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아이의 반항 (3)
아이의 반항 (3)
아이와 어머니 린코와의 전화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까지 계속 이어졌다.
다행히 대화는 좋은 쪽으로 진행되는 모양이었다. 통화를 계속할수록 아이의 표정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통화는 삼성동 아파트에 도착했을 무렵에야 종료되었다.
“됐어요! 어머니가 아버지께 잘 말해서 조만간 한국으로 건너오시겠데요!”
차에서 내린 아이가 민재의 팔짱을 꼭 끼며 활짝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버님께는 어떻게 말씀드리신데요?”
“어차피 예전부터 한국에 건물이나 땅, 부동산 보러 갈 생각이었으니까 이번 기회에 한국 부동산들도 알아보고 이참에 저도 만나 집으로 돌아오라 설득할 겸 다녀오겠다, 이렇게 말씀하시겠데요!”
민재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잘 되었네요. 그런데 혹시 아버님이 어머님 한국 못 가게 잡으시는 건 아니죠?”
“아버지 건강이 완쾌된 게 아니라서 일본에 있는 부동산들이나 재산 관리는 전부 어머니가 직접 하고 계세요. 또 아버지도 한국 부동산 매입에 관심이 많으셔서 어머니를 못 가게 하지는 않으실 거예요.”
이제 어느 정도 문제 해결 방법이 보이는 듯,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아이가 민재의 팔을 꼭 껴안으며 말했다.
“그런데, 오빠~?”
“네?”
“저... 배고프지 않으세요~?”
“네에~?”
“아니~ 갑자기 치킨 드시고 싶지 않으세요~? 네~?”
고민거리가 사라지니 자연스레 배가 고파지는 모양이다.
천진난만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민재도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 * *
역시 딜리버리(Delivery)의 민족답게 주문한 치킨은 몇 십분 만에 민재의 집에 도착했다.
이번에 주문한 치킨은 최근 아이가 자주 찾기 시작한 트러플 향이 첨가된 크리스피한 치즈맛 치킨과 맛있는 간장 소스가 베인 치킨,
거기에 달콤한 허니버터 소스가 뿌려진 감자튀김까지.
아이가 신난 표정으로 거실 테이블 위에 치킨들을 세팅하는 동안 민재는 서비스로 온 콜라는 냉장고에 넣어두고 대신 캔 맥주들을 두 손에 한 아름 가지고 왔다.
두 사람이 좋아하는 국산 IPA (India Pale Ale, 인디아 페일 에일, 홉의 함유량이 많고 도수도 높은 맥주,일반적인 라거 스타일의 맥주보다 톡 쏘는 탄산 느낌은 약하지만 홉 특유의 쌉싸름한 맛과 향이 매우 강한 맥주이다.) A0K 캔 맥주다.
“이타다키마스(いただきます)~ 감사히 먹겠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마친 아이가 치즈 양념이 잘 베인 살이 통통한 닭다리를 붙잡고 옴팡지게 뜯기 시작했다.
‘많이 배가 고팠나보네. 하긴, 그 걱정 때문에 잠도 설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으니.’
민재는 아이가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천천히 맥주를 마셨다.
“오빠, 오빠는 치킨 안 드세요? 오빠도 어서 다리부터 하나 드세요! 안 드시면 내가 다 먹어버릴지도 몰라요! 흐흐흥~!”
아이가 민재에게 닭다리 하나를 건네며 웃어보였다.
입 안 가득 든 치킨을 오물오물 씹고 있는데도 민재에게는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없었다.
“고마워요.”
민재도 아이가 건넨 닭다리를 들고 맛있게 냠냠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빠?”
“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아이가 커다랗고 예쁜 눈으로 민재를 똘망똘망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우리 미국에 갔을 때, 저의 아버지하고 통화했을 때 있었잖아요? 전 그 때 모든 결론이 다 나버렸으니 전에 말한 대로 한국으로 귀화해서 오빠랑 살아야겠다,이렇게 생각했었거든요? 우리 아버지 고집을 꺾을 방법은 세상에 없을 테니 말이에요. 그런데 오빠는 어떻게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를 설득할 방법을 생각하셨던 거예요?”
민재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작으면서도 명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결심... 이요?”
“네, 우리가 결혼하면 아이의 부모님이 내 부모님이 되는 거고 아이의 가족이 내 가족이 되는 건데, 결혼 전부터 가족과 틀어지는 건 원치 않았거든요. 내가 이런 말 전에도 한 적 있었죠?”
“아, 네... 맞아요... 나도 기억나요...”
“그래서 그 때부터 결심했던 것 같아요. 만약 아이의 아버님이 우리 결혼을 반대하신다 해도, 어떻게든 그 분을 설득하고 인정을 받아 축복 받는 결혼을 하고 말 거라고.”
“아, 소 데스카(아, 그렇습니까)...”
“그 결심이 오늘과 같은 생각을 떠올릴 수 있게 해준 거 같아요. 뜻이 있고 간절히 바란다면 방법은 늘 보이는 법이니까.”
민재의 굵고 튼튼한 팔이 아이의 어깨를 따스히 안아주었다.
“한국으로 귀화하는 건 우리 결혼한 후에 해도 늦지 않아요. 지금은 우리 둘 다, 아버님께 축복 받는 결혼 할 수 있는 거에만 집중합시다.”
“네, 오빠...”
아이는 발그레해진 얼굴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런데 오빠, 기억나요?”
“어떤 거요?”
“내가 오빠 집에 처음 왔을 때... 그 때 처음 먹었던 것도 치킨이었잖아요.”
민재도 떠올랐다.
오따쿠 스토커가 아이의 집 앞에서 난리를 치고 간 날, 겁에 질려 오들오들 떨던 아이를 태우고 집으로 데리고 왔던 그 때가 말이다.
“맞아요, 그 때 아이가 집에밥 남은 거 없냐고 해서 내가 치킨을 시켜줬었죠?”
“네, 오빠랑 있으니까 바로 안심이 돼서 그랬나... 바로 배가 고파졌었거든요, 헤헤... 그리고 지금도... 오빠랑 있으니까 걱정, 고민 그런 것들도 모두 다 해결되고... 오빠랑 있으면 너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맛있는 거 함께 먹고 싶어지고... 헤헤...”
“원래 사랑하고 편안한 사이가 되고 나면 이렇게 맛있는 거함께 먹고 싶어지고 그러잖아요.”
“힝~ 너무 편해서맛있는거 많이 먹다가 나 진짜 돼지 되면 안되는데~”
민재가 웃으며 아이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아이의 입술에 묻어있던 양념 때문에, 키스의 뒷맛에 고소하고 짭쪼롬한 치즈향의 여운이 남았다.
아이는 손에 들고 있던 닭다리를 내려놓았다.
민재도 맥주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그녀 손에 깍지를 끼며 말했다.
“그 때 아이가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에는 지금처럼 우리가 함께 살게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어요.”
“정말요? 근데 전 결국 우리가 사귀게 될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어요.”
“응? 언제부터요?”
“그 오따쿠 스토커 피해서 전에 제가 살고 있던 원룸에 오빠가 들어왔던 그 날부터요.”
“그 날이면... 우리 처음 만났던 그 날부터 우리가 사귀게 될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구요?”
아이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빠도 나한테 관심 있어 보이고... 저도 오빠가 제 운명의 사람이 아닐까, 이런 끌림도 받았거든요.”
민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처음 만난 날부터요...? 그런데 내가 그 때부터 아이한테 관심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네, 그 때 같이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면서 오빠가 먼저 저 집에까지 차로 태워다준다고 그러셨잖아요?”
“아, 그거... 어차피 그 때 오후 특별한 일정도 없었고, 신촌까지 버스 타고 가려면 고생할 거 같아서 그랬던 건데요?”
“게다가 같이 차타고 가면서... 오빠가 내 가슴 힐끔 힐끔 훔쳐보기도 했었구요.”
마사까(まさか)......!!!!!!
설마, 그 때 봤던 걸 알고 있었다고?!?!?!
사이드미러 보는 척 아주 몰래 봤는데?!?!?!
고개도 안 돌리고 눈동자만 돌려서 진짜 0.03 초 정도 아주 잠깐 본 건데?!?!?!
민재의 얼굴이 삽시간에 홍당무처럼 새빨개져 버렸다.
“아, 아... 저, 그것이...”
“헤헤, 변명 하지 않으셔두되요~!”
아이가 그의 뺨에 입을 맞추며 환하게 웃음 지었다.
“그 때 내 가슴 봤을 때, 무슨 생각했어요?”
“...”
“혹시 얼마나 클까, 그런 생각했었어요?”
“아니, 난, 그냥... 그 때 아이가 안전벨트 매고 있었는데... 안전벨트가 아이 가슴 가운데에... 그래서 아이 가슴이 너무 티가 나게 도드라져서...”
“그래서 혹시... 야한 생각도 했었어요?”
아이의 손이 민재의 허벅지를 장난스럽게 간지럽혔다.
그리고 그 손은 점점,
그의 다리 사이로 천천히 올라갔다.
“그런 생각하셨어도 괜찮아요. 오빠가 나한테 매력을 느끼고 나를 바라고 원했다면 나도 기쁘니까...”
아이의 몸이 점점 더 그의 품에 필착되고 있었다.
그녀의 커다랗고 탐스러운 G cup 가슴이 민재의 옆구리에 서서히 눌려왔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을 좋아했던 것도, 일본에서 아이돌이랑 그라비아 모델 그만 두면서까지 한국으로 오기로 결심했던 것도 모두 오빠를 만나기 위한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서로 만난 첫 날부터 우리 둘 다...”
이제 그녀의 두 팔이 그의 목을 천천히 감싸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게 된 것이겠지요.”
민재도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어느새 그녀의 호흡이 조금씩 빨라지고,숨을 빠르게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그의 몸에 착 달라붙어있는 그녀의 커다란 가슴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이 몸으로 전달되고 있었다.
“사랑해요, 오빠...!”
그녀의 입술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민재도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리고 그녀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