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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화 〉아이의 반항 (2) (107/140)



〈 107화 〉아이의 반항 (2)

아이의 반항 (2)


민재와 아이가미국에서 여행을 즐기고 있는 사이,

일본 치바현에 있는 아이의 고향집은 난리가 나버렸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 중에서도 아이가 한국에서 찍은 유튜브 영상들은 보는 이들이 많았는데,

아이의 아버지 요시노부의 지인 중에서도 이를본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요시노부가 지인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물어보았다고 한다.

“자네  큰 딸 결혼한다며?”

요시노부는 당연히 이게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야? 하는 표정을 지으며,

“결혼? 내 딸이 왜 나도 모르는 결혼을 해?”

라고 대꾸했고,

지인들은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으로 아이의 유튜브 영상, 자신에게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고 곧 결혼할 예정이라며 웨딩 포토까지 공개했던 바로 그 영상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아이는 일본구독자들을 위해 친절하게도 영상에 일본어 자막까지 올려놓고 있었다.

이를 본 요시노부가 극대노하는 건 당연한 일.

“난데 고레 (뭐야, 이거)???”

지난 번 자신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부터 아이에게 남자친구가 있는 것 같다는 짐작은하고 있었지만,

일본 사람도 아니고, 설마 한국 남자와 사귀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요시노부는  즉시 집으로 돌아와 아내 린코를다그쳤다.

“당신,아이가 한국에서 한국놈이랑 사귀고 있는 거 알고 있었어?”

린코는 남편을 진정시키며, 아이가 한국 남자와 진지하게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데 아주 괜찮은 사람이다, 당신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을 때 일본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부자인데다가 마음씨도 고운 청년이더라, 지난번 산삼도 사실 아이의 남자친구가 보내준 거다, 하고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감히 부모 허락도 없이 결혼한다고 인터넷에 떠들고 다니고 웨딩 포토까지 찍어 올려? 아이  녀석, 부모 체면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게다가 상대가 한국놈이라고? 난 이 결혼 승낙 못해! 당장  싸서 일본으로 돌아오라고 해!”

라며 펄쩍 뛰었다고 한다.

린코가 아무리 만류해도 소용없었다.

그녀는 결국 작은 딸 유키나에게, 언니에게 전화해보라 했다.

유키나에게 모든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이의 표정도 몹시 어두워졌다,

“결국, 우려했던 순간이 와 버렸네요.”

민재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물었다.

“......우리 바로 일본으로 가서 아버님 찾아뵈어야 할 거 같은데요?”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지금 일본으로 가면 저 그대로 여권 뺐기고 한국으로 못 돌아갈 수도 있어요.”

그녀는 핸드폰을 들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며 말했다.

“우선 아버지와 통화해 볼게요. 제가 한 번 말씀드려보고...... 안되면, 전에 오빠한테 말한 대로 하겠다고 말씀드릴 거예요.”

아이는 결연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귀에 가져갔다.

* * *

아이가 통화를 하는 동안, 핸드폰 너머로 벼락소리 같은 요시노부의 목소리가 옆에 앉아 있는 민재의 귀에게까지 들려왔다.

두 사람이 일본어로 대화하느라 정확하게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는 알  없었지만, 좋은 소리가 오가는 건 아닌 게 확실해 보였다.

아이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단호했다. 한국말을 할 때 귀엽고 상냥하기만  그녀였는데, 설전이라도 벌이는 듯 자국 말을 빠르게 뱉어내는 그녀의 모습이 민재에게 몹시 낯설게 느껴졌다.

30분 동안  통화를 나눈 후, 아이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다.

살짝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녀,

민재는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봐도 되요?”

아이는 두 손으로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오빠, 나 한국으로 귀화하는  도와주세요......”

자못 담담한 말투로 말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커다란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이 보였다.

민재는 말없이 그녀를 안아주었다.


* * *

미국에서 돌아온 후,

아이는 어머니 린코와 동생 유키나와 계속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 요시노부는 이번 일에 한 발짝도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워낙 고집 세고 완고한 성격인데다가,

딸이 자기 몰래  세상에 결혼을 발표한 걸,

그것도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한국인과 결혼하겠다고 한 걸 절대 용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한국 유학 때려치우고 일본으로 돌아와! 비싼 돈 주고 한국말 배우러 간다고 할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건만, 거기서 한국 놈을 만나? 내가 좋은 혼처를 구해줄 테니 더 이상 부모 망신시키지 말고 집으로 들어와! 그 한국 놈하고는 다시는 만나지 말고!”

아이와 통화할 때도 이런 말로 그녀를 밀어붙였다고 한다.

원래 부모의 말이라면 순종적으로  따르던 착한 아이였기에, 이번 일에도 이렇게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면 넙죽 엎드리고 집으로 기어들어올 줄 알았는데 웬걸,

“아버지가 구해주시는 혼처는 필요 없습니다. 제가 결혼할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제가 스스로 정해요. 지금이 쇼와 시대 (1952년 연합군이 일본을 점령한 시절부터 1989년 쇼와 일왕 사망까지의 시기의 일본 연호. 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1980년대 고도경제성장기를 거친 일본의 중장년층 세대를 두루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참고로현재 일본의 연호는 ‘레이와’) 도 아니잖아요? 게다가 한국인과 결혼하는 게 왜 안 된다는 말씀이죠? 한국인이라고 해서 아버지가 말씀하시는 것처럼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오히려 한국인들 중에는 일본인보다 훨씬  나은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구요. 그리고 아버지는 제가 사귀는 사람과 한 번도 만나보신 적도 없으시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절 얼마나 사랑하고 아껴주는지 알지도 못하시면서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싫어하고 계신 거잖아요? 그건 전혀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만?”

아이도 결혼 문제만큼은 절대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요시노부는 1주일 내로 일본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호적에서 파버리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고 (한국은 2008년 가족관계등록부가 시행되면서 호적제도가폐지되었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호적제도가 남아있다),

이에 아이도 집에서 쫓겨나면 바로 한국으로 귀화해서 한국인으로 살아가겠다고 맞받아친 것이다.

부녀가 이렇게 강경하게 부딪히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어머니 린코와 동생 유키나 모두 저으기 놀란 듯 했다.

린코는 두 사람의 결혼을 찬성하는 쪽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편의 뜻을 거스르기도 힘든 입장이었다.

그녀는 아이에게 전화해,

“네가 집으로 돌아와 있으면서 천천히 아버지를 설득하는건 안 되겠니?”

하고 이야기도 해보았지만,

“아버지가 제 말을 들으려 하시지 않을 거예요. 어머니께 죄송하지만, 전......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을래요.”

아이도 고집을 꺾으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부녀의 대립은 쉽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 * *


민재는 아이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압구정 G백화점으로 쇼핑을 나갔다.

하지만 아이는 아버지와 싸운 이후로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은 듯, 어떤 물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30분 정도 대충 백화점을 둘러본 후,  사람은 웨스트관 지하에 있는 푸드 코트에 있는 궁중병과(옛날 궁에서 임금이 먹던 전통떡과 과자)와 차를 파는 디저트 가게로 들어갔다,

주문한 궁중 떡과 전통차가 나오고,

민재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오늘은 어머님께 연락 안 왔어요?”

“네, 아직......”

“어머님도 아버님과 아이 사이에서 많이 곤란해 하시죠?”

“그렇죠. 어머니는 아버지와  모두의 입장을 이해해 주시니까.”

아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따스한 전통차가 가득 담긴 찻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어머니가 아버지께계속 잘 말씀드리고 계시긴 하지만...... 아버지의 한국인에 대한 반감이 쉽게 꺾이지 않고 있데요. 첫째 사위로 한국 남자를 받아줄 수는 없다면서요.”

“그럼, 내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 미국 사람, 아니면 영국 사람이었으면 아버님께서 사위로 받아주셨을까요?”

민재의 장난스런 질문에 아이도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마 크게 상관 안하셨을 거 같긴 하지만, 아주 좋아하지는 않으셨을  같아요. 우리 아버지, 정말 옛날 사람들처럼 생각하는 분이시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일본인은 일본인끼리 결혼해야하고, 되도록 같은 지역에 사는 비슷한 생활수준의 사람이랑 결혼해야 문제가 없다고 말씀하곤하셨을 정도니까요.”

예전에 아이로부터 일본 내에서도 한국 마냥 지역감정이 있다고 들은 기억이 났다.

그래도 무슨 전국시대도 아니고, 21세기에도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끼리 결혼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니, 아이 아버지 요시노부가 얼마나 고루한 사람인지 쉽게 짐작할  있었다.

“아이가 부탁한대로 일단 김 변호사님 통해서 아이 귀화 문제에 대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미리 파악하고 있긴 한데......”

민재가 아이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난 아이가 한국으로 귀화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아요. 하지만 전에도 말했다시피 아이가 가족들과 척을 지게하고 싶지도 않아요. 가족은 세상 어느 것보다도 소중한 거잖아요.”

“그럼 오빠는 제 아버지께 결혼 승낙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자는 말씀이신가요?”

“기다리자는 것이 아니라, 아버님이 우리 결혼을 승낙하실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봐야죠.”

“어떻게요?”

아이가 토끼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민재의얼굴을 바라보았다.

“우선 아버님께,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보다 본인의 사랑하는 큰 딸을세상  어떤 사람보다 사랑하고 평생 든든하게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럼, 우리 아버지를 한국으로 모시려구요?”

민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초대한다 해도 오실 거 같지는 않은데요? 그렇지 않나요?”

“네, 저희 아버지절대 한국에 오실 분은 아니에요.”

“그럼 대신 어머님을 한국으로 모시도록 하죠.”

“저희 어머니를요?”

“네, 전에 일본에서 어머님을 뵈었을 때 한국에서의 부동산 투자에 많은 관심을 보이셨잖아요?”

“그러셨죠. 지금 상황에서는 일본보다 한국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이 더  이득이 있으니까.”
“그럼 이번에 내가 한국에 투자할 만한 부동산 리스트들을 죽 뽑아놓고 기다릴 테니 한국으로 오셔서 함께 둘러보자고 어머님께 말씀해주세요. 마음 내키면바로 계약하실 수 있도록 관련 서류들도 미리 챙겨 오시라고말씀드리구요. 그리고,”

민재가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혹시 투자 금액 부족하시더라도 아무 걱정 마시라는 말고 함께 해주세요. 내가 최근에 땅을 팔아서 몇 천억 원의 실탄이 넉넉히 장전되어 있으니 웬만한 건물  채 사는데 돈 빌려드리는  일도 아니라고 말이에요.”

“오빠 그럼......?”

“네, 맞아요. 아버님이 ‘한국인 사위’는 마음에 안 들어 하실지 몰라도, ‘부자 한국인 사위’까지 마음에 안 들어 하시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내가 아버님께서 싫어하시던 부류의 한국인과는 완전 차원이 다른사람이라는 것만 깨우쳐 드려도, 나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데 도움이 될 거예요.”

어두웠던 아이의 표정에도 점점 화색이 돌아왔다.

“오빠 말대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아버지는 늘 성실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부자가 되는 거라고, 부자들을 보면 누구나 다 존경하고 본받을 점이 있다고 말씀하시곤 하셨거든요. 오빠가 얼마나 부자인지, 얼마나 능력 있는 사람인지 어머니를 통해 전해 듣게 되신다면오빠에 대한 아버지의 생각도 바뀔 수 있을  같아요!”

“그럼, 아이. 어머님 한국으로 오시도록 잘 말씀드려줄래요? 아, 우리 문제 때문에 한국에 간다고 하면 아버님이 못 가게 하실 수도 있으니까 순수하게 부동산 투자 알아보러 오신다고 아버님께 말씀드리라고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래도 어머니가 한국 간다고 하면 뻔히 나 만날  아실 거긴 하지만...... 일단 그렇게 말씀드릴게요. 어머니가 한국으로 오시겠다고 하시면 좋겠어요.”

아이는 설레는 표정으로, 일본의 어머니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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