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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화 〉매운 맛 한 번 볼텨? (2) (120/140)



〈 120화 〉매운 맛 한 번 볼텨? (2)

매운 맛  번 볼텨? (2)



민재의 입술에 묻어 있던 제육볶음의 매운 맛이 아이에게까지 전해지는 모양이었다.

“하아~ 카라이(맵다)~! 오빠,  드시고 오시는데 이렇게... 입술만 닿았는데도이렇게 매워요???”

민재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으응, 그게요... 덕환이랑 압구정에서 만나서 제육볶음에 소주  병씩 마시고 왔어요...”

“제육볶음?”

“네, 돼지고기 매콤하게 볶은 요리에요.”

“아,  고추장 불고기 같은 거?”

제육볶음과 고추장 불고기,  돼지불백은 거의 비슷하게 같으면서도 살짝 다른 음식이다.

고기와 함께 볶는 야채가 적으며 돼지불백, 야채가 많으면 제육볶음이고,

여기서 국물이 자작자작하게 있다 싶으면 두루치기라고한다.

일반인이 그냥 봤을 때 뭐가 제육볶음인지, 뭐가 돼지불백인지, 뭐가 두루치기인지 구분이 안갈 때가 많긴 하지만.

“그런데 제육볶음이 이렇게 매워요?”

“아까보니까 내가 먹은 제육볶음에 태국 고추도들어있더라구요. 그래서 더 매운 맛이 났던 거 같아요.”

아이는 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 *

마침 아이도 저녁 식사 생각이 없다고 했다.

아까 공부하면서 케이크랑 과자, 여러 간식거리들로 군것질을 하며 배를 채운 탓이었다.

대신 냉동실에 있던 아이스크림을 꺼내와 밥숟가락으로 퍼먹으며 (아직도 입술에 남아 있는 제육볶음의 매운 맛을 지우려는 듯) 수시로 숟가락으로 푼 아이스크림을 입술에 갖다 대곤 했다.

민재도 아이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그런데 오빠?”

“네?”

“그동안 제육볶음이 드시고 싶으셨던 거예요? 그럼 저한테 만들어 달라고 하시지...”

아이가 살짝 서운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요새 날이 추워져서 그런가 매운 게 땡겼는데, 마침 덕환이한테 연락도 오고 해서, 그래서 먹고 온 거예요.”

“날이 추우면 매운 음식이 땡겨요?”

“원래 그렇지 않나요? 겨울이 될 수록따뜻하고 맵고 몸을 따뜻하게  수 있는 음식들이 많이 생각나곤 하잖아요?”

“하긴, 일본 사람들도 겨울이 되면 따뜻한 나베 요리나 오뎅(어묵) 요리들을 많이 떠올리곤 하죠.”

“아무래도 일본 사람들은 겨울이 되도 매운 음식 많이 안 먹죠?”

“그런 편이죠. 그래도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 음식이 유행하면서 매운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긴 했어요. 한국의 매운 라면 같은 것도 인기를 끌었고, 중국 사천요리나 호남 요리, 뜸양꿍 같은 태국 요리나 칠리가 들어간 멕시코 요리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매운 맛을 좋아하는 매니아들이 늘어난 거지, 가정에서도 즐겨 먹을 만큼 대중적인 인기가 있다고는 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유튜브를 보면 일본 사람들이 한국의 불닭볶음라면이나 매운 돈까스에 도전하는 영상들도 많이 있고 이런 영상들에 대한 조회수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이는 다소 가학적이고(우리한테는 충분히 먹을만한 매운 음식이 일본인들에게는 먹기 고역일 정도로 괴로운 음식일 수도 있다. 여기서는 다른 사람이 매운 음식을 먹고 괴로움에 발버둥 치는 것을 보고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영상들을 말하는 것)  때 유행하고 있는 재미를 소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들이 대부분이지, 일본인들이 한국 사람들처럼 매운 음식 자체를 즐기고 사랑하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매운 음식들을 보고 일본에서 주류 음식이라 부르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다.

“물론 한국 사람이라고 해서 겨울에 무조건 매운 음식을 찾지는 않아요. 한국의 대표 겨울 음식하면 군고구마나 호빵, 호떡, 붕어빵, 오뎅 같은 길거리 음식들이죠. 아! 냉면도 원래 겨울에 먹는 대표 음식이기도 해요! 겨울 과일로 귤도 인기가 많구요.”

“맞아요! 일본에서도 겨울에 귤 많이 먹어요! 어릴 적에 코타츠 안에 쏙 들어가서 귤 까먹으면서 TV 보는 거 엄청 놓아했는데...! 그런데 여기는 바닥도 뜨끈뜨끈하고 집안에서는 반팔 반바지 입고 있어도 될 만큼 따뜻하니까 코타츠는 필요 없을 같고... 대신 여기 소파 있는 데로 이불 가지고 와서 오빠랑 같이 이불 덮고 TV 보면서  까먹으면 엄청 재미있을 거 같아요!”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지, 아이가 발그레해진 얼굴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전에 어학당 친구들하고 편의점에서 파는 고구마 사먹은 적 있는데 그것도 엄청 맛있었어요!고구마에 살짝 칼질해서 치즈가루 뿌린 건데, 고구마랑 치즈랑 그렇게  어울리는 줄은 그때까지 몰랐었어요.”

“맞아, 요새는 편의점에서 군고구마 팔기 시작하면서 길거리에서 드럼통에 장작 넣고 파는 분들이 많이 없어진  같더라구요. 그래도 군고구마는길거리에서 파는 호박군고구마가 엄청 맛있었는데... 참, 고구마랑 우유랑같이 먹어도 엄청 맛있어요.”

“맞아요! 그래서 고구마 라떼 같은 것도 생겼다잖아요!”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원래 겨울에 군고구마 먹을 때 어떤 거랑 같이 먹은 줄 알아요? 동치미나 사이다를 주로 같이 먹었었데요.”

“사이다요? 고구마 많이 먹으면 목 막히니까 소화시키려고 먹는 거예요?”

“그런 것도 있고, 예전분들은 고구마랑 사이다랑 궁합이 잘 맞는다고 생각하셨데요. 사이다가 없었을 때는 톡 쏘는 맛의 동치미를먹었을 테고.”

“그랬겠네요... 아 그리고, 한국에서도 겨울에 우동 많이 먹죠?”

“네! 겨울에 따끈한 우동도 인기가 많죠! 우동은 역시 겨울에 보드 타고 먹을 때가 짱인데! 우동 말고도 오뎅 국물도최고고!”

“맞아요, 그런데 오빠?”

“네?”

“지금까지 말한 겨울 음식들 다 매운 음식들이 아닌데, 오빠는 왜 갑자기 매운 음식이 드시고 싶으셨던 거예요? 혹시 내가 해드린 음식이 맵지 않아서 마음에 안 드셨던 거...?”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아이를 달래주는  내가 최고니까.

일단 손으로 옆구리살이나 뱃살 만지면 안 된다.

여자가 기분예민할 때 거기 잘못 만졌다가는 진짜 샅 될 수 있다.

일단 왼손은 그녀의 어깨를 살포시 안아주고,

오른손으로는 그녀의 오른손을 꼬옥 잡아준다.
(혹시 때릴까봐? 아, 그건 아니고~!!!)

“아아... 그런 건 아니라...  그런 날이 있잖아요? 별로  좋아하던 음식이갑자기 먹고 싶어지고 그럴 때... 평상시라면 거들떠도 안보는김밥이나 생선찜 같은 게 갑자기 먹고 싶어지고 그럴 때... 오늘따라 매운 제육볶음 먹고 싶어서 그랬던 거지, 아이의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랬던 건 진짜, 진짜~ 아니에요...”

“내가 매운    먹어서 오빠 드시는 음식도 너무 싱겁게 만들어 드렸던  같아... 그렇죠...?”

“아뇨~! 아니에요~! 싱겁다니, 아이가 만드는 음식이 얼마나 간도 잘 맞고 맛이 있는데요~! 다만...”

“...다만?”

“쪼오끔, 아주 쪼오오오오끔 생각보다 절 매운 느낌이 있다정도에요...”

아이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혼자 팔짱을 끼더니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민재는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 * *


다음 날,

아이가 어학당에서 돌아와 시험공부를 하는 사이, 민재는 대치동 건물로 와서 운동을 하는 중이었다.

‘오늘은 한강 뛰지 말고 운동 마치면 바로 집으로 들어가는 게 좋겠어. 아이 공부하는 동안 조용히 옆에 있어주면서 기분 풀어줄 타이밍 좀 봐야지.’

민재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샌드백 치는 것까지 마치고 가볍게 샤워를  집으로 걸어왔다.

“다녀왔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인기척이 없었다.

집 안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아이가 어디 나갔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보니, ‘라리’가 있어야 할 곳에 차가 없었다.

‘차타고 어디 간 거지?’

핸드폰을 들어 그녀에게 전화를 하려는 차였다.

부우우웅~

익숙한 엔진 소리가 들리더니, 빨간색 페라리 F8 트리뷰토가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아이가 돌아온 것이다.

“아라? 오빠!”

아이가 능숙한 솜씨로 차를 주차시킨 후 차문을 열고나오며 웃어 보였다.

그녀의 손에는 대형 마트의 비닐봉지가 하나 들려 있었다.

“어디 다녀오는 길이에요?”

“네, 오빠 저녁 만들어주려고 마트 다녀왔어요. 그런데 오빠는요?”

“집에 오니까 아이가 안 보이길래, 한번 주차장까지 나와 봤던 거예요.”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함께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시험공부 하기도 바쁜데 마트까지 다녀온 거예요? 사올  있으면 나 시키지.”

“아니에요. 오늘 공부는 다 했어요. 이제 올라가서 내가 저녁밥 만들어 줄게요.”

아이는 집에 들어와 옷을 갈아입자마자 분홍색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으로 나왔다.

그리고 마트에서 사온 것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손질을 시작하는데,

다름 아닌 낙지였다.

“아이, 낙지 사가지고 온 거예요?”

“네, 오늘은 오빠 위해서 매콤한 낙지볶음 만들어 드릴게요. 낙지하고 청양고추로 만든 고춧가루도 사왔어요!”

봉지 안을 보니 새빨간 청양고추가루가 들어있었다.

‘헉, 어제 내가  말 때문에... 아이가 신경 많이 쓰였다 보구나...’

민재는 미안한 마음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이는 낙지를 물에 한 번 데치고는 야채와 함께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놓고는 본격적으로 양념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간장과 맛술, 설탕과 다진 마늘에 청양고추가루를 넣어 만든 양념장을 후라이팬에 올려 볶기 시작하는데...

“엣취~! 하아~ 카라이~!”

볶는 냄새가 엄청 매운 듯, 주방 후드를 틀고 요리를 해도 아이는 연신 재채기를 하며 눈물 콧물을 쏟고 있었다.

“아아, 다메, 다메(못해, 못해)~! 이렇게 하면  되겠어~!”

아이는 잠시 가스렌지 불을 끄고는 후다닥 마스터룸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다시 주방으로 나오는데...

입과 코에는 마스크, 눈에는 스쿠버용 물안경을 쓰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아이...? 나 때문에 너무 무리해서 요리할 필요는 없는데...?”

“아니에요! 저도 전부터 매운 요리 만드는 거에 도전해 보고 싶었어요! 나중에 유튜브 영상 만드는 거 연습한다고 생각하고  번 만들어 볼게요!”

민재의 만류에도 아이는 중무장을 하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와 양념장에 낙지와야채를 넣고 열심히 볶기시작했다.

하지만 마스크에 물안경을 했어도 여전히 콧물이 계속 나는 듯, 아이는 코를 훌쩍 거리며 새빨개진 눈으로 열심히 요리를 하고 있었다.

확실히 청양고추가루가 들어가서 맵긴 매운지, 민재가 앉아 있는 거실까지 매운 냄새가 솔솔 풍겼다.

‘크으... 내가 괜한 이야기를 해서... 아이만 고생시키는구나.... 앞으로는 아이가 주는  아무 소리 하지 않고 잘 먹어야 겠다...’

민재는 미안한 마음에 주방에서 요리하는 그녀를 향해 힐끔 힐끔 고개를 돌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오빠~! 저녁 다 되었어요~! 어서  드세요~!”

아이의 부름에 민재는 뻘쭘한 표정으로 주방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왔다.

식탁에는 커다란 접시 위에 담긴 빨갛게 양념된 낙지볶음과 작은 뚝배기로 만든 송송 썰은 파가 들어간 계란찜, 그리고 하얀 쌀밥과 밑반찬 등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매운 맛이 나게 만들어 봤어요. 한번 드셔보세요~!”

아이가 그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여전히 낙지볶음의 매운 냄새 때문인지 코를 찌륵 찌륵, 하면서 말이다.

민재는 미안한 기분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양념이 잘 배인 통통한 낙지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쌀밥 위에 올리고는, 밥과 함께 한 입 먹어보았다.

오호~?!

아니 이건?!

그토록 원하던 제대로 된 매운 맛?!

어제 먹었던 진0집의 제육볶음보다 더, 맛있게 맵고 칼칼한 느낌의 바로 그 맛!!!

“와아... 아이! 이거 진짜 맛있어요!”

“정말요? 매운 맛은 어떠세요? 입맛에 맞으세요? 이번에도 안 맵거나 싱겁거나 하지는 않으시구요?”

“아니에요! 진짜 입에  맞게 맵고 맛도 엄청 맛있어요! 너무 마음에 들어요!”

정말 너무 맛있었는지, 민재는 낙지볶음과 밥을 순식간에 뚝딱비워버렸다.

하지만 아이는 아직도 청양고추가루의 후유증에 시달리는지, 충혈된 눈으로 연신 휴지에 콧물을 흥! 흐으응~! 하고 풀며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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