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아이의 반항 (7)
아이의 반항 (7)
이제 메인 요리와 식사가 나올 시간,
원래 기본적으로 미경산 한우 암소 등심이 나오지만 고객 요청에 따라 안심이나 채끝으로 주문을 변경할 수도 있고 고기의 양도 더 추가할 수 있었다.
민재는 고기를 등심에서 안심으로 변경했고 당연히 양도 기본 양의 두 배 가량을 더 추가시켰다. 기본 양이라면 고기가 네댓 점 정도 밖에 안 나오기 때문에, 모녀의 먹성을 고려하면 그거 가지고는 턱없이 모자를 게 뻔했기 때문이다.
고기는 이미 한번 초벌구이가 된 상태로 서빙 되어졌다.
테이블 위에 숯불이 들어있는 미니화로가 함께 올라왔는데, 고기를 이 위에 올려서 개인 취향에 따라 구워 먹는 것이다.
"(일본어) 이 화로는 일본 야끼니꾸 식당에서 보던 것과 같구나."
실제로 모습이나 용도는 일본의 식당용 미니화로와 거의 유사했다. 린코도 이렇게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을 친숙하게 느끼는 듯 했다.
고기 옆에는 함께 구워 먹을 수 있는 마늘, 파, 버섯 등 야채가 함께 담겨져 있었다. 고기에 찍어 먹을 소금과 된장을 베이스로 한 쌈장도 함께 있었다.
고기와 함께 식사인 반상도 함께 나왔다.
반상에는 흰 쌀밥과 진한 육개장, 김치, 젓갈, 조림, 명이나물 등 한국식 반찬들이소담하면서도 정갈하게 차려져 나왔다.
가운데에는 굽지 않은 손바닥 크기로 썰은 김과 양념 간장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지난번에 민재가 일본에 사가지고 간 건 참기름을 발라 구워 소금을 뿌린 조미김이어서 그런지, 굽지 않은 김을 밥과 함께 양념 간장에 찍어 먹는 건 린코에게 매우 낯선 듯 보였다.
이번 식사를 준비하며 민재가 제일 걱정했던 건 반상에 함께 나오는 육개장이었다. 한국인 입맛에 육개장이 아주 맵게 느껴질리 없겠지만 일본인인 린코에게는 몹시 매울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왠걸,
“으음~? 오이시(맛있는데).”
린코는 오이시를 연발하며 육개장을 아예 그릇째 들고 드링킹 하는 것이 아닌가?
“어머님, 맵지 않으세요???”
“(일본어) 매콤한데 괜찮아요. 일본에서 파는 중국 사천요리들과 비슷한 정도의 맵기에요. 매워도 맛있게 맵고 쌀밥하고 고기하고도 잘 어울리고, 아주 마음에 들어요.”
아이는 아직도 한국의 매운 음식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했는데, 어머니 린코는 육개장 정도는 간단하게 해치워 버렸다.
어머님, 당신은 도덕책...
“(일본어) 어머니, 고기를 이렇게 해서 드셔 보세요. 처음 느끼는 독특한 맛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아이가 미디엄 레어 정도로 익힌 한우 안심을 명이나물에 싸서 린코의 밥그릇 위에 올려 주었다.
이를 먹어본 린코는,
“(일본어) 아라? 이걸 같이 싸서 먹으니까 새콤하면서도 상큼하게 고기를 먹을 수 있구나? 이게 뭐니? 상추나 깻잎은 아닌 거 같고?”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이 직접 명이 나물 위에 잘 구운 한우를 한 점 올리며 물었다.
“(일본어) 명이나물이라는 거예요.”
“(일본어) 명이나물이면... 교자닌니쿠(ギョウジャニンニク, 行者葫, 행자 마늘, 원래 명이 나물의 학명은 ‘산마늘’이다.)? 일본에서는 교자(만두) 속에 넣어 먹는 게 보통인데, 이렇게 고기에 싸먹어도 맛있고, 쌀밥하고 같이 먹어도 맛있을 줄은 물랐구나! 이것도 일본 갈 때 사가지고 가야겠다. 가서 야끼니꾸 해먹을 때 명이나물에 쌈 싸서 먹으라고 하면 너희 아버지 무척 좋아하시겠다. 호호호.”
이 곳 식당은 여느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과는 다르게 밥과 국, 반찬들이 리필도 되었다.(고기는 추가 주문만 가능)
아이와 린코 모두 밥과 육개장, 반찬들을 모두 리필하고 고기도 안심과 채끝을 더 추가해 먹으며 야무지게 점심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한우 암소 중에서도 미경산 한우 암소, 즉 새끼를 출산하지 않은 국산 암소고기라 그런지 육질이 너무나 부드러웠다.
이런 소고기는 그냥 소금만 살짝 찍어 먹어도너무나 맛있는 법이다. 하지만 린코는 처음 맛보는 된장 베이스의 쌈장 맛이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지, 소금 보다는 아까 맛을 들인 명이 나물 위에 쌈장을 듬뿍 찍은 고기 한 점 올리고, 그 위에 김치나 갓김치 하나를 더 올려서 흰 쌀밥과 함께맛있게 입에 넣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 리필한 한우가 가득한 육개장에 남은 밥을 말아 제대로 된 국밥 스타일로 숟가락으로 푹푹 퍼서 신나게 냠냠하시는데,
‘복스럽게 먹는 모습까지, 진짜 아이가 어머니를 쏙 빼닮았구나. 아무튼 이 식당이 마음에 드셨나 보다. 여기로 모시길 잘 했어.’
민재도 린코의 먹는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암0서울의 런치 코스 1인 비용은 약 9만원 정도. 원래대로라면 식사비로 27만원정도 나와야겠지만 감태와 육회초밥 추가한거랑 메인 요리의 고기들, 안심하고 채끝추가한 양 고려하면 오늘 점심 식사비용은 대략 45만원에서 50만원 정도나올 것으로 예상되었다.
한 끼 점심값치고는 터무니없는 가격일 수도 있겠지만 가까운 미래에 장모님이 되실 분을 모신 자리였기에, 민재는 이 정도 비용을 쓰는 것쯤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 게다가 이번 식사로 린코의 한국 방문이 순탄하게 시작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민재 얘한테는 50만원 정도는 진짜 껌값... 아니 이쑤시개 값 정도로 밖에 채감되지않을 테니...
식사가 끝나자 이제 후식이 나왔다.
동그란 접시에 아기자기하게 작고 예쁜 떡 세 개가 놓여져 있었는데, 이건 전통떡이 아니라 치즈로 만든 인절미, 안에 매실잼을 넣은 새싹보리 슈, 겉에 흑임자를 묻힌 고시볼이었다. 옆에는 함께 마실 호박화차도 나왔다.
에피타이저부터 메인 요리, 디저트까지 너무 완벽한 맛의 조화.
린코는 마지막 남은 치즈 인절미를 포크로 들어 입으로 가져가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물었다.
“(일본어) 정말 멋진 식사였어요, 강군! 한국에서의 첫 번째 식사로 이렇게 멋진 한국 요리들을 맛보게 되리라 전혀 기대하지 못했는데!”
“만족하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한국에 계시는 동안 제가 어머님 입맛에 맞으실 만한 요리가 있는 곳으로 많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어) 말씀만으로도 감사해요, 호호호.”
“어머님, 혹시 한국 오셔서 드시고 싶으신 음식 있으세요?”
민재의 물음에 린코가 기억을 더듬으며 말했다.
“(일본어) 음... 예전에 한국 놀러 왔던 친구가 먹어보고 정말 맛있다는 식당이 있었는데... 한국 이름은 잘 모르겠고 영어로... 오리지널리... 그랜드머더... 원 치킨 누들... 대충 이런 이름이었던 것 같아요.”
“오리지널리 그랜드머더 원 치킨 누들 이요...?”
일본인 특유의 혀 짧은 소리에 딱딱한 영어 발음으로 전해들은 오리지널리 그랜드머더 원 치킨 누들이란 이름.
민재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다.
“오리지널리 그랜드머더 원 치킨 누들이면... 원조 할머니 닭 한 마리 칼국수요???”
린코는 손바닥을 치며 격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일본어) 맞아요! 그 이름이 맞아요! 닭으로 만든 국물 있는 요리인데 정말 건강한 맛의 음식이라고 했어요!”
“닭 한 마리가 일본에도 알려져 있군요! 그럼 이따 저녁에 그거 드시러 가실까요?”
“(일본어) 네, 좋아요! 부탁해요, 강군!”
린코는 표정이 매우 밝아졌다.
* * *
첫 번째 식사가 매우 만족스러워서였을까,
민재의 집으로 가는 동안 린코는 처음보다 민재에게 말도 많이 하고 표정도 훨씬 평온해져 있었다.
“(일본어) 옆으로 보이는 강이 한강이지요?”
여전히 아이가 린코와 민재 사이에서 통역을 해주는 중이다.
“네, 맞습니다, 어머님.”
“(일본어) 이 강을 기준으로 북쪽이 강북, 남쪽이 강남이라면서요? 강군이 사는 곳은 강북인가요, 강남인가요?”
“강남입니다, 어머님. 강남의 삼성동이라고, 코엑스가 있는 동네입니다. 다리 하나 건너면 잠실야구장과 종합운동장도 있구요.”
“(일본어) 강남이 강북보다 집값도 비싸고,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집값이 다른 곳보다 비싼 편이고 부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긴 하지만, 정말 한국 최고의 부자들이 사는 곳은 다른 곳이랍니다.”
“(일본어) 아라? 그럼 최고의 부자들이 사는 곳은 어디인가요?”
“우리가 아까 식사했던 종로 북쪽에, 성북구에 있는 성북동이나 이태원 근처 한남동이 한국 재벌들이나 기업가, 정치인들이 모여 사는 최고 부자들이 사는 동네랍니다. 그리고 그곳은 모두 강북에 있지요.”
“(일본어) 아아, 그럼 꼭 강남이 강북보다 부자들이 많은 것도 아니군요?”
“네, 강남은 재벌 같은 아주 큰 부자들보다는 비교적 최근에 부자가 된 사람들이 더 많은 곳이라 보면 됩니다. 원래 서울도 강북 쪽만을 서울이라 불렀지, 강남이 서울에 편입되고 지금처럼 크게 발전한 건 불과 몇 십 년 안 된 일이지요.”
“(일본어) 그럼 그 때 강남이 개발되면서 떠오른 신흥부자들이 늘어나게 되면서 새로운 부촌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군요?”
“네, 맞습니다, 어머님.”
“(일본어) 그럼 강군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들도 모두 강남에 있는 건가요?”
민재는 열심히 운전을 하며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어머님. 강남에 있는 건 저희 집 근처에 있는 대치동에 있는 빌딩과 서초동과 압구정에 있는 빌딩, 이렇게 3개이고, 나머지 4개의 빌딩은 방배동, 이촌동, 합정동, 이태원, 이렇게 모두 강북에 있습니다.
“(일본어) 이태원은 나도 들어봤어요. 미군들이 많이 놀러 나오는 것이라던데?”
“이제는 미군 부대가 평택으로 이전해서 미군들보다는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이나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되었습니다.”
“(일본어) 그렇군요. 그럼 강군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은 모두 7채?”
“네, 최근에 강서구 등촌동에 있는 빌딩을 매각해서 모두 7채입니다.”
빌딩 7채, 라는 말에 린코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빌딩 7채쯤 가지고 있다는 걸 안다면, 아이의 아버지 요시노부 역시 민재가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고쳐먹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이 탄 차는 어느새 영동대교로 접어들고 있었다.
“어머님, 들기름은 나중에 사도되니, 먼저 저희 집으로 가셔서 짐부터 풀으실까요?”
“(일본어) 벌써 강군의 집에 다 와 가나요?”
“네,이 다리만 건너면 금방입니다. 저기, 앞에 보이는 아파트입니다.”
민재가 손가락으로 다리 건너 보이는 삼성동 A아파트를 가리켰다.
“(일본어) 헤에...? 저게 강군이 사는 아파트???”
엄청난 고층에 외관에서부터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A아파트의 전경에 린코는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일본어) 저 아파트 몇 층짜리죠? 강군이 사는 곳은 몇 층이구요?”
“50층 아파트이고 제가 사는 곳은 48층입니다, 어머님.”
“(일본어) 48층?!?! 그렇게나 높은 데에?!?!”
“네, 사실 50층 펜트하우스를 구입하고 싶었는데 당시 매물이 하나도 없어서, 남아있는 매물 중 제일 마음에 드는 게 48층 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어) 오오... 한국도 일본처럼 높은 층의 아파트가 로얄층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일본어) 그럼... 강군이 사는 아파트는 넓이가 얼마나 되나요?”
“약 290 제곱미터니까... 88평 정도 됩니다.”
“(일본어) 88평?!?!?!”
린코가 토끼 같은 눈을 깜빡이며 민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뭐 이 정도 가지고 놀라냐는 표정으로 어머니 린코를 향해 해맑게 웃어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