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아이의 한국 여행 - 유키나짱과 전주로 (6)
아이의 한국 여행 - 유키나짱과 전주로 (6)
민재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옆에 누워 싱글 싱글 웃는 얼굴로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오빠, 안녕히 주무셨어요?”
이제 ‘오하요고자이마스’ 일본 인사보다 ‘안녕히 주무셨어요’란 우리나라 인사말이 더 자연스러워진 그녀.
민재도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아침 인사를 건넸다.
“아이도 잘 잤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
시계를 보니 7시 어간이었다.
“어제 술 별로 안 먹어서, 매일 일어나던 시간에 깼어요.”
“그랬구나. 그럼 더 쉬어도 되는데.”
“아니, 오빠 얼굴 보는 게 좋아서....... 계속 보고 있었어요......!”
그의 허리를 꼬옥 안고 가슴을 맞대며 웃는 아이,
민재도 그녀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내 얼굴 보는 게 좋아요? 자느라 머리도 다 망가졌을 텐데.”
“그래도, 잘 생겨서 좋아요.”
“아이는 나 잘 생겨서 좋아하는 거예요?”
“잘 생기고, 몸도 좋고, 그것도 잘 하고....... 헤헤.”
그녀가 수줍어하는 표정으로 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오빠가 나 많이 사랑해 주니까, 그래서 나도 너무 좋아요.”
민재는 그녀의 입술에 살짝 키스해 주었다.
“그럼 오빠는 나 왜 좋아해요?”
“음......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너무 예쁘고, 나랑 그거....... 할 때도 너무 좋고.......! 아이, 어제 나랑 한 것도 많이 좋았어요?”
“네, 엄청......! 저 어제 그거 세 번이나 왔어요......!”
그거, 라면 오르가즘을 말하는 건가 보다.
아이는 이렇게 말하며 얼굴을 붉혔다.
아직 스무 살 초반의 앳디고 천진난만함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그녀는 성관계와 관련된 용어들을 말할 때 그거, 라고만 말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 모습이 그녀를 더욱 순수하게 보이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진짜 아이 좋아하는 이유는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럼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고 너무 좋아요. 원래 같이 있을 때 기운 빠지고 힘이 드는 사람도 있는데, 아이는 완전 반대로 같이 있기만 해도 내가 힘을 받는 거 같아요.”
“나두요, 오빠! 오빠랑 같이 있기만 하면 계속 기분이 좋고, 아무리 돌아다녀도 하나도 힘이 안 들어요!”
“이런걸 보고 진짜 궁합이 좋다고 하나 봐요.”
“궁합? 그 생일 가지고 운세 보는 그 궁합?”
“네, 궁합은 사주로도 볼 수도 있고, 또...... 그거로도 볼 수도 있데요!”
“흐흐흥~♡ 그럼 우리는 점쟁이 찾아가서 궁합 볼 필요 없겠다. 이미 얼마나 좋은지 다 아니까......!”
두 사람이 침대에서 꽁냥꽁냥 거리고 있을 때,
위이이이이잉~
아이의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유키나의 전화, 빨리 조식 먹으러 내려오라는 것이다.
“그럼 우리도 밥 먹으러 가야죠? 밥 먹고 짐 싸고 체크아웃할 준비도 해야 하구요.”
민재가 먼저 침대에서 일어나며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아이도 활짝 웃으며 그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두 사람이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조식 뷔페 레스토랑으로 내려왔을 때, 유키나는 이미 한 접시를 비우고 다음 접시를 담으러 테이블에서 일어나던 중이었다.
“오하요, 오네짱, 형부~!”
그녀는 두 사람을 보고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세 사람이 접시에 음식을 담아 유키나가 맡아놓은 테이블로 왔다.
민재는 호텔에서 조식 먹을 때 습관대로 빵과 커피를 집으려다가,
“오빠, 빵 말고 밥! 밥 드세요!”
아이의 말에 얼른 빵을 내려놓고 한식 메뉴들로 접시를 채워 자리에 앉았다.
이제 먹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아이 말에 절대 복종하는 중이다.
테이블에 앉은 유키나가 두 사람을 야시시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두 사람, 어제 밤 해피, 하셨어요?”
“나니? 해피?”
“그러니까 저 방으로 돌아가고, 둘이서 즐거우셨냐구요?”
“으으응? 즈, 즐거웠냐고?”
유키나의 장난스러운 질문에 아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 맞다. 베버리지 (beverage, 음료)! 베버리지 가져올게요!”
유키나가 음료 코너로 간 사이, 민재와 아이가 불한한 표정으로 속닥였다.
“......혹시 유키나가 문 밖에서 우리 그거 하는 소리 들은 건 아닐까요?”
“여기 호텔, 방 안에 소리가 복도까지 들려요?”
“원래 웬만한 호텔들은 그렇게 방음에 철저한 편이 아니라서 안에서 하는 소리 다 들리는 거 같던데.......”
“헤에? 나 그럼 어떡해요? 나 어제 너무 좋아서 엄청 소리 크게 질렀던 거 같은데.......! 유키나짱이 밖에서 다 들었을까요?!”
유키나가 복도에서 그들의 객실에 귀를 기울이고 안에서 둘이 관계하는 소리를 다 듣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 보는 두 사람,
두 사람 다 금세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나니? 둘 다 아침부터 더워요? 얼굴이 완전 빨개졌는데?”
유키나가 음료수를 손에 들고 자리에 앉으며, 이상한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 * *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서울로 올라가기 전,
전주에서의 마지막 식사, 점심은 전주비빕밥을 먹고 가기로 했다.
아이가 민재에게 물었다.
“오빠, 그냥 비빔밥은 알겠는데, 전주비빔밥은 뭔가 달라요?”
“크게 다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안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다른 비빔밥보다 상당히 고급지다고 알고 있어요.”
방송에도 많이 나왔다는 ㅎ전주비빔밥 집을 찾은 세 사람.
자리를 잡고 앉은 민재가 육회비빔밥 세 그릇을 주문했다.
“확실히 고급비빔밥이라 그런가 비싸네요. 비빔밥이 15,000원이라니.”
아이는 다소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어학당 다니면서 앞에 있는 김밥 식당에서 사먹은 비빔밥 가격이 6,000 정도였는데, 그 가격의 3배나 비싼 것이 조금 못마땅한 듯 했다.
하지만 음식이 테이블에 오르자, 왜 이곳 전주비빔밥이 15,000원이나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와......! 역시 전라도......! 여기도 반찬들이 엄청 많이 나오네!”
풍성하게 나오는 밑반찬들과 된장찌개를 본 유키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어제 백반집 아주머니가 전라도는 인심이 좋다더니, 진짜 그런거 같아요!”
아이도 양손에 숟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기분 좋아하는 표정이다.
전주비빔밥은 밥 위에 고기와 야채들이 올려져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밥이 가마솥밥으로 따로 나왔다.
“밥을 그릇에 덜으시구요, 가마솥에 뜨거운 물 부어서 이따가 다 자시고 숭늉으로 드세요잉~”
이제 밥을 그릇에 담고 참기름을 쳐서 열심히 비비기 시작하는 세 사람,
확실히 비싼 만큼 육회 고기와 야채가 풍성해 씹는 맛이 달랐다.
매운 맛을 싫어하는 아이와 유키나도 무척 맛있게 먹을 정도였다.
금세 비빔밥을 한 그릇씩 뚝딱한 세 사람,
민재가 먼저 뜨거운 물을 부어둔 가마솥 뚝배기의 뚜껑을 열고, 누룽지 밥알을 잘 긁어 숭늉을 떠먹기 시작했다.
이를 본 유키나가 궁금한 듯 물어본다.
“형부, 이거 이름 숭늉이라고 했죠? 원래 비빔밥 먹고 그거 먹는거예요?”
“모든 식당이 다 그러는 건 아닌데, 이렇게 가마솥에 지은 밥이 나오는 식당이면 식사 마무리는 의례 숭늉을 먹는 것으로 끝내죠. 한국식 디저트라고 할까요?”
나루사와 자매는 민재가 숭늉을 떠 먹는 걸 보고는,
자신들의 가마솥밥 위에 김치와 반찬들을 몇 가지 올려 오차즈케 (밥에 녹차를 부어 먹는 일본 음식)처럼 먹으며 식사를 마쳤다.
* * *
이제 서울로 돌아오는 길,
오늘은 일단 유키나를 집에서 재우기로 하고, 다음날부터 민재가 예약해 준 삼성역 근처의 고급 호텔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던 중, 민재가 뒷좌석에 앉은 유키나에게 물었다.
“우리 내일 오후에 유튜브 찍으러 갈 건데, 같이 갈래요?”
“네! 저도 오네짱이 촬영하는 거 구경해보고 싶어요!”
“그럼, 언니랑 같이 유튜브 출연하는 것도 괜찮아요?”
“내일 바로는 안 될 거 같아요. 여행용 옷만 있어서 이쁜 옷 안 갖고 왔어요.”
아이가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만약 너 촬영하게 되면 내 옷 빌려줄게.”
“아, 정말? 그럼 내일 같이 가서 어떻게 하는 건지 먼저 보고.”
전에 함께 저녁 식사할 때에는 자신도 출연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역시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익숙하지 않을 터.
유키나는 아직 마음을 확실히 정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러던 중, 아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런데 유키나짱?”
“응?”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뭔데?”
“어제 우리 방에서 맥주 마시고...... 바로 네 방으로 올라갔지?”
아무래도 아이는 유키나가 어제 복도에서 소리를 들었을까 잔뜩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맥주 마시고......? 몰라, 바로 기억이 안 나는데?”
유키나는 그런 아이를 놀리려는 듯, 혀를 빼애~ 내밀고 그녀를 놀리고 있었다
* * *
저녁 쯤 서울에 도착한 세 사람,
민재는 저녁을 차리겠다는 아이를 간신히 말리고는 삼성동 근처 숯불갈비 집으로 나루사와 자매들을 데려가 저녁을 먹었다.
물론 술도 간단하게 마시고 말이다.
그렇게 숯불갈비 집에서 맛있는 고기를 먹으며 전주 여행에 대해 수다를 떠는데,
역시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는 먹을 거 얘기였다.
“형부, 형부는 전주에서 먹었던 것 중 뭐가 제일 맛있었어요?”
“난 객사 돌아다닐 때 먹었던 염통꼬치요. 유키나는요?”
“저는 물짜장이요! 매웠는데, 뭔가 되게 끌리는 매운 맛이었어요.”
“난 그거 너구리 그림 그려진 라면이랑 맛이 되게 비슷하다고 느꼈는데, 오빠 안 그래요?”
“해물맛 나는 게 확실히 비슷하긴 했어요.”
“물짜장이랑 비슷한 한국 라면이 있다고? 나 그럼 마트 가서 그 라면 사줘!”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나루사와 자매를 마스터 룸에서 같이 재우는 혼자서 거실로 나와 잠이 든 민재.
그래도 늘 그랬던 것처럼, 유키나가 잠든 후 아이도 거실로 나와 민재의 곁에 함께 눕고,
둘은 그렇게 또 좁은 카우치 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고 입술을 맞춘 채로 달콤한 잠에 빠졌다.
* * *
다음 날,
유키나는 민재와 아이와 함게 압구정에 있는 그의 건물 5층, 덕환의 스튜디오로 따라갔다.
“우와~! 아이짱 동생분도 엄청 미인이시군요!”
유키나를 본 덕환의 입이 함지박만해졌다.
“동생분도 언니와 함께 유튜브 출연해 볼 생각 없어요? 어려운 건 아니고 주제에 대해 미리 준비된 질문에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형식이에요.”
유키나는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말했다.
“오늘은 오네짱 촬영하는 거 보러온 거라서요...... 좀 더 보고 말씀드릴게요.”
“한국말도 엄청 잘 하시고 바로 촬영 들어가도 될 것 같은데. 그럼 언니 촬영하는 거 보시면서 생각해 보세요~!”
유키나는 촬영장 뒤에서 ‘아이짱과 함께 하는 일본사’ 촬영 장면을 유심히 지켜 보았다.
촬영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안에서 아이가 유키나에게 물었다.
“유키나짱, 보니까 어땠어?”
“응, 오네짱. 진짜 잘 하던데?”
“아니, 그거 말고. 너도 앞으로 유튜브 같이 찍고 싶어?”
유키나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
“전에는 하고 싶었는데, 하려니 많이 떨려. 카메라 앞에 서는 거 말이야.”
“응, 그게 좀 부담스러운 모양이구나?”
“응, 많이. 오네짱 기억나? 나 오네짱 따라서 아이돌하려고 오디션 봤을 때 카메라 테스트 때에도 엄청 떨려서 아무 것도 못했던 거?”
같은 자매라도 다른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아이가 아무리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나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자연스러울지라도 그 동생은 완전 다를 수도 있는 법. 아무리 자매가 외모까지 비슷하더라도 적성마저 같을 순 없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나 이제 개강도 얼마 안 남아서 이번 주말에는 니혼으로 돌아가야 하잖아? 한국에서 유튜브 찍어도 한 편 밖에 못 찍을 거고 계속 출연하러 한국 오는 것도 힘들고...... 나중에 내가 한국 유학 오게 되면 그 때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거 같아. 형부, 아까 그 유튜버한테 잘 말씀해 주세요.”
“네, 덕환이한테 이야기 할게요.”
그녀의 말에 민재도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