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7화 〉아이의 한국 여행 - 유키나짱과 전주로 (4) (97/140)



〈 97화 〉아이의 한국 여행 - 유키나짱과 전주로 (4)

아이의 한국 여행 - 유키나짱과 전주로 (4)

전주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R호텔 프리미어 스위트룸의 거실,



기분 좋은 아침 햇살에 창가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곳 소파는 집에 있는 것과 비슷한, 하지만 그보다 조금 작은 ‘ㄱ’ 자 형태의 카우치 달린 모델이었는데,




민재는 이 카우치 위에서 잠들어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잠결에 느껴지는 익숙한 이의 향긋한  냄새,

그리고 몰캉몰캉 너무나 부드러운 살결이 자신의 몸을 안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는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아이가 또......?’


역시 예상대로.


슬며시 눈을 떠보니 어느새 아이가 거실로 나와 함께 누워 있었다.


어제 호텔로 돌아와 갈아입은 돌핀팬츠와 티셔츠 차림 그대로, 민재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이,



그녀의 손은 허리에, 그녀의 다리는 민재의 허벅지를  감고 있었다.


좁은 카우치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그리고 평생 그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두 손 두 발을 모두 교차해서 그를 꼭 끌어안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아직도 머리를 뒤로 묶고 있는 중이다.

귀밑머리 너머로 드러난 그녀의 새하얀 목과 어깨,

민재는 너무나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 살며시 키스를 해주었다.



“으음...... 오빠.......?”



그의 입맞춤에 아이가 잠에서 깨어났다.

“안녕하세요, 공주님?”




“헤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런데  제가 공주에요?”


“내 키스 받고 깨어났으니까. 원래 공주님들은 키스를 받으면 잠에서 깨어나잖아요.”



“흐흐흥~♡ 그럼 내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 깨워줘서 고마워요, 왕자님~!”

아이도 민재의 입술에 쪽, 키스를 해주었다.


“어제 아이랑 유키나 둘  술 많이 마신 거 같은데, 머리 안 아파요?”

“네, 쪼끔 아파요. 그래도 심하지는 않아요.”



민재가 손에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보았다.




이번 여행에 그가 차고 온 시계는 태그XXX 까레라 칼리버 호이어, 그가 가진 하이엔드 브랜드 시계들에 비해 저렴한 편이어서 여행 다닐 때 편하게 차는 시계였다.


시간을 보니 아침 8시 반, 호텔 조식을 먹으려면 이제는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해야 했다.



“아이, 이제 유키나 깨워서 조식 먹으러 내려갈까요?”

“조식이요.......? 응....... 그냥 이렇게 더 있으면  돼요? 나 지금 오빠랑 있는  너무 좋은데.”



아이가 민재의 품에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어제 유키나랑 마음에 있던 말을 많이 나눌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래도 오빠랑 함께  시간이 부족해서 너무 아쉬웠어요.”



“나두요. 그리고, 약속했던 거 지키지 못해 미안해요.”

“어떤 약속이요?”


“자는 중에 덮쳐주기로  약속!”


그제서야 아이도  때 자신이 한 말이 생각났는지,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부끄러워했다.

“헤헤, 몰라요~♡ 그럼 진짜 유키나가 이 방에서 안 잤으면 오빠 나 덮치려고 했어요?”


“웅, 새벽에, 아이가 아직 안 깨어났을 때 그 때 덮치려고 했어요. 이번엔 좀 와일드하게!”



민재가 아이를 품에 안아주며 웃었다.



아이도 그의 엉덩이를 손으로 꽉 잡고 장난을 치며 깔깔거렸다.

“우웅~ 오네짱, 형부, 오하요~ 근데 뭐가 그렇게 아침부터 재미있어.......?”

어느새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머리의 유키나가 눈을 비비며 거실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민재와 아이는 유키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 서로의 몸을 안고 있는 걸 놓다가 그만,

“아쿠!”


민재가 카우치 아래로 쿵, 하고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 * *



씻고 나갈 준비하느라 결국 호텔 조식을 먹지 못한 세 사람,


“오빠, 우리 땜에 아침  드시게 되서 죄송해요. 오빠, 배 안 고프세요?”




아이의 물음에 민재는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괜찮아요. 배고프면 한옥마을 주변에 맛있는 데 들어가서 사먹으면 되죠. 게다가 거기 주전부리 할 것도 엄청 많다던데.”

“그래요? 그럼 나도 오빠 따라 간식거리 사먹을게요!”


외출 준비를 마친 두 사람이 호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직접 차를 가지고 이동하려는 것이다.



오늘도 아이는 머리를 뒤로 묶은 상태다. 민재가 예쁘다고 말을 해줘서 그런가, 이번 여행 동안 계속 긴 머리를 묶고 다니고 있었다.



유키나도 금방 주차장으로 내려오고, 세 사람은 전주 한옥마을로 출발했다.


* * *



전주 한옥마을에 도착한  사람은 가장 먼저 한복부터 빌려 입었다.

아이는 화사한 연분홍빛 개량 한복을, 유키나는 연보라빛 개량 한복을 입고,


민재는 저번처럼 파란색 도령 한복에 갓을 빌려 쓰기로 했다.

따사로운 여름햇볕을 가리기 위해 유키나는 미리 챙겨온 리본이 달린 밀집모자를 머리에 썼고,



아이는 민재가 빌려온 갓을 대신 받아쓰게 되었다.



“이거 되게 오랜만에 써본다, 그쵸?”

아이는 예전 민재와 같이 경복궁과 광장시장을 갔을  갓을 썼던 모양대로, 살짝 옆으로 기울여 머리에 얹혀 놓고는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이는 왠지 갓이 너무 잘 어울려요. 나중에 남자 한복 입어 봐도 좋을 거 같은데요?”

“제가 남자 한복을요? 그럼 오빠가 여자 한복 입으시는 거예요? 서로 옷 바꿔서 입어보기?”



아이와 유키나는 서로 팔짱을 끼고 깔깔거리고 웃어 댔다.

본격적으로 전주 한옥 마을을 둘러보기 전, 아침을 먹지 않은  사람은 가장 먼저 주전부리부터 구하러 나섰다.



전주 한옥마을에서만 판다는 바게트빵으로 만든 길거리 버거, 커다란 꽃다발 모양의 오징어 튀김, 서울에서도 유명한 전주 초코파이, 구워먹는 임실치즈와 한옥 문어꼬치까지.......



자매들은 여러 주전부리들을 양손에 들고 냠냠하며 경기전과 전주향교, 한벽당, 이목대와 오목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하나라는 전동 성당까지 열심히 둘러보고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빠, 여기는 경복궁이나 용인 민속촌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에요!”



“그쵸? 경복궁은 왕이 살던 궁궐이고, 용인민속촌은 초가집 등 서민들이 살던 모습을 재현한 곳이라면, 여기 전주 한옥마을은 우리가 전에 갔었던 남산골 한옥마을처럼 양반들의 살던 곳을 잘 보존해 놓은 곳이죠.”



유키나가 민재에게 물었다.




“그런데 형부! 양반이 뭐예요?”

“양반은 한국 조선시대 집권층이에요. 글 공부 해서 벼슬을 한 문반, 무예를 닦아서 벼슬을 한 무반, 양쪽을 가리켜 양반이라고 했는데요, 일본 전국시대의 사무라이와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역시 일본 도쿄에 있는 대학 교육학부 사회과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키나, 자신의 학문과 관계된 이야기라 그런지 다소 지루한 민재의 역사 이야기에도 귀를 쫑긋 세우고 듣는 모습이다.

역시 주말이라 그런지 한옥마을을 찾은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민재와 아이, 유키나처럼 한복을 빌려 입은 이들도 많았고, 가족 단위로 찾은 이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주전부리, 꽃다발 오징어 튀김을 손에 들고 유키나와 함께 조금씩 뜯어 먹던 아이가 물었다.

“전에 경복궁 갔을  입었던 것도 그렇고, 한복은 입었을  되게 편한 거 같아요. 일본의 전통 의상 기모노도 예쁘긴 엄청 예쁘긴 한데 몸에 약간 달라붙어서 움직이기 힘들 때가 많거든요? 반면에 한복은 그런 부분이 없어서 참 좋은 거 같아요.”


“지금 우리가 빌려 입은 게 개량된 한복이라 더 편할 거예요. 그리고 찾아보면 짧은 치마 버전의 개량 한복도 있었던 거 같아요.”

“아, 그거 봤어요! K-POP 가수 중에 개량 한복 입고 뮤직비디오 찍은 아이돌들도 있잖아요.”

“맞아요. 무대 의상으로 쓰이는 개량 한복도 있고, 실생활에서도 입을  있는 개량 한복도 있데요. 그런걸 보고 생활 한복이라고 불렀던 거 같은데.”



“와, 그럼 나도 그런 생활 한복 입어보고 싶어요.”


“그럼 우리 서울 올라가면 생활 한복집 파는 곳을 같이 찾아가 봐요.”

민재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목대에 올라 전주 시내의 탁 트인 경치를 보는 것을 끝으로, 세 사람은 빌려 입은 한복을 반납하고 점심을 먹으러 출발했다.


민재가 나루시와 자매를 데리고 간 곳은 전국의 유명 백반집이라는 ㅎㄱ식당.




한옥을 닮은 친근한 외관의 식당 안으로 들어가며, 아이가 민재에게 물었다.


“오빠, 한국에서 백반이란 말은 많이 들어봤는데, 백반이 정확하게 무슨 뜻이에요?”




“백반은 원래 흰 쌀밥, 이란 뜻이지만 보통은 쌀밥에 국, 반찬을 같이 내놓는 가정식 식단을 백반이라고 불러요.”



“아아~ 그럼 백반집은 한국 가정식 식당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구나~!”

민재는 자매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인당 8,000원 하는 백반정식 3인분을 주문했다.

곧이어 엄청난 양의 음식들이 테이블로 공수되어져 왔다.


찌개도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두 종류나 되었고, 제육볶음에 계란찜, 고등어에 조기, 김에 도토리묵...... 반찬이 무려 20가지나 나왔다.



“와...... 형부! 백반이 가정식 식단이라면서요? 이건 한정식 아니에요?”




그 말에 반찬을 날라주던 식당 아주머니가 웃으며 대신 답을 해주셨다.

“원래 전라도 사람들이 인심이 좋아서, 어느 식당을 가나 반찬들이  나와요잉~!”




“정말요? 진짜 그런 거 같긴 해요! 어제 갔던 막걸리 집도 정말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반찬들이 나왔는데, 여기도 그러네요!”

“호호, 어제 전주 막걸리골목 다녀오셨나 보네? 여기도 거기 못지않게 맛있게 잘하는 집이니께, 맛있게 자시고 필요한 거 있음 말해요잉~ 여긴 리필 다 되니께~!”



“와, 리필도 된다구요? 야바이, 대박~! 이타다키마스, 잘 먹겠습니다~!”

유키나는 리필이 된다는 말에 무척 신이 난 표정이었다.



사실 어제 막걸리집에서 간장게장밥 조금  먹고 싶었는데 리필이 안 된다고 해서 조금 삐지기도 했는데, 여기는 리필이 된다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역시 자매들은 아까 중간에 사먹은 주전부리로는 양이 다 차지 않은 모양이다.



둘 다 밥을 두 공기씩이나 먹고 반찬들도 몇 번씩이나 리필해가면서 열심히 먹는다.



진짜 누가 보면 일본인 아니라 한국인인줄.......

그래도 여전히 매운 거는 감당이  안되는지, 김치찌개만은 손이 덜 가는 모양이다.



아이는 유키나를 배려해 식당 아주머니에게 국자를 부탁해서 그녀의 앞접시에 된장찌개를 따로 떠 주었다.


“자, 이건 한국식 미소시루야. 한 번 먹어봐봐.”

유키나는 수저로 국을 떠먹는 게 아니라, 일본식으로 앞접시를 들고 살짝 국물을 마셔보았다.




“어? 이거 전에 형부 집에서 오네짱이 만들어 준거랑 조금 다른데? 맛이 더  거 같아!”

민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언니가 일부러 간을 약하게 만들어서 그랬던 거고, 여기 전라도 음식은 반대로 간을 새게 해서 확실히 다르게 느껴질 거예요.”



“아아~ 전라도 음식이 원래 간에 쎄요? 어쩐지, 달고 짜고 맵고 한 맛들이 서울에서 먹었던 것들보다  쌔긴 쌨어. 그래도 맛은 참 좋은 거 같아요!”




유키나는 그래도 음식들이 모두 마음에 드는 듯, 언니처럼 야무지게 밥그릇과 반찬들을 깨끗하게 비워나갔다.




* * *

이후 전주 최고의 쇼핑 골목인 객사를 돌아보고 이곳 명물이라는 염통꼬치도 먹어보고,


저녁은 전주에서 유명하다는 물짜장까지 먹은 후 숙소인 R호텔로 돌아온  사람.




하루 종일 전주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덕이 몸도 피곤하고, 이것저것 많이 먹어 배도 많이 불렀던지, 오늘 유키나는 자기 방으로 먼저 들어가 버렸다.



동생이 돌아가자, 아이가 만면에 예쁜 눈웃음을 지으며 민재의 손을 잡았다.

“이제...... 유키나가 없네요?”

민재도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네요. 아까부터 아이보다 더 많이 먹고 신나게 뛰어 놀았으니 피곤할  해요.”



“그런데...... 오빠는 많이 안 피곤하죠? 그쵸?”




딱, 오빠는 피곤하면 안 돼. 나랑 지금부터 할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는 표정.

“그럼 아침에 나 못 덮쳤던 거, 지금부터 덮쳐주세요~!”



그러면서 민재의 품에 들어오며 꼭 안아주는 아이,



하하, 자기 입으로 덮쳐달라니.



민재는 간만에 무의식 중에 있던 늑대의 야수성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