 쏘고 맛있는데?”
막걸리를 처음 마셔본 유키나도 맛이 괜찮았나 보다. 그녀는 금방 한 잔을 비우고 주전자에 든 막걸리를 잔에 가득 더 따랐다.
민재는 아이를 위해 찐 새우 껍질을 까서 그녀의 앞접시에 올려주었다.
“예전에 우리 아버지는 새우 드실 때 껍질도 안 까고 머리까지도 다 드셨죠.”
“헤에? 머리까지요? 새우는 머리까지 다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고 하잖아요?”
“네, 맞아요. 새우머리는 다른 부위보다 카드늄 같은 중금속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아서 먹으면 별로 안 좋다고 미디어에 많이 소개되었죠. 그런데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에는 그런 이야기가 별로 없어서, 그냥 머리부터 꼬리까지 초장에 푹 찍어서 드시는 걸 좋아하셨어요. 이가 좋으셔서 그런지 게도 껍질 째 씹어 드시는 걸 좋아하셨구요.”
“우와, 게도 그냥 씹어 드셨다구요? 이가 정말 튼튼하셨나봐요!”
아이는 민재가 까준 새우를 맛있게 냠냠하고는, 앞에 있는 산낙지를 젓가락으로 집어서,
“오빠, 아~”
하고 직접 입에 넣어주었다.
막걸리 한잔에 얼굴이 빨개져 있던 유키나는 이 모습을 보고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중얼거렸다.
“흥, 바카푸루 (닭살 커플, 민폐 커플)......!”
유키나의 표정을 본 민재가 그녀에게 건배를 제의하며 물었다.
“유키나, 전라도 음식 마음에 들어요?”
“네, 그...... 음식 양이 많다고 하는 한국말이 뭐가 있었죠?”
“음....... 푸짐하다?”
“네, 맞아요, 푸짐하다! 되게 푸짐하고 맛도 다 좋은 거 같아요! 음식들이 막걸리하고도 잘 맞고, 여기 진짜 잘 온 거 같아요!”
유키나는 민재와 건배를 나누고 또 막걸리를 쭈욱 들이켰다.
이를 보던 아이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유키나, 그거 한 번에 다 먹을 필요 없어. 천천히 나눠마셔도 돼.”
“괜찮아. 별로 취하지도 않고 달기만 한 거 같은데?”
이러면서 그녀는 여러 가지 안주들을 이것저것 골라먹으며 막걸리를 계속 마셔 댔다.
테이블에 오른 메뉴 중 가장 인기가 있었던 음식은 간장게장밥. 지난번에 간장게장집에서도 게딱지에 밥을 비벼 맛있게 먹더니, 이번에도 둘이 이걸 수저로 푹푹 퍼서 게 눈 감추듯 금세 먹어치운다. 민재는 나루사와 자매들에게 간장게장밥을 모두 양보하고는 자신은 제육볶음이나 매운탕 등 주로 자매들이 잘 먹지 않는 매운 음식들을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음식이 있었다.
돼지고기 삶은 것과 묵은지, 그리고 홍어가 함께 올려져 있는 삼합이었다.
“오빠, 근데...... 저기 저 음식에서 이상한 냄새나요...... 저거 혹시 상한 거 아니에요?”
삼합을 가리키며 불안한 표정을 짓는 아이,
민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하하, 상한 게 아니라 홍어 냄새에요. 아이는 아직 한국 와서 홍어 못 먹어 봤죠?”
“네, 그거 어학당 친구들이 청국장하고 더불어 가장 피해야 하는 음식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이 냄새 때문에 피하라고 한 거 같은데, 맞죠?”
“네, 맞아요. 홍어가 아마 세계에서 가장 냄새나는 음식 중 베스트 5안에 드는 음식일거에요.”
아이는 멀리서도 스멀스멀 코를 찔러 들어오는 암모니아향에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에코...... 어떻게 저런 냄새가 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요?”
“왜요? 두리안도 냄새는 엄청나지만 맛이 있어서 많이들 먹곤 하잖아요? 이것도 특이한 냄새와 맛 때문에 일부러 찾는 사람들이 많은 음식 중 하나에요. 하나 먹어보면 막힌 코도 뻥 뚫린대요. 한번 맛만 봐볼래요?”
아이는 급히 양손을 내저었다.
“나는 코 안 막혀서, 일단 맛보는 보류할게요. 먹을 용기가 도저히 안나내요.”
유키나가 살짝 홍어에 코를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아 보았다.
순식간에 코를 찔러 들어오는 암모니아의 알싸한 냄새......
그녀는 화들짝 놀란 표정으로 오만상을 찡그리며 손으로 코를 틀어막았다.
“오 마이 갓! 이거 엄청나게 많은 음식들 중에 지뢰 하나 깔아 놓은 것 같은데? 멋모르고 먹으려고 했다가 완전 당할 뻔 했어!”
민재는 나루사와 자매가 홍어 냄새에 대경실색한 것을 보고는 갑자기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그래도 홍어는 전라도에서는 잔치를 할 때 마다 꼭 빼놓지 않고 준비하야 하는 지역 대표음식이래요. 그럼 전라도에 왔으니 전라도 대표음식을 시식해 봐야겠죠? 자! 우리 셋이 가위 바위 보 해서 지는 사람이 저거 홍어 한 점 먹기! 대신 홍어만 먹기 힘들 수 있으니까 돼지고기랑 묵은지랑 같이 먹는 걸로!”
자매는 살짝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홍어 뿐 아니라 묵은지의 냄새도 그녀들에겐 고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좋아요, 그럼 딱 한 판으로 끝내는 거예요.”
“응, 그럼...... 장켄 (일본에서의 가위바위보 구호, 이시켄, 이시카미 라고도 불린다.) 스타또! 쟌켄퐁 (일본식 가위바위보 구호)!”
유키나가 기습적으로 가위 바위 보를 시작하고,
세 사람이 손을 앞으로 뻗었다.
민재 보자기,
아이 보자기,
유키나만 주먹.......
“와! 유키나 당첨 됐어! 축하해!”
아이는 민재의 어깨를 흔들며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유키나는 자기가 걸릴 줄 몰랐다가 어쩔 수 없이 저 냄새나는 것들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취기가 올라 겁을 약간 상실했는지, 용기를 내어 민재가 가르쳐주는 대로 묵은지 위에 돼지고기와 홍어를 올리고 돌돌 말아 입으로 가져갔다.
눈을 질끈 감고 입을 오물거리던 유키나,
금세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와! 이거, 코에서 막 바람이 나와~!”
유키나는 입에 든 것을 뱉지도 못하고 꿀꺽 삼키고 말았다.
아이는 유키나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깔깔 웃다가, 그래도 동생이 안쓰러웠는지 그녀의 옆자리로 옮겨와 그녀의 입에 계란찜을 먹여주며 달래 주었다.
* * *
벌써 막걸리 한 주전자가 동이 나고, 민재는 막걸리 한 주전자를 더 주문했다.
유키나는 이미 술에 많이 취한 듯, 뽀얀 얼굴이 많이 발그레해져 있었다.
아이는 동생이 걱정스러운지, 그녀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유키나짱, 너 괜찮아? 너무 많이 마신 거 아냐?”
“으응~ 나이, 나이 (아냐, 아냐)~ 많이 안 마셨어엉~ 근데 오네짱,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거?”
“그럼 걱정되지. 오빠가 아까 막걸리 이거 숙취 심하다고 했잖아? 너 그거 많이 마셨다가 내일 여행까지 망치면 어떻게 해?”
“아항~ 그렇지~! 그럼 조절해 가면서 마셔야겠다. 아리가또, 오네짱~!”
유키나는 아이를 와락 끌어안더니 그녀의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했다.
“그런데 오네짱, 그거 알아? 형부, 형부도 그거 알아요? 내가 오네짱 어려서부터 엄청 질투하고 미워했던 거?”
유키나는 아이를 꼭 끌어안은 채, 살짝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어려서부터 오또상 오까상이랑 같이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무조건 오네짱 보고만 키레이 (예쁘다)라고 하는 거야. 나한테는 별 말 안하는데...... 그래서였나, 늘 오또상 오까상은 예쁜 옷 사면 무조건 오네짱부터 먼저 입히고, 그 다음에 내가 물려 입게 하더라...... 난 맨날 오네짱한테 밀려 있는 기분이어서 오네짱만 보면 그냥 막 얄미워지고 서운하고 그랬어. 그래서 일부러 미운 짓도 많이 하게 되고......”
유키나는 크게 한 숨을 내쉬더니 아이의 커다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오네짱이 어려서부터 항상 나 잘 챙겨주려고 한 거 다 알어. 그런데도 오네짱이 너무 부러워서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오네짱은 아이돌하면서 사람들이 엄청 좋아해주고 그러는데, 난 사람들 앞에 나서지를 못해 오네짱처럼 아이돌도 할 수도 없었고, 나도 오네짱만큼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알아주는 사람은 많지도 않고, 오네짱은 형부처럼 멋진 남자를 결혼 약속까지 했는데 나는......”
아이는 유키나의 등을 도닥여주며 그녀를 위로했다.
“유키나짱, 넌 아직 스무 살이잖아?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어. 그리고 왜 너가 예쁜걸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대학에서도 너 좋다는 사람 엄청 많을 건데. 안 그래?”
“그래도, 오네짱 만큼은 아니잖아?”
“나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기도 하지만, 반대로 좋지 않은 일도 엄청 많아. 나 전에 아이돌 할 때 숙소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편의점도 마음대로 못가고 그랬는걸?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몰라...... 그래도 나 때문에 지금까지 마음이 안 좋았다면 미안해. 내가 앞으로 유키나 마음 상하지 않게 더 조심하고, 더 많이 챙겨줄게...... 미안해 유키나짱......”
갑작스런 언니의 사과에, 유키나는 코끝이 시큰해져 왔다.
“오네짱이 사과할 일이 아닌데...... 그냥 내가 성격이 못 되서 그런 건데...... 오네짱, 미안해할 필요 없어. 내가 질투심이 많아서 그런 거지, 오네짱이 잘못한 게 아니니까....... 미안해, 오네짱...... 내가 잘 못 했어.......”
술김에 마음속에 있던 깊은 말, 언니에 대한 부러움과 열등감에 대해 털어놓는 유키나,
아이는 그런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이죠부, 다이죠부....... 괜찮다, 괜찮다.......
그녀의 마음도 함께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 * *
얼큰하게 취한 나루사와 자매.
그런데 막걸리집에서 음식들 가짓수는 많이 나왔지만 양은 충분히 먹지 못한 듯 하다.
“여기 리필이 안되는 게 너무 아쉬워요. 오빠, 그럼 야시장에도 먹을 거 엄청 많은 거죠?”
아이가 유키나의 팔짱을 꼭 낀 채로 식당을 나서며 물었다.
“그럼요, 여기 야시장에는 다른 곳에 없는 독특한 음식도 엄청 많데요.”
“오! 그런 거 좋아요. 그럼 거기서 음식이랑 맥주 사서 호텔가서 먹어요!”
“맞아요, 형부! 2차는 호텔에서!”
세 사람은 택시를 불러 타고 곧장 전주의 남부 야시장으로 향했다.
금요일이라 그런지 남부 야시장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나루사와 자매들은 여러 점포들을 신나게 돌아다니며 닭똥집, 곱창갈비와 껍데기, 치즈폭탄핫도그, 매콤 깐쇼새우 등을 한 아름 사고 편의점에 들려 캔맥주 십여 개를 사서 숙소인 R호텔로 돌아왔다.
세 사람은 민재와 아이의 객실 거실에 앉아 야시장에서 사온 음식들을 맥주와 함께 즐겼다.
그러면서 아이와 유키나는 소파에 함께 앉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옛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네짱, 있잖아. 전에 오네짱 콘서트 갔었을 때 DQ-girls 멤버들 중 오네짱이 제일 뚱뚱하고 못 생겼다고 놀린 거...... 그거 거짓말이었어. 사실 그 때 오네짱이 제일로 예뻤어! 같이 간 친구들도 모두 오네짱만 눈에 보인다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 때 거짓말해서 미안해. 오네짱 하나도 안 뚱뚱한데, 뚱뚱하다고 놀린 것도 미안하고.......”
막걸리에 맥주까지 마셔 취해버린 것인지, 유키나는 아이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어깨에 얼굴을 부비며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그런 동생이 귀여운 듯 그녀의 입에 닭똥집과 곱창을 젓가락으로 집어 입어 넣어주고,
유키나는 어미새에게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새 마냥 아이가 주는 음식들을 맛있게 냠냠하고 있었다.
‘흠...... 두 사람 보기는 좋은데 너무 많이 마신 거 같은데? 저러다 둘 다 그냥 뻗는 거 아냐? 내일 여행에 지장은 없으려나?’
민재가 우려하던 대로, 맥주 3캔씩을 비운 아이와 유키나는 결국 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결국 이렇게 되었군. 그래도 자매들끼리 좋은 시간 보냈으니...... 이제는 둘이 많이 안 싸우겠지?’
민재는 아이와 유키나를 한사람씩 번쩍 안아들고 침실로 옮겨 눕히고는,
자신은 먹은 것들을 모두 깔끔하게 청소한 후, 소파에 누워 잠을 청했다.
‘앗, 그런데 아이가 혹시 내가 먼저 잠들면 새벽이 일어나서 자기 덮쳐 달라고 그랬는데......? 이번엔 아이가 먼저 잠들었는데 어떡하지? 게다가 유키나까지 같이 자고 있으니...... 아이가 잘 때 덮치는 건 다음에 할 수밖에 없겠다. 오랜만에 나도 많이 기대했었는데, 쩝.’
전주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