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화 〉그녀의 음모 (2)
그녀의 음모 (2)
“아하~! 아이의 유튜브 친구들 안녕하세요, 나루사와 아이입니다~!”
민재의 집 주방에서는 아이의 유튜브 채널 첫 번째 촬영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촬영하게 될 영상은 요리 컨텐츠, 만들 음식은 돈지루 (돼지고기가 들어간 일본식 된장국) 였다.
“돈지루에 들어가야 할 재료로는요, 돼지고기, 당근, 연근, 표고버섯, 곤약이 필요하구요......”
덕환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며 카메라 앞에 설 때의 감을 잘 유지해오고 있어서인지, 첫 촬영인데도 불구하고 막힘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민재의 집에는 카메라맨 조명 등 스태프들 외에도 덕환도 함께 와 있었다.
“야, 너네 집 오는 거, 너 집들이하고 처음인 거 같다. 근데 진짜 너네 집 넓긴 넓다~!”
덕환은 민재와 함께 그의 서재에 있는 체스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유리벽 너머로 아이의 촬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벽에 못 보던 액자가 걸려 있다?”
집으로 들어오며 거실에 걸린 민재와 아이의 웨딩사진을 본 모양이다.
“벌써 결혼 날짜 잡은 거야?”
“결혼은 할 건데, 날짜는 아직.”
“왜? 아이짱 어학당 졸업하고 하려고?”
“그건 아닌데, 아직 아버님께 정식으로 허락받지 못했어.”
“엉? 너 아이짱 아버님 아프셔서 너도 일본까지 다녀왔잖아? 그런데도 아직 결혼 승낙 못 받은 거야?”
“일단 아이 어머님한테는 결혼 승낙 받았는데, 아버님이 재일교포들하고 한국인을 엄청 싫어하셔. 아버님께 앞으로 잘 보이면서 천천히 승낙 받으려구.”
덕환은 딱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도 일본에서 재일교포하고 한국인들 차별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더니, 아이짱 아버님도 그런 분이셨어?”
“그렇다고 국수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이런 분은 아니고, 그냥 개인적인 일 때문에 재일교포랑 한국인들을 싫어하시는 거야.”
“둘이 잘 되었으면 좋겠네. 그런데 아이짱 아버님이 결혼 반대하면 그땐 어쩌려고?”
“아버님이 결혼 못하게 막으면, 아이 그대로 일본 국적 포기하고 한국에서 살 거래.”
그 말에 덕환은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민재를 부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며 박수를 쳤다.
“브라보......! 아이짱 대박이다......! 아이짱이 그렇게까지 말하다니, 너 진짜 복 받은 놈인줄 알어~!”
그 때, 밖에 있던 스태프가 서재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사장님, 마이크에 목소리 다 들어가요~!”
“앗, 죄송해요~! 조용히 할 게요~!”
덕환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서재 문을 닫고 돌아왔다.
“아이짱 유튜브 채널 잘되면 실시간 생방송도 해야 하는데, 그것 어디서 할 거야?”
“그거? 서재 옆방 맞은 편 공간에 만들어 주려고.”
서재 옆방 맞은 편 공간은 원래 가족실 겸 티룸으로 설계 된 곳이었는데, 민재는 이곳에 간단한 소도구들을 놓고 개인 운동 공간으로 활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대치동 건물에 나만의 헬스장을 만들게 되면서 이 공간에 놓으려던 운동기구들을 죄다 옮겨가게 되었고, 지금은 주로 아이가 이불 등 큰 빨래를 세탁했을 때, 건조대를 놓고 빨래 말리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중이었다.
“컴퓨터 책상이랑 의자는 있어?”
“옆방을 아이 공부방으로 쓰고 있어. 거기 있는 거 밖으로 빼고 뒤에 배경될만한 가구나 소품 같은 거 놓으면 되지 않을까?”
“그럼 딱히 준비할 건 더 없겠네.”
“그렇지.”
“참, 실시간 생방송 하면 구독자나 시청자들이 분명 아이짱한테 남친 있냐는 질문 할 거 같은데, 그 때 아이짱은 뭐라고 대답할거래?”
민재가 자신 있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누가 물어보면 남친 있다고, 곧 결혼할 거라고 사실대로 말할 거래.”
“오, 진짜? 그럼 방송 초반에 남자 구독자들 많이 모으기 힘들 수도 있겠는데?”
“나도 그래서 그렇게 해도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본인이 괜찮다고, 솔직히 밝히겠다고 그러더라. 나로서는 감사한 일이지.”
“야, 그럼 너네 내 채널에 나왔을 때, 미리 사귀는 거 밝혀야 하는 거 아냐? 지금도 아이짱의 일본사 영상 댓글창에, 너네 둘이 사귀는 거 아니냐는 댓글 계속 달리고 있는데? 만약 나중에 아이짱이 자기 채널에서 너네 사귀는 거 밝혀 버리면, 내 유튜브 채널 댓글창 아작 날 수도 있어.”
“우리가 언제 사귀는 사이 아니라고 거짓말 하고 부인한 적은 없잖아?”
“그래도 구독자들은 그만한 일에도 상처 받고 구독 취소하고 그러거든?”
“걱정하지 마, 만약 그거 때문에 수익 떨어지면 내가 또 다른 괜찮은 수익 컨텐츠 아이디어 짜서 알려줄게. 지난번 우리 정 교수님 컨텐츠도 반응 좋았잖아?”
민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의 촬영 모습을 지켜보았다.
* * *
며칠 후 저녁,
아이는 어학당에서 돌아온 후 민재와 함께 마트에서 한아름 장을 봐 왔다.
‘유명 요리사 구든 람지의 방식대로 집에서 스테이크 만들어보기’ 가 그녀가 계획한 다음 컨텐츠였는데, 미리 스테이크 굽는 연습도 하고 민재에게도 만들어 줄 겸 재료를 사온 것이다.
아이는 능숙한 솜씨로 가정용 팬에 두툼한 고기를 올려 미디엄 레어로 구워내고, 버터와 향신료로 맛과 향까지 더해 진짜 레스토랑에서 나올 법한 스테이크를 완성해냈다.
“오빠, 드셔 보시고 객관적으로 평가해주세요!”
민재는 그녀가 만들어준 스테이크를 한 입 크기로 썰어서 맛을 보았다.
“으음~ 딱 미디엄 레어로 잘 구워졌어요! 안에 육즙도 잘 잡혀 있고, 향도 너무 좋아요!”
“정말요? 와, 다행이다!”
“이제 여기에 매쉬드 포테이토나 아스파라거스나 구운 가지 같은 걸로 장식하는 것만 잘하면 될 거 같은데요? 어차피 유튜브는 보여지는 게 중요할 테니까요.”
“맞아요, 오빠. 스테이크 주변에 사이드 메뉴 꾸미는 건 좀 더 연구해 봐야겠어요.”
아이도 만족한 표정으로 그의 옆자리에 앉아 함께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빠, 확실히 제 유튜브 채널이 만들어진 이후로 어학당에서 저 알아보는 사람들이 더 늘어난 거 같아요.”
“벌써 반응이 있다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혹시 전에 그 사생팬이나 이상한 사람들은 더 이상 안 찾아와요?”
아이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이상한 사람들은 없구요, 어학당 학생들 중에 저한테 말 걸거나 같이 사진 찍자는 애들이 더 늘어났어요. Y대학생들 중에서 저 보려고 강의실로 찾아오는 분들도 계신 거 같구요.”
영상 딱 하나 올렸는데 이 정도라니.
아, 아이가 전부터 덕환의 유튜브에 출연해 얼굴을 알려 왔었지?
그 전에도 이미 일본에서 아이돌 활동도 했었고.
게다가 유튜브의 영향력과 파급력이라면, 소문이 나는 건 시간 문제였을 것이다.
“그런데 오빠?”
아이가 민재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까 혜인 언니 하고 통화 했는데, 저 내일 혜인 언니랑 저녁 먹고 와도 되요?”
레슨이 모두 끝나고 그녀와의 계약은 종료되었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연락을 계속 주고받는 모양이었다.
“어디서 식사할건데요? 저번처럼 이태원은 아니죠?”
“네, 이태원 아니고 집에서 가까운 압구정 근처에서 만나자고 해요.”
민재는 살짝 미심쩍었다.
아이가 혜인과 계속 친하게 지내는 것도 불안했거니와,
얼마 전 자신이 조광수에게 혜인의 아버지 이기봉의 비리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 덕에, 아비는 조합장에서 물러나고 딸은 스폰서를 잃고 대회 초청마저도 반려당하는 굴욕을 당했었는데,
그 부녀가 지금 자신들을 추락시킨 게 민재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아이가 혜인과 만난다는 게 게 영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아이에게 강사님을 만나지 말라고 하기도 미안하고......’
그래서 결국 민재는,
“다녀와요. 혹시 강사님하고 만나서 술 마실 거면 내가 태우러 갈게요.”
라고 말했다.
아이는 기쁜 얼굴로 그의 팔을 꼬옥 끌어안았다.
“아니에요, 그냥 식사하면서 술은 간단하게만 마실 거예요. 언니 만나고 택시타고 들어올 테니까 오빠는 집에서 쉬고 계세요.”
그녀는 다정하게 웃으며 그의 볼에 살짝 키스해 주었다.
* * *
다음날,
아이는 혜인과 저녁 먹으러 나가기 전, 미리 민재를 위해 저녁상을 차려주고 나갔다.
“저 다녀올 동안 빵 드시지 말고 제가 차려드린 밥 드셔야 해요~!”
“네, 꼭 밥 먹을게요, 재미있게 놀다 와요.”
단아한 하얀색 블라우스에 검은색 치마의 외출복을 아이는 민재의 입술에 키스를 해주고는 신난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아이가 외출한 후, 민재는 다시 서재로 들어가 주식 동향 등을 확인하고 있었다.
경제 뉴스 기사를 읽던 중,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경기 침체에도 주식 시장은 활황...... 이해할 수 없는 코스닥 지수...... 뭐야? 이 기사 쓴 사람 정말 몰라서 이런 기사 쓴 건가?’
보통 사람들은 불황에 경기가 침체가 되면 주식시장도 동반 하락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하는 초반에는 오히려 주식 시장이 대폭 상승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일단 주식 시장은 실물 경제를 대표하는 수치라고 할 수 없다. 단타로 짧게 치고 빠지는 것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기업의 현재 가치가 아닌 미래의 가치를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기가 침체되면 보통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리게 된다. 즉, 시장에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추는 것이다.
금리가 낮아지면서 은행 예금의 이율도 떨어지게 되고, 기업은 은행에 싼 이자를 내고 돈을 빌려 투자에 나설 수 있게 된다.
반대로 거액의 목돈을 은행에 맡기고 있던 돈 많은 사람들은 은행 이자가 낮아짐에 따라 더 나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되고, 자연히 주식 시장에 돈이 몰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경기 침체 때에도 주식이 연일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기업의 주식이 다 상승하는 것은 아니고 특정 주식에서 그런 현상이 도드라지는 경향도 있는 법이니, 경기가 침체되면 무조건 주식이 오른다고 생각하는 것도 옳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민재도 이 시기에 주식에 투자했냐고?
물론.
얘가 이런 걸 놓칠 리 없었다.
아직 아이에게 따로 통장 같은 건 보여준 적은 없지만, 민재는 최근 3주 동안 주식으로만 10억 가까이 이익을 내고 있었다.
얘가 맨날 아이랑 호텔가고 놀러만 다닌다고 보일 테지만,
핸드폰을 들여다 볼 때나 서재의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면, 그건 100% 주식이나 부동산 관련 투자에 대해 골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지금 이 금융장세는 곧 끝날 수밖에 없을 거야. 앞으로 얼마나 더 오를지 상관 말고 내일 팔 건 다 팔아서 차익부터 챙기자.’
그는 내일 매도할 주식들을 노트에 적으며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일 투자 관련 계획을 다 잡은 후,
‘흠, 이제 아이의 유튜브 반응이 어떤지 확인해 볼까?’
민재는 아이의 유튜브 채널로 들어가 첫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훑어보았다.
[아이도 유튜브 채널 만들었네요? 반가워요!]
[아이짱 너무 예뻐요! 앞으로 영상 많이 올려주세요!]
[아이시떼루 아이짜응~!]
생각보다 호의적인 댓글들이 많았다.
그래도 예전에 있었던 야쿠자 사건 때문인지, 민재는 일본사람들이 단 댓글이 있으면 모두 복사해서 번역기로 돌려 보고 무슨 말인지도 확인해보았다.
다행히 일본 사람들 중에서도 우려 되는 댓글을 단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아이에 대한 내용들을 일일이 모니터링 하던 중,
우연히 인스타까지 들어가 보게 되었다.
여전히 그녀의 인스타는 친구 공개로 되어있었다.
그 안에는 민재와 함께 하는 일상 사진들이 주로 업로드 되어 있었고,
소수의 친구들만이 볼 수 있게 설정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에도 아이를 검색하면 사진이 나올까? 전에 그라비아 모델 활동할 때 사진 같은 게 나오지 않을까?’
민재는 호기심에 ‘나루사와아이’를 검색해 보았다.
몇 개의 사진들이 검색되고,
최근에 업로드 된 사진들로 정렬해보았다.
그런데 나열된 사진들 가장 앞에,
불과 30분 전 올라온 최신 사진이 하나 있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찍힌 것으로 보이는 사진.
사진에는 하얀색 블라우스와 검은색 치마를 입은 아이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아까 그녀가 외출할 때 입은 옷이 분명했다.
업로드 된 사진 밑에는 이런 글이 써 있었다.
[지금 압구정 OOOO에 가족들이랑 식사 하러 왔는데 유튜버 아이 봄. 졸라 예쁘다 #아이 #나루사와아이 #유튜버 #압구정OOOO #일상스타그램]
민재는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아이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는 모두 네 명의 사람이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아이와 혜인,
그리고 누구인지 알 수 없는 흑인과 백인 외국인 남자들.
그들은 네모난 테이블에 한 자리씩 둘러 앉아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강사님하고 만난다며, 이 남자들은 뭐야?’
민재의 미간이 미묘하게 찌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